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후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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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시대정신이 사라진 나라 한때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중요한 선거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시대정신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에야 날개를 펴듯, 시대정신은 그 시대가 저물 때에 비로소 알 수 있다고 헤겔은 말했다. 그러나 그것을 미리 알아채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 비밀을 먼저 손에 쥐면 시대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할 자신이 있든 없든, 일단 그것을 천명하려고 노력했다. 권위주의에서 보통사람들의 시대로, 다시는 군인이 권력을 잡을 수 없는 문민통치의 시대로, 평화적 정권교체로 증명된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지고 관치를 넘어 공정한 시장경제의 틀을 만드는 것, 선거 때 표만 던지는 유권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 이런 것들이 시대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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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대파 한 단과 임금님의 행차 대파 총선이다. 대파가 모든 것을 정리했다. 한국정치에서 한 달은 긴 시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진짜 전문가들은 알고 있었나 보다. 2월 중순경, 정치와 선거를 오래 하셨던 분께 물었더니 ‘요새 재래시장에 나가봤어?’라고 반문하셨다. 여야가 공천으로 한참 시끄러울 때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물가가 심상치 않아요’라고 답했다. 하기야 물가에 진보 보수가 어디 있으랴. 내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용산은 전혀 몰랐다. 선거는 경제라고 한다. 경제는 국가 수준의 말이고, 국민들 입장에서는 민생이다. 온 나라가 어렵다고 아우성을 친지가 오래다. 그런데 대통령실만 몰랐거나 모른 척했다. 그러나 선거 때는 다르다. ‘상저하고’니 하는 말장난이 통하지 않는다. ‘물가가 이 지경인데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야당의 비판이 듣기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파를 들고 시늉을 냈는데 그게 더 큰 사고를 만들었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 ‘별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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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제 발등 찍은 민주당 민주당의 추락이 놀랍다. 공천이 본격화된 지 3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달 이재명 대표의 151석 목표는 가능성이 보였다. 윤석열 정부 심판론이 팔팔 살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은 한 달 전과 너무 달라졌다. 1주일 전엔 새누리당 152석, 민주통합당 127석의 결과가 나온 2012년 총선이 회자되더니, 이젠 한나라당 153석, 통합민주당 81석을 얻은 2008년 총선 결과까지 언급되고 있다. 당장 내일 총선이 치러진다면 국민의힘이 160석을 가뿐히 넘어서고, 민주당은 120석조차 위태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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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역설적 치열함, 비호감 선거 새해 들어 야당 대표와 여당 국회의원이 습격을 당했다. 정치인은 원래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이다. 오죽하면 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을 욕하는 것으로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고 말했겠나. 그러나 욕먹는 것과 생명을 위협받는 일은 다르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어떤 개인에 대해서도 합당한 이유 없이 폭력이 가해져선 안 된다. 그런 일이 공개적으로 대담하게 일어난다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 공분이 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본래 정치란 한 사회의 갈등을 힘이 아닌 말을 통해 해결하려는 인간 행위다. 폭력이 아닌 말과 제도적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문명의 수준이 결정된다.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꼭 커다란 정치적 사안만은 아니다. 노사관계나 교육과정, 계약관계처럼 시장과 사회에서의 다양한 일들은 물론이고, 우리의 사적인 일상에서도 물리적 폭력이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동원되느냐가 문명의 척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사실 그러한 사안들에서 폭력이 동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과정이 바로 정치다. 이 점에서 본다면 정치는 그 본질에서부터 폭력과 가장 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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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누가 세상을 무너뜨리는가 한 해의 마지막 날, 묵은 숙제를 해치우듯 <서울의 봄>을 온가족이 봤다. 사람들이 영화 이야기를 할 때도 썩 내키지 않았다. <살인의 추억> 때 숨을 쉴 수 없었던 것처럼, 현실에 기초한 비극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가 났을 때도, 김용균의 사고 때도,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뉴스는 보지 못했다. 감당할 자신이 없고, 우선 몸이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런 일들은 너무나 사실이라서, 현실에서 늘 반복되기에, 볼 자신이 없다. 굳이 그렇게 떠올리지 않아도 항상 일어나는 고통을, 왜 내 돈 주고 극장까지 가서 봐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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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방송통신위원장 지명 재고해야 인사는 정치의 시작이자 끝이다. 인사의 중요성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다. 흔히 유교의 정치관을 비판할 때, 임금의 덕과 수신만 중요시했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왕이 덕이 있고 유능해야 좋은 신하를 구하고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강조한 것이다. 실제 통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존현사능’이었다. 현명한 사람을 높여쓰고 유능한 사람을 발탁하면 나라가 잘 운영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훌륭한 임금이 가만히 남면(세상을 바라봄)만 해도 통치가 된다는 말은, 인사가 왕이 하는 일의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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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누가 선거법을 뒤로 돌리려 하나 22대 총선이 6개월 뒤로 다가왔다. 그런데 선거를 치를 게임의 룰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국회, 더 정확히 말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선거법 개정 법정시한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임의 룰은 선거 1년 전인 지난 4월에 이미 정해졌어야 한다. 그러나 두 정당은 상대를 탓하며 차일피일 미뤘다. 이 결과는 예견된 것이었다. 올해 4월까지 선거법 개정을 마무리하려면, 지난해 가을쯤에는 당론이 확정되고, 겨울을 거치면서 양당 간 협상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두 정당 모두 관심이 없었다. 국민의힘은 멀쩡한 당대표를 쫓아내고 새로 전당대회를 치르면서 정신이 없었다는 핑곗거리라도 있다. 그런데 국회 다수당이자 정부·여당을 압박해야 할 민주당 지도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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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과연 정권 심판 선거였을까? 득표율만 놓고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다. 서울에서 한 정당이 17%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구청장 선거를 이긴다는 것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당에선 정권심판론이 통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선거를 이긴 쪽이 정치적 기세를 잡기 위해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내부적으로 단합을 강화하고 상대를 당황시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실제로도 이런 평가가 옳을까? 민주당에는 아쉽겠지만,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만으로 ‘정권이 심판당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강서구라는 선거구의 특성과 이번 선거의 국면적 특성이다. 강서구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선전한 지역이다. 현재 강서구의 3명 국회의원도 모두 민주당이다. 지난 대선 때도 이재명 후보가 49.1%를 득표해 46.9%에 그친 윤석열 후보를 이겼다. 여당이 압승한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김태우 후보는 51.3%를 득표해서 48.7%를 얻은 민주당 김승현 후보를 간신히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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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교사의 죽음과 우리의 위선 9월4일(월요일) 우리 집 아이도 쉬었다. 교외 체험학습 보고서에는 ‘공교육 멈춤의 날 의미 이해하기’로 제목을 적었다. 아이는 도서관에서 <위대한 학교> <아이들이 사라지는 학교>라는 책을 읽었다. 몇주간 아이는 서이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종종 물었고, 나도 답을 피하지 않았다. 선생님들의 질서정연한 집회는 이중적 평가를 받았다. 그것은 너무나 가지런해서 열렬한 투쟁처럼 보이지 않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고인에 대한 추모와 제도적 개혁에 대한 요구가 이렇게 정제된 형태로 나올 수도 있구나 싶었다. 이 두 모습이야말로 지금 우리 교사들이 처한 상황이 아닌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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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이태원과 오송, 그리고 잼버리 21대 총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위성정당이라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있었지만 대세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서만 163석으로 넉넉히 과반을 차지했다. 위성정당 없이 더불어시민당 17석 비례의석을 다 넘겨줬다 해도 미래통합당 쪽의 의석은 120석에 불과했다. 그 정도였다면 문재인 정부의 하반기 국정운영은 생선을 굽듯 조심스러웠을 것이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21대 총선 결과는 이례적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에 턱걸이를 한 적은 있지만, 민주개혁 세력이 의회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은 처음이었다. 탄핵으로 치러진 19대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은 41%에 불과했다. 그런데 왜 총선에서는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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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정치는 왜 존재하는가 영국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은 ‘정치는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은 다음 달래고 조정해서 타협시키는 것’이라고 봤다. 미국 정치학자 스콧 아들러와 존 윌커슨은 정치의 역할이 사회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치의 역할을 갈등의 조정과 문제의 해결이라고 한다면, 지금 한국에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일을 다루는 것이다. 그래서 부족 정치, 진영 정치, 팬덤 정치, 패거리 정치 등 뭐라고 부르든, 사실 여기에 정치는 없다. 최근 몇달 사이 국민들의 삶에서 중요한 일은 전세사기 문제였다. 만약 정치가 존재했다면, 정부·여당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면서 이전 정부의 실책을 공격했을 테고, 야당은 문제 해결에 미온적인 정부를 비판하면서 처음부터 피해자 면담과 전수조사에 당력을 집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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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외국인 참정권과 상호주의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국내 거주 외국인의 지방선거 투표권 행사 기준을 높이는 법안을 제출했다. 영주권 취득 3년이 지나면 지방선거 투표권을 주던 것을 ‘5년 이상의 지속적 거주’로 바꾸자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많은데, 그 나라 국민들에 대해 지방선거 투표권을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다. ‘상호주의’는 비례성이란 인간 행위의 보편적 준칙에서 볼 때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유다. 그래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그럴 만한 합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법안 논의 과정에서 2가지 지점에 대해 진지한 토론과 검토가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