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
뮤지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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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의 가사 - 말 좋은 소식, 나쁜 소식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이라는 제목으로 내 2집 <신의 놀이> 앨범에 수록한 이 곡은 좋아하는 작가 커트 보니것의 수필집 <나라 없는 사람>(문학동네) 본문 107쪽 한 부분에 멜로디를 붙여 만든 곡이다. 같은 책에서 커트 보니것은 ‘불경스러운 말이지만, 만일 내가 죽으면 천국에 올라가 그곳 책임자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이봐요. 대체 뭐가 좋은 소식이었고 뭐가 나쁜 소식이었소?”’라고 썼다. 2007년 4월에 사망한 그는 천국의 책임자를 만났을지 궁금하다. 여전히 천국이 아니라 지구에 살고 있는 나는 좀처럼 인생이 뭔지 모르겠고, 오늘 들은 소식이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위 가사를 보아도 그렇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둥글고 축축하고 북적대는 지구라는 곳에서 고작 백 년 살까 말까 하다는 소식은 과연 좋은 소식일까 나쁜 소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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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의 가사 - 말 잘 듣고 있나요 일에 지치고 삶이 고된 순간이 찾아오면 3년 전 유튜브에 올린 <잘 듣고 있어요> 뮤직비디오 댓글들을 읽으러 간다. 이상하게 이 영상의 댓글들은 읽고 또 읽어도 감동적이고 매번 힘이 난다. 누군가의 대답을 들을 거라 생각하며 이 가사를 쓴 건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물어봐 줘서 고맙다’며 자신이 어떤 시간에, 어떤 순간에 이 노래를 듣고 있는지 댓글에 쓰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이 이 질문 하나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펼칠 줄 몰랐고, 놀랐고, 동시에 너무 기뻤다. 처음에는 ‘잘 듣고 있나요’란 가사의 대답처럼 ‘잘 듣고 있어요’라고 짧게 달리던 댓글들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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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의 가사-말 하늘님은 오늘도 자고 있을까 찜질방 중에서도 가장 높은 온도의 방에서나 느낄 법한 무겁고 습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덕분에 집에서 작업실까지 가는 짧은 길에도 피로감이 상당하다. 7월 날씨가 언제부터 이렇게 뜨거웠었나. 이렇게 찜질방같이 뜨거운 낮 시간에 야외에서 하루 종일 서 있는 직업도 많다. 최근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면허시험장을 들락거리며 자주 만나는 시험장 감독관도 바로 그런 직업 중 하나다. 그들은 형광색 안전조끼를 입고, 우산을 들고 콘크리트 열기가 이글거리는 운전면허 기능시험장 이곳저곳에 서 있다. 한낮의 열기에 한껏 뜨거워진 시험차량에 탑승하면 그 온도에 깜짝 놀란다. 사이드 미러를 잘 보기 위해 운전석 양쪽 창문을 끝까지 내리면 차 안팎으로 후끈후끈한 공기가 휘몰아친다. 긴장감 때문에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브레이크를 몇 번 밟으며 앞으로 나가다보면 온몸은 땀으로 범벅, 다음에 마주칠 코스를 앞두고 중얼중얼 혼잣말을 내뱉고 있는 마스크 안도 뜨거운 숨으로 꽉 찬다. 감독관들은 코스 중간에 불합격된 시험차량을 발견하면 성큼성큼 걸어가 낙심한 운전자를 끌어내린(?) 뒤 시험차를 대신 운전해 출발지점에 다시 가져다 둔다. (나는 벌써 두 번이나 끌어내려졌다.) 몇 분 운전하지도 못하고 코스 중간에 불합격 통지를 받고 나오는 짧은 길에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오전부터 계속 시험장에 서 있는 감독관들은 얼마나 고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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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의 가사-말 이 빵밖에 없었어 나는 16년 차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로 사계절 내내 콧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한다. 한창 사스가 유행일 때도 그랬지만 요즘같이 전염병에 예민한 시기엔 밖에서 재채기가 나올 때마다 저절로 눈치를 보게 된다.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재채기를 맘대로 제어할 수도 없는데, 사람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피해가면 내 자신이 바이러스가 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동할 때는 되도록이면 자전거를 탄다. 재채기 소리에 흠칫 놀라는 행인들 시야에서 그나마 빨리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재채기 덕분에(?) 아침 일찍 일어나 작업실로 출근하기 전 60번 정도 더 재채기를 했다. 눈이 간지러워 한쪽 눈을 찡그린 채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작업실에 가는 길에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은 공사 중인 카페들이다. 카페 옆 카페, 카페 앞 카페. 내가 살고 있는 망원동엔 이미 카페가 차고 넘치지만 그럼에도 또 새로운 카페가 공사 중이다. 엄청난 수의 카페들을 지나다 그중 빵집에 한 번 들러 샌드위치를 사고, 카페에 한 번 들러 커피를 산다. 좋아하던 백반집과 쌈밥집은 몇 년 사이 다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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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의 가사-말 이 노래는 어디에서 왔나요 오늘 이 노래는 어디로 갈까요오늘 이 노래는 어디로 갈까요눈을 가린 마녀가 두 번째 칼을표적을 향해 던지려 하고 있네요첫 번째 칼처럼 표적 정중앙에다시 한 번 맞히고 싶겠죠이 노래가 끝나면 마녀는홀가분하겠죠 2021년 4월16일부터 열린 서울 일민미술관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 전시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관객 앞에서 노래를 만드는 ‘신곡의 방’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총 2회 공연으로 한 회는 타로이스트 북마녀와 함께, 다른 한 회는 퀴어무당 홍칼리와 함께 곡 작업을 하게 됐다. ‘신곡의 방’은 2014년 11월부터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진행했던 ‘즉석 작곡 쇼’로, 매회 새로운 게스트 뮤지션과 만나 사전에 어떠한 상의도 없이 한 곡을 함께 만드는 과정을 관객 앞에서 보여주는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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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의 가사-말 이랑이 나타났다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마녀가 나타났다 부자들이 좋은 빵을 전부 사버린 걸알게 된 사람들이 막대기와갈퀴를 들고 성문을 두드린다폭도가 나타났다 배고픈 사람들은 들판의 콩을주워 다 먹어 치우고부자들의 곡물 창고를 습격했다늑대가 나타났다 일하고 걱정하고 노동하고 슬피 울며마음 깊이 웃지 못하는예의 바른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이단이 나타났다 요즘 한창 녹음 중인 3집 앨범의 타이틀 곡 ‘늑대가 나타났다’의 가사 일부이다. 2016년, 2집 앨범 <신의 놀이>를 발매하고 나서 나는 종종 이런 연락을 받았다. “이랑님, 이번 토요일 ○○집회에서 행진할 때 ‘신의 놀이’ 곡을 틀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