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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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아직도 왕으로 살고 싶나요? 손바닥에 ‘王’(왕)이란 글자를 새기면서까지 왕이 되길 원했던 그는 국민주권 국가의 왕이 되었다. 대통령 국정 지지도 부정평가가 60% 수치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협 없는 제왕의 길을 고집한다. 민심을 읽는 것이 정치이고, 배반한 민심엔 하늘도 군주를 버린다고 맹자는 말한다. 권력의 정점에 섰던 조선의 왕도 독단의 정치를 고집하진 않았다. 왕과 신하의 적절한 대립과 갈등, 협력과 경쟁을 통해 조선은 500년 이상을 이어올 수 있었다. 화합과 다독거림이 없는 화난 얼굴. 시시때때로 어퍼컷을 날리는 대통령의 모습은 보기 민망하다. 민심을 어루만지며, 국민 대통합을 이뤄야 하는 책무는 어디 가고, 대통령 입에서 나온 “가짜뉴스” “날조” “허위선동” 등의 거친 언어가 대한민국 사회를 갈라치고, 양극화시킨다. 이태원 참사 현장을 둘러보는 자리에선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라는 한마디로 희생자 가족과 슬픔에 젖은 국민의 가슴을 후벼판다. 지금까지 누구 하나 참사의 책임을 사과하는 정부 관료가 없어,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외치는, 눈밭 언 땅에서 벌이는 유가족의 오체투지가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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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국가연구개발비는 누가 나눠먹고, 갈라먹었나 정부는 2024년도 국가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타당성과 근거 없는 이유가 논란의 불을 지폈다. 시작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언급하면서다. 잘못된 관행을 없애고자 했다면 나눠먹고, 갈라먹는 실체를 지목했어야 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2011년에 설립되어, 2개의 연구소와 외부연구단 9개를 포함한, 총 31개 연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 인력 400명을 포함해 860여명(2020년)이 근무하는데, 2020년 예산은 5300억원 내외였다. IBS는 2019년 예산의 90%인 4300억원을 연구비로 썼다. 연구원 1인당 10억원이 넘는 연구비를 집행한 셈이다. 한국연구재단의 연간 연구비인 우수신진연구비(1억5000만원), 한우물파기기초연구(2억원), 중견연구(4억원), 리더연구(8억원)와 비교해 보면 엄청난 숫자임을 알 수 있다. 이 연구비 금액으로 한국의 리더급 연구자 530여명을 지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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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박정희를 왜 또 부를까 산업화와 민주주의가 도마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박정희 추모식에 참석해 그가 이룬 “산업화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튼튼한 기반이 되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질문. 산업화와 고도성장의 주역은 박정희였나? 일찍이 손호철은 동아시아 네 마리 용의 고도성장은 박정희 등 개발 독재 지도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가를 키우게 된 농지개혁(한국과 대만) 혹은 지주계급의 부재(홍콩과 싱가포르), 그리고 자본주의 우월성을 보이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지원이 핵심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근호 역시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를 통해 미국의 자본주의 ‘쇼윈도전략’이 한국 경제성장의 원인이라고 언급한다. 한국의 베트남 파병을 기회로 긴밀한 관계가 된 미국은 공업화 경제개발 모델로 한국을 선택한다. 모델이 된 한국의 성공을 위해 미국 주도의 ‘바이 코리아 정책’은 한국을 수출지향형 공업화 국가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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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교수, 지식 장사꾼인가 침묵하는 대학이 대다수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투기에 8개국 15개 도시에서 215만명이 반대 서명하고 대응을 촉구할 때도 한국의 대학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누군가는 한국 사회가 ‘죽은 지식인의 사회’라 한다. 지식인은 누구이며, 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장 폴 사르트르를 다시 불러본다. 그가 본 지식인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중간자적 위치다. 지배계급은 지배와 통제를 위해 효율적 수단을 개발할 중간자의 지식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국가 권력에 봉사하고, 체제 옹호자의 역할에 충실한 이들이 즐비한 곳이 교수 사회다. 지식을 무기 삼는 그들은 특권 의식이 강하고, 지배계급에 가깝다. 교수들은 왜 지식인 위치에서 멀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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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대통령의 오답 노트 지난주, 두 명의 프레지던트가 던지는 메시지는 사뭇 달랐다. 이들이 보내는 메시지는 소속 집단의 성숙도를 판단하는 가늠자이며,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미국 코넬대 프레지던트 폴락 총장은 학년 시작 메시지를 통해 “코넬에서의 표현의 자유”라는 주제를 갖고 한 해 동안 공연·전시회·강연 등 많은 행사가 열릴 것임을 알리고, 구성원의 참여를 당부했다. 표현의 자유는 ‘거의 모든 형태로서의 자유의 모태이자 필수조건’이다. 표현의 자유는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고, 전파하는 핵심 요소이며, 경청과 토론이란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킨다. 대학에서 이런 자유가 공격받고 있음을 그는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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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한국의 과학기술 혁신 정책, 이대로 좋은가 민간 및 공공 연구·개발비 투자 선도 국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불균형의 사회. 이를 진단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혁신 정책에 관한 OECD 리뷰 코리아 2023’이 지난달 출간됐다. 올해는 대한민국 ‘제5차 과학기술 기본계획(2023~2027)’이 시작하는 해로, 이 검토 보고서는 한국의 과학기술혁신(STI) 정책을 둘러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평가자들은 먼저 정부가 그리는 STI 정책의 비전이 부처 간 ‘따로국밥’임을 꼬집는다. 일례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채택한 2045년 과학기술 미래전략이 기획재정부의 중장기 경제사회 정책 로드맵과 엇박자임을 지적한다. 정부 부처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수레바퀴를 함께 굴리는 정책 수립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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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용산 정치의 카르텔 2023년의 대한민국은 마치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노태우 정권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통령실 비서관 5명을 중앙 부처 차관으로 보내 범죄와의 전쟁 선발대 인사를 마쳤다. 이어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신임 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반카르텔 정부”임을 자처하고 이권 카르텔과 가차 없이 싸워 달라고 당부했다. 이렇다 할 국정철학이 보이지 않던 정부의 운영 기조가 ‘이권 카르텔의 해체’라는 공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검사의 시각에서 본 범죄자와 피의자 인식은 공직사회의 기득권 카르텔을 잘 주시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에 응답하듯, 지난 9일 대통령실 국정과제비서관 출신인 임상준 환경부 차관 취임 후 신설한 레드팀 첫 회의에서 반드시 혁파해야 할 대상으로 이권 카르텔을 꼽았다. 문제는 이권 카르텔을 규정하는 인식이다. 윤석열 정부의 자유는 규제산업과 신산업 등 시장과 기업의 자유에만 몰두했지, 사회적 약자의 자유는 철저히 외면해 왔다. 건설노조, 시민단체, 민주노총 등 자신들과 이념적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는 세력은 철저하게 짓밟을, 불손한 이권 카르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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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붕 떠버린 복지국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이 민주화라는 날개를 장착할 때만 해도 우리는 복지가 다른 날개 한 축이 돼 행복한 대한민국을 띄울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민주항쟁 30여년,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망은 옅어지고, 부의 대물림으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은 가속화하고 있다. 국민복지에 대한 책임이 있는 국가는 복지정책이 모든 구성원의 건강권, 안락한 환경권, 삶의 행복권 추구를 목표로 해야 한다. 지난 5월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사회보장 전략회의’가 열렸다. 윤 대통령은 현금 복지와 관련해 보편적 대신 선별 복지를 언급했다. 사회보장 서비스의 경쟁을 통한 시장화·산업화를 강조했다. 범위를 넘어선 사회보장은 사회를 갉아먹는다는 그의 생각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의 사회보장만을 강조했다. 이날 회의 내용이 2024∼2028년에 걸친 ‘제3차 사회보장기본계획’의 기본 틀이 될 것이라 하니, 이 정부의 인식에 우려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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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잠들지 못하는 광주여 5·18 광주항쟁(민주화운동)이 43주년을 맞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기념사를 통해 “5·18을 책임 있게 계승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후손과 나라의 번영을 위한 출발”이라고 언급했다. 그런데도 ‘5·18정신의 헌법전문 수록’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영국의 대헌장(1215), 미국의 독립선언문(1776),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1789)에 이어 5·18 기록물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인권·민주·평화를 갈망하는 보편적 가치가 광주의 5·18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5·18은 1980년 5월18~27일 대한민국 광주에서 일어난 열흘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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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아, 혁명이여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이영도 시인의 ‘진달래’에 어김없이 4월은 온다. 1980년대 대학가의 4월은 늘 이 노래로 물들었다. 1960년 4월19일. 남한에서 일어난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에서 일어난 최초의 시민혁명이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국가보훈처가 앞으로 3년간 460억원의 예산을 들여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할 계획이라 한다. 대한민국의 초대∼3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국가보훈처 지원사업 대상으로 삼을 만한 국가유공자인가? 논란은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이승만 1기 정부(1948∼1952)는 광복 후 친일 청산이 주요한 시기였다. 일제강점기 때 자행된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1949년 1월에 업무를 시작했으나, 그해 6월 이승만은 반민특위에 경찰력을 투입하고, 10월에는 반민특위와 법안을 모두 폐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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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당신은 왜 대통령이 돼야 하나요? 2021년 12월5일.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김은혜 대변인은 정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며 윤석열 후보의 소통을 강조한 민주주의 소신을 역설한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윤 후보를 향해 “혼자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통솔력”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2022년 3월20일. 임기 시작 50일을 남기고,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고 밝힌다. 군의 심장부가 부랴부랴 이삿짐을 꾸렸고, 측근들의 속도조절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불통과 독주, 독선 정치의 첫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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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글로벌 대학, 글로컬 대학…뭔 소리니 수도권대학은 살아남는다. 지역 거점 국립대 몇몇을 제외한 많은 지방 대학은 오래전부터 재정 적자에 시달려왔다. 등록금에 목을 매는 영세한 지방 사립대는 등록금 동결이 늘 눈엣가시였고, 학령인구 감소는 장차 이들이 쓸 독박이 될 것이다. 지역 대학의 몰락이 지방 소멸을 가속한다는 말이 언론을 가득 채웠다. 급기야 돈줄을 쥔 교육부가 2027년까지 비수도권대학 30곳을 글로컬 대학으로 선정해 대학당 5년에 걸쳐 1000억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전체 426개 고등교육기관 중 수도권과 거점 국립대를 제외하고 30곳만 살리겠다는 뜻과 별반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