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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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차별금지법안은 통과되어야 한다 “짐승도 그 짓은 안 합니다.” 지난 퀴어축제 때 옆에서 반대집회를 하던 이들이 내건 구호다. 아니다, 한다. 미국과 노르웨이의 연구팀은 2008년 조사 결과 1500종이 넘는 동물에서 동성애가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다. 나는 짐승도 하니 인간도 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짐승이 하지 않는 일은 인간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식의 무지한 논법에도 찬성하지 않는다. 다만 과학적 사실을 말할 뿐이다. 성소수자의 지위나 권리에 대한 논의에서 우선 전제해야 할 것은 과학적 사실이나 객관적 진실의 문제를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서로 논쟁과 변론에 쓰이는 객관적 사실을 공유하는 데 이의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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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누더기 세법 이런 세상은 어떨까. 출근하려는데 늘 있던 버스 정거장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부로 폐지되어 버렸다나. 다른 정거장에 가서 버스에 타려니, 신용카드는 더 이상 쓸 수 없고 현금을 내라고 한다. 간신히 현금을 구해 출근해서, 의뢰인이 데리고 온 증인과 회의를 시작하려는 순간 오늘부터는 회의 전에 서면으로 내용을 밝혀 대표변호사의 허가를 받으라는 전갈이 온다. 급히 허가를 받아 회의를 시작하는데 비서가 메모를 전한다. 변호사가 증인신문 전 증인을 만날 수 없도록 법이 바뀌었단다. 가상의 예지만 이래서야 살겠는가. 최소한의 안정은 삶의 기본조건이다. 예측하지 못한 변동은 불만의 단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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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존댓말 판결문 대한항공 비행기가 괌의 공항 근처 산에 추락한 사고가 일어난 해는 1997년이다. 사고 원인은 악천후, 착륙유도시설의 설치 위치 이상, 공항의 활공각 유도장치 고장, 기장의 피로로 인한 판단착오 등이었다. 그런데 조종실에 있던 부기장과 항공기관사는 기장의 판단 착오를 바로잡는 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왜였을까? 서열의식 문화와 한국어의 공손표현이 문제를 일으켰다. 블랙박스에 담긴 대화를 보면, 사고 전 기장이 악천후 속에서도 비구름을 뚫고 나가면 활주로가 보이리라는 기대를 보이자, 부기장은 이렇게 말한다. “비가 더 오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 지역에서 말입니다.” 부기장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렇게 기상상태가 나쁜데 다른 대비책 없이 육안으로 공항에 접근하다니요. 비구름에서 빠져나오면 때맞춰 활주로가 보일 거라고 생각하시는가 본데, 아니면 어쩌시렵니까? 바깥은 캄캄하고, 비는 퍼붓고, 활공각 유도장치는 고장인데도요?”였을 것이다. 비행기가 구름을 빠져나온 후 아직도 공항까지 거리가 20마일이나 남은 것을 아는 항공기관사가 다시 기장에게 말한다. “기장님, (지금까지) 기상레이더가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그가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이 어두운 밤에 비행기를 착륙시키면서 육안에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였던 것으로 보인다. 추락 9초 전에야 두 사람으로부터 명확한 의사표시가 나온다. “착륙 취소”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 것이다. 기장이 복창했지만 사고를 막기엔 이미 늦었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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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미션 임파서블’ 선거부정 지난 4·15 총선의 결과를 놓고 한 달 가까이 선거부정 시비가 이어지고 있다.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사전투표함 바꿔치기와 득표수 전산조작이다. 선거사무와 선거소송에 여러 번 관여한 내 경험을 바탕으로 사전투표함 바꿔치기 시나리오를 구상해 본다. 우선 사전투표지를 구한다. 사전투표지는 투표소에서 본인 확인 후 투표용지발급기로 즉석에서 인쇄되는 데다 일련번호가 새겨진 QR코드가 있어서 위조는 불가능하다. 도리 없이 투표용지발급기와 투표지 원고, 각 지역구 선관위의 청인과 전국 사전투표소의 투표관리관 사인을 비밀리에 확보했다가 투표일 전에 대량으로 출력해서 은밀하게 보관하고, 거사에 앞서 각 선거구에 보내야 한다. 이 정도 일엔 여러 사람이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손발을 맞춰야 하는데, 무슨 수로든 동조자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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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신앙이 사람을 해칠 때 196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의사가 일요일에 급한 수술을 하느라 환자의 수염을 면도했다가 형사범으로 기소되었다. 그날이 안식일이라는 이유였다. 안식일에 일정 행위를 금하는 기독교의 계율이 17세기 식민지 시절부터 ‘블루 로(Blue Law)’라는 이름의 법으로 강제되어 위반하면 형사범으로 처벌되었는데, 1960년대까지도 그 법조항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블루 로는 안식일의 일하기, 여행, 요리, 귀금속 착용, 키스, 빗자루로 쓸기, 침대 정리 등을 금한다. 율법주의는 뿌리가 깊다. 유대인의 율법은 안식일에 ‘일상적 삶’조차 금했는데, 그중 하나는 생명이 위태롭지 않은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었다. 예수는 안식일에 환자를 고쳤다가 바리새인들로부터 계율을 어겼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니….” 시쳇말로 ‘뭣이 중한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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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너! 고소’와 ‘너! 기소’ “너! 고소.” 몇 년 전 어느 변호사가 사무소 인근에 붙인 포스터의 광고 문구다. 고소는 범죄의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고 고하는 행위다. 고소권 없는 사람이 처벌을 바라며 고하는 행위는 고발이다. 201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고소 건수는 연간 55만건쯤 된다. 일본의 경우 대략 1만건인 데 비하면, 절대수로 50배이고 인구비를 감안하면 100배를 상회한다. 공직자와 공조직도 고소 대열에 끼어 있다. 검찰총장이 신문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민간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정당 대표가 칼럼을 쓴 교수와 이것을 게재한 신문사를 고발한다. 고소는 일단 고소한 사람을 피해자로 만들고 고소당한 사람을 가해자로 만든다. 이 구도에서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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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전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가 문제를 일으킨 데 이어, 현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이런저런 리스트가 있다고 시비가 일자, 공무원들 사이에 ‘일을 열심히 하면 직권남용죄, 무서워서 아무 일도 안 하면 직무유기죄’라는 탄식이 돌았다는데, 과장이다 싶으면서도 한편 걱정스럽긴 했다. 어디까지가 남용이고 어디서부터는 남용이 아닌가. 공무원이 권한을 행사하여 남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남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것이 직권남용죄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겉으로는 권한 내의 행위 같지만 실은 의도가 불순한 행위를 말한다. 권한 밖의 행위는 직권남용죄가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세무공무원이 세무조사를 나가 몸수색을 하면 직권남용죄가 아니라 불법수색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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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검사님, 앉으세요” 유신 시절, 깐깐하다고 소문난 어느 재판장이 검사를 혼낸 이야기다. 공판에 참여한 검사가 무료했던지 시도 때도 없이 볼펜을 손에 쥐고 촉을 내밀었다 들였다 하면서 딸깍 딸깍 소리를 냈다. 재판장이 정리(현재의 칭호는 법정경위다)를 부르더니 검사를 가리키며 일렀다. “어이, 정리, 저기 저 볼펜 가지고 장난하는 사람 있잖아, 법정 밖으로 내보내게.” 그 검사, 얼굴이 벌게지더니 다시는 그 짓을 못했다고 한다. 얼마 전 정경심 교수의 표창장 위조 사건의 심리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오해를 피하려고 미리 말해 두거니와, 내가 그 사건에서 주목하는 것은 검사의 항의나 주장, 판사의 대응과 판단이 가지는 정치적 함의 따위가 아니다. 형사사법의 운영과 관련하여 보이는 새로운 경향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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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사법개혁 어디까지 왔나 소송제도 일부를 개선하자고 만든 위원회에 어느 법과대학 교수가 외부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간사의 브리핑이 끝나자 그 교수가 물었다. “그래서, 이 제도로 국민에게는 어떤 혜택이 돌아간다는 겁니까?” 딱히 대답할 말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발언이 좀 생뚱맞다 싶었고 솔직히 듣기 싫었다. 그 기억은 변호사로서 법정의 운영 실태를 보면서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개선이든 개혁이든 관청에서 하는 일은 그 신선함이 국민에게 피부로 느껴져야 하는 것이다. 지난 10월 초 한겨레신문 강희철 기자가 쓴 기사에는 판사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을 ‘어대’라고 부른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어쩌다 대법원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새로 공무원이 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선거캠프 등에 있다가 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이라는 뜻의 ‘어공’이라고 부른다더니, 거기에 빗댄 듯하다. 사법부 수장에 대한 호칭 치고는 점잖지 못한데, 문제는 판사들의 그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라는 데 있다. 어공의 문제는 무능함과 도덕적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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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일본의 망상과 불안 해체되기 전의 유고연방 헌법은 “유고가 적국에 항복하는 문서는 이 헌법에 의하여 무효다”라고 선언하였다. 나치 독일에 끈질기게 항전한 유고 국민들의 결기가 보인다. 적국에 항복한 후 이런 헌법 조항을 만든 나라도 있다. “(…) 국권의 발동에 의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1945년 패전 후 만들어진 일본 헌법 제9조다. 누가 읽어도 무력을 행사하지 않기로 작정한 듯하지만, 실상 이 나라는 이름만 자위대일 뿐 세계 5위의 전력을 가진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아예 자위대의 설치 근거를 명문화하려고 헌법 개정을 꾀하고 있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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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판사의 의견표명 어느 대기업이 근거 없는 투서로 ‘우지파동’이란 고초를 겪고 결국 무죄판결은 받았지만 경영상 타격으로 법원의 화의절차에 들어간 지 10년 만에 절차가 종결되었다. 절차의 특성상 종결에 어떤 결정이 따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담당판사가 경영주인 회장이 꼭 판사실로 와야 한다고 연락을 해 왔다. 그와 함께 출석해서 절차 종결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서류를 한 장 받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준엄한 목소리로 판사의 일장 훈시가 이어졌다. 경영에 만전을 기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하며 어쩌고 하는 내용이었다. 백발의 회장이 마냥 조아리며 듣고서 판사실을 나오더니 법원 마당의 벤치에 주저앉았다. 내가 미안하다고 하자 그가 한 말은 “내가 죄인이지요”였다. 도대체 판사에게 무슨 권한이 있어 그런 훈계를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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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안중근의 전쟁과 평화 “탕! 탕! 탕! 탕! 탕! 탕! 탕!”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26일 이토 히로부미를 겨눈 브라우닝 M1900 권총에서 났던 총소리다. 이 총은 칠연발형이었으나 실제로 발사된 것은 여섯 발이었다. 세 발이 이토에 명중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수요(數謠)는 “육혈포로 칠 발을 쏜” 안중근을 기리며 그 총소리를 일곱 발로 듣는다. 제국주의는 무도하다. 일본의 제국주의는 적어도 조선에 관한 한 단순한 식민지배가 아니다. 브루스 커밍스의 지적대로 그것은 독립국에 대한 강탈이고 침략이다. 더 나쁘다. 안중근은 이 침략에 대항하는 의병활동을 전쟁으로 규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