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이 삶의 안전이다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한국 아파트의 역사는 1930년 서울 회현동에 세워진 ‘미쿠니(三國) 아파트’에서 시작했다. 이 최초의 모더니즘 건축물은 3층 규모였으며, 경성 미쿠니 상사 일본인 직원들의 숙소였다. 일반인이 입주한 최초의 아파트는 1932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세워진 ‘토요다(豊田) 아파트’가 꼽힌다. 아파트는 일제강점기에 근대도시 주거문화로 한반도에 이입되었다. 당시에는 아파트가 한국 도시의 지배적인 주거 형태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층층이 쌓아올린 건축물에서, 마당도 없이 사는 것에 대해 조선인들은 낯설어했다. 한국전쟁 이후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 새로운 빌딩들이 자리잡았다. 1958년 중앙산업이 지은 종암아파트도 그렇게 들어섰다. 1962년 주택공사에서 6층 규모의 마포 아파트를 건설했고, 1971년에는 여의도 시범아파트 24개동이 완공되면서 아파트 살림살이가 보편화되었다.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낯선 공간인 아파트로 인한 문화적 충격도 만만치 않았다. 1970년대 소설가들은 아파트 공간을 포착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보였다. 대표작이 최인호의 <타인의 방>(1971), 박완서의 <닮은 방들>(1974), 이동하의 <홍소>(1977) 등이다. 그중 박완서의 소설은 아파트의 새로운 생활양식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닮은 방들>은 중산계층의 감수성을 통해 획일화되어 가는 삶을 비판했고, 개성적 삶에 대한 갈망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낯선 것들은 일상으로 들어오는 순간 무심하게 바라보는 대상이 된다. 아파트도 사람이 건축했는데, 아파트가 사람의 마음을 빚어냈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자산 증식의 중요한 수단’이자,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성공신화’의 의지처가 되었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부동산 이익 공동체’의 선택이 무서운 힘을 발휘했다.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서울 득표차 31만766표가 한국 정치사의 분기점을 만들었다. 두 후보의 전국 득표차는 24만7077표였다. 서울의 ‘부동산 민심’이 놀랄 만한 결정권을 행사했다. 한편에서는 집값 폭등에 분노해 의사표현을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부동산세 폭탄에 항의해 투표를 했다. 두 후보의 지지 지역과 서울의 집값 지도와 일치한다는 논평도 나왔다. 무주택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집값 하락을 바라며 이재명 후보에게, 고급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는 집값 상승에 기대를 걸고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분석도 있다.

냉정하게 성찰해보자. 코로나19 유행으로 전 세계 부동산이 요동쳤다. 팬데믹 초기에는 부동산 가격 하락을 우려했었다. 실업률의 증가, 자영업자의 위기, 주택담보대출 상환 압박이 집값 하락을 부추길 것으로 보았다. 세계 각국 정부는 주택담보대출금 상환을 연기하고, 금리를 인하하고, 세금을 낮추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는 주택실질가격상승률이 12~15%에 이르는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이어졌다. 전지구적인 감염병 유행은 비대면 업무와 교육을 일상화해 집에 대한 애착을 더 강화하도록 이끌기도 했다. 평상시보다는 소비가 덜 이뤄짐으로써 여유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는 경향도 뚜렷했다. 한국사회에서는 ‘아파트를 자산 증식 투자 수단’으로 여기는 부동산 학습효과가 있었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부정적 효과를 불러와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예외적으로 높이 치솟는 상황이 발생했다.

새로 출범할 윤석열 정부의 핵심과제는 집값을 잡는 것이어야 한다. 비정상적인 집값 상승은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세대 간의 갈등도 더욱 부추긴다. 열심히 노동하여 버는 돈의 가치를 무력화시켜, 보통사람들에게 삶의 윤리가 뿌리부터 무너져 내리는 내상을 입힌다. 땅과 집으로 돈을 벌겠다는 욕망을 낙후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투자하려고 ‘사는(buy)’ 집이 아니라, 편안하게 ‘사는(live)’ 집을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 집값 안정이야말로, 삶의 안전이다.

한국사회에 아파트가 처음 건설된 후 90여년이 흘렀다. 아파트는 ‘자본을 향한 뜨거운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 도시공간에 발생한 과거의 누적된 사건들은 현재의 삶을 구성하고 있지만, 미래까지 규정하지는 않는다. 도시공간에서 아파트가 어쩔 수 없는 지배적 주거 형태라고 하더라도, 도시 바깥에서는 주거 양식을 다원화하는 더 많은 기획들이 필요하다. 수도권 집중을 장기적으로 분산하여, 지역 자치와 분권을 통해 아파트 열풍을 냉각시켜야 한다. 다른 삶의 방식은 미래의 불확실성만큼이나 많다. 과거를 반복하는 미래가 아닌,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좋은 해결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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