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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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의사들의 음모 “의사의 지위와 환자의 신뢰를 남용하여, 고의로 환자의 건강을 훼손하고, 오진을 내렸으며, 잘못된 치료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의사라는 고귀하고 자비한 소명 뒤에 숨어서 거룩한 과학을 모욕했다….” 1953년 1월13일,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실린 기사다. 당 고위 간부를 일부러 오진해, 죽였다는 것이다. 이른바 ‘의사들의 음모’ 사건이다. 유대인 의사 수백명이 체포되었다. 국가보안부의 심문은 ‘특효약’이었다. 술술 자백을 했다. 맞기 싫어서 하는 엉터리 자백이니, 서로 일관성이 없었다. 스탈린은 ‘제대로 된’ 자백을 받아오라며 성을 냈다.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려라.” 직접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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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디지털 교도소 한 여성이 재판정에 올랐다. 그녀의 혐의 중 하나는 근친상간이었다. 자기 아들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재판은 이틀 만에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시민은 범죄자를 즉시 처벌하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남자 경비원이 보는 앞에서 흰옷으로 갈아입혔다. 머리가 깎이고, 양손은 뒤로 묶였다. 광장은 분노한 군중으로 가득했다. 수치와 굴욕 속에서 사형대에 올랐다. 실수로 사형집행인의 발을 밟았다. 여인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았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고의로 밟은 것이 아닙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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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가시고기, 인간, 집 가시고기는 이름처럼 등에 뾰족한 가시가 난 물고기다. 다양한 종이 바다와 강, 호수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 번식기에 접어들면 수컷 가시고기는 상당한 공을 들여 둥지를 만든다. 그리고 둥지를 지키다가 마음에 드는 암컷을 만나면 지그재그 춤을 추면서 끌어들인다. 암컷은 둥지를 통과하면서 배란하고, 수컷은 알을 수정시킨다. 흥미롭게도 짝짓기가 끝나면 암컷은 곧 떠난다. 아빠의 독박육아가 시작된다. 둥지 입구에 서서 가슴지느러미로 산소가 풍부한 물을 밤낮없이 공급한다. 다른 수컷의 접근을 막고, 끊임없이 둥지를 수리한다. 치어가 태어나도 싱글대디의 일은 안 끝난다. 엉뚱한 곳으로 헤엄치는 새끼를 입에 머금어 다시 둥지로 보내며 정성껏 자식을 돌본다. 이 와중에 상당수의 수컷은 완전히 지쳐 죽어버린다. 새끼는 말 그대로 아빠의 몸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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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나를 혐오하고 남을 미워하는 ‘당위의 횡포’ 어머니는 늘 늦잠을 잤다. 중개일을 하던 아버지는 출장이 잦았다. 소년을 깨워 등교시켜줄 사람도, 하교하면 반겨줄 사람도 없었다. 정신장애를 앓던 어머니는 자식에게 통 관심이 없었다. 음울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소년은 남달랐다. 용돈을 모아 알람 시계를 샀다. 아침마다 혼자 힘으로 일어났고, 두 동생을 챙겨 학교에 갔다. 이름이 좀 낯설겠지만, 앨버트 앨리스는 저명한 심리학자다. 한때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신치료자 순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3위에 그쳤다. 하지만 금수저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저런 불행이 따라다녔다. 내리사랑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타고난 몸도 약했다. 병치레가 잦았고, 여섯 살 무렵에는 1년 넘게 입원도 했다. 성격도 밝지 않았다. 사람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내성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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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바꾸지 않는 용기 “가장 강한 자나 가장 영리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찰스 다윈의 말이다. 아니, 찰스 다윈이 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다윈은 워낙 유명한 과학자이므로 그의 모든 글은, 심지어 사적인 편지까지도, 데이터베이스에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다윈은 절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사실 이 문장은 1963년, 루이지애나 주립대 레온 매긴슨 교수가 한 사회과학협회에서 이야기한 연설문에서 시작되었다. 나름대로 다윈의 주장을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석유 관리를 다루는 논문 첫머리에 실렸고, 몇 년 후 <원유와 아랍 지역 개발>이라는 책에 인용되었다. 이후 점점 다양한 책과 기사에 재인용되었다. 주로 경영이나 금융, 정책과 관련된 내용에 많이 인용되었고, 자기계발서에도 흔히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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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다시 찾아온 예언자의 시대 빨간 상자와 파란 상자가 있다. 빨간 상자엔 1만원이 들어있고, 파란 상자엔 100만원이 들어있거나 혹은 비어 있다. 당신의 마음을 정확히 읽는 점쟁이가 파란 상자에 돈을 넣을지 말지 결정했다. 당신이 상자 두 개를 모두 가져갈 것이라면, 점쟁이는 벌써 파란 상자를 비워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파란 상자만 가져갈 것이라면, 이미 점쟁이는 100만원을 넣어 뒀을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유명한 뉴컴의 역설이다. 언뜻 생각하면 둘 다 가지는 것이 이익이다. 무조건 1만원은 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쟁이는 당신의 행동을 예측했다. 그러므로 파란 상자만 가지면, 100만원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점쟁이의 행동은 이미 끝나지 않았는가? 현재의 선택이 과거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으니, 두 상자를 다 갖는 것이 더 이득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점쟁이가 이미 읽었으니…. 수십 년째 논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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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고통받는 인류의 시 영화 <레이더스>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네팔로 향한다. 나치가 좇는 성궤의 단서를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스승은 죽었고, 첫사랑이었던 그의 딸 마리온이 술집, ‘레이븐’을 홀로 운영하고 있었다. 속편에서 리버 피닉스가 분한 젊은 인디아나에게 중절모를 씌워준 인물, 에브너 레이븐우드의 실제 모델이 바로 시카고대학의 인류학자 로버트 브레이드우드 박사다. 고고학과 보물찾기의 차이가 별로 없던 20세기 초반, 브레이드우드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소택지를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유물이 쏟아지는 우루크의 와륵(瓦礫, 무너진 기와) 더미에서 보물찾기에 열을 올리던 동료를 뒤로하고, 더 오랜 과거로 찾아나선 것이다. 대학 당국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박물관에 전시할 번쩍거리는 왕관이 없을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인류의 근원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오랜 설득 끝에 겨우 탐사대를 꾸려 자그로스산맥 기슭의 한 언덕, 자르모에서 발굴을 시작했다. 대성공이었다. 무려 15층에 이르는 신석기 초기의 주거지를 발굴했다. 다양한 농경 유물은 있었으나, 국가 조직의 흔적은 없었다. 기원전 약 7000년경, 토기 없는 신석기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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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나는 위생 개선이 그 어떤 사회적 조치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청결과 (위생)예절이 먼저 확립되지 않는다면, 교육과 종교는 아무 일도 해낼 수 없다.” 1851년, 찰스 디킨스가 런던 보건국 홍보 연설에서 한 말이다. 당시 런던은 그리 살 만한 곳이 아니었다. 5세 이하 어린아이 절반이 감염병으로 죽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관심이 없었다. 어린이는 으레 ‘소아병’에 걸리는 법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도시는 더럽고 비좁아졌고, 아이들이 쏟아져나왔다. 어린이는 매일 12시간을 공장에서 일했다. 13세 디킨스도 주급 6실링을 받고 구두약 공장에서 온종일 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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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대규모의 의학 “우리는 병리학자, 인류학자, 위생학자, 진보주의자 이렇게 네 명의 위대한 인물을 잃었다.” 1902년 루돌프 피르호 사망 당시, 한 독일 신문의 부고기사다. 의대 교과서에는 병리학의 아버지로 등장하는데, 한때는 심지어 ‘의학의 교황’으로 불릴 만큼 저명한 의사였다. 또한 인류학의 창시자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독일인류학회를 창립했는데, 현대 인류학의 아버지, 프란츠 보아스가 그의 제자다. 어린 시절 피르호는 영특했지만, 의과대학에 갈 학비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프리드리히 빌헬름 의대에 진학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무상으로 가르쳐주었는데, 대신 군의관으로 의무복무해야 했다. 훔볼트 대학교의 전신이다. 의대생이 된 피르호는 학문에서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다. 의사면허를 취득한 피르호는 베를린대의 강사로 임명되었다. 안락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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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공감 유감 근래 들어 공감이라는 말처럼 크게 성공한 심리학 용어도 없을 것이다. 원래는 그리 흔히 쓰던 말이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니 여섯 번 등장한다. 한 번은 한명회가 명나라에서 성종의 표문을 올리며 황제의 은덕을 찬양할 때 쓰였다. 나머지는 임금의 성덕에 군신이 같이 감격한다며 쓰였다. 혹시 개화 이후 많이 쓰게 된 것일까? 옛 신문을 검색해도 잘 찾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1941년 12월9일 매일신보에 실린 ‘제국을 절대 지지, 독일조야 만강의 공감’ 제하의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독일 국민이 일본 제국을 지지하며 가슴 벅차게 공감한다는 내용이다. 기사 이틀 전, 진주만 공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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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철 지난 성공에 관한 이야기 오늘의 한국인에게 성공이란 무엇일까? 한때 국내 고급차의 대명사로 불리던 자동차 브랜드의 새 광고를 보았다. 시리즈의 제목은 ‘2020 성공에 관하여’. 동창회에서 승진을 자랑하고, 어린 아들과 고향 어머니 앞에서 호기를 부리며, 동료 앞에서 당당하게 퇴사하고, 여전한 젊음을 과시하는 내용이다. 대놓고 속물적인 광고였지만, 제법 마음이 흔들렸다. 가격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저렴한 차는 아니지만, 좀 무리하면 장만할 수 있다. 드디어 성공을 손에 쥘 수 있을까? 그럴 리 없다. 동네에 자가용 가진 이를 손꼽던 시절의 추억과 도로를 가득 메운 고급 차의 행렬이라는 현실 사이의 파열에서 오는 착시다. 그러니 대단한 성공이라며 으스대긴 멋쩍다. 하긴 고급 세단을 모는 공무원을 단속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는 장관이나 회장 정도 되어야 타던 차다. 그러나 슈퍼카도 심심찮게 보는 요즘이다. 선망의 눈길을 던질 사람은 없다. ‘예전에는 꿈도 못 꾸던 차였는데, 고생 끝에 이제 나도…’라며 눈물을 잠깐 글썽일 수는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