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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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판사 임용제도의 앞날 판사를 법조 경력의 초기에 임용하는 제도와 상당 기간 법률직 경력을 쌓은 후에 임용하는 제도 중 좋은 것은 어느 것일까? 판사로 임용돼도 법원 실무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판결 작성이나 심리에 숙달되려면 상당 기간 수련이 필요하고 이는 부장판사의 지도 내지 간여 없이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 그래서 법원이 판사로 임용한 이들은 사법연수원을 갓 수료하여 비교적 젊고 또 졸업성적이 우수한 사람들이었고, 이들이 도제식 과정을 거쳐 법원 실무를 익힌 것이 과거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법원 내에서는 이런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판사들이 상당수 있었다. 사건의 결론을 내기 위해 하는 숙의를 합의(合議)라고 한다. 그런데 경력이 높은 부장판사와 임관한 지 얼마 안 되는 배석판사들 간의 합의는 결국 부장판사의 의견에 좌우될 테고, 이것이 합의체를 운영하는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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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 그들의 애국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른다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 가족들의 국민의례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본 감상이다. 하지만 불편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섬뜩했다. 국가주의 때문이다. 건국 후 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국가주의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을 뒤덮었다. 유신체제에선 폭압으로 흘렀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처럼 애국가가 길 가던 시민들을 부동자세로 묶게 된 것도 그 국가주의의 외설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그 후 최 전 원장의 발언은 반대 방향으로 갔다. “국민의 삶을 국민이 책임져야지 왜 정부가 책임집니까?” 기이하기 짝이 없다. 그는 국민의 삶에 책임지지 않는 정부의 수장이 되려고 대권 주자에 나선 것인가. 논란이 일자 그는 “정부가 모든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는 건 전체주의로 가겠다는 것”이라며 맞섰다. 이번엔 엉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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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성적 수치심과 젠더권력 형법의 체계에서 성적 수치심이라는 개념은 두 가지로 작용한다. 형법 제22장 ‘성풍속에 관한 죄’에서는 음란물이나 음란행위를 처벌하는 데 있어 음란성을 따지는 기준으로 쓰이고, 형법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에서는 추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교과서의 설명을 보면, 성폭력에 관한 죄의 규정은 개인적 법익인 성적 자유 또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럼 성적 수치심의 유무는 일반인과 피해자 본인 중 누구의 감정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 대법원은 추행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서 일반인의 감정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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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군더더기 판결 “대저, 계약과 규범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법언과 스스로의 잘못으로 돌릴 수 없는 작은 허물조차도 자신의 도덕적 결함으로 여겨 자책과 은둔을 미덕으로 삼은 우리 선조들의 선비 정신 및 (중략) 확립된 전통과 자유민주주의의 법리가 법의 엄격한 적용을 이끌게 한 이 재판의 바탕이 된 것임을 아울러 천명하며….” 이것은 1979년 9월 서울민사지방법원이 당시의 신민당 총재 김영삼에 대한 직무정지가처분 신청사건에서 내린 결정의 마지막 문장 중 일부다. 전부 인용하기엔 길어서 요지를 추리면 ‘법언(法諺)’ ‘선비 정신’ ‘영국 민주정 등의 전통’ ‘자유민주주의의 법리’가 결정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결정문 전체의 법적 논리는 정연하지만, 이 문장이 문제다. 법언은 그렇다 치고, 선비 정신과 타국의 전통과 자유민주주의의 법리가 왜 민주주의를 외친 야당의 총재를 내치는 법원 결정의 바탕이 되는지 이상하다. 부적절한 것이다. 이 군더더기가 부적절함을 넘어 부당했음은 역사적 사실이 말해준다. 김영삼은 자책하지도 은둔하지도 않고 군사독재에 계속 저항했다. 그해 10월 부마항쟁이 일어나더니 반민주적인 유신체제가 무너졌다. 그는 1993년에 대통령까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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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공수처 제1호 사건’을 보는 답답함 헌법재판소가 1988년 출범했을 때, 그 전신인 헌법위원회의 유명무실함을 보아온 법조계 일각에서는 저 기관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보았다. 그러나 그해 헌재는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제6조 제1항 단서의 위헌 여부가 문제가 된 사건에서 공개변론을 열고 창설 이래 제1호의 위헌 결정을 내렸다. 누가 봐도 위헌이라고 할 만한 법률조항이 문제가 된 사건을 골랐고, 그 심리과정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변론에 부쳤다. 민사소송에서 당사자인 국가와 국민을 동등하게 대하라는 선언은, 군사독재에 지쳐 국가주의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시작되던 시대적 상황에서 타이밍도 절묘했다. 헌재의 초대 소장과 재판관들의 혜안과 감각이 돋보인 순간이었다. 이로써 헌재는 일반의 의구심을 불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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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이재용 사면의 정치학 경제 5단체가 지난달 27일 청와대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건의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도 건의 대열에 끼었다. 어느 경제지는 지난달 아예 여론조사까지 했다. 응답률 9.6%인 1008명 중 찬성 69.4%였다고 한다. 여기에 유교와 불교 등 종교계가 가세했다. 사면론의 요지는 ‘반도체 위기’다. 일부 언론의 태도는 점점 강해진다. “나라 위해 기여할 기회를 주자”라던 어느 칼럼의 주장은 사설로 이어지더니 마지막으로 어떤 칼럼은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바라며 “부디 진영을 넘어 나라를 구하시기 바란다”라고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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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사법농단 사건의 유죄 판결 지난달 23일 사법농단 사건에서 처음으로 직권남용죄에 대해 일부 유죄 판결이 선고되었다. 형법이 정한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은 이렇다. 직권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남용해야 하고, 그 남용으로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키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해야 한다. 첫째와 둘째의 요건을 합치면 이는 ‘일반적 권한(직무 권한)에 속하는 사항이기는 해도 구체적으로 그 실질은 정당한 권한 외의 행위를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예를 들면 인사권을 가진 공무원이 자격 없는 사람을 공무원으로 채용해 주는 행위가 직권남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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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법률가의 한계와 정치의 사법화 가족이 병원에 입원하면 담당 의사를 대하는 자세가 예사롭기 어렵다. 보기만 해도 꾸벅, 말 한마디만 들어도 꾸벅, 그저 죄인이라도 된 양 설설 기게 된다. 거짓된 겸손이 아니다. 절박한 마음에 진심으로 그렇게 대할 수밖에 없다. 의뢰인이 변호사를 대하는 태도도 비슷하다. 그나마 변호사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꿀 수라도 있지만, 판사나 검사 앞에 서게 되면 그럴 자유도 없다. 공권력은 독점적이다. 모든 공권력 앞에서 당장 일을 처리해야 할 입장에 처한 사람들은 우선 권력자에게 쩔쩔매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한 존숭을 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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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대법원장의 거짓말 소액사건을 담당하던 판사 시절, 빌려준 돈을 되돌려받지 못했다는 원고의 주장과 그 돈 진즉에 갚았다는 피고의 주장이 맞서는 사건을 만났다. 차용증도 영수증도 없었고, 혹시 누군가에게 돈을 전해달라고 한 것 아닌가 물었지만 그런 것도 아니라고 했다. 생각하다 못해 객기를 부렸다. 그럼 두 사람 중 거짓말한 사람이 천벌을 받아도 좋으냐고 물었다. 원고가 급히 “네, 축원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피고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족집게도사가 아닌 다음에야 판사 노릇 하기는 정말 어렵다. 판사는 거짓말에 지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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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위안부 손해배상 판결을 보는 시각 ‘국왕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The king can do no wrong)’는 18세기 영국의 법학자 블랙스톤이 <영국법 주해>에 적은 말이다. 국왕의 행위에 대해서는 사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엔 왕권의 신성을 인정하는 인식이 깔려 있다. 민족국가의 발전과 더불어 이 법언은 ‘국왕’이 ‘국가’로 바뀌고 국가행위(act of state)에 대한 면책 주장으로 이어졌다. 영미법계의 이 법리는 국제관습법으로 발전한다. 이것이 주권면제 이론이다. 어느 주권국가의 행위는 그 동의가 없는 한 다른 주권국가의 사법적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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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추·윤 갈등’을 보는 법 ‘추·윤 갈등’을 놓고 백가쟁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쪽이든 지나친 비분강개는 다소 수상하고 문제의 해법도 못 된다. 법적인 시각으로는 이렇다. 법무부 장관의 권한 범위와 한계는 어디까지고 검찰총장의 임기 보장과 징계의 관계는 어떠한가, 징계위가 윤석열 총장의 비위로 인정한 사실은 정당한 징계 사유인가 등이 쟁점이다. 사태를 정치적 시각에서 보면 혼란스럽다. 법무부 장관과 여권이 내세우는 명분은 검찰개혁이고, 심지어 검찰 자체도 말로는 개혁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런데 여권이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외치면, 검찰은 여권의 속내가 검찰 길들이기라고 반박한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부르짖으면, 여권은 그 실질이 개혁에 대한 저항이며 조직이기주의라고 비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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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이상한 말, 틀린 말, 막말 연주에 해설을 곁들이는 음악회에서 사회자인 전직 아나운서가 인사말을 한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쁜 것은 맞는데, 와중이라니? 와중(渦中)은 ‘물이 소용돌이치듯 복잡한 일이 벌어진 가운데’라는 뜻이다. 그냥 ‘바쁘신 중에도’라고 했으면 좋았을 게다. 곡 해설이 이어진다. “이제 말러의 교향곡을 들으시겠습니다. 말러는 교향악단을 지휘하면서도 호시탐탐 작곡을 했던 음악가였습니다.” 말러가 호시탐탐(虎視眈眈) 작곡을 하였을 때 그는 정말 호랑이가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보듯 하였을까. 그러다가 사회자는 ‘이율곡씨’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자녀 교육 방법을 찬양한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 몰라도,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런 지칭법은 아무래도 기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