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후
정치학자
최신기사
-
정동칼럼 승자독식 민주주의의 저주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다. 민주주의를 무시한 결과다. 총선결과에 대한 승복, 야당과의 대화와 협치, 여당 대표의 국정쇄신 요구 수용 같은 것들은 물론 대통령이 보여주어야 할 민주주의적 자세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싶은 민주주의는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것이다.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는 민주적 태도다.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48.56%, 이재명 후보는 47.83%를 득표했다. 격차는 불과 0.73%포인트, 총투표수 3400만표에서 차이는 24만7000여표였다. 무효표가 30만표로 두 후보의 격차보다 더 많았다. 이 결과를 운동경기로 본다면 승패가 확실하다. 동점이 아닌 이상, 두 팀 중 한 팀이 이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게임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에서 결과에 대한 해석은 열려 있다.
-
정동칼럼 더는 대통령이 갈 곳 없다 박근혜는 왜 탄핵되었을까? 헌정 사상 유일했던 탄핵의 원인을 한두 가지로 좁힐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눈으로 본 바로, 그것은 분명했다. 세월호 참사였다. 2016년 겨울, 나는 참여자라기보다는 관찰자로 광화문에 종종 나갔다. 집회를 선도하는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부터 참여 대열의 맨 끝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까지,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그리고 언제나 같은 상황을 목도했다. 광화문 촛불 집회는 1987년의 치열함과는 달리 한바탕 축제 같았는데, 이 축제에 끼지 못한, 차마 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보다, 박근혜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그 대열에 끼지는 못했다. 그들은 축제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 겨울 광화문 집회의 맨 끝에는 늘, 세월호 유가족 깃발이 서 있었다. 그 깃발은, 제각기 춤추고 자유발언을 하는 사람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어둠 속에서 대열의 맨 뒤를 지켰다. 차량을 통제하는 경찰의 무리와 집회 대열 사이에 늘 유가족이 있었다. 집회는 안전했다. 그들은 얼어붙은 아스팔트 위에 조용히 앉아 무대 너머 박근혜가 있는 곳의 하늘을 응시했다. 축제 같던 집회가 끝나고 대열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할 때, 그들은 맨 앞에 있었다. 마침내 법원이 허가한 구역의 끝에 다다라 경찰과 바리케이드가 대열을 막아섰을 때, 그것을 뚫고 가려는 무리는 그들이었다. 그들은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우성이 홀로 철조망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다. 박근혜는 탄핵되었다.
-
정동칼럼 대통령이란 무엇인가 발칙한 제목에 놀라지 않길 바란다. 여기서 대통령이란 특정 개인을 말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4장 1절에 나오는 그 직위로서의 ‘대통령’이다. 국가 원수이자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 정부의 수반이자 국군을 통수하는 대통령, 계엄을 선포할 수 있고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 대통령, 또한 국회의 탄핵 소추를 받을 수 있는 그 대통령이다. 헌법은 대통령 권한과 직무 범위를 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대통령이 하는 일은 법의 명시적 한계를 넘어선다. 종종 ‘고도의 통치행위’로 불리는 정치 그 자체가 대통령 일이다. 정치란 국가의 자원을 배분하고,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며, 다양한 정책을 수립·집행하여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하는 일을 말한다.
-
정동칼럼 국가비상사태는 언제 끝나나 대통령이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다행이다. 그동안 시장에 맡겨놓기만 하면 모든 일이 저절로 될 것처럼 하던 정부가 뭐라도 하려고 해서 다행이다. ‘그동안의 저출생 정책을 냉정하게 재평가하고 해외의 성공, 실패 사례까지 철저하게 조사했다’고도 했다. 좋은 자세다. 그런데 막상 발표된 내용은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는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3대 핵심 분야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쉬게 하거나, 돈을 주거나, 아이 돌봄을 강화하거나, 집을 주고, 세금을 깎아준다’는 것이다. 틀렸다. 일과 가정의 양립 이전에 가정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것이 문제다. 왜 가정에 대한 욕구가 없는가에 대해서는 양극화라는 경제적 요인, 초경쟁사회라는 사회적 요인, 세대와 젠더 갈등 같은 문화적 요인 등 이미 많은 논의가 존재한다. 이에 대한 대책 없는 3대 핵심분야 대응은 시행착오의 되풀이에 불과하다.
-
정동칼럼 헌정주의에 도전하는 대통령 법에 명시된 권한은 아무 때나 해도 되는 것일까? 대통령의 거부권은 법에 명시된 권리이니, 형식적 요건만 충족된다면 행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법을 지킨다는 합법성(legality)은 통치 행위의 정당성(legitimacy)을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일까? 이것은 답하기에 간단한 질문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정치학자와 법학자들은 이하의 견해에 동의하는 것 같다. 특정한 행위가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단지 그것을 허용하는 법의 존재뿐 아니라 그 합법적 행위의 필연성이나 불가피성, 당위성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이다. 법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법적 해석에 문제가 없다는 것만으로는 통치의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적으로 제정된 헌법을 가진 나라에서 더욱 그렇다.
-
정동칼럼 시대정신이 사라진 나라 한때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중요한 선거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시대정신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에야 날개를 펴듯, 시대정신은 그 시대가 저물 때에 비로소 알 수 있다고 헤겔은 말했다. 그러나 그것을 미리 알아채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 비밀을 먼저 손에 쥐면 시대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할 자신이 있든 없든, 일단 그것을 천명하려고 노력했다. 권위주의에서 보통사람들의 시대로, 다시는 군인이 권력을 잡을 수 없는 문민통치의 시대로, 평화적 정권교체로 증명된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지고 관치를 넘어 공정한 시장경제의 틀을 만드는 것, 선거 때 표만 던지는 유권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 이런 것들이 시대정신이었다.
-
정동칼럼 대파 한 단과 임금님의 행차 대파 총선이다. 대파가 모든 것을 정리했다. 한국정치에서 한 달은 긴 시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진짜 전문가들은 알고 있었나 보다. 2월 중순경, 정치와 선거를 오래 하셨던 분께 물었더니 ‘요새 재래시장에 나가봤어?’라고 반문하셨다. 여야가 공천으로 한참 시끄러울 때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물가가 심상치 않아요’라고 답했다. 하기야 물가에 진보 보수가 어디 있으랴. 내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용산은 전혀 몰랐다. 선거는 경제라고 한다. 경제는 국가 수준의 말이고, 국민들 입장에서는 민생이다. 온 나라가 어렵다고 아우성을 친지가 오래다. 그런데 대통령실만 몰랐거나 모른 척했다. 그러나 선거 때는 다르다. ‘상저하고’니 하는 말장난이 통하지 않는다. ‘물가가 이 지경인데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야당의 비판이 듣기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파를 들고 시늉을 냈는데 그게 더 큰 사고를 만들었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 ‘별의 순간’이었다.
-
정동칼럼 제 발등 찍은 민주당 민주당의 추락이 놀랍다. 공천이 본격화된 지 3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달 이재명 대표의 151석 목표는 가능성이 보였다. 윤석열 정부 심판론이 팔팔 살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은 한 달 전과 너무 달라졌다. 1주일 전엔 새누리당 152석, 민주통합당 127석의 결과가 나온 2012년 총선이 회자되더니, 이젠 한나라당 153석, 통합민주당 81석을 얻은 2008년 총선 결과까지 언급되고 있다. 당장 내일 총선이 치러진다면 국민의힘이 160석을 가뿐히 넘어서고, 민주당은 120석조차 위태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
정동칼럼 역설적 치열함, 비호감 선거 새해 들어 야당 대표와 여당 국회의원이 습격을 당했다. 정치인은 원래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이다. 오죽하면 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을 욕하는 것으로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고 말했겠나. 그러나 욕먹는 것과 생명을 위협받는 일은 다르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어떤 개인에 대해서도 합당한 이유 없이 폭력이 가해져선 안 된다. 그런 일이 공개적으로 대담하게 일어난다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 공분이 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본래 정치란 한 사회의 갈등을 힘이 아닌 말을 통해 해결하려는 인간 행위다. 폭력이 아닌 말과 제도적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문명의 수준이 결정된다.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꼭 커다란 정치적 사안만은 아니다. 노사관계나 교육과정, 계약관계처럼 시장과 사회에서의 다양한 일들은 물론이고, 우리의 사적인 일상에서도 물리적 폭력이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동원되느냐가 문명의 척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사실 그러한 사안들에서 폭력이 동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과정이 바로 정치다. 이 점에서 본다면 정치는 그 본질에서부터 폭력과 가장 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
정동칼럼 누가 세상을 무너뜨리는가 한 해의 마지막 날, 묵은 숙제를 해치우듯 <서울의 봄>을 온가족이 봤다. 사람들이 영화 이야기를 할 때도 썩 내키지 않았다. <살인의 추억> 때 숨을 쉴 수 없었던 것처럼, 현실에 기초한 비극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가 났을 때도, 김용균의 사고 때도,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뉴스는 보지 못했다. 감당할 자신이 없고, 우선 몸이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런 일들은 너무나 사실이라서, 현실에서 늘 반복되기에, 볼 자신이 없다. 굳이 그렇게 떠올리지 않아도 항상 일어나는 고통을, 왜 내 돈 주고 극장까지 가서 봐야겠는가.
-
정동칼럼 방송통신위원장 지명 재고해야 인사는 정치의 시작이자 끝이다. 인사의 중요성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다. 흔히 유교의 정치관을 비판할 때, 임금의 덕과 수신만 중요시했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왕이 덕이 있고 유능해야 좋은 신하를 구하고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강조한 것이다. 실제 통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존현사능’이었다. 현명한 사람을 높여쓰고 유능한 사람을 발탁하면 나라가 잘 운영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훌륭한 임금이 가만히 남면(세상을 바라봄)만 해도 통치가 된다는 말은, 인사가 왕이 하는 일의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
정동칼럼 누가 선거법을 뒤로 돌리려 하나 22대 총선이 6개월 뒤로 다가왔다. 그런데 선거를 치를 게임의 룰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국회, 더 정확히 말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선거법 개정 법정시한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임의 룰은 선거 1년 전인 지난 4월에 이미 정해졌어야 한다. 그러나 두 정당은 상대를 탓하며 차일피일 미뤘다. 이 결과는 예견된 것이었다. 올해 4월까지 선거법 개정을 마무리하려면, 지난해 가을쯤에는 당론이 확정되고, 겨울을 거치면서 양당 간 협상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두 정당 모두 관심이 없었다. 국민의힘은 멀쩡한 당대표를 쫓아내고 새로 전당대회를 치르면서 정신이 없었다는 핑곗거리라도 있다. 그런데 국회 다수당이자 정부·여당을 압박해야 할 민주당 지도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