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직
문학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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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4·3 제주는 살아 있다 제주도는 울고 있었다. 제주 4·3 제76주기 전야제가 열리는 제주도엔 낮부터 제법 쌀쌀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제주도는 외치고 있었다. 그날의 상처와 슬픔을 넘어 ‘제주도는 살아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4·3 전야제 <디아스포라, 사삼을 말하다>는 4·3을 대표하는 미적 형식의 가능성을 예감하게 하는 무대였다. 상징이 없는 기억투쟁이란 오래 가지 못한다. <기억·서사>(2000)의 저자 오카 마리가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사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그런 의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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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향노의 자화상 “ㄱ ㄴ ㄷ/ ㅏ ㅑ ㅓ ㅕ/ 처음 보는 글자/ 가 갸 거 겨/ 가지/ 고구마/ 글자 겨우 아니/ 하하 호호/ 로 료 브 비/ 글자가 비료지.” 19세에 충북 괴산 산골에 시집와서 평생 농사일을 해온 78세의 안대순 할머니가 쓴 글이다. 추영자 할머니는 괴산에 시집오던 날의 감회를 “앞에도 산 뒤에도 산/ 산만 보여/ 도망도 못 가네”라고 적었다. 진달래반 정희 할머니는 “엄마 산소에 있는 열매를 먹으면/ 젖맛이 났다”고 회상한다. 한때 빛나는 이팔청춘이었던 할머니들은 이제 괴산두레학교에서 벗들과 함께 한글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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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삶은 찰나의 것 문화적 보릿고개를 맞아 몇편의 영화를 관람했다. 민환기 감독의 다큐영화 <길 위에 김대중>(2024)을 보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를 향한 꺾이지 않는 저항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80년 5·18 이후 옥중의 김대중에게 당시 안기부가 미국행을 회유하는 희귀 영상자료 등이 퍽 인상적이었다. 영국 켄 로치 감독의 <나의 올드 오크>(2024)를 보며 누군가에게 ‘곁’을 내준다는 일이 생각 외로 힘이 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대, 저항, 용기’를 강조하는 80대 켄 로치 감독의 앵글에서 짙은 허무의 감정 같은 게 느껴지는 것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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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외로움은 질병이다 외로운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내 ‘곁’에서 내 ‘편’을 들어주고 나를 ‘품’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느는 사회는 위험사회의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초연결 시대를 살고 있지만, 오히려 할 일이 없고, 갈 곳이 없고, 말벗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고립의 시대>를 쓴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가 21세기를 ‘외로운 세기’라고 부른 것도 헛말은 아니다. 어느 콘퍼런스에서 만난 한 청년 활동가가 한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여러분이 살고 활동하는 지역의 위기나 위험 요인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30대 여성 청년은 “사회적으로 청년인구 유출과 지역소멸을 말해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동료의 부재입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이 말이야말로 외로움의 본질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외로움의 습격’(김만권) 앞에서 온몸으로 외로움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세기 초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신경쇠약은 20세기의 모두가 공유하는 병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제 외로움이야말로 21세기의 모두가 공유하는 사회적 질병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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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총력에서 촌력으로 12월은 행사가 잦다. 한 해를 결산하고 회고하는 자리는 의례적인 의례가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얼마 전 ‘고흥 사람, 삶’이라는 주제로 전남 고흥군에서 열린 사람책 토크는 자신이 사는 지역의 가치와 매력을 발견한 지역 주민들의 ‘긍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조용한 열정이 가득했고, 목소리는 명랑했다. 전남 고흥군은 2021년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89개 인구소멸 위험지역 시군 가운데서도 첫손에 꼽히는 지역이다. 하지만 행사에 참석한 주민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가졌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역 활동을 통해 자신이 사는 지역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각자의 사례들을 만들었다. 자신이 가진 매력자본이 무엇인지 알고 행동하는 지역 주민들이 있는 한, 우리는 작은 희망을 품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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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지역소멸은 ‘서사의 소멸’이다 얼마 전 지역의 미래를 생각하는 한 좌담회에 참석했다. 강원 고성군, 전남 담양군, 경북 구미시 등지에서 온 패널들과 두 시간 남짓 지역의 미래 또는 로컬의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패널들은 저마다 지역이 처한 사정과 여건은 조금씩 달랐지만, 올해보다 2024년이 더 어두울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점점 수렁에 빠져들고 있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 같은 3고(高) 시대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에서 시대의 ‘불안’을 공유하고 있었다. 지역의 미래가 더 어둡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지역을 바라보는 중앙정부의 시선과 정책 때문이다. 정부는 자금 배정 권한을 행사하며 2024년도 지방정부 교부금을 대폭 삭감했다. 지역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 지역 스스로 각자도생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각자도생은 결국 혼자 살다가 혼자 죽는 것을 뜻하는 ‘각자도사’가 될 가능성이 너무나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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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가을의 단상 청명한 가을이다. 이 가을에 밀도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시간마름병’ 환자가 된 것처럼 분주한 나날들을 보낸다. ‘삶은 밀도다’라고 생각하지만, 입만 열면 “바쁘다, 바빠!”를 외치면서 바쁨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이게 제대로 사는 것인가? 그래서일까. 시간마름병이란 말이 참 절묘하다. 사회학자 김영선이 처음 사용한 이 말은 19세기 아일랜드 대기근의 원인이 된 감자마름병에 빗대 시간에 쫓기며 사는 한국인들의 시간결핍 증상을 비유한 말이다. 시간결핍 증상을 앓는 삶이 밀도 있는 삶인가. 아닐 것이다. 밀도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의 인질 신세를 면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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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지방’은 없다 일 때문에 ‘지역’을 곧잘 가는 편이다. 나는 의식적으로 ‘지방’이라는 말 대신에 ‘지역’이라는 표현을 쓴다. 지방이라는 말이 서울중심주의가 철저히 내면화된 우리 사회에서 비하 또는 멸칭의 의미로 잘못 통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또한 하나의 지방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려는 현실을 보라. ‘시골’이나 ‘촌스럽다’라는 말 또한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시골이라는 말은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고, 촌스럽다는 말 또한 더 이상 쉽게 변하지 않는 한결같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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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박태순, 글쓰기의 최저낙원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소설가 박태순 선생(1942~2019)을 기리는 추모 행사는 글쓰기란 무엇이고,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자리였다. 얼마 전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는 유족을 비롯해 30여명의 선후배 작가들이 참석해 박태순 선생의 삶과 문학을 회고하며, 이 시대의 ‘산문정신’은 무엇인지 자문자답하는 시간이 됐다. ‘코로나 강점기’ 동안 숱한 한국문학의 거목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제대로 된 작별의 예를 갖추지 못했다. 시인 김지하(1941~2022), 소설가 조해일(1941~2020), 김성동(1947~2022), 조세희(1942~2022), 최일남(1932~2023), 수필가 한승헌(1934~2022), 평론가 김종철(1947~2020)…. 김수영의 시 ‘이 한국문학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광휘에 찬 신현대문학사의 시를 깨알 같은 글씨로 쓰고 싶”은 심정이었노라고 할 수 있을 법하다. 한 사회의 격(格)이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우리는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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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K문학은 없다 2016년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다. 2022년 소설가 정보라의 <저주토끼>가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2023년 소설가 천명관의 <고래>가 부커상 최종후보에 선정됐다. 최근 몇년 사이 한국문학장에서 일어난 의미 있는 ‘사건’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외국에서 수여하는 상을 좋아한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을 발표하는 10월이면 문학 담당 기자들은 분주하다. 한때는 유력한 수상 후보자로 지목된 어느 시인의 집 앞에는 문학 기자들이 이른바 ‘뻗치기’ 취재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노벨 문학상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예전만 못하지만 외국에서 수여하는 문학상은 일종의 공인(公認)처럼 인정받는다. 수상 여부를 떠나 한강·정보라·천명관 모두 한국문학장에서 개성 있는 목소리를 보유한 작가들이라는 점은 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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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이시무레 미치코를 읽는다 “미완성의 3번 국도에는 급격하게 늘어난 대형 트럭의 행렬이 굉음을 내며, 초라한 이 장례행렬을 찌부러뜨리기라도 하려는 듯 맹렬한 속도로 달려 나갔다. 그 바람에 사람들의 간소한 상복의 옷차림이나 가슴께에도, 위패에도, 한 상 차려진 공물에도 가차 없이 흙탕물이 튄다.” 이 장면은 일본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1927~2018)가 쓴 소설 <고해정토>(1969)의 한 대목이다. 1953년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 처음 보고된 세계 최초의 공해병인 미나마타병 환자 아라키 타츠오의 장례행렬을 묘사한 장면이다. 대형 트럭이 흙탕물을 튀기며 맹렬히 달려가는 상황이 눈앞에 그려진다. 이시무레 미치코는 미나마타병 발생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줄곧 희생자들의 넋을 위무하는 진혼(鎭魂)의 문학을 보여주었다. <고해정토: 나의 미나마타병> <신(神)들의 마을> <하늘의 물고기>(1972) 3부작은 뛰어난 기록문학이다. <고해정토>는 <슬픈 미나마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되었고, <신들의 마을> 또한 녹색평론사에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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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움켜쥔 손을 펼까 말까 김강의 장편소설 <그래스프 리플렉스>(2023)는 근(近)미래의 대한민국을 설정해 초고령화 시대의 풍속도를 나름의 시각으로 파헤친 작품이다. 그래스프 리플렉스(Grasp Reflex)라는 말은 신생아들이 손에 닿는 물체가 무엇이든 꽉 쥐고 놓지 않으려는 ‘반사 작용’을 뜻하는 의학 용어이다. 나이가 들어도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품은 작중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작중 올더앤베러 ‘최만식’ 회장과 국회의원 ‘김영권’이 그들이다. 87세의 최만식 회장은 노인을 위한 기업인 올더앤베러의 창업주이다. 그는 자동차가 낡으면 부품을 바꾸듯이, 심장·간·신장·폐 등을 인공장기로 교체하며 ‘인조인간’으로 개조한다. 그뿐만 아니다. 개인 헬스트레이너인 젊은 여성 안나를 ‘마이걸’로 삼아 임신시키는가 하면, 52세 아들 필립에게는 회사 경영권에 일절 손을 대지 못하게 한다. 팔십 가까운 국회의원 김영권도 전 국민 기본소득 법안을 부결시키고 ‘노인 기본소득’ 법안을 통과시킨 정계의 실력자다. 그는 의원 내각제를 꿈꾸며 영원한 권력을 바라지만, 아들 인호가 지역구 영산시에서 출마하는 것을 가로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