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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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정치개혁에 필요한 건 선거제도만이 아니다 지난주에는 여러 지역에서 시민들을 만났다. 기후위기시대 시민의 역할을 논하는 자리부터 시민권, 청소년 정치학교까지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제는 각기 달랐지만 토론과 뒤풀이 시간에는 어김없이 현실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감과 무기력감이 토로됐다. 정치의 변화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시민들은 지쳐가고 있다. 이미 법정시한 넘긴 선거구 획정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는 선거일 13개월 전에 선거구획정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2022년 8월부터 국회에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돼 활동했지만 이미 법정시한을 넘겼다. 이번이 특별한 경우도 아니다. 지난 20대·21대 총선 때도 국회가 법정기한을 지키지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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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정말 쌀이 문제인가 지난주에 언제까지 밥심으로 살 거냐고 묻는 다른 신문의 칼럼을 읽었다. 그 칼럼은 논에서 메탄가스가 발생하고 그 양이 항공산업에 맞먹으니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쌀 생산을 줄이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쌀 소비량이 줄어드니 생산량도 줄어야 하는데 그 조절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수매해서 쌀 생산이 줄지 않는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쌀은 언제나 넉넉할 거라는 착각 기후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걱정하는 듯한 느낌을 그 칼럼에서 받았지만 일단 쌀에 집중해 보자. 마치 쌀이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처럼 얘기되지만 2021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농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3.1%이고, 농업 부문 중 벼농사 비중이 30% 정도이다. 그러니 벼농사가 전체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정도로 볼 수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산업 부문은 에너지로 전체의 86.9%를 차지한다. 정말 기후변화가 걱정되었다면 에너지 부문의 감축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보다는 쌀과 농민이 만만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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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꿀벌은 정말 실종된 걸까 작년부터 꿀벌 실종에 관한 기사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작년 3월에는 꿀벌이 70억마리 이상 사라졌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고, 올해에도 꿀벌 실종이라는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하면 매우 많은 양을 볼 수 있다. 작년에 이어 양봉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기사들도 많다. 꿀벌이 줄어도 큰 피해 없다는 정부 우리 동네에서도 양봉농가의 72%가 피해를 입었고, 개체수가 절반 정도로 줄었다는 농가도 나왔다. 꿀벌의 수가 줄어들면서 과채류를 재배하는 농가들이 꽃가루를 매개할 방법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월20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양봉 꿀벌 개체 감소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나, 정부는 피해의 조기 회복과 재발 방지에 적극 노력할 계획”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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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무능을 적대로 감춰온 정치 이태원 참사에서 형제자매를 잃은 유가족 10인의 공동호소문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당황스럽게도 그 호소문은 소로의 시민불복종에 실린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운동에서나 나올 법한 말을 사고에 희생당한 유가족의 입에서 들으니 놀라웠다. 어쩌다 유가족이 불복종을 말하게 되었을까? 유가족의 의도는 일방적으로 애도와 망각을 강요하는 정부에 맞서겠다는 것이겠지만 내 느낌으로는 더 깊은 부분을 건드렸다. 누가 시민사회를 파국으로 몰아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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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법은 공정한가 금강유역에 위치한 충청북도 옥천군에는 상수도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면적이 전체 면적의 83.8%나 된다. 이렇게 상수도보전지역으로 선정된 지역은 상수도 확보와 수질 개선을 위해 개발이 금지되어 주민들이 재산권을 마음대로 행사하지 못한다. 이를 규정한 법이 ‘금강수계 물관리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다. 의아한 것은 주민의 권리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법이 보상이 아니라 주민지원이란 표현을 쓴다는 점이다. 이 법에서 보상이란 단어는 토지를 매수하는 경우에만 사용되고 일상적인 침해에 대한 보상은 지원으로 표현된다. 만약 서울에서 이런 재산권 침해가 일어났다면 보상이란 말이 반드시 등장했을 것이지만 강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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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거꾸로 가는 한국의 공공교통정책 10년 전 지방으로 이주를 준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운전면허를 딸 것을 권했다. 강연이나 교육 때문에 여러 곳을 많이 돌아다니는 편인데 수도권이나 광역시를 벗어나면 어디건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태계를 생각해서 나라도 자가용을 운전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잠깐 흔들리긴 했지만 좀 둘러 가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자고 다짐했다. 이주를 하니 지역 내를 다니는 버스가 있지만 노선이 적고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다녔다. 시외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해서 자가용으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가 대중교통으로는 보통 두세 시간이 걸렸다. 이것도 환승 시간이 맞는 운 좋은 경우의 이야기이고 운이 나쁘면 네다섯 시간도 각오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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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전임자 흔적 지우기와 생각하지 않는 관료제 윤석열 정부는 임기를 시작하며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 사는 국민의 나라’를 국정운영 비전으로 내세웠는데, 용산 집무실 이전과 전임 정부의 뒤를 캐는 데만 힘을 쏟고 있다. 집권 초반임에도 고정 지지층 30%에 머무는 지지율은 시민들과 공유하는 비전이 없음을 뜻한다. 행정 혼란은 누구의 책임인가 안타깝게도 동행·매력 특별시를 내세운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보도 비슷하다. 보궐선거에 당선되어 임기를 먼저 시작했음에도 새로운 비전보다는 전임 시장의 핵심사업들을 없애고 시민단체들을 비난하느라 초반의 에너지를 다 쓰고 있다. 서울시는 오랫동안 운영되어온 마을공동체나 도시혁신과 관련된 사업들을 다른 대안 없이 종료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관련 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갑작스레 직장을 잃었고, 이런저런 사업에 참여하던 주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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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민주주의의 자리 얼마 전 동네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했다.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왔나 둘러보는데 군수가 눈에 들어왔다. 오, 군수도 토론회에 참여하는구나,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고 토론회가 시작할 무렵 군수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자리를 뜨는 군수 때문에 참석자들은 미리 사진을 찍으러 우르르 무대 앞으로 나와야 했다. 무슨 바쁜 일정이 있었나 싶어 군청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찾아보니 토론회 참석은 공식 일정이 아니었고 다음 일정은 몇 시간 뒤였다. 식량위기 시대에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할 방법을 찾는 중요한 토론회가 왜 공식일정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공식일정이 아님에도 참석한 것을 감사해야 할까, 아니면 뒷일정이 나중인데도 먼저 자리를 뜬 걸 질타해야 할까. 왜 우리는 이런 풍경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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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공무원은 그곳에 살지 않는다 지난달 읍에서 좀 떨어진 면에서 민주주의에 관해 강연을 했다. 같은 군이지만 차로 30분 이상 가야 하는 곳이라 평소에는 왕래가 없던 지역이었다. 그곳에는 교육이주를 한 분들이 마을의 이런저런 일을 도맡으며 활동하고 계셨다. 조금은 심심한 민주주의 이야기를 하고 같이 식사를 했다. 행사를 준비한 쪽이 김밥과 샌드위치를 준비했더니 다들 너무 좋아하셨다. 면에는 김밥집이 없고 빵집도 없기 때문이다. 인구가 빠지는 면에는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케이크라도 하나 사려면 읍내로 차를 운전해 나와야 한다. 약국이나 병원이 없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배달앱이나 지도로 10분 내에 먹을거리나 편의시설을 찾는 도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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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역대급의 정치 힌남노라 불린 초대형 태풍이 지나갔다. 큰 태풍이 아니라도 한창 낟알이 차는 시기여서 벼가 쓰러지면 어쩌나, 수확기가 다 된 과일이 떨어지면 어쩌나, 농부들의 걱정이 컸다. 바람이 잦아든 뒤 읍내를 돌아보니 비가 많이 내리면 넘치던 하천도 큰 탈 없고 무너진 곳도 없었다. 나무가 쓰러져 도로를 막은 곳이 있다는 소식도 있었으나 며칠 동안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피해가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태풍의 경로에 있던 남부지방을 생각하면 그 피해가 적었다고 보기 어렵다. 피해의 규모가 다를 뿐 강한 바람과 폭우를 동반한 태풍은 심각한 자연재해이고, 그동안 한국에 가장 큰 피해를 입혀온 자연재난도 호우와 태풍이다. 가을태풍이란 말처럼 태풍이 오는 시기가 늦춰지는 것도 수확기 농작물에 피해를 크게 준다. 피해가 적은 태풍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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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이득은 누가 챙기나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인구가 줄어드는 비수도권의 지방자치단체가 생활인구와 관계인구(이주하지는 않았지만 지역을 방문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를 늘릴 계획을 자율적으로 세우도록 유도하기 위한 기금이다. 지난 7월 행정안전부는 전국 122개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받기 위한 투자계획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매년 1조원 규모로 편성되는 기금이라 n분의 1로 쪼개면 그리 큰 금액은 아님에도 많은 지자체들이 지원했다. 내가 사는 지역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되어 사업계획을 제출했다. 이런 지원이 지역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길 바라지만 큰 기대는 없다. 관계인구라는 말은 뭔가 어정쩡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의 태도도 애매하다. 이번에 제출된 사업들은 그동안 지자체들이 추진해온 사업들과 얼마나 다를까? 행안부에 따르면 제출된 투자계획들이 문화·관광(28%), 산업·일자리(23%), 주거(20%) 등에 맞춰졌다고 하니 기대감이 잘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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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권력과 불화하지 않는 풀뿌리? 칼럼 코너의 제목처럼 나는 2000년대 초반부터 풀뿌리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외쳐 왔다. 식민지와 군사독재를 거친 한국 현대사는 엘리트 중심, 행정 중심의 권력구조를 만들었고, 1997년의 국가부도위기는 분배구조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경쟁과 능력주의의 압박을 받으며 사회의 관계망도 끊어져 변화를 모색하기도 쉽지 않았다. 풀뿌리는 기득권 중심의 사회구조를 무너뜨리고 주요한 결정과정에서 배제되어온 사람들이 경험과 역량을 쌓고 나누며 함께 사회의 주체로 나서자는 전략이었다. 마을이나 공동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기였지만, 당시에도 풀뿌리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은 강했다. 민주주의라는 말조차 거북해하던 행정이 풀뿌리를 언급하기는 어려웠고, 시민들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무슨 수로 엘리트에 맞서느냐며 회의감을 드러냈다. 시민운동의 위기가 얘기되면서 풀뿌리란 말이 잠깐 등장하긴 했으나 선택과 집중이라는 노선에 금방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