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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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검찰개혁은 왜 어려운가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은 과거의 정부에서도 추진했던 과제다. 그중 피부로 느껴질 만한 것은 로스쿨 제도의 도입 정도 아니었나 싶다. 그 외에는 매번 거의 같은 내용으로 개혁을 운위했으며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 개혁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나 정치적 중립성의 확립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것이 그렇게도 어려울까. 검찰개혁에 한정해 보면, 개혁 좌절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치권력 자체에 있다. 검찰에 대한 편향적 인사나 검찰권의 행사를 정권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쪽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개혁을 어렵게 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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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내게 ‘보수냐 진보냐’ 묻는 이들에게 법원 근무 시절, 칠판에 “소신 없는 판사가 되자”라고 써 놓은 일이 있었다. 방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그걸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판사는 대쪽 같은 소신을 가져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소신 없는 판사가 되자니 웬 말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판사가 한번 소신이라는 똬리를 틀고 앉아 있으면 그것만큼 고약한 일이 없다. 소신이라는 이름 아래 사건을 선입관이나 편견으로 보게 될 우려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근로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하는 소송이나 납세자가 세무서를 상대로 하는 소송에서 어느 일방이 늘 잘못을 저지르거나 나쁘다는 식의 인식을 갖고 판사가 사건의 결론을 낸다면 끔찍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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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당앙의 길, 상앙의 길 권력관계란 누군가가 다른 누구를 우월적으로 지배하는 관계다. 권력은 곳곳에 있다. 정치판에서, 관청에서, 법정에서, 군대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사람들은 권력을 행사하고 권력에 지배당한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권력자가 되고 싶은가? 여기 아주 효과적인 길이 있다. 전국시대의 송나라 강왕은 형의 왕위를 찬탈한 자이고 포악하기로 이름이 났다. 그가 재상인 당앙에게 물었다. “과인이 살육한 자들이 많은데도 군신들이 갈수록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당앙이 대답한다. “왕께서 죄를 물은 것은 모두 좋지 않은 자들입니다. 좋지 않은 자들만 죄를 물으니, 좋은 자들은 이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왕께서 군신들이 모두 두려워하기를 바라신다면 좋은 자와 좋지 않은 자를 가리지 말고 닥치는 대로 죄를 물으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군신들이 두려워할 것입니다.” 얼마 안 있어 강왕이 당앙을 죽였다. <여씨춘추> 중 ‘음사’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야기 끝에 “당앙이 대답한 것은 대답하지 않은 것만 못하였다”라고 하여 악한 자의 말로를 논하였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 이야기가 법치주의와 관련하여 가지는 함의다. 순자는 강왕이 당앙에 의하여 나쁘게 ‘물들여졌다’고 한 바 있다. 그렇게 실컷 나쁜 짓을 가르치긴 했으나 그래도 선생인데, 배운 자가 배운 걸 써먹는다고 가르친 자를 죽인 것이다. 그만하면 모든 신하와 백성들이 강왕을 두려워하게 되었을 것이다. 잘해도 죽고 잘못해도 죽는 세상, 살길은 왕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길밖에 없다. 법 따위는 소용없게 된 것이다. 오늘날 법학에서 말하는 법적 안정성이 무너진 상태에서, 송나라에 남은 것은 벌거벗은 권력의 횡포였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송나라는 강왕의 대에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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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이제야 뼈가 저리다니 잭 매키는 이름난 병원의 잘나가는 외과의사다. 행복한 가정과 고급저택을 가지고 있다. 유능하지만 환자의 고통에 냉담한 그가 어느 날 후두암에 걸렸다. 자기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환자로 신분이 바뀌자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검사를 시행하는 의사는 불친절하고 일방통행이다. 병원은 방사선 치료 시간을 지키지 않고, 간호사에게 따져보지만 여의치 않다. 무신경, 무성의, 무대응에 분노하지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병원 관계자는 없다. 환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병원에, 환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던 의사가 절망한다. 1991년에 나온 미국 영화 <더 닥터>의 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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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사법연수원 동기 노무현, 그립다 내가 고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75년 가을 사법연수원에서였다. 7기생 전원 58명이 교실 하나에 모여 앉아 2년을 보냈으니, 나도 그를 조금은 안다고 할 만하다. 동기생 중 유일한 고졸 학력이고, 늘 웃는 얼굴의 촌사람풍이었다.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거셌다. 맨 처음 기억나는 일은 연수원에서 소풍을 갔을 때였다. 연수생들이 나와서 각종 장사치 흉내를 내는데, 뱀장수, 속옷장수 다음에 그가 나와서 면도날장수 흉내를 냈다. “그럼 이 돈을 다 받느냐?”라며 물건값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사람들이 예상한 다음 대사는 “아니에요. 절반 뚝 잘라서 단돈 천 원 한 장!”이었다. 그런데 그가 한 말은 “네, 다 받습니다. 받고요”였다. 모두들 포복절도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자랑 사회를 봤다. ‘무너진 사랑탑’이라는 노래를 한 곡조 하더니만, 돌아가며 노래를 시키는데 그는 “심리미진의 위법이 없어야 한다”고 법률용어를 써 가며 단 한 사람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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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까마귀의 항변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는 미국 연방법원 판사로 재직 중이던 1920년 프로야구연맹의 초대 총재로 취임했다. 프로야구계가 제시한 영입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종신직인 데다 총재 연봉이 판사 연봉의 다섯 배가 넘었다. 겸직으로 물의가 일자 법무부가 조사한 후 총재 일을 해도 판사로서의 직무 수행에 지장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미국변호사협회는 랜디스의 행위가 ‘온당치 못한 외관’을 보였다는 이유로 제재를 결의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실체가 어떻든 외관상 의심스러운 행위는 그 자체로 사법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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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훌륭한 헌법재판관의 자질 대통령이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현 정부의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에 대한 인사 정책이 파당적이라며 비판하는 견해와 헌재 구성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이라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앞으로 있을 청문회에서 한바탕 설전이 벌어질 것이다. 아무려나 현 정부의 인사 패턴을 보면 이들이 재판관으로 임명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훌륭한 판관을 뽑기는 쉽지 않다. 법률가로서의 자격이나 경력 요건 외에 판관 될 사람이 갖추어야 할 자질에 관해서 법이 별도로 정한 바도 없다. 이 풍진 세상, 고위직 판관을 뽑는 데 기준으로 삼을 만한 자질은 무엇일까. 임명권자로서는 아무래도 자기 편을 들어줄 것 같은 사람이 필요할 게고, 또 성별이나 출신지역 안배도 생각해야 할 것이지만, 이런 고려사항이 일단 판관의 자리에 오른 이가 가져야 할 자세와 반드시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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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낙태죄의 헌법재판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자신이 재임 중 저지른 최대의 정치적 실수가 얼 워런을 연방대법원의 대법원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고 말한 일이 있다. 워런은 골수 공화당원이고 보수주의자로서 캘리포니아주의 지사를 세 차례나 역임하였지만, 막상 대법원장이 되고 나서는 수많은 진보적 판결을 주도하였다.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도 비슷한 실수를 했다. 낙태권은 미국의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간 대립구도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거리다. 그런데 닉슨이 임명한 해리 블랙먼 대법관은 1973년에 여성의 낙태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법률이 위헌이라는 이정표적 판결을 내렸다. 임명권자의 입장에서는 ‘배신 때리기’이겠으나, 사법사를 읽을 때 이런 이야기는 흥미롭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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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법정의 훈계 사기죄로 재판을 받던 건축업자에게 판사가 판결을 선고했다. 집행유예가 붙어 풀려나는 것은 좋았는데, 판사가 준엄하게 피고인을 꾸짖었다. 돈도 없는 사람이 무슨 사업을 하겠다는 거냐, 앞으로는 절대로 건축 일을 하지 말아라, 이런 요지였다. 판사의 동정을 사려고 재판받는 날마다 법정에 목발을 짚고 나와 죽는 시늉을 하던 그 건축업자가 판결을 선고받고 법정 밖을 나오자마자 목발을 집어던지며 하는 말인즉, “나 참, 내가 돈이 있으면 뭣하러 건축 일을 해? 그냥 놀고 먹지”였다. 형사소송규칙 제147조는 ‘판결 선고 시의 훈계’라는 제하에 “재판장은 판결을 선고함에 있어 피고인에게 적절한 훈계를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무해한 규정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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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웃기는 사람, 웃는 사람 어느 유수한 대학의 교수가 아내와 딸에게 자랑을 했다. 내가 우스운 이야기를 하면 그때마다 학생들이 포복절도를 한다고. 아빠에게 평소 유머감각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딸이 이상하다 싶어 말했다. 아닐 거예요, 아빠가 교수라서 웃어 줄 것 같은데. 그 교수가 다음 날 학생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그동안 내가 우스갯소리를 하면 별로 우습지도 않은데 웃어 준 것 아닌가. 학생들이 기겁을 하면서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요, 교수님이 하시는 농담은 정말 웃깁니다. 이건 정말이에요. 그 교수가 집에 돌아와 다시 딸에게 말했다. 아니야, 나 정말 웃긴데. 음… 그렇다, 아닌 게 아니라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