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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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 2017년 5월25일 영국 맨체스터의 한 광장에 시민들이 모였다. 어딘가 슬픈 표정을 한 이들은 사흘 전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장에서 일어난 테러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1분간 침묵했다. 1분의 침묵이 끝나자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한 여성이 맨체스터 출신 록밴드 ‘오아시스’의 ‘화내며 뒤돌아보지 마세요’(Don’t look back in anger)를 조용히 읊조렸다. 그가 20초가량 노래를 부르자 몇몇이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따라불렀고, 1분쯤 지나자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처음 노래를 시작한 리디아 번스마이어 롤로는 지난 사흘간 머릿속에 떠올랐던 노래를 불렀을 뿐이라며, 사람들이 따라부르기 시작했을 때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맨체스터 시민들은 1년 뒤 1주기 추모 행사에서 다시 한번 다 같이 이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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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슬픔을 거부하는 권력 정혜윤 CBS PD가 2015년 11월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 한 대목을 잊을 수가 없다. 세월호 유가족과 광주 유가족의 만남을 묘사한 글이었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미안해했다. 세월호 참사를 겪기 전까지는 광주에서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을 몰랐다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미안해했고, 우리가 안산으로 가야 했는데 광주까지 오게 했다고 광주 유가족들이 미안해했다. 이들의 만남에 동행한 정혜윤 PD는 이렇게 적었다. “놀라운 것은 가장 슬픈 자들이, 가장 고통받는 자들이 오히려 책임을 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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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승우아빠 구인공고문을 보다가 유튜브 채널 ‘승우아빠’의 편집자 구인공고문이 최근 SNS에서 소소한 화제가 됐다. 업계에서 보기 드문 고정급 보장에 상당한 액수가 특히 주목받았지만, 승우아빠의 공고문은 좀 더 특별했다. 급여 수준을 명확하게 밝혀 적었고, 인센티브 기준을 작업물의 조회수가 아니라 개수로 잡았다. 채널 성격에 따라 요구되는 직무능력과 작업조건, 지원서 심사에 걸리는 시간과 그 처리방법을 분명하게 밝혀 적었다. 편집 능력 테스트에 따른 테스트비도 지급한다. 지원자도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계약방식이나 급여지급일까지 밝혀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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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민주노총만 지켜주는 노란봉투법? ‘노란봉투법’이 다시 정국의 중심에 섰다.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대해 막대한 규모의 손해배상을 무분별하게 청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이다. 2015년 처음 국회에서 발의된 이후 7년간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가 미뤄온 사이에 또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야 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받은 액수는 470억원, 2014년 쌍용차 노동자들이 받았던 47억원의 정확히 10배다. 이런 일 막자고 발의한 법안을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인 성일종 의원은 “민주노총 방탄법”이라고 불렀다. 참 악의적인 표현인데, 성 의원은 왜 노란봉투법을 민주노총 방탄법이라고 불렀을까. 이 질문은 이렇게도 번역된다. 왜 민주노총만이 노란봉투법의 보호를 받는가? 이렇게 질문을 바꿔 생각해 보니 성 의원의 악의 섞인 표현이 민주노총에 대한 상찬처럼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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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문해력 부족에 혀만 찰 일인가 며칠 전 SNS에서는 ‘심심함’이 논란이었다. 한 업체에서 행사 진행을 잘못한 탓인지 사과문을 올렸는데, 여기에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쓴 게 발단이다. 사과문을 읽은 누군가들이 화를 냈다. “심심하다고? 난 하나도 안 심심한데.” 그렇다. ‘심심하다’는 말에 다른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몰라 사달이 난 거다. 명징, 직조, 사흘, 금일, 무운이 먼저 자리잡고 있는 명예의 전당에 ‘심심’이 새로 등극한 순간이다. 곧장 문해력 문제가 제기됐다. 한자교육 부재, 독서량 부족 문제도 당연히 언급됐다. 그다음이 흥미로운데, 지적받은 사람들이 도리어 역정을 냈다. 왜 어려운 말 써서 혼란을 만드냐, 뜻은 알지만 비꼬려고 그런 거다, 물타기하지 말아라…. 상황이 이쯤 되면 반지성주의 문제도 언급된다. 최근 몇 년간 발생한 문해력 논란은 항상 이런 패턴이었다. 대체로 SNS 안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만큼 반복되면 확실히 사회적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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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노동자에게 지옥 같은 나라 “임금 4.5% 더 받자고 8100억원대 손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51일 파업투쟁 끝에 지난 22일 임금 4.5% 인상을 골자로 노사 교섭이 타결되자 한 보수경제지가 내건 기사 제목이다. 8100억원은 사측이 주장하는 피해금액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숨이 막혔다. 실질임금을 삭감해 노동자들을 파업으로 내몰고 저 손실이 날 때까지 방관한 자들의 책임은 온데간데없이, 사실상 노동조합이 대폭 양보한 결과에 대해서까지 저런 평가라니. 이 나라는 노동자에게 지옥과도 같은 나라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한국에서 파업하는 노동자는 어지간해선 기업과 정부와 보수언론이 촘촘하게 쳐둔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 없다. 정규직 노조의 파업은 가장 손쉬운 과녁이다. ‘배부른 귀족노조가 생떼 부린다’고 비난하면 그만이다. 정규직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강요, 힘들게 일하는 비정규직들도 있는데 정규직이 이러면 안 된다는 질타도 당연히 따라온다. 그래서 정규직 노조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파업을 벌이면 그건 또 불법이다. 예컨대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철도민영화 반대를 걸고 파업을 벌이려 들면 단박에 ‘불법 정치파업’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근로조건의 유지 및 개선’과 관련되지 않은 파업은 현행법상 불법이란다. 파업을 시도해봐야 철도·공항·병원 등은 충분한 효과를 내기도 어렵다. 파업에 돌입해도 일정 비율의 노동자는 참여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필수유지업무 제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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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더 많이 일할 자유’와 진보정치의 숙제 지난주 고용노동부에서 ‘주 52시간 상한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주 단위로 연장근로를 제한하는 현행 제도를 월 단위 제한으로 바꾸겠다는 게 골자다. 이렇게 되면 산술적으로 주 92시간까지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비판이 단박에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당시 스타트업 청년들에게 들은 얘기라며 ‘주 120시간 일할 자유’를 말하던 대목이 떠오른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젊은 세대들이 ‘시간 주권’을 중시하면서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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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당신은 어디에 ‘시민의 권력’을 쓸 것인가 고발과 폭로는 어렵다.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더 어렵다. 그러나 온 사회가 노력한다면 결국 문제는 해결된다. 이달 18일에 넷플릭스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n번방 문제가 처음에 어떻게 고발되었고, 그 전모가 어떻게 폭로되었으며, 어떻게 해결될 수 있었나. 영화는 이 질문 흐름을 큰 줄기 삼아 전개된다. 제보가 있었다. 텔레그램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고. 제보를 받은 한겨레신문 기자들은 취재를 시작하고 기사를 냈다. 한국이 이미 ‘성범죄 공화국’이기 때문일까. 큰 반향이 없었다. 이때 시민들이 나섰다. SNS에서 n번방 수사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슈를 띄웠다. 이를 통해 SBS와 JTBC의 시사프로그램 PD들이 n번방 사건을 알게 된다. 이들이 각자의 전문성과 관점으로 취재를 시작해 새로운 정보를 폭로함으로써 n번방의 ‘빈 고리’를 채웠다. 한겨레신문보다 조금 앞선 시기, 대학생 기자단 ‘추적단 불꽃’도 n번방을 쫓고 있었다. 가해자들이 빠져갈 구멍이 없도록 장시간 취재하는 한편, 취재를 통해 얻은 자료를 경찰에 제공하며 수사망을 좁혀갔다. 그렇게 ‘박사’와 ‘갓갓’이 잡혔다. 시민들은 강력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국회에서는 ‘n번방 방지법’이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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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차별금지법, 능력주의 논쟁의 출발점 고백할 게 있다. 그간 차별금지법의 내용을 잘 모르면서도 이 법을 지지하고 있었다. 참여하고 있는 토론 모임에서 얼마 전 차별금지법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 처음으로 법안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봤고, 그간 짐작해왔던 내용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에 놀랐다. 법안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유연하고 방어적이었다. 놀람 뒤엔 서러움이었다. 이 정도의 법안을 제정하는 것조차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을 이해하려면 세 가지 층위를 살펴봐야 한다. 무엇이 ‘차별’ 행위인가. 어떤 차별을 ‘금지’하는가. 법을 어기면 어떤 ‘처벌’이 가해지는가. 일단 이 법안에서 규정하는 ‘차별’이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누군가의 정체성·학력·나이·국적 등을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뜻한다. 여기서 이미 첫 번째 제한이 있다.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문제 삼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차별이 ‘금지’의 대상이 되는가도 살펴야 한다. 법안에 따르면 행정 서비스, 교육, 고용, 재원 등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차별 행위만이 금지 대상이다. 두 번째 제한이다. 사적 영역에서의 차별 행위는 금지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공적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 예배당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차별금지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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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그 이성은 정말로 이성적인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숫자 하나를 던졌다. 94%. 서울시 내 지하철 역사 중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1역사 1동선’이 확보된 역사의 비율이다. 이 대표는 이 숫자를 갖고 장애인들의 지하철 이동권 시위에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그의 지지자를 비롯한 일부 누리꾼들이 일제히 그 숫자를 들고 다니며 장애인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장애인들이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 ‘떼쓰지 말고 통계를 보라.’ ‘시위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그런 말들이 공론장을 채웠다.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얘기해야 한다”고? 이준석의 ‘94%’는 정말로 ‘이성적’인 걸까. 숫자의 뒤편엔 더 많은 숫자들이 숨겨져 있다. 21년이라는 숫자는 어떤가. 2001년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 사고로 장애인 부부가 사망한 뒤로 21년간 장애인들은 이동권을 요구하며 싸워왔다. 어떤 사람들은 “2024년까지 100%”에 의기양양하지만, 장애인들에게는 “23년 만에 100%”인 것이다. 100%? 2002년에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2004년까지 100%를 약속했고, 2015년에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2022년까지 100%를 약속했다. 약속이 두 번이나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장애인들은 뼛속부터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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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심상정의 50일, 정의당의 5년 김용균, 이선호, 김지은, 김잔디, 변희수. 지난주 금요일 사전투표를 하러 가는 길에 잊을 수 없는 이름들을 곱씹었다. 나는 지난 5년을 이들의 이름으로 기억한다. 거대양당이 아니라 여전히 진보정당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이들의 이름이 보여줬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세상을 떠난 김용균씨, 2021년 4월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유명을 달리한 이선호씨. 민주당은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을 미뤘고, 적용범위를 좁히고 처벌수위를 낮추는 등 누더기로 만들었다. 2018년 3월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김지은씨, 2020년 7월 박원순 전 시장의 성폭력을 고발한 김잔디씨(가명). 민주당의 많은 정치인들이 2차 가해를 일삼았다. 성전환 수술을 이유로 강제전역 처분을 받고 2021년 2월 극단적 선택을 한 변희수씨. 민주당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나중’으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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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인간의 가능성을 냉소하는 사회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 넷플릭스 1위 자리를 차지했다는 소식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주 서사인 <지금 우리 학교는>이 또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오징어 게임>과 <지옥>이 그 자리에 있었다. 이 세 드라마에는 갑자기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자 철저하게 이기적인 태도로 각자도생을 꾀하는 ‘인간의 잔악한 본성’이 그려진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세 드라마에는 또한 재난에 맞서는 ‘인간의 따뜻한 본성’도 함께 그려진다. 다시 말해 이 작품들은 인간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극한 상황에서 두 가지 본성 중에 무엇을 택할 것인지 질문하는 이야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