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 감자를 못살게 해요

손연일 광주 월곡중 교사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마자 아이들이 계단을 급하게 내려온다. 텃밭상자를 분양받아 돌보는 1학년들이다. 가로 2m 세로 1m의 텃밭상자 21개를 세 명당 하나씩 분양해 주었는데 아이들이 쏟는 정성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미술시간에 정성 들여 각자의 텃밭에 푯말을 만들어 꽂아 놓았는데 유머러스하고 기발한 표현이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해도 손색이 없겠다 싶다.

손연일 광주 월곡중 교사

손연일 광주 월곡중 교사

아이들은 상추, 고추, 오이, 토마토 등을 심고, 잡초를 제거하고 매일 물을 주며 들여다본다. 텃밭상자의 작물들을 돌보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린다. “와! 살았어! 죽을 줄 알았는데!” “선생님! 진짜 싹이 났어요!” “으악! 벌레다!” 아이들의 감탄사가 점심을 먹고 지나가는 선생님들의 발걸음을 텃밭상자로 이끈다.

어제는 너무 속상해하는 한 아이를 보았다. “선생님, 누군가 우리 감자들을 만져서 못살게 한 것 같아요. 지난주는 안 그랬는데 오늘은 기운이 없어요.” 자세히 보니 주말을 지내며 물이 부족해 조금 시들어 보였다. “걱정 마! 물을 주면 금방 살아날 거야!”라고 말해주고 나니 몇 해 전 생각이 났다.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생명의 소중함을 키워주고 싶어 교실에 화분 여러 개를 놓고 키웠다. 그런데 가끔 어린 싹을 ‘똑’ 끊어놓는 경우가 생겨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다.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훈화했지만 그 뒤로도 몇 번 그런 일이 되풀이되어 마음이 얼마나 상했는지 모른다. 그때의 아이들도 중1이고 지금의 아이들도 중1인데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며 돌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생기는구나 싶었다. 어떤 아이들은 등교할 때마다 일부러 텃밭상자에 들러 자신들이 키우는 작물들이 밤새 얼마나 컸나 들여다보기도 한다. 벌써 농부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작년에 학년 통합교육과정 중 하나로 기후위기대응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실천약속 중 하나로 식물 기르기를 써낸 아이들이 다수 있었다. 의외다 싶었는데 아마도 1학년 때 텃밭상자 경험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올 들어 학교에 원예부가 생겨 텃밭상자 옆에 꽃 상자들이 추가되어 학교에 생기와 아름다움이 더해지고 있다. 미술시간에는 예쁘게 핀 꽃들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세밀화 그리기를 한다고 한다. 학교에 핀 꽃들이 아이들의 눈과 손을 거쳐 어떻게 표현될지 기대가 된다. 작지만 연쇄반응들이 이어지고 있어 고무적이다.

사실 텃밭상자와 원예부 운영에는 많은 품이 들어간다. 대부분 공모사업으로 사업비를 마련해야 하고 기본적인 교과수업과 행정업무 외에 추가적으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지라 누군가의 자발적 의지 없이는 지속되기도 어렵다. 하지만 거기에는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 우리가 가르치고자 하는 가치들이지만 교과서만으로는 배우기 어려운 생명의 소중함, 돌봄, 관계 맺기,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 같은 것들이.

모든 생명의 몸짓에는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옹기종기 텃밭상자를 둘러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답고 생기 있어 보인다.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선생님들의 모습은 더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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