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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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농담이 두려운 세상 한 판사가 법정을 나오면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동료 판사가 물었다. “도대체 뭐가 그리 재미있소?”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을 들었지.” “아. 나에게도 그 농담을 들려주게.” “그럴 수는 없어. 방금 그 농담을 한 죄로 피고에게 10년 형을 선고했거든.” 아마도 유머 능력은 인간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높은 수준의 언어 능력과 기억력, 다양한 층위와 입장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마음읽기 능력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전전두엽 피질의 기능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호미닌에게서 유독 크게 발달한 부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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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음모론의 진화 모든 이론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론을 들자면, 단연 음모론이다. 나에게 혹은 세상에 일어난 여러 현상의 이면에는 어떤 의도를 가진 세력의 어두운 음모나 계획이 있다는 이론이다. 책상 위 볼펜이 없어진 것은 공부를 방해하려는 경쟁자의 술책이다. 지구 온난화는 프리메이슨의 세계 통제 수단이다. 코로나19는 백신으로 인간 정신을 조종하려는 일루미나티의 계획이다. 음모론은 인기가 많다.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물론이고,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불행을 완벽하게 설명해준다. 게다가 마음에 큰 위안을 준다. 최소한 불행의 원인은 내가 아니다. 음모론자는 ‘내 탓’이라는 말에 인색하다. 불행은 항상 외부에서 오는 것이다. 음모론의 테마는 다양하지만, 플롯은 어찌 그리도 서로 비슷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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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편협한 이타성 우리는 대개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종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기독교인의 절반 이상이 어머니로부터 종교를 물려받는다. 열 명 중 여덟 명의 불교인이 어머니와 종교가 같다. 종교는 어느 정도 ‘초깃값’이다. 종교의 선택을 유보하다가, 19세가 되어서야 여러 종교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라는 문화는 없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가족의 전통이자 집단의 의무였다. 개종은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광장에 목이 내걸리거나 황야로 추방될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지금도 일부 문화에서는 여전히 그렇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의 사회에서 종교는 개인의 자유다. 조금 옛날 자료이지만, 2005년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종교인의 16.2%가 개종한 종교인이었다. 지금은 훨씬 높을 것이다. 기존 종교의 입장에서는 배교요, 새 종교의 입장에서는 회심이다. 교세가 약화하는 입장에서는 배교자를 간단히 화형에 처하던 과거를 추억할지도 모르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 종교는 개인적 선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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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돌봄의 진화, 공정의 진화 약 15년 전 일이다. 취업난이 심했다. 한 가난한 남자가 쓸쓸하고 낡은 공원을 찾았다. 관리인도 없었다. 남자의 눈에 녹슨 동판이 들어왔다. 동판을 떼어 고물상에 팔았다. 어떤 도덕적 판단이 드는가? 실제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깟 녹슨 동판 때문에 불쌍한 남자를 구속해야 할까? 좀 봐주고 싶다. 든든하게 국밥 아니 피시앤드칩스라도 사주며 말이다. 우리는 종종 따뜻한 돌봄과 공감이 가장 중요한 도덕 가치라고 믿는다. 소위 ‘착한’ 것이 도덕이다. 착한 가격, 착한 소비, 착한 임대인, 착한 사장님, 착한 공무원…. 뭐,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너무 나갔다. 대체 착한 통닭, 착한 족발은 뭔가? 급기야 강간범을 덮치면 착한 강간이요, 연쇄살인범을 죽이면 착한 살인이란다. 이건 아니다. 인간의 도덕성은 단지 ‘착함’으로만 정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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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마음에 번진 잉크 얼룩 소시지를 먹은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도대체 누가, 왜 소시지에 독을 넣은 것일까? 1802년,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시는 ‘선지로 만든 훈제 소시지’에 관한 위험주의보를 발령했다. 시야가 흐려지고, 눈꺼풀이 내려가며, 말이 느려졌다. 점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다가 죽었다. 고통스러운 죽음이었다. 하지만 독일인의 소시지 사랑은 여전했다. ‘소시지 중독’ 환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소시지를 먹고 죽었으니, 정육점 주인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유스티누스 케르너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시인이자 의사였던 케르너는 환자 76명을 조사해서 질병의 양태를 정리했다. 그리고 파리와 메뚜기, 개구리, 토끼 등을 잡아서 소시지 추출물을 투여해보았다.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심지어 자기 혀에도 몇 방울 떨어트려 보았다. 아니, 혀가 마비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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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감정에 기반한 도덕성 ‘여성들이 모여 자신들을 위한 나라를 건설했다. 남성은 오로지 짝짓기를 위해 사육되었다. 짝짓기가 끝나면 남성은 누이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짝짓기는 오로지 한 명의 여성을 위한 것으로, 다른 여성은 아기를 가질 수 없었다. 이를 어기면 죽어야 했다. 오랜 계율이자 도덕이었다.’ 공상과학소설의 이야기일까? 그러나 지금도 200만개가 넘는 사회가 이런 관습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인간 사회는 아니다. 꿀벌 사회다. 찰스 다윈의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일부를 바꿔 옮긴 것이다. 다윈은 ‘쓸모’가 없어진 남성을 죽이고, 임신한 딸을 죽이는 행동에 대해 ‘아무도 이론을 제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종의 행동 양식이라지만,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혁명가 꿀벌은 언제 나타날 것인가? 수벌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모든 일벌에게 번식 기회를 공평 배분하자. 그러나 지난 1억년간 기다리던 해방은 오지 않았다. 그들에게 오빠와 남동생, 임신한 딸을 죽이는 것은 영겁의 세월 동안 반복된 ‘신성한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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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마음의 근시 약 15억명이 앓는 질병. 다섯 명 중 한 명 꼴이다. 한번 걸리면 잘 낫지도 않는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상황이 제일 나쁜데, 인구의 약 절반이 앓고 있다. 게다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2015년 ‘네이처’지의 발표에 의하면, 서울에 사는 19세 청소년의 97%가 이환되어 있다. 바로 근시다. 아니, 근시가 무슨 병이냐고? 안경을 벗고 하루만 생활해 보자. 일이나 공부는 고사하고,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 맨날 부딪히고 넘어지니 이마와 무릎이 성할 수 없다. 모처럼 꽃구경을 가도, 죄다 고흐의 작품처럼 보인다. 자칫하면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엉뚱한 곳을 이리저리 헤매게 된다. 슬프지만, 내 눈도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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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바키나에와 마과회통 “모두 6남3녀를 낳았는데, 산 애들이 2남1녀이고 죽은 애들이 4남2녀니, 죽은 애들이 산 애들의 두 배이다. 아아, 내가 하늘에 죄를 지어 잔혹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할 것인가… 나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데 살아 있고, 너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은데 죽었으니, 이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자식을 아홉 두었지만, 여섯이 요절했다. 1798년 9월에는 아들 삼동이가 죽었다. 먼저 낳은 구장이와 효순이를 천연두로 보낸 다산이었다. 그러나 곧 10월에 다시 낳은 아들도 열흘 만에 죽었다. 끝이 아니었다. 막내 농장이도 네 살 무렵, 역시 천연두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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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사회적 거리 두기의 유효 기간 거리 두기에 관한 여러 가지 사회적 입장이 점점 서로 거리를 두고 있다. 일각의 비판이 비등하면, 이내 지침이 바뀐다. 그러자 다른 쪽에서 억울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감염병 유행 자체가 공정함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건만, 모두 ‘공정성’을 따지며 지침 완화를 청하는 형국이다. 이래서는 될 일도 안 된다. 대중 방역 메시지는 간결하고, 분명하고, 일관되어야 한다. 지금은 어떤가? 다섯 단계, 여섯 시기, 열네 개의 수칙, 마흔여덟 종의 시설에 대해 세세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지침서 분량만 총 223쪽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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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작은 거짓말의 시대 1999년, 노인 보건정책에 경종을 울릴 만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손주의 기말고사를 앞두고 할머니의 사망률이 급증한다는 것이다. 코네티컷 주립대 생물학과 마이크 애덤스는 학생 100명당 가족 사망률이 평소에는 0.054에 불과하지만, 중간고사 무렵 0.574로 치솟고 기말고사 직전에는 1.042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무려 20배에 가깝다. 게다가 이런 추세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약 30년간 평균 가족 사망률이 다섯 배 넘게 증가했다. 아니 도대체 원인이 무엇일까? 애덤스는 손주를 걱정하는 할머니의 불안이 급사를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고아에게만 대학 입학 자격을 주거나 혹은 대학 입학 사실을 가족에게 비밀로 하는 등의 대책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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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두 개의 공기 예정된 패배였다. 1945년, 최정예 전함 야마토는 오키나와 결전에 차출되었다. 미군의 방어선을 뚫고 오키나와 해안에 일부러 좌초한 후, 섬을 지키라는 명령이었다. 터무니없는 작전이었다. 일단 오키나와에 도착할 가능성이 없었다. 미군은 총 1800척의 함선을 동원하고 있었지만, 야마토를 호위하는 배는 9척에 불과했다. 설령 운 좋게 해안에 도착해도, 적당한 위치에 적당한 각도로 좌초할 리 없었다. 논리도, 데이터도 작전 실패를 온몸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야마토는 기어이 출항했다. 훗날 사령관 오자와 지사부로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의 전반적인 공기에 따르면 야마토 특공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불가능한 작전임을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반대할 수 없었다. 명백한 사실과 합리적 분석을 초월하는 힘은 바로 ‘공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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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테디 베어 이야기 “교수형에 처하라, 총살하라.” 1만명의 시위대가 하르툼 시내를 점거했다. 성난 군중은 거리를 행진했고, 일부는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요구는 간단했다. 한 여성을 사형에 처하라는 것이었다. 여성은 영국 출신의 초등학교 교사였다. 수단의 한 초등학교에서 6~7세 아이를 가르치고 있었다. 교실에 비치된 곰인형, 테디베어에 이름을 짓도록 했다. 아이들은 투표를 거쳐 ‘마호메트’를 선택했다. 좋아하는 곰인형에 가장 ‘멋진’ 이름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 교사 질리언 기번스는 투표 결과를 존중했다. 테디베어는 마호메트로 명명되었다. 이야기를 들은 몇몇 학부모가 격분했다. 30년 경력의 교사가 신성모독죄로 체포, 구금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