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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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지하로 가는 정치와 슬픔의 공화국 10일 제22대 총선의 결과가 나온다. 선거 이후의 풍경은 어떨까? 사람들이 기대하는 한 편의 복수극이 시작될까? 서로를 심판하겠다던 거대 양당은 어떤 공방을 이어갈까? 관전 지점은 많겠지만 내 관심은 복수와 심판보다 이번 선거에서 그들이 내건 비슷한 공약의 흐름이다. 대표적인 것이 경부선을 비롯한 전국의 철도와 고속(간선)도로를 지하화하겠다는 공약이다. 국민의힘은 경부선 철도와 경인전철, 주요 고속(간선)도로를 지하화해서 지상 공간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교통·인프라 격차 해소’의 첫 번째 정책으로 제안했다. 2025년까지 주요 도시의 도심을 지나는 철도와 도로를 지하화하되 지하화 비용을 지상의 개발수익으로 충당하겠다는 구상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철도와 GTX, 도시철도의 도심 구간, 서울의 내부순환로 등을 예외 없이 지하화한다는 공약을 ‘민생을 촘촘히 챙기겠습니다’의 32번째 공약으로 제안했다. 관련 공약의 내용은 국민의힘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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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장을 안 보는 사람들의 정치 며칠 전 장을 보러 가서 오이를 집었다가 가격을 보고 그냥 내려놓았다. 달랑 오이 두 개의 가격이 4000원을 넘겼고 애호박 가격도 비슷했다. 과일은 집지도 못하고 가격표만 훑고 지나갔다. 농촌에 사는지라 어지간하면 농산물 가격을 따지지 않는 편인데 지금 가격은 마음의 선을 넘었다. 농산물만 그럴까, 라면이나 과자, 옷과 신발 같은 공산품 가격도 많이 올랐다. 예전에는 만원권 몇장 들고 장을 봤는데 이젠 5만원권 들고도 마음이 불안하다. 평균자산 34억 의원들이 서민 대변? 당해 소비자물가지수를 전년도 물가지수와 비교한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보면 2021년 2.5%, 2022년 5.1%, 2023년 3.6%로 물가는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 서민생활과 밀접한 식료품과 수도, 전기 및 연료, 음식 및 숙박비, 교통비의 증가율이 높다. 소비자물가 조사대상 품목들 중에서 자주 구입하는 140여개 생필품의 가격 변동을 나타내는 생활물가상승률도 소비자물가상승률과 마찬가지로 2012년 이후 안정적으로 유지되다가 2022년 6.0%까지 올랐고 2023년에도 3.9%를 기록했다. 계절의 영향을 받는 농산물이나 국제유가 변동의 영향을 받는 석유류를 제외한 물가를 나타내는 근원인플레이션율도 2000년대 들어 2% 안팎으로 유지되다 2022년 이후 4%대로 높아졌다. 즉 어떤 기준으로 따져도 물가는 오르고 있고 그만큼 서민들의 생활도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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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유가족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 지난 2월7일 부산지방법원 형사5부는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 대표에게 금고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노후선박을 관리하지 않아 인명을 희생시킨 업무상 과실치사, 업무상 과실선박매몰 혐의를 대표에게 적용했다. 재판부가 회사의 책임을 물었음에도 재판을 방청했던 지인의 말에 따르면 유가족들은 기뻐하지 않았고 재판 후 항의기자회견을 열었다. 진상규명보다 보상이 앞서는 나라 유조선을 개조해 화물선으로 쓰던 스텔라데이지호는 2017년 3월31일 갑자기 침몰했고, 24명의 선원 중 22명이 사망했다. 회사 실소유주인 폴라리스쉬핑은 사고 즉시 인근 해역 국가들에 구조요청을 하지 않았고 12시간이 지난 뒤에야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 배는 침몰해 바닷속 깊이 가라앉았고, 선원들은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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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왜 국가는 외할아버지를 살해했나? 자라면서 외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도 어릴 적에 돌아가셨으니 그 존재에 관해 물을 기회가 없었다. 외삼촌과 외할머니를 제외하면 외가 쪽 친척들과 관계가 거의 없었고, 돌아가신 분들 이름 짚으며 족보 따지기 좋아하던 아버지도 외할아버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워낙 가부장적인 집안이라 그런가보다 생각하며 무심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사망 당시 기록이 정확하지 않다는 걸 우연히 발견한 조카가 질문을 던지면서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외할아버지의 존함도 그때 처음 들었다. 그러면서 사망 전에 대구형무소에 계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신청서를 제출했다는 상황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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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지방재정 대란과 절반의 분권 중앙정부가 2024년도 지방교부금을 11조6000억원 이상 삭감하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정신호에 빨간불이 켜졌다. 중앙정부에 의존하던 비수도권 지자체의 세입이 줄면 매년 증가하던 지자체의 예산 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내가 사는 곳도 지방자치 실시 이후 최초로 전년 대비 본예산안 규모가 줄어서 올해 당초 예산보다 244억원이나 줄어든 예산안이 편성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지자체만이 아니다. 지방교육청의 사정도 마찬가지라서 전국적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7조원 이상 줄었다. 심지어 이 줄어든 예산에서 7000억원 이상을 디지털 교육에 쓰도록 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까지 국회 본의회에 부의되어 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예산 없이 실행되는 사업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방의 재정상황은 심각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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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좋은 삶과 메가도시 나는 인구 300만명의 도시에서 태어나 1000만명의 도시에서 공부했고 100만명의 도시에서 아이를 기르며 일하다 5만명의 농촌으로 이주했다.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첫날 우리 집 어린이는 “이제 뛰어도 돼? 소리 질러도 돼?” 물으며 집 안을 달렸다. 그때 떠나지 않고 전세 살던 아파트를 샀으면 벌써 몇억원을 벌었을 거라 타박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은 팔아도 서울 전셋집조차 구하기 어려울 가격의 집에 살지만 재테크가 이주의 이유는 아니었으니 그 말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자산은 줄었지만 이주한 뒤 우리 가족의 시공간은 넓어졌고, 적당히 한산한 거리의 여유 있는 속도가 표준이 되었다. 고개를 들면 아파트가 아니라 낮은 산이 이어지고, 가끔 집 앞에서 고라니와 뱀을 만나기도 한다. 한층 느려지고 넓어진 시공간은 감정과 생각에 여유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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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금융사기 피해를 개인이 책임져야 할까 지난 추석 때 가족들이 모인 김에 집안일에 쓸 모임통장을 하나 만들었다. 연구소 계좌로 이용하던 인터넷은행에 계좌를 하나 더 만들고, 두 명에게 계좌번호를 공유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모르는 사람에게서 3만원이 입금되더니 다음날엔 또 다른 입금자명으로 50만원이 입금되고 두 시간 뒤에는 전기통신 금융사기 이용계좌로 신고돼 지급정지가 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일요일이라 다음날 아침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더니 메시지는 사실이고, 은행은 내게 다른 은행 출금도 제한될 것이라 ‘통보’했다. 영문을 알 수 없으나 나도 피해자인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결정될 수 있냐고 주장했지만, 은행은 보이스피싱 범죄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은행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계좌가 해킹되었을 거라 말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다른 해킹 피해가 없는데 계좌번호는 어떻게 유출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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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소설 ‘1984’를 닮아가는 한국 현실 지난 5일 참여연대는 21대 국회가 규명해야 할 10대 과제를 발표했다. ‘대통령실의 해병대 수사 축소·외압 의혹 진상규명’, ‘관저 이전 의혹 진상규명 및 대통령실 투명성 검증’, ‘감사원·사무총장 권한 남용 진상규명’, ‘대통령 일가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후속 조치 점검’, ‘일본 핵 오염수 투기 중단 요구 계획’, ‘캠프 데이비드 선언 검증·국회 동의 요구’, ‘누더기가 된 전세사기 지원대책 점검’, ‘LH 아파트 철근 누락 사건 책임규명·재발 방지 대책 마련’, ‘삼성물산 불법 합병으로 인한 정부와 국민연금의 손해배상 책임 추궁’ 등이다. 국회가 풀어야 할 정치의 숙제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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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지방의 실패는 누가 책임지나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끝났다. 이제 그 과정에서 드러났던 문제들을 진지하게 따져봐야 할 텐데, 명심해야 할 것은 이런 실패가 처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파행을 거듭했던 전라남도의 포뮬러1(F1) 경기, 1000억원대의 소송에 휘말린 경상남도의 마산로봇랜드, 수천억원을 들였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경상북도의 3대 문화권(유교·가야·신라)사업, 채권시장을 뒤흔들었던 강원도의 레고랜드 등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왜 지방정부는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사업을 벌이지 못해 안달일까? 임기 내 대표사업을 만들려는 정치인들의 욕심, 끊임없이 기획서를 들이미는 기업들의 이해관계, 무사안일하지만 승진은 하고 싶은 관료들, 뭐라도 해야 돈이 돈다며 여론을 주도하는 지역토호들, 별 이득 없이 들러리만 서는 지역주민들, 이들이 뒤섞여서 계속 실패작들을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비슷하게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비수도권의 경우는 강도가 조금 더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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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누구를 위한 관료제인가 국가공무원법 제1조는 공무원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행정의 민주적이며 능률적인 운영’을 기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공무원이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 믿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공무원이 자기 자신이나 소수의 이익에 봉사하며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일한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더 많다. 왜 그럴까? 한국 관료제의 잘못된 경로 얼마 전까지 여러 사람들과 ‘한국의 관료주의’라는 주제로 공부모임을 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행정조직의 변화와 관료조직의 특징을 다룬 여러 논문과 자료들을 함께 읽으면서 서로의 고민을 나눴다. 공부를 할수록 그동안 선출직 공무원(정치인)에 대한 관심만큼 경력직 공무원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과 선거제도의 개혁이 더디지만 행정의 개혁은 더욱더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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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낭만이 사라진 2023년의 지방의회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의 악역들 중 한 명은 외상센터 지원예산을 결정하는 도의원이다. 이 도의원은 교통사고를 당한 아들이 병원에서 죽자 예산을 빌미로 협박하고, 이후 사고현장과 병원에서도 구급대원과 의료진을 괴롭히는 악역을 맡았다. 그리고 외상센터보다 관광지 건설사업을 추진해서 자신의 정치 기반을 강화하려는 의도까지 드러내 비난을 받았다. 실제 현실로 따지면 이런 역할은 도의원이 아니라 도지사의 몫이다. 건설사업의 추진과 예산편성에 관한 권한은 지방의원이 아니라 단체장의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의원이 그런 과정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드라마의 배경인 강원도의회만 봐도 도의원 총원이 49명이라 한 명의 영향력이 강하기 어렵다. 물론 지방의회에 이런 악역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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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의 풀뿌리 정치개혁에 필요한 건 선거제도만이 아니다 지난주에는 여러 지역에서 시민들을 만났다. 기후위기시대 시민의 역할을 논하는 자리부터 시민권, 청소년 정치학교까지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제는 각기 달랐지만 토론과 뒤풀이 시간에는 어김없이 현실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감과 무기력감이 토로됐다. 정치의 변화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시민들은 지쳐가고 있다. 이미 법정시한 넘긴 선거구 획정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는 선거일 13개월 전에 선거구획정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2022년 8월부터 국회에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돼 활동했지만 이미 법정시한을 넘겼다. 이번이 특별한 경우도 아니다. 지난 20대·21대 총선 때도 국회가 법정기한을 지키지 않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