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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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어렵게 얻은 판결, 어렵게 세운 판례 소송 사건엔 사건마다의 운명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인연 아니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희한할 때도 있다. 지난 7월18일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성소수자가 자기의 권리구제를 위해 무척이나 힘들여 얻은 것이지만, 내 보기에 이 동성부부는 운이 아주 좋았다. 1963년 제정될 당시의 구 의료보험법은 부양가족 중 하나인 ‘배우자’의 개념에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자를 포함한다는 규정을 두었다. 1976년 법이 개정되면서 사실혼 배우자에 대한 규정은 삭제되었고, 현행의 국민건강보험법에도 사실혼 배우자에 대한 규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자격관리업무지침’을 마련하여 실제의 운영에서는 사실혼 배우자를 법률혼 배우자에 준하여 피부양자로 인정해 왔다. 공단이 피부양자를 인정하는 범위와 요건은 여러 차례에 걸쳐 변해 왔고 이는 건강보험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을 넓게 보호하기 위한 행정목적에서 그리된 것이었지만, 아무튼 자격관리업무지침의 제정과 운영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나올 수 있었던 기본적 사정이 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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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디올백 유감 변호사가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 방법 중 하나는 피해자의 증언을 공격하여 그가 부분 부분 말을 바꾸게 하는 것이다. 진술의 일관성이 지켜지지 못하면 법원은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되고 나아가 무죄의 심증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진술이 바뀐다고 해도 피고인의 진술 자체가 오락가락하면 유죄의 심증이 커진다. 이 경우 변호사는 진술이 달라진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느라 진을 뺀다. 정치 영역에서의 말 바꾸기에도 이런 이치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문제에 대한 최초의 공식 입장은 지난 1월19일 대통령실에서 나왔다. 대통령실은 이를 ‘선물’로 칭하면서 “대통령 부부에게 접수되는 모든 선물은 규정에 따라 관리 보관되는 만큼 문제될 이유도 없고 사과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며칠 후인 1월22일 여권 내의 이른바 ‘친윤’ 핵심인 이철규 의원은 “절차를 거쳐서 국고에 귀속된 물건을 반환하는 것은 국고 횡령이에요. 그 누구도 반환 못합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정부 것이죠”라고 말했다. 사과는 없었지만, 그나마 여기까지는 해명의 논리가 선다 싶었다. 요컨대 디올백은 선물이고 규정대로 국고에 귀속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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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공직자의 선서·진술거부권을 다시 생각한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져나올 무렵 백악관에서 참모들과 함께 대책회의를 하던 중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이거 모두 막아내. 수정헌법 제5조 권리를 행사하라고 해.” 수정헌법 제5조 중 관계된 부분은 “누구도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고서는 형사사건에서 자기에게 불리한 증인이 될 것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며 진술거부권을 인정한다. 특별검사의 요구로 법원에 제출된 백악관의 녹음테이프에서 이 발언이 드러나자,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헌법상 권리의 행사를 제시한 처사에 대해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하필 닉슨은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 변호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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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수사방해죄 신설에 반대한다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씨의 증거인멸 등 행위가 사법방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그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것은 그의 공권력 행사 방해행위를 보고 일부 언론에서 사법방해죄를 도입하자는 사설과 칼럼이 나온 점이다. 사법방해가 이슈로 등장한 일은 여러 번 있었다. 일례로 2023년 9월21일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요청 국회 연설 때 이 대표의 ‘사법방해’를 네 차례나 언급했다. 요즘 문제되고 있는 채 상병 사건에서는 국방부가 사건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령을 하거나 기록을 회수한 것이 경찰 수사에 대한 방해라는 주장도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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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법조인의 정치 참여 법률신문은 4월15일자에 이번 총선에서 법조인 당선인이 61명으로 역대 최다이며 “20명 이상의 법조인 출신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 포진하게 되면서 국회에서 법조인 출신들에 갖는 기대는 더 커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기이한 행동양식에 국민들이 표로써 보여준 반응을 보라. 법조인들의 정계 진출이나 정치활동 방식을 꼭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왜 그럴까. 우리의 법학 교육 과정과 사법시험이나 변호사시험의 준비 과정은 어떤 문제에 대해 이미 정해져 있는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집착적 사고와 오답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게 되어 있다. 법학에서의 정답은 대립하는 정책적 고려사항 중 어느 하나에 우위를 준 것뿐이며 수학적 정밀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한 개의 답만이 점수를 얻는다. 이러다 보니 법조인들은 한 번 정답이란 것을 찾으면 여간해선 자기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시험들은 책상 앞에 진득이 앉아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데, 이것은 우리 사회의 학력주의가 요구하는 바다. 그리하여 법조인들은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이것이 우월감과 독선의 원천이 되어 멍청한 수재가 되고 순혈주의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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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공직후보자 가족의 사생활에 대한 검증 지난달 28일 조국혁신당의 비례대표 1번 후보인 박은정 전 부장검사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총선 후보 재산내역(2023년 말 기준)과, 그의 남편인 이종근 변호사가 2023년 2월 검찰에서 퇴직 시 신고한 재산내역을 비교해보면 이들 부부의 재산이 그간 41억원 정도 증가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언론이 제기한 문제 중 하나는 10개월 동안 그만한 액수로 재산이 증가한 데에는 이 변호사가 개업 후 전관예우를 받은 것이 기여했으리라는 점이고, 이를 보도한 의도는 그러한 수익행위가 배우자인 박 후보자의 공직적격 판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사유가 된다는 점을 보이려는 데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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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선거운동과 후보자비방죄 선거운동 관련 사건에 관여해본 법률가들은 가끔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다. “후보자는 대문만 나서면 선거법 위반.” 우리나라 선거법제의 문제 중 하나는 선거운동에 대한 과도한 규제다. ‘돈은 묶고 말은 푸는’ 선거운동을 지향한다면서도, 말로 하는 선거운동은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수차례에 걸쳐 공직선거법 중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여러 규정에 위헌결정이나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린 데는 이런 배경도 있다. 공직선거법상 정치적 표현의 자유 보장과 관련해서 큰 걸림돌은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다. 공표하는 사람이 무엇인가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을 경우 사후적 판단으로 해당 내용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보아 처벌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다면, 허위사실공표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꼭 부당하다고 할 일은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진실한 사실을 적시해도 처벌하는 후보자비방죄에 있다. 이 죄의 구성요건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방송·신문·통신·잡지·벽보·선전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 그의 배우자 또는 직계 존·비속이나 형제자매를 비방한 자”로 되어 있고, 다만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허위사실을 공표하여 후보자 등을 비방하면 대부분 법정형이 무거운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있으므로, 후보자비방죄는 표현 내용의 허위성에 대한 입증이 안 되지만 기어이 처벌하려 할 때 동원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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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사법농단 사건의 판결 읽기 보르헤스는 “인간의 역사는 오해의 역사다”라고 말했다. 사실에 대한 해석은 저마다 다르다. 법은 정합성의 명제이지만 그 해석과 적용은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무죄 판결은 세계관의 차이마저 보여준다. 사법농단 사건의 판결을 읽는 일은 고통스럽다. 2847쪽에 이르는 분량의 판결에서 인정된 수많은 사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예를 들어보자. 공소사실 중에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고처분 사건 관련 직권남용’이 있다. 무지하게 긴 법원의 인정사실을 최소한으로 줄이면 이렇다. 고용노동부로부터 법외노조 통고처분을 받자 전교조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2014년 서울고등법원이 효력정지결정을 내리고 노동부는 대법원에 재항고를 제기했다. 당시 처분의 근거가 된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서는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재항고 사건의 주심 대법관은 전속재판연구관의 검토보고서를 읽은 후 공동재판연구관 여러 명과 선임재판연구관에게 차례로 검토를 지시하였고, 최종적으로 헌재의 결정이 나온 후에 결론을 내기로 했다. 헌재가 2015년 합헌 결정을 하자 대법원 전원재판부는 파기환송 결정을 했다. 한편 연구관들의 검토가 계속되던 시기에 당시 기획조정실장이던 임종헌이 지시하여 심의관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재항고 인용 시 청와대에 긍정적인 반대급부로 요청할 만한 사항’들로 ‘상고법원 입법 추진, 대법관 임명 제청 과정, 재외공관 법관 파견,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 법관 정원 증원 추진 등에 적극 협조’ 등이 적혀 있었다. 그에 앞서 임 실장은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부터 재항고이유서 작성에 필요한 자료 제공을 요청받자, 심의관에게 지시하여 효력정지결정의 문제점을 검토한 문서를 작성하게 하고는 법무비서관에게 보내줬다. 이 문서는 노동부에 전해졌고 재항고이유서가 되어 대법원에 제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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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언론 보도 지난해 11월 배우 고 이선균이 수사를 받은 사건에 관한 KBS 텔레비전 보도 중 그가 어느 유흥업소 여성과 나눈 대화의 녹음이 방송됐다. 그런데 그중 첫 부분 대화는 낯뜨거운 내용이라서 듣기에 불편했다. 그걸 내보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생활에 관한 헌법 조항은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다. 연예인도 국민이니까 이 조항대로라면 당연히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연예인의 사생활에 관한 기사를 내거나 방송을 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이렇게 공개를 허용할 때 등장하는 개념이 ‘알 권리’다. 그럼 연예인의 사생활은 어디까지 알 수 있는 것인가. 연예인에 관한 사건은 아니지만, 2006년에 나온 대법원 판결은 사생활의 비밀 침해가 위법한 경우를 “공표된 사항이 일반인의 감수성을 기준으로 하여 그 개인의 입장에 섰을 때 공개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에 해당한다고 인정되고 아울러 일반인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서 그것이 공개됨으로써 그 개인이 불쾌감이나 불안감을 가질 사항 등에 해당하여야 할 것”이라고 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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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저항 중대재해처벌법은 2002년부터 제정 운동이 있었고, 의원입법 발의만 해도 2016년 이래 모두 아홉 차례나 있었다가 2021년에 들어서야 제정되었다. 이런 과정을 겪고도 이 법은 제정 후 여러 가지로 저항을 받아 왔다. 첫째는 이 법 시행 후 중대재해가 줄지 않아 사고 예방 효과가 없으니 법을 전면개정하거나 폐지하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근거로 내세우는 통계수치는 법 적용 사업장에서의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거나 특정 업종만의 통계수치라서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2022년 1월 이 법이 시행된 후 2023년 3분기까지의 사망자 수는 조금씩이나마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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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재판 지연의 해소 방책 전임 대법원장의 임기가 다할 무렵부터 재판 지연에 대한 논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 신임 대법원장도 재판 지연을 사법부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언론에서는 재판 지연의 문제를 보도하면서 늘 야권 정치인들에 대한 재판이 늦어진 것을 예로 꼽는데, 정치인들이 당사자인 사건의 재판이 꼭 요즘 들어 지연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선거재판이 늦어지는 것은 이미 수십년래의 일이다. 그런데 국민의 법률생활을 생각할 때 정말 심각한 것은 민사재판, 그중에서도 소송가액이 5억원을 초과하는 민사합의사건의 재판 지연이다. 나 자신도 2013년에 제기된 소송의 피고에게서 사건을 맡았는데 2022년에 들어서야 1심 판결을 선고받은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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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새로 뽑을 대법원장에 대한 기대와 염려 원론적으로 말해서 사법부의 독립이란 것은 도구적 개념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올바른 판결을 하기 위한 도구이며 가치중립적 원리라는 것이다. 그 독립은 법원이 책임성에 기반을 두고 사법권을 행사할 때 비로소 존재이유를 가진다. 달리 말해서 사법부의 독립은 좋은 판결을 하라고 보장하는 것이지, 나쁜 판결에 대한 방호벽을 준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사법부 독립은 법관들이 제대로 된 재판을 한다는 믿음, 어찌 보면 재판에 대한 역사적 경험이나 통계적 인식에 기반을 둔 장치다. 그러나 현실 상황에서 정치권은 늘 이해관계에 따라 법원의 판결에 이런저런 정치적 평가를 내리고 비난하거나 추켜세우는 행태를 반복한다. 질 낮은 정치권력은 아예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든다. 이런 헌법현실이나 독재정권 아래에서의 역사적 경험은 사법부 독립을 단순한 도구적 개념이 아니라 사법부의 존재이유를 근거 짓는 원리로 인식하게 했다. 그래서 대법원장의 취임사에서마다 되풀이 강조되는 사법부 독립은, 때로 힘없고 맥락 없는 구호로 들리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패배주의적 시각에서 그저 하나의 수사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명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