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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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화요일 천지창조의 셋째 날, 신은 물을 한곳으로 모아 물과 땅을 나누었다. 바다와 육지가 창조된 이후, 땅은 풀과 나무를 기른다. 나무는 열매를 맺고, 다시 씨를 내리고 또 새로운 생명을 기른다. 비로소 지구 위로 다양한 생명체가 서로 다른 생존의 방식으로 뿌리내리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일랜드 출신 어머니와 유모가 들려주는 켈트신화와 신비로운 마법의 세계를 들으며 성장한 리어노라 캐링턴(1917~2011)은 천지창조의 세 번째 날인 화요일을 상상하며, 아일랜드의 첫 번째 정착민으로 켈트신화에 등장하는 케사르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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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비너스와 아도니스 왼손으로 눈을 가린 자의 검은 입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슬픔의 심연으로 그를 조용히 끌어내린다. 종이 위에 툭 떨어진 검은 잉크가 흐리게 번져나가면, 좀처럼 진정할 수 없는 슬픔도 종이 사이로 깊이 스며든다. “앞으로 사랑에는 슬픔이 뒤따르리라. 질투도 동반하리라. 사랑은 처음에는 달콤하나 나중에는 쓰디쓰리라. 변덕스럽고 거짓되고 속임수로 가득하리라. 사랑은 가장 정직하게 보이면서도 사실 가장 위선적이요, 가장 순종적이면서도 사실 가장 고집불통이 되리라. 사랑은 전쟁과 끔찍한 사건들의 원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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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사과 사과의 전제조건은,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외부적 상황 때문에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 없이 사과의 제스처를 취한다면, 그런 사과로는 용서를 받을 수 없다. 사과보다 해명이 앞서는 경우 역시, 용서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과오를 저지른 자의 자기변명에 급급한 모습을 지켜봐야 할 이유가 있는 자들은 없건만, 우리는 왜곡된 목적 때문에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사과를 받아야만 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제임스 홍은 소위 말하는 사회지도층이 사과하는 맥락과 방법, 그들의 언어를 관찰했다. 정치적인 사과, 반성하지 않고 태연히 반복하는 잘못, 그 잘못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사과하는 일련의 과정을 정치 사회적 흐름과 연결하여 구성한 영상 작품 ‘사과’를 발표했다. 그 안에서 작가는 특히,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사과의 임무, 화해와 용서의 서곡으로서 상징성을 가져야 하는 사과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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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그대로 조용히 전시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동시대 삶을 향한 질문과 고민에 접속하기 마련이다. 휘트니비엔날레의 2022년도 전시를 기획한 아드리안 에드워드와 데이비드 브레슬린은,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데 예술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살펴보는 방법론을 제공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은 전염병의 창궐과 폭발적인 정치 사회적 갈등이 수면으로 끌어올린 위기의 순간들을 관통하면서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토니 모리슨의 소설 <가장 푸른 눈>의 첫 문구‘그대로 조용히’를 선택했다. 토니 모리슨이 1970년 발표한 이 소설은 11세 흑인 소녀의 비극을 통해 인종차별과 지배문화의 폭력이 만연하는 사회의 면면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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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완벽한 최후의 1초는 단 하나의 정답을 꿈꾸지 않는다 한 예술가의 삶이,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창작을 자극하는 ‘원전’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시대를 초월해 재정의되는 창작자의 존재는, 동시대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창작방법론이 구현하는 장면의 의미를 다른 시공간의 시선을 빌려와 환기시켜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올해로 탄생 90주년을 맞이하는 백남준을 기념하며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준비한 특별전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은 ‘백남준’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가 교감하여 또 다른 의미와 감각을 만드는 장면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백남준이 1961년 작곡한 텍스트 악보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을 국내 최초로 시연하는 이 전시는 지시문으로 채워진 사각형 모양의 악보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연구하고 해석한 교향곡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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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국가라는 정의 “국가로 인정되지 않는 나라의 외교관은 아침에 출근해서 무슨 일을 하는가. 영토, 정부, 국기, 언어가 있지만,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국가 압하지야. 다른 어느 국가도 이곳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압하지야는 경계에 걸쳐 있는 공간, 리얼리티의 틈새에 갇힌 채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한다.” 압하지야 공화국의 외무 장관 ‘막스 그빈지아’에게 편지를 보낸 작가 에릭 보들레르는, 딱히 그로부터 답장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수취인불명으로 자신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높은 편지를 적으면서, 국가의 정의를 고민했을 뿐이다. 뜻밖에 답신을 받은 보들레르는 막스와 서신을 교환했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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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도시를 상상하고 짓는 일 오스트리아 건축박물관에서 건축 시뮬레이션 게임과 장난감을 주제로 한 전시를 열었다. 나무 블록, 카드 보드를 이용한 전통적인 ‘집짓기’ 게임부터 콘솔, 컴퓨터, 모바일 앱 게임 등 시대에 따라 다양한 플랫폼을 확보한 게임이 등장한다. 박물관 측은 이런 건축 게임과 장난감 안에는 우리의 문화 및 기술적 유산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게임의 주요 플랫폼이 변하는 것 역시 사회사, 기술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게임의 세계 안에서 관객들은 현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건물을 짓고, 마을을 설계한다. 마을을 구축하면서 관객·유저들은 그들이 내리는 결정이 세계를 물리적으로 건설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삶의 질서와 가치 등의 세계관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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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예술가와 전쟁 평화, 민주주의는 생각보다 허약한 것 같다. 너무 쉽게 무너지고, 회복은 어렵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지구 한쪽에서 평화는 무너져 내렸고, 폭격 아래 희생자가 속출한다. 누구의 목적과 욕망을 위하여 평화는 깨어지는가. 평화를 망가뜨릴 수 있는 당위성을 가질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 우크라이나 파빌리온 참여 작가 파블로 마코프는 작업을 중단했다. 전투기가 오가고 총알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작품을 마무리짓고 베니스로 작품을 보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하르키우에서 가족과 은신하고 있는 작가는 우리가 믿어온 자유, 평화,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 탄식한다. 예술계는 파블로 마코프와 우크라이나 예술가들에게 연대의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마코프는 많은 이들로부터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러시아 국가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비윤리적인 공격이 자행되는 상황에서, 모든 민족이 동등하게 만나야 하는 베니스비엔날레의 장에서 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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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콩과 들깨 2차 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집중 공습을 받아 초토화된 로테르담은 도시 재건 과정에서, 옛 모습에 연연하지 않고 완전히 현대적인 도시를 만드는 방향을 선택했다. 한편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는,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현재성만을 추구했던 근대 건축의 방식을 모두 걷어내고, 중세의 수공업적 시민도시의 모습으로 프라이부르크의 시간을 돌려놓았다. 도시가 건축을 통해 역사를 기억하고, 동시대와 접점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는 도시인들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담기기 마련이다. 광주시가 광주비엔날레재단과 함께 2011년부터 시작한 ‘광주폴리’는 도시의 물리적 재건이 아니라, 내용적 재건에 대한 도시와 예술의 선택을 보여준다. 건축계에서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채 장식적으로만 존재하는 건축물을 뜻하는 ‘폴리’는 광주에서 ‘기능을 회복한’ 아름다운 건축물로 재정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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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공정한 게임 보드게임 모노폴리나 부루마블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게임 위의 세계는 실제 세계의 축소판처럼 작동한다. 좋은 땅은 돈 많은 자의 차지가 되고, 돈은 당연한 듯 돈이 있는 자에게만 흘러들어간다. 게임의 초반, 참여자가 발휘하는 자산운용 전략은 능력보다 운에 기대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정말 자본주의의 생리라면, 우리는 과연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자조적인 말을 내뱉으며 게임판을 덮었던 기억이 있다. 독과점의 세계를 실감나게 가르쳐주는 이 게임들의 원형은 1904년 리지 매기가 개발한 ‘집주인 게임’이다. 하지만 리지 매기가 게임으로 가르치고 싶었던 것은 오히려 독과점의 위험성이었다. 그는 집주인이 임대료 수입을 통해 부를 쌓는 원리를 경험하는 게임 참여자들, 특히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이 구조를 의심하도록 게임을 디자인했다. 그는 어린이들이 이런 경제구조 원리에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해나가는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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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마녀의 요람 안무가, 무용가, 영화이론가, 영화제작자, 시인으로서 1940~195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엘레노라 데렌코브스카(1917~1961)는 1943년 뉴욕에 정착하면서 ‘마야 데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리스어로는 ‘신의 메신저’, 산스크리트어로는 ‘환영’이라는 의미를 가진 마야는 그의 영화적 이미지를 지배하는 바다, 환상, 마술, 여인 등 그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그는 예술의 여러 속성과 영화의 기술적 요소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실험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데 능숙했다. 기이한 이미지들과 파편화된 흐름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마녀의 요람’은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시공간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당시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페기 구겐하임이 운영하던 금세기 미술화랑에서 촬영한 만큼, 그의 작업은 초현실적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마녀의 상징’을 이마에 새긴 여성의 시선, 펄떡이는 심장, 양손을 끈으로 감싼 신사(마르셀 뒤샹 분),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식이 의뭉스럽게 움직인다. 초심리학 실험에 사용하는 금속좌대를 일컫는 ‘마녀의 요람’을 제목으로 쓴 작가는 마녀를 가방에 넣어 나무 끝에 매달아 그네를 태우는 방식으로 사용하던 고문도구가 일으킨 감각의 상실, 혼란, 환각의 상태를 작업 안으로 녹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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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시신세 종말은 인류처럼 지구에 기생하는 유기체의 문제이지 지구의 관심사는 아니다. 환경이 황폐해졌다고 지구가 상처 입을 일은 없다. 판게아가 갈라지고, 마그마가 분출하고, 해일이 몰아치고, 해수면의 온도가 올라간들, 지구는 끝나지 않는다. 자연재해의 이름으로 생태가 뒤집히고, 몇몇 생명체가 멸종할 뿐. 지질학적 시간을 스치고 사라지는 유기체의 일대기는 미약하다. 막스 후퍼 슈나이더는 포유류가 대륙마다 다른 양상으로 진화하고 신생대형 생물군이 크게 번성했던 시신세(始新世, Eocene epoch·약 5600만년 전~3390만년 전)의 생명을 상상했다. 원숭이는 출현했으나, 기억과 역사를 재구성하며 능숙하게 자기 존재의 당위성을 축적해 온 인류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던 이 시기에 오늘날 살아남은 대다수 동식물의 조상이 등장했단다. 티베트고원과 히말라야산맥이 탄생하고, 다양한 어류가 종족을 퍼뜨리던 시기, 지구의 기온은 북극 근처에서 악어들이 헤엄을 칠 만큼 높았다. 지구온난화를 염려하는 과학자들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시신세의 기후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한다. 급속한 기후변화를 견딜 수 있는 생명체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