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세상이 뒤바뀌던 시기 새롭게 나라를 세워 다스리던 임금은 지도를 만들라 명했다. 신하들은 주변국의 지도를 모아 새로운 나라를 큼직하게 그려넣은 세계지도를 그려 임금에게 바쳤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이니 유럽과 아프리카가 그려진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세계지도임에 틀림없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지 10년 후 태종 2년(1402)에 완성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이야기다. 당시의 세계지도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뛰어난 지도 중의 하나로 평가되지만 안타깝게도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사본만 일본 류코쿠대학에 남아 있다고 하니 이 역시 하루속히 되찾아 와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지도 중앙에는 중국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고 동쪽에 조선과 일본이 그려져 있다. 완전히 새로 그린 지도는 아니다.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성교광피도’와 ‘혼일강리도’라는 두 지도를 기초로 조선과 일본 지도를 합쳐서 만들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중화중심사상에 기초해 중국과 조공관계에 있는 나라들을 표시한 화이도(華夷圖)와는 차원이 다르다. 직접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던 유럽과 아프리카의 지명까지 상세히 담았다. 당시 세계지도에는 조선과 일본이 누락된 것이 많았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같은 해에 이회가 만든 ‘팔도지도(八道地圖)’를 임금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그것을 그대로 붙여서인지 조선을 과하리만큼 크게 그려넣었다. 새로 세운 조선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했던 임금의 당당함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태종이 단순히 새로운 나라를 만방에 과시하기 위해 세계지도를 만들라고 명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시 정세는 안팎으로 조용하지 못했다. 안으로는 2차에 걸친 왕자의 난으로 임금이 된 태종이 부왕 태조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밖으로 중국 대륙은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주인이 바뀌었지만 명나라에서조차 ‘정난의 변’으로 어린 조카의 황제자리를 빼앗은 영락제가 즉위했다. 이처럼 세상이 어지러울 때 태종이 과연 어떤 생각에서 세계지도를 만들라고 명했는지 궁금하다. 지도의 제작과정에 대해 밝힌 권근은 발문에는 “문 밖을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 수 있고 지도를 보고서 지역의 멀고 가까움을 아는 것 역시 나라를 다스리는 데 보탬이 되는 법”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미 600년 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외교안보를 고민했다.

예로부터 지리는 천문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기본으로 삼아 왔다. 주역에 ‘우러러서는 천문을 보고 구부려서는 지리를 살핀다(仰以觀天文 俯以察地理)’는 글귀처럼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달아 국가정책을 결정했다. 관(觀)은 황새처럼 높은 곳에서 세상을 크게 본다(見)는 의미이고, 찰(察)은 집에서 제사(祭)를 지내듯 지극 정성으로 살펴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도는 세상의 근원인 삼재(三才), 즉 하늘, 땅, 사람이 담겨진 과학이자 예술이다. 조선은 태종에 이르러 실제로 정치, 외교, 군사, 경제에 이르기까지 안정을 찾았다. 임금은 지도를 보며 우리 땅이 어디까지이고 누가 우리 백성인지, 그리고 우리 땅과 백성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이 위협인지 교류의 대상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백성을 하늘과 땅처럼 우러러보고(觀) 구부려 살피겠다(察)는 통치 철학이 담겨 있다.

대선 후보경선이 본격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며 대선 주자들의 입에 주목하고 있다. 전례 없이 난립 중인 대선 후보들에게 한반도 미래를 논하기 전에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속 팔도지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과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 중 과연 누가 온전한 한반도에 살고 있는지 자문해 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600년 전 지도 속의 한반도는 비록 딸이 초등학교 과제로 그렸던 지도처럼 엉성하지만 우리 백성들을 분단된 한반도에 살게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고 설계했을 것이다.

미·중의 대결이 심화되고 있는 격변의 시기 한반도 미래에 대한 해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왜 언제부터 분단된 이 땅에 살게 되었는지 분명한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의 선택이 타국으로부터 강요당하고 우리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수 없는 지금의 분단된 삶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국민을 우러러보고 구부려 살피는 후보를 만나고 싶다. 600년 전 태종처럼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갈 미래를 담은 ‘신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新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를 만들 용기를 가진 지도자는 과연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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