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빠진 독에 물붓기, 이득은 누가 챙기나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인구가 줄어드는 비수도권의 지방자치단체가 생활인구와 관계인구(이주하지는 않았지만 지역을 방문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를 늘릴 계획을 자율적으로 세우도록 유도하기 위한 기금이다. 지난 7월 행정안전부는 전국 122개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받기 위한 투자계획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매년 1조원 규모로 편성되는 기금이라 n분의 1로 쪼개면 그리 큰 금액은 아님에도 많은 지자체들이 지원했다. 내가 사는 지역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되어 사업계획을 제출했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이런 지원이 지역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길 바라지만 큰 기대는 없다. 관계인구라는 말은 뭔가 어정쩡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의 태도도 애매하다. 이번에 제출된 사업들은 그동안 지자체들이 추진해온 사업들과 얼마나 다를까? 행안부에 따르면 제출된 투자계획들이 문화·관광(28%), 산업·일자리(23%), 주거(20%) 등에 맞춰졌다고 하니 기대감이 잘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지역의 자율성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전문성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과 공무원들이 계획을 심사해서 투자규모를 결정한다. 평가단에 참여한 사람들은 122개 지역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여기저기 혁신이란 단어는 보이지만 ‘자율’적인 계획을 ‘심사’해서 사업비를 지원한다는 이상한 과정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돈의 규모는 늘어도 중앙정부가 돈을 쓰는 방식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그들만의 이득 잔치에 주민은 뒷전

운 좋게 사업에 선정되면 지자체는 얼마를 받았다는 현수막을 또 여기저기 내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업들이 주민들에게 얼마만큼 도움이 될까? 2005년 이후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144조원이 투자되었고, 우리 지역에도 10여개의 사업들이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지방소멸대응기금 이전에도 수도권의 지방소비세 일부로 조성된 지역상생발전기금이 2010년부터 운용되고 있지만 위기는 여전하다.

더구나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자율적인 노력을 평가하고 그에 상응해서 지원규모를 정하기 때문에 지자체들은 사업지원을 위한 예산을 묶어놓는다. 그러면 주민들과 함께 열심히 고민해야 할 텐데, 지자체가 사업계획을 컨설팅업체에 맡기는 경우도 많다. 어렵게 지원을 받아도 지자체 공무원들이 제대로 사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그러다보니 정작 주민들에게 필요한 사업은 뒤로 밀리기 일쑤이고 불편해진 사람들은 지역을 떠난다. 지역을 살린다며 대대적으로 홍보되는 사업들이 실제로는 위기를 심화시키는 셈이다. 돈이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돈의 성격과 돈을 쓰는 방식도 문제인데, 그에 관한 논의는 없다.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지원을 못 받으면 큰일이 나는 듯 말하지만 정말 돈이 문제일까? 2022년을 기준으로 주민 1인당 세출예산액을 비교해 보면, 내가 사는 지역은 서울시에서 가장 높은 중구보다도 두 배 이상 많다. 물론 인구가 적고 고령화된 농촌과 도시를 기계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세금으로 걷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고 그 차이는 중앙정부의 교부금과 보조금으로 메워진다. 지자체들은 돈이 없어 주민을 위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얘기하지만 매년 많은 잉여금을 남긴다.

좀 과하게 말하면 지자체들은 지역주민들을 볼모로 삼아 중앙정부에 지원을 요구한다. 필요한 지원은 받아야 하고 주민들이 원하는 사업은 해야 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새로운 지원금이 계속 생겨도 그 돈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가능성은 낮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현란한 수식어를 단 사업들이 생긴들 불편해서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진 못한다. 결국 사업의 이득은 정치인과 기업, 지주, 브로커들이 챙기고, 주민들은 점점 더 관객석으로 밀려난다.

흠뻑쇼 논란의 의미심장한 대목

가뭄이 한창이던 때 싸이의 흠뻑쇼를 두고 오간 설전은 날선 감정만 남겼다. 한편은 지방 처지를 모르는 서울로 가는 물과 농산물을 끊어버리자고 했고, 다른 편은 이럴 거면 서울에서 나오는 지방교부금을 끊어 버리자고 했다. 오해와 편견을 강화시키는 말은 쉽고, 끊어진 관계를 복원하려는 말은 어렵다.

지방의 활기를 회복시키려면 분명히 돈이 필요하지만, 그 돈은 우리가 의존해온 수많은 관계들을 은폐하거나 왜곡시키곤 한다. 이제는 돈의 액수보다는 집행방식과 그 흐름을 봐야 하지 않을까? 소멸이라는 위협보다 보듬어야 할 관계가 드러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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