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는 어디에서 왔나요

이랑 뮤지션·작가

오늘 이 노래는 어디로 갈까요
오늘 이 노래는 어디로 갈까요
눈을 가린 마녀가 두 번째 칼을
표적을 향해 던지려 하고 있네요
첫 번째 칼처럼 표적 정중앙에
다시 한 번 맞히고 싶겠죠
이 노래가 끝나면 마녀는
홀가분하겠죠

2021년 4월16일부터 열린 서울 일민미술관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 전시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관객 앞에서 노래를 만드는 ‘신곡의 방’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총 2회 공연으로 한 회는 타로이스트 북마녀와 함께, 다른 한 회는 퀴어무당 홍칼리와 함께 곡 작업을 하게 됐다. ‘신곡의 방’은 2014년 11월부터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진행했던 ‘즉석 작곡 쇼’로, 매회 새로운 게스트 뮤지션과 만나 사전에 어떠한 상의도 없이 한 곡을 함께 만드는 과정을 관객 앞에서 보여주는 공연이다.

이랑 뮤지션·작가

이랑 뮤지션·작가

한 곡의 노래를 완성하는 순간엔 대부분 혼자 있었다. 늦은 밤이나 새벽. 아무도 없는 방이나 작업실에서 혼자 노래를 만들었고, 완성의 순간 “완성이다!” 하고 외쳐도 들을 사람이 없었다. 노래뿐 아니라 여러 창작 과정에서 완성의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이 순간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완벽히 공유할 수 없다고 해도 비슷하게나마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14년, 관객 앞에서 작곡을 하는 ‘신곡의 방’ 공연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매달 새로운 게스트 뮤지션을 만나 그가 평소 어떤 방식으로 작사·작곡을 하는지 듣는 재미도 쏠쏠했고, 전자음악을 베이스로 하는 뮤지션이나 색소폰 연주자와 함께 작곡할 때는 완전히 새로운 작곡 경험을 했다. 나처럼 기타 한 대로 작곡하는 싱어송라이터들도 가사를 먼저 쓰는 타입과 멜로디를 먼저 쓰는 타입이 달랐고, 어떤 부분에서 작업이 막히는지는 장르와 관계없이 모두가 달랐기에 함께 해결 방식을 찾아나가는 것도 하나의 큰 도전 과제였다. 지금 생각해도 한정된 공간과 시간 안에 한 곡을 완성해야만 끝나는 ‘신곡의 방’은 참여하는 창작자들에게는 꽤 부담이 되는 공연이었지만, 매회 완성의 순간을 현장의 관객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 여전히 큰 기쁨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지난 5월19일, 부처님오신날(과는 관계없지만) 타로이스트 북마녀와 함께 일민미술관 프로젝트룸에서 1회 공연을 마쳤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운명’의 의미를 고찰하고 ‘상담’을 통해 내면세계를 깨달아가는 여정을 탐구하는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 전시 주제처럼 우리의 만남이 어떤 운명을 가지고 흘러갈지가 관건이었다. 뮤지션이 아닌 게스트는 처음이었기에 오늘 노래를 잘 만들 수 있을지 타로점을 보기로 했다. 모든 카드에 마녀가 등장하는 위치카드 중 네 장을 골랐다. 먼저 카드에 적힌 숫자와 기타코드로 쓰이는 알파벳 순서를 매칭해 곡에 쓰일 코드를 고르고 난 뒤 각 카드의 해석을 들었다. 첫 번째 카드에서 눈 쌓인 길을 걷고 있는 마녀의 앞에 불 켜진 따뜻한 집이 보이는 그림은, 과정은 험난하지만 곧 좋은 결과를 마주할 거라는 희망을 암시했다. 기대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주는 두 번째 카드,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꽃을 나누어주는 세 번째 카드. 네 번째 카드 속 마녀는 고양이와 함께 해변에 앉아 선선하게 부는 바닷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모든 카드의 해석이 끝났을 땐 아직 한 줄도 만들지 않은 노래를 다 만든 것처럼 후련했다.

7월까지 열리는 일민미술관의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 전시도 그렇고 지난 5월에 끝난 2021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에도 샤머니즘, 토착문화, 애니미즘 등 우주론적 세계관을 다루는 작품들이 많았다. 과학과 기술, 전자 지성이 발전할수록 영적 지성도 함께 발전할 수 있을까? 나는 2021년에 타로카드가 점쳐준 대로 가사를 썼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새롭게 마주한 창작법이었다. 반대로 그동안 내가 어떻게 노래를 만들었는지 전혀 설명할 수가 없다. 어쩌면 매 순간 운명에 이끌려 노래를 만들어왔던 건 아닐까. 노래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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