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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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법괴’와 저항권 느닷없던 비상계엄은 곧바로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과 신속하게 국회로 모인 의원들 덕에 곧바로 해제되었다. 뉴스 시청과 집회의 피로에 시달리며 기다리던 탄핵소추안도 어렵사리 가결되었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마음이 좀 편해져야 하는데,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공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 조마조마하다. 심지어 윤석열과 그 일당은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했고 지금도 정부는 위태로워 보인다. 이번 내란은 법을 무시하지 않고 법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 윤석열은 일단 반대파를 체포해서 조사하다보면 뭐라도 나올 거라는, 법은 해석의 여지가 있으니 나중에 절차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면 된다는 검사 시절의 습관을 따랐을 것이다. 외부의 적극적인 저항과 내부의 소극적인 태업이 없었다면 그들의 시도는 성공하고 내란은 합법화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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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사회통념과 알권리 지난 10월29일 정부는 부당하거나 사회통념상 과도한 정보공개청구를 받지 않을 기준을 마련해 담당자의 업무부담을 줄이고 행정력 낭비를 막겠다는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러자 시민단체들은 이번 개정안이 시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악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시민단체가 정부의 피로도를 무시하고 억지 주장을 펼치는 걸까? 세월호 유가족인 박종대씨는 국회와 대한변협, 언론, 시민단체 등의 도움을 받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4·16 세월호 사건 기록연구>라는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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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정부가 허락하는 시민활동? 11월이 다가오며 시민단체들의 후원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회원으로 회비를 내는 단체도 있고, 외부활동을 하면서 만난 단체들의 초대도 있다. 매년 이맘때면 단체들은 한 해 적자를 메우기 위해 또는 내년 사업을 위해 후원금을 모으는 행사를 연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평화처럼 다뤄야 할 사안들은 계속 늘어나는데 후원금은 줄고 정부 지원금도 축소되어 단체들의 형편이 나빠지고 있다. 위축되는 시민단체의 활동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시민단체들은 비정부기구(NGO)의 붐을 타고 입법, 행정, 사법 3부의 뒤를 잇는 ‘제4부’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보다 시민단체의 수는 적었지만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 여론에 힘입어 시민단체는 정치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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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식품사막’은 올바른 표현일까 몇달 전부터 언론에서 ‘식품사막(food desert)’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 말은 가게가 문을 닫아 생선이나 두부, 계란 같은 신선식품을 구하기 어려운 한국 농어촌의 현실을 묘사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통계청의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을 기준으로 전국의 행정리 중 73.5%에 식품 소매점이 없다. 시장이 멀고 교통도 불편해 농촌의 밥상이 척박해지고, 관광지가 아닌 시골 마을에는 식당조차 없어 집밖에서 끼니를 때우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7월 말 농림축산식품부는 식품사막의 해결책으로 생활필수품과 농산물을 실은 개조트럭을 농협과 함께 운영한다는 ‘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농촌이라는 사막에 이동식 오아시스를 만들어주겠다는 자비로운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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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누구를 위하여 경보는 울리나 지난 목요일 몇년 만에 서울 광화문에 들렀다. 민방위훈련이 시작될 쯤에 도착해서 지하철 안에서부터 공습경보방송이 들렸다. 방송의 목소리는 사뭇 심각했지만 그걸 듣는 시민들의 표정은 무심했고, 사람들 이동을 통제하던 이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20분간의 훈련이 끝난 뒤 시민과 공무원 모두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지상으로 나가 둘러본 광화문의 모습도 비슷했다. 서명을 받고 기자회견을 열던 이순신 장군 동상 근처는 분수대로 바뀌었고, 그 공간은 광장이란 의미를 잃어버린 듯했다. 역사는 지워지고 사이렌 소리가 귀에 남으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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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무엇이 악성민원을 만드나 얼마 전 많은 비에 멀지 않은 곳에서 인명피해가 났다. 한 남성이 집 주변을 살피러 나갔다가 옹벽이 무너지며 쏟아지는 토사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그 사고가 난 날에도, 그 이튿날에도 행정안전부, 산림청, 한국수자원공사, 충북도청, 군청 등에서 수십건의 문자가 새벽에 쏟아졌지만 쓸모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하천변, 급경사지, 산과 인접한 주택 등은 위험하니 접근하지 말고 대피하라는데, 한밤중이나 새벽에 문자를 받고 어디로, 어떻게, 그리고 얼마 동안이나 대피하라는 걸까? 비슷하게 반복되는 메시지를 받고 알아서 대응할 시민들은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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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왜 행정개혁은 얘기되지 않을까 지난달 전동킥보드를 함께 타던 청소년 두 명이 차량과 충돌해 한 명이 목숨을 잃고 한 명이 다쳤다. 늦은 시간 친구와 킥보드를 타고 이동하다 벌어진 불행한 사고였다. 사고가 나자 군청과 학교는 뒤늦게 안전 캠페인을 벌이고 경찰은 단속을 강화했지만 청소년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 차가운 반응에는 이유가 있다. 규정이 없어 발생한 사고일까? 몇년 전부터 차도와 인도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방치되던 전동킥보드는 마땅한 교통수단을 찾지 못한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었다. 법에 따르면 면허를 가진 사람만이 탈 수 있고 2인 이상 동승할 수 없지만, 관리하는 주체가 없으니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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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에너지 민주주의의 방정식을 새로 짜자 내가 살고 있는 충청북도 옥천군에는 모두 350개가량의 송전탑이 있고 1975년에 만든 변전소도 하나 있다. 변전소가 있는 면에는 송전탑 149개가 집중되어서 주민들의 불만이 많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송전탑이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선거 때마다 송전탑 이전 이야기가 나온다. 전자파가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과학적인 설명과 환자가 늘어나는 불안한 현실 사이에는 타협점이 없기 때문이다. 전국에 세워진 크고 작은 송전탑이 이미 4만개. 그럼에도 송전량이 많고 손실이 적다는 이유로 765㎸ 초고압송전탑은 늘어나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 여전히 많은 전력이 필요하고, 발전소가 새로 생기는 만큼 주요한 소비처로 전기를 보내는 송전탑의 수와 규모도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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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부실정부 대한민국 2023년 7월15일 오전, 연일 내린 폭우로 하천이 범람하고 제방이 무너져 지하차도가 물에 잠겼고, 버스 승객을 포함해 14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을 입었다. 오송지하차도 참사는 갑자기 쏟아진 비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며칠 동안 많은 비가 내리고 홍수경보가 이미 발령된 상황에서 발생했다. 올여름에도 많은 비가 내릴 거라 예고되는데, 정부는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제대로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지난 4월24일 오송참사 시민진상조사위원회는 넉 달 동안의 조사를 거쳐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선 가장 먼저 정부 조사의 한계가 지적됐다. 기본적으로 정부 조사는 당시 제방이 붕괴된 현상에만 집중하고 담당자의 행적과 조치, 감시·감독 권한만을 따진다. 그래서 기관의 책임은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정도로 축소되고 관련자들의 위법행위를 따져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진다. 그러나 이런 결론으로는 대책이 마련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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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지하로 가는 정치와 슬픔의 공화국 10일 제22대 총선의 결과가 나온다. 선거 이후의 풍경은 어떨까? 사람들이 기대하는 한 편의 복수극이 시작될까? 서로를 심판하겠다던 거대 양당은 어떤 공방을 이어갈까? 관전 지점은 많겠지만 내 관심은 복수와 심판보다 이번 선거에서 그들이 내건 비슷한 공약의 흐름이다. 대표적인 것이 경부선을 비롯한 전국의 철도와 고속(간선)도로를 지하화하겠다는 공약이다. 국민의힘은 경부선 철도와 경인전철, 주요 고속(간선)도로를 지하화해서 지상 공간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교통·인프라 격차 해소’의 첫 번째 정책으로 제안했다. 2025년까지 주요 도시의 도심을 지나는 철도와 도로를 지하화하되 지하화 비용을 지상의 개발수익으로 충당하겠다는 구상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철도와 GTX, 도시철도의 도심 구간, 서울의 내부순환로 등을 예외 없이 지하화한다는 공약을 ‘민생을 촘촘히 챙기겠습니다’의 32번째 공약으로 제안했다. 관련 공약의 내용은 국민의힘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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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장을 안 보는 사람들의 정치 며칠 전 장을 보러 가서 오이를 집었다가 가격을 보고 그냥 내려놓았다. 달랑 오이 두 개의 가격이 4000원을 넘겼고 애호박 가격도 비슷했다. 과일은 집지도 못하고 가격표만 훑고 지나갔다. 농촌에 사는지라 어지간하면 농산물 가격을 따지지 않는 편인데 지금 가격은 마음의 선을 넘었다. 농산물만 그럴까, 라면이나 과자, 옷과 신발 같은 공산품 가격도 많이 올랐다. 예전에는 만원권 몇장 들고 장을 봤는데 이젠 5만원권 들고도 마음이 불안하다. 평균자산 34억 의원들이 서민 대변? 당해 소비자물가지수를 전년도 물가지수와 비교한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보면 2021년 2.5%, 2022년 5.1%, 2023년 3.6%로 물가는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 서민생활과 밀접한 식료품과 수도, 전기 및 연료, 음식 및 숙박비, 교통비의 증가율이 높다. 소비자물가 조사대상 품목들 중에서 자주 구입하는 140여개 생필품의 가격 변동을 나타내는 생활물가상승률도 소비자물가상승률과 마찬가지로 2012년 이후 안정적으로 유지되다가 2022년 6.0%까지 올랐고 2023년에도 3.9%를 기록했다. 계절의 영향을 받는 농산물이나 국제유가 변동의 영향을 받는 석유류를 제외한 물가를 나타내는 근원인플레이션율도 2000년대 들어 2% 안팎으로 유지되다 2022년 이후 4%대로 높아졌다. 즉 어떤 기준으로 따져도 물가는 오르고 있고 그만큼 서민들의 생활도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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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유가족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 지난 2월7일 부산지방법원 형사5부는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 대표에게 금고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노후선박을 관리하지 않아 인명을 희생시킨 업무상 과실치사, 업무상 과실선박매몰 혐의를 대표에게 적용했다. 재판부가 회사의 책임을 물었음에도 재판을 방청했던 지인의 말에 따르면 유가족들은 기뻐하지 않았고 재판 후 항의기자회견을 열었다. 진상규명보다 보상이 앞서는 나라 유조선을 개조해 화물선으로 쓰던 스텔라데이지호는 2017년 3월31일 갑자기 침몰했고, 24명의 선원 중 22명이 사망했다. 회사 실소유주인 폴라리스쉬핑은 사고 즉시 인근 해역 국가들에 구조요청을 하지 않았고 12시간이 지난 뒤에야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 배는 침몰해 바닷속 깊이 가라앉았고, 선원들은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