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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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2021년 남북관계 반성문 매년 이맘때면 남북관계와 관련된 정세 평가 및 전망과 관련된 글을 쓰게 된다. 연말에도 어김없이 이곳저곳에서 부탁받은 글 빚이 쌓여 있지만 뭘 써야 할지 난감하다. 최근 몇 년간 남북관계를 돌아보면 지나간 1년을 평가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일이다. 2019년 희망으로 가득 찼던 전망은 2018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평화를 맛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2020년과 2021년에도 희망의 끈을 내려놓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다음 해를 전망해 보았지만 더 큰 절망으로 돌아왔다. 이제 남북관계를 전망하기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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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코리아 디스카운트 혹은 프리미엄 1999년 6월 홍콩의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마 연평해전이 벌어졌던 날이었을 것이다. 당시 내가 해군장교였던 때문인지 한국에 전쟁 나는 게 아니냐며 걱정을 했다. 나는 평소와는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전쟁이 그렇게 쉽게 나는 것이 아니라며 안심시켰다. 그해 연말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는 옆에 있던 아시아 총책임자라는 한 외국인에게 얼마 전 도움을 준 해군장교라고 나를 소개했다. 그는 당시 내 말을 믿고 한국에 대한 투자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고 다른 회사들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며 “한국정부가 당신에게 훈장을 주어야 한다”고 엄지를 세웠다. 인사치렌 줄 알면서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때가 IMF 금융위기로부터 탈출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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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남북관계의 정중동·동중정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이 한창이던 중학교 3학년 때다. 학생들 사이에서 유도파와 레슬링파로 나뉘어 응원전이 벌어졌다. 당시 학교에 레슬링 선수 몇 명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름 신경전이 대단했다. 결국 LA 올림픽에서 획득한 6개의 금메달 중 유도와 레슬링이 각각 2개씩을 우리나라에 안겼다. 올림픽이 끝났지만 중학교 남학생들의 혈기왕성한 승부욕은 쉬 사그라들지 않았다. 쉬는 시간만 되면 책상을 한 쪽으로 몰아놓고 뒤엉켜 교실 바닥을 뒹굴며 시키지도 않은 청소를 몸소 실천하곤 했다. 이때 나는 유도파의 소위 대장 격이었다. 하루는 유도의 신기술을 보여준다며 하필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를 세워놓고 배대 뒤치기를 해보였다. 결국 그 친구의 쇄골이 부러지는 사고를 쳤다. 기억하기 싫은 흑역사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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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지도자의 나침반과 지도 내 연구실 책상 위엔 나침반이 놓여 있다. 해군 장교로 첫 지휘관인 고속정 정장을 시작할 때 선배로부터 받은 것이다. 나침반은 오래전부터 망망대해에서 항로를 잡아주는 데 필요한 기구였다. 기술이 발달해 인공위성을 이용한 GPS(위성항법장치)나 전자해도를 사용한다고 해도 여전히 나침반은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도구이다. 선배는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해군 장교로서 꼭 가져야 할 자질과 함께 굳은 신념을 지니라고 당부했다. 우연일까. 10년 전 해군을 떠나기 직전 나침반이 고장 났다. 군복을 벗게 된 것이 해군 장교로서 신념이 부족한 탓이란 자책이 나를 괴롭혔다. 버릴까 고민하다 챙긴 것이 지금까지 책상 위에 남아 있게 되었다. 바늘 한 쪽이 주저앉아 바닥에 닿아 있다.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은 고장 난 것이다. 위치를 옮기더라도 북쪽을 가리키기 위해 나침반의 바늘은 늘 흔들린다. 고장 난 나침반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신념의 부족이 아니라 타협을 모르는 고집과 아집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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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트릴레마와 ‘모가디슈’ 깻잎 연예인 부부가 방송에 나와 깻잎 때문에 싸운 사연을 이야기했다. 여자 후배와 함께 식사하던 중 후배가 깻잎을 먹는데 잘 안 떼어지자 남편이 젓가락으로 아래 깻잎을 잡아주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냥 매너일 뿐이라고 항변하는 남편과 여자 후배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랬다는 부인 간에 소위 ‘깻잎 전쟁’이 생긴 것이다. 남편 속내는 모를 일이니 뜨끔했을지도 모른다. 과도한 의심과 오해일 수도 있다. 평소에 의심받을 만한 짓을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행동이 당연히 나쁜 의도일 것이라고 단정 짓고 매도하는 것이 올바른지는 모르겠다. 그 정도로 믿지 못하면 같이 살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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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신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세상이 뒤바뀌던 시기 새롭게 나라를 세워 다스리던 임금은 지도를 만들라 명했다. 신하들은 주변국의 지도를 모아 새로운 나라를 큼직하게 그려넣은 세계지도를 그려 임금에게 바쳤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이니 유럽과 아프리카가 그려진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세계지도임에 틀림없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지 10년 후 태종 2년(1402)에 완성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이야기다. 당시의 세계지도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뛰어난 지도 중의 하나로 평가되지만 안타깝게도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사본만 일본 류코쿠대학에 남아 있다고 하니 이 역시 하루속히 되찾아 와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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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모든 것을 먼저 줄 용기 집집마다 구걸하며 걷다가 황금마차를 만났다. 이제 그 저주스러운 세월도 끝났구나 하는 희망을 안고 쏟아질 보배를 기대하며 서 있었다. 그런데 마차에서 내린 사람은 “너는 내게 무엇을 주려 하는가?”라며 손을 내밀었다. 나에게 오히려 무엇을 달라 하니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구걸해 얻은 밀 한 톨을 봇짐 속에서 꺼내 건넸다. 날이 저물어 봇짐을 쏟아놓고 보니 작은 금구슬 한 알이 보여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내 가진 것을 남김없이 모두 드리지 못하였음이 몹시도 안타까웠다. 타고르의 시집 <기탄잘리>에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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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피스 액츄얼리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굳이 보자 하면 개인적으로 가벼운 로맨스 영화를 좋아한다. 그중 한 편을 꼽으라면 다양한 등장인물들 간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라는 영화이다. 내가 이를 꼽는 이유는 영국 대표 ‘국뽕’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국 총리 역을 맡은 휴 그랜트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세계 정세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 주변 일상 속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사랑은 어디에나 있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사랑을 찾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찾을 것이라며 “love actually is all around us(사랑은 사실 우리 주변 모든 곳에 있다)”라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