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일
중학교 도덕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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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안과 밖 잡초가 꽃이 될 때 ‘저 애만 없으면 수업 분위기가 참 좋을 것인데…’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학생이 반에 한 명씩은 꼭 있다. 하지만 어쩌다 그 학생이 전학을 가게 되면 신기하게도 크게 다르지 않은 학생이 그 자리를 메운다. 대부분의 ‘저 애’는 알고 보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친구들이 학교생활에 부적응을 겪게 되면 학교에서는 위기관리위원회를 열어 좀 더 세심한 돌봄과 지도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학교위기관리위원회에서는 구청 복지담당부서나 정신건강증진센터 등 외부 기관의 전문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의 실마리와 지원 방법을 찾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의 사안은 어느 정도 해결책이 보이는데 가끔은 답답한 상황에 놓일 때도 있다. 보호자로부터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그래도 ‘부모가 되어 가지고’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은 그 가정의 삶의 무게와 고통을 헤아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도 해결의 실마리도 부모에게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부모가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내지 않고서는 실질적인 문제해결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학생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경우 학생 복지는 보호자 앞에서 멈춰선 느낌이 든다. 학생인권은 학생인권조례라는 열쇠로 열고 교문을 통과해 들어가는 중이다. 보호자가 학생 복지를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학생을 감싸안는 부드러운 품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보호자를 정서적·경제적으로 지원하여 보호자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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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안과 밖 누가 우리 감자를 못살게 해요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마자 아이들이 계단을 급하게 내려온다. 텃밭상자를 분양받아 돌보는 1학년들이다. 가로 2m 세로 1m의 텃밭상자 21개를 세 명당 하나씩 분양해 주었는데 아이들이 쏟는 정성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미술시간에 정성 들여 각자의 텃밭에 푯말을 만들어 꽂아 놓았는데 유머러스하고 기발한 표현이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해도 손색이 없겠다 싶다. 아이들은 상추, 고추, 오이, 토마토 등을 심고, 잡초를 제거하고 매일 물을 주며 들여다본다. 텃밭상자의 작물들을 돌보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린다. “와! 살았어! 죽을 줄 알았는데!” “선생님! 진짜 싹이 났어요!” “으악! 벌레다!” 아이들의 감탄사가 점심을 먹고 지나가는 선생님들의 발걸음을 텃밭상자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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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안과 밖 통합교육과정, 어디까지 왔나 다음과 같은 가정들을 믿고 있었다. 인류 문명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과학기술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인류에게 닥친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발전의 시계는 멈추었고 삶의 질은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숨쉬기 곤란할 만큼 심각한 황사와 미세먼지, 기후위기와 플라스틱의 공포는 점점 목을 죄어 오는 것 같다. 핵무기와 원자력발전의 위험은 또 어떠한가? 과학기술의 발전이 편리함과 풍요를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인류는 이로 인해 유례없는 위기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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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안과 밖 사실인데 왜 말하면 안 돼요?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현행 형법 조항에 대한 합헌 판결이 있었다. 사회적 이슈이다 보니 판결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합헌 5, 위헌 4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하니 헌재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나 보다. 개인의 인격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합헌의 의견에도 공감이 가고,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으므로 위헌의 요소가 있다고 주장하는 의견에도 공감이 가서 헌재의 결정에 환영도 유감도 아닌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학교에서도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과 비슷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친구로 지내다 관계가 틀어지면 다른 친구들과 친해지는 과정에서 그전 친구와 나누던 둘만의 사적인 이야기들을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전달하고, 나아가 너에 대해 이런 뒷담화를 했다고 전하며 한편이 되어 결속을 다지기도 한다. 이전 친구와 갈등이 심화되어 SNS에까지 올리게 되면 결국 학교폭력으로 신고가 들어오게 된다. 상담하는 과정에서 말을 전한 친구에게 둘 사이에 나눈 이야기를 사이가 틀어졌다고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면 “그 애가 그렇게 말한 것(또는 행동한 것)이 사실인데 왜 말하면 안 돼요?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요”라고 되묻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잠시 말문이 막히지만 사적 비밀을 지켜준다는 것의 중요성과 설령 사실일지라도 누군가의 흠을 들춰내고 공개적으로 망신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해주는데, 이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관계가 틀어진 친구에 대한 미움과 화가 분별력을 흐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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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안과 밖 수용과 연결을 꿈꾸는 회의 다시 봄이다. 입춘이 지나고 언 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화사한 꽃으로 봄을 알리는 구근의 새싹들이 여기저기 삐죽이 내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봄’이라는 단어가 주는 생생함을 여린 새순들, 개나리, 진달래의 화사한 모습으로 떠올리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너희들이 와야 학교는 봄’이라는 현수막이 떠오른다. 작년 봄 코로나로 개학이 늦어지며 아이들을 기다리며 교문에 걸려 있던 이 문구가 얼마나 마음을 울렸던지. 드문드문 학교에 다녀가는 아이들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아니라 학교 여기저기서 들리는 아이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웃음소리가 혈관의 맥박처럼 우리 사회 생기의 근원이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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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안과 밖 평가의 재발견 한 편의 영화를 빨리감기하여 휙휙 스쳐본 것만 같은 2020년이었다. 그런 가운데도 학교는 오랜 역사와 촘촘히 얽힌 시스템 덕분에 할 건 다 해야 학기가 마쳐지고 방학에 들어갈 수 있다. 해마다 학기말이면 교육과정 평가회를 갖는데 2020년에는 12월 중순부터 세 번에 걸쳐 일 년의 교육과정을 돌아보고 평가하는 자리를 가졌다. 한 번은 학년을 중심으로 한 통합교육과정에 대한 평가, 또 한 번은 학교 운영 전반에 걸친 조직 진단을 겸한 평가, 마지막으로 학생·교사의 성장 이야기를 듣는 평가의 시간까지 세 번의 과정을 거치면서 ‘평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리는 경험을 했다. 일단 그 시간이 즐겁고 감동적이었으며 구성원들 사이에 소통과 이해가 깊어졌고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무언가 가슴 안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희망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재직했던 모든 학교마다 교육과정 반성회라는 것을 해 왔는데 왜 이번에는 색다르게 다가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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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안과 밖 교사·학부모, 우리는 한 팀 옆 반 선생님은 반의 한 아이가 줌(zoom) 원격수업에 들어오지 않고 전화도 안 받고 부모님도 전화를 안 받는다고 걱정이다. 일단 가정방문을 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부모님과도 계속 전화조차 안 되면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저런 방안들을 논의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아이들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게 돼 기본적인 생활 리듬이 깨지고 컴퓨터와 휴대폰을 밤늦게까지 한다고 걱정하는 학부모가 많다. 학교에서 밤 10시 이후에는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게 도와줄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어보시는 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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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안과 밖 민주화운동 교원 피해 회복을 지난 월요일 국회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강득구 의원의 민주화운동 교원 명예회복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교육부와 국회가 앞장서 더 늦기 전에 그분들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답변했다. 이 소식이 반가운 것은 민주화운동 관련으로 해직되었다 복직되신 선배 교사들을 볼 때마다 왜 복직과 동시에 원상회복이 되지 않았는지 선뜻 납득되지 않은 데다 해직기간 경력조차 인정되지 않아 몇몇 분들은 연금을 받지 못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안타까움이 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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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안과 밖 원격수업 유감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사회 구성원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초기에 서로 돕고 배려하는 모습 대신 탓하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이건 원격수업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을 방치하실 생각이십니까?’라는 청원 글이 올라오고, 이에 화답하듯 교육부에서 실시간조회, 종례와 주1회 이상 쌍방향 수업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에 여러 교원단체는 쌍방향 수업을 할 여건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는 논평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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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안과 밖 개정 학폭법과 보낸 한 학기 학교에서 학교폭력 담당 책임교사로 2년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등교개학이 미뤄지고 온라인개학이 이어질 때 학생부는 모처럼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게 되면서 학생부장이 꿀보직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듣게 되었다. 하지만 등교개학 이후 쌓였던 갈등이 터져 나왔다. 다행히 1학기 학교폭력 관련 사안을 처리하면서 개정 학폭법(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덕분에 학교폭력심의위원회까지 가지 않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 학교 내 학교폭력 전담기구에서 학교장 종결로 사안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갈등’에 대한 재미있는 설명 중 하나가 ‘상황이 변했다’라는 말이다. 그동안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던 학생의 일을 주위에서 알게 되거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신체적·정서적 변화가 아이들의 관계에 지각변동을 가져오며 갈등이 표면화되기도 한다. 상황이 변하고, 변화한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적응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살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이 예견되면 회피하거나 상대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직면하는 것을 피한다. 일단 회피하거나 공격하는 전략을 선택하면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되는 것 같다. 시간, 장소, 사람만 바뀔 뿐이지 오래도록 비슷한 갈등의 서사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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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안과 밖 마스크와 침묵 등교개학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이 지나도 적응하기 힘든 것은 급식실에서 한 자리씩 띄어 앉아, 한 방향을 보고, 말없이 식사를 하는 것인데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이전에는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 것이 보통이고, 말없이 밥만 먹을 때는 무언가 분위기가 무겁거나 불편할 때였는데 말없이 밥을 먹는 것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몇 주가 지나며 적응하고 있는 것도 있다. 처음에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마스크에 적응해가는 중이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를 지키며 아이들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막상 등교를 하자 방역지침을 지키며 수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안 되는 것투성이였다. 모둠 수업도 안 된다, 함께 교재 교구를 쓰는 것도 안 된다. 새 학기 시작부터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아이들 얼굴이 어찌 생겼는지도 모르겠고 이름을 외워 불러주기도 힘들었다. 의사소통에서 몸짓이나 표정이 55%를 차지하고 어감이 38%, 어휘가 전달하는 것이 7%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특히 소통을 하는 데 마스크가 많이 제약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 때문인지 아이들은 발표도 덜하고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수업이 재미가 없고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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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안과 밖 싸워 이길까, 변화를 선택할까 ‘알 수 없음’은 불안과 두려움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이유이다. 어두운 밤길을 갈 때, 구체적 용건을 말하지 않고 누군가 일단 보자고 할 때 드는 느낌처럼 불확실성은 두려움을 유발한다. 코로나19로 겪는 일들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게 어두운 밤길을 헤쳐나가는 느낌이다. 우리가 이 어둠의 터널을 잘 헤쳐 나가고 있는지는 터널 끝에 도달해야 분명해질 것이다. 정말 모르겠다. 무엇이 최선인지, 자신있게 무언가를 주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질문이 꼬리를 문다. 등교개학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백신이 나오거나 감염 확산이 뚜렷이 잡힐 때까지 등교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가 되고, 고3·중3 입시 일정과 경기침체 등을 생각할 때 언제까지 등교를 마냥 미룰 수만도 없다는 주장에 수긍이 가면서도 반대 입장의 문제제기는 풀리지 않는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