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은
중앙대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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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아버지의 해방일지’ 깊이 읽기 2013년 4월15일이었다. 정지아 소설가와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다음 작품으로 ‘3일 동안의 아버지의 장례식’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했다. 200장쯤 썼다가 다시 지우고, 또다시 쓰고를 네 번쯤 반복하고 있다고도 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10년 넘게 궁리하고 애써 쓴 역작이다. 힘을 들이면 무거워지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경쾌한 깊이’로 발랄하게 빛난다. 전직 빨치산이자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였던 ‘고상욱’의 장례식이 소설의 중심 서사다. 대학 시간강사인 딸 ‘고아리’가 문상객들을 맞으면서 ‘몰랐던 아버지의 삶’을 하나하나 발견해나간다는 이야기다. 고상욱은 1948년에 입산한 구빨치산이고, 1952년에 위장 자수한 사회주의자였다. 1974년 즈음에 다시 투옥되어 6년여 동안 감옥살이를 한 이력도 있다. 견고한 이데올로기 중심주의자처럼 보였던, 딸 아리의 인생을 망쳤던 아버지의 행적은 하루하루 장례를 치를수록 다채로운 모습으로 바뀐다. 미스터리적 기법을 활용하면서도, 훈훈한 민중주의적 정서를 보듬은 소설의 서사가 몰입도를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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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월드컵, 둥근 공에 깃든 눈물과 환희 월드컵은 국가대항전이다. 국가나 집단에 대한 유대감은 누구나 있는 성향이다. 소속감은 의도적으로 동원되었을 때 문제가 된다. 월드컵을 중계하는 영상은 국기, 전통의상, 민족 정체성 상징물을 자주 비춘다. 축제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의도된 연출이자, ‘승부와 경쟁’을 자극하기 위해 기획된 배치이다. 월드컵에서 국가 간 대결 때보다는 인간애의 공통성을 발견할 때 더 깊이 감동한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약소국가를 응원하는 진정 어린 마음에서 1954년의 한국 축구대표팀을 만난다. 축구를 통해 강렬한 존재감을 증명해내는 이변의 주역들에게서는 1966년 런던 월드컵의 북한 대표팀 모습이 그려진다. 국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의 대표선수들이 자국민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려는 투혼에서 2002년 한국대표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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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슬픈 영혼들의 작은 몸짓을 보았다 e메일을 열어보는 손끝이 떨렸다. “이태원 사고 희생자를 위한 교내 합동 분향소 설치를 안내하오니, 애도의 마음을 함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읽으면서, ‘아’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갑자기 눈이 뜨거워졌다. 참사의 희생자들이 바로 옆에 있었다는 실감이 밀려왔다. 중앙대 대학원생 3명이 희생되었다. 모두 유학생들이었다. 캠퍼스에서 한 번쯤은 마주쳤을지도 모를 예비 석사, 박사들이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후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반 뼘쯤 땅에서 떠 있는 상태로 생활하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 희생된 사람들의 사연들, 유족들의 절규와 통곡, 극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들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그런 나 자신이 낯설었다. 숱한 죽음의 이야기들을 현장과 거리를 둔 채 읽으며 슬퍼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죽음으로부터 떨어져 있음에 안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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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밥은 생명입니다, 하늘입니다 농사는 생명을 가꾸는 존귀한 일이다. 농민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가치가 훼손된다. 농사는 생명을 살리는 땅과 더불어 하는 일이다. 먹지 않고 일할 수는 없다. 농업 노동을 가벼이 여기면, 삶의 뿌리가 말라간다. 농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 1930년 10월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은 ‘살인적인 쌀값 하락’으로 난리가 났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쌀값이 최저가격으로 폭락했다. 1930년 10월27일자 조선일보는 당시 상황을 크게 보도했다. 현미 한 섬(160㎏) 가격이 5~6년 전에는 36~37원이었다. 1930년 10월에는 18원50전까지 떨어졌다. 폭락의 원인은 대풍년이었다. 이전까지는 쌀 수확량이 평균 1300만석이었는데, 1930년에는 1929만6000석이나 되었다. 조선총독부 농림성은 “떨어지는 쌀값 막을 대책이 없다”고 포기선언을 했다. 당시의 유일한 대책은 쌀값 ‘운용자금을 1억원가량 늘려, 남는 쌀을 사들이는 것’이었다고 한다. 큰 풍년이 축복이어야 했는데, 오히려 재앙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수탈 정책은 일본의 쌀값 안정이 최우선이었고, 조선의 쌀값 안정은 뒷전이었다. 제국주의는 약자에게 훨씬 가혹한 통치체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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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원전 전문가들이 결정할 ‘위험한 미래’ 2011년 3월11일, 최악의 시나리오가 이야기되었다. 반경 250㎞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피신한다. 10년, 20년, 30년 동안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도 없다. 그 수는 무려 5000만명이다. 갑작스럽게 자기가 살던 터전을 떠나 250㎞ 바깥으로 이동한다고 상상해 보자. 집을 버리고, 마을을 버리고, 직장을 버려야 한다.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전쟁도 가장 큰 비극이지만, 곧 끝나리라는 희망은 있다. 하지만 이 최악의 시나리오는 10~30년 동안 지속된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 때 일본 총리였던 간 나오토는 당시 상황을 무겁게 회고했다. 그는 일본 원자력위원회 위원장 곤도 슌스케가 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이야기했었다고 말했다. 만약 한국이라면 어떨까? 고리 원자력발전소를 중심으로 250㎞의 범위는 삼척, 평창, 충주, 세종, 군산, 강진에까지 미친다. 한국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암울하고 두려운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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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고쳐 쓴’ 김건희 박사논문 심사서 김명신(김건희)의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 ‘애니타’ 개발과 시장 적용을 중심으로>(2008)는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엄청난 논문’이다. 이 논문은 “IT 기반의 디지털 산업과 운세 콘텐츠”의 접맥을 시도했다는 측면에서 놀랍다. 이 논문이 시론적 연구인 만큼 학문적 체계, 형식과 내용, 연구윤리의 측면에서 보다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본 심사자는 다음 사안에 대한 청구자의 수정과 숙고를 요청한다. 첫째, ‘통상적 용인 범위’ 내에서 박사논문의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가이다. 인문사회 분야의 박사논문으로서는 예외적이고, 특별하게도 이 논문은 각주가 단 ‘30개’에 불과하다. 심사자는 30개만으로 이뤄진 박사학위 청구논문을 최초로 접했다. 학술지에 게재되는 일반논문도 최소 20~30개의 각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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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강철 강사, 당찬 강사, 슬픈 강사 동료연구자가 늦은 밤에 전화했다. 슬프고도 우울한 목소리였다. 그는 ‘다음 학기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여러 대학의 공개채용에 지원해 볼 생각이지만, 자신은 없다고도 했다. 그는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10여년이 넘게 글을 쓰고 강의했다. 대학 강의실에 있을 때, 활기가 넘치던 동료였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심각한 존재의 위기를 맞이한 이의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나의 위로는 그를 더 비통하게 하는 듯했다. 며칠 후에는 동료 여성 연구자에게 전화를 받았다. 직장이 있는 박사학위 소지자인데, 그간 맡아왔던 대학 강의에서 해촉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에게 대학 강의는 삶의 소중한 영역이었다. 더 이상 가르치지 못하게 되어 그의 마음에도 어둠이 깔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동료의 연락을 받고서야 내 주변의 대학 강사들에게 재앙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세상의 풍경을 다르게 살핀다. 위치가 생각을 바꾸고, 생각이 존재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나도 부끄럽게 자신의 위치에서만 대학 사회를 바라보기에 급급했다. 지난 6월, ‘대학 강사들의 대량 해촉 사태’가 3년 만에 다시 시나브로 벌어졌다. 약자인 대학 강사들이 목소리를 못 내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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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생명을 담는 ‘컵’에 대한 헌사 접시는 음식을 담기에 평평하지만, 컵은 음료를 따라야 하기에 움푹 패어 있다. ‘컵’ 안은 비어 있다. 비워진 만큼 담을 수 있다. 음식을 섭취하면서는 고개를 접시 쪽으로 수그린다. 음료를 마시면서는 컵을 입 쪽으로 기울인다. 음식은 숭배하면서 먹고, 음료는 맞이하듯 마신다. 평소에 음식을 귀하게 여기지만, 목이 마를 때야말로 더 간절한 마음으로 음료를 갈구한다. 컵은 그런 존재다. 지금은 ‘컵’이라고 부르지만, 예전에는 다르게 불렸다. 사발이기도 했고, 잔이기도 했으며, ‘고뿌’였다가 컵이 되었다. 명칭이 바뀌면서, 마시는 음료의 내용물도 조금씩 변했다. 사발에는 식수를 담았고, 잔에는 술을 따랐다. 일제강점기에는 맥주와 위스키를 ‘고뿌’에 따랐다. 지금은 커피와 같은 기호품이 컵에 더 많이 담긴다. 가정에는 세척해서 사용하는 컵이 있지만, 집 바깥으로 나오면 일회용컵 사용이 일상화되었다. 생명을 유지하는 음료를 담는 컵이 일회용으로 바뀌었다. 일회용컵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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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대통령 정치언어와 민중 삶의 변화 정치의 언어는 희망을 약속하고, 종교의 언어는 구원을 계시한다. 정치는 시간을 단절시키면서 ‘새것’ ‘새 희망’을 말한다. ‘좋은 옛것’과 ‘나쁜 새것’은 두 갈래의 정치적 선택이기도 하다. 1948년 7월24일의 일이다.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취임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대한민국도 극적으로 건국이 이뤄졌다. 이승만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국민을 “새로운 백성”으로 호명했다. ‘백성’은 일반 국민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계급사회에서 사대부가 평민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오늘날 백성은 낯선 위계의 언어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에 등장하는 ‘나’와 ‘본인’도 마찬가지다. 권위주의 정부는 대통령과 국가를 동일시했고, 통치권자로서의 절대권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나’는 곧 짐(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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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우리에겐 차별할 권리가 없다 e메일을 받은 날은 2018년 8월30일이었다. 다가오는 새 학기 개강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던 때였다.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전문연구원으로부터 온 것이었기에 당황했다. 2학기에 담당하게 된 4학년 전공수업에 들어올 한 학생에 대한 안내 사항이 담겨 있었다. 주요 내용은 ‘하희은(가명) 학생은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 장애학생지원센터에는 전문속기사를 배치했다. 속기사가 실시간으로 강의내용을 타이핑한다. 속기록은 해당 학생에게 학습을 위한 목적으로 제공되며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한다. 강의실의 지정 좌석에서 들으며, 학생의 발음이 어색할 수 있으니 세심한 이해를 부탁한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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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집값 안정이 삶의 안전이다 한국 아파트의 역사는 1930년 서울 회현동에 세워진 ‘미쿠니(三國) 아파트’에서 시작했다. 이 최초의 모더니즘 건축물은 3층 규모였으며, 경성 미쿠니 상사 일본인 직원들의 숙소였다. 일반인이 입주한 최초의 아파트는 1932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세워진 ‘토요다(豊田) 아파트’가 꼽힌다. 아파트는 일제강점기에 근대도시 주거문화로 한반도에 이입되었다. 당시에는 아파트가 한국 도시의 지배적인 주거 형태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층층이 쌓아올린 건축물에서, 마당도 없이 사는 것에 대해 조선인들은 낯설어했다. 한국전쟁 이후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 새로운 빌딩들이 자리잡았다. 1958년 중앙산업이 지은 종암아파트도 그렇게 들어섰다. 1962년 주택공사에서 6층 규모의 마포 아파트를 건설했고, 1971년에는 여의도 시범아파트 24개동이 완공되면서 아파트 살림살이가 보편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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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협상하는 영리한 대중 서울 5511번 시내버스가 상도동의 고갯길을 넘어섰을 때였다. 정지신호로 버스가 멈춰 섰다. 의도하지 않게 바깥 풍경에 시선을 두게 되었다. 차창 밖의 벽에는 ‘선거벽보’가 부착되어 있었다. 60대로 보이는 한 분이 벽보 앞을 지나다가 유독 두 군데에서 멈춰 선 장면이 눈에 띄었다. 더 자세히 살펴보니, 그분이 멈춰 선 포스터는 ‘바꾸고 싶다면 사회주의’라고 쓰인 것과 ‘자유 우파 구국 대통령’이라 적힌 것이었다. 순간 ‘아, 우리 사회도 정치적 열망이 폭넓게 표현되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작게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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