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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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AI가 은폐한 진실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눈에 띄는 현상은 AI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이 아닐까 싶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일본에서도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한 경쟁이 한창이라는데, AI 산업에 대한 이 열망 혹은 맹목은 국가 단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며 여기서 도태되면 미래로 가는 문이 닫힐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경우, 비수도권 지역은 그만큼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른바 ‘지방 소멸’이라는 ‘에비’가 사람들의 마음과 무의식을 짓누르고 있다는 뜻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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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러다이트가 뭐 어때서! 현대차 노동조합이 노사합의 없이는 로봇을 단 1대도 들일 수 없다고 하자, 기득권 언론들은 현대차 노동조합의 말을 침소봉대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은 ‘21세기판 러다이트’니 ‘로봇 쇄국’이니 저급하게 반응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현대차 노동조합은 단체협약에 명시된 대로 ‘노사합의’를 강조한 측면이 있지만 ‘단 1대도’에 감정이 실린 감도 없지 않다. 이 문제는 2025년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선보인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2028년까지 3만대 생산해 현장에 투입하겠다고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밝혀서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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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인간마저 ‘쓰레기’로 만들겠다는 AI 인공지능(AI)을 단적으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데이터로 활용해 환영(할루시네이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AI의 부작용이 아니라 본질이라고 해야 맞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데이터인데 인터넷을 통해서 엄청나게 축적된 데이터가 없었다면 현재의 AI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2010년 제프리 힌턴이 드디어 기계에 학습을 성공시킨 것도 인터넷상의 데이터 때문이었음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물론 20세기 내내 누적된 기술적 진보나 근대자본주의 문명이 폭발시킨 미디어 환경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AI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근대자본주의 문명이 ‘끝내’ 산출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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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편리’라는 감금 장치 딸네가 새로 이사한 집은 29층이다. 베란다가 없는 아파트여서 거실에서 창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 때문에 나도 모르게 물러서고 만다. 어쩌면 내가 유난스러운지도 모르겠다. 시골 읍내의 아파트에 사는 동생네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더 높이는 안 올라가 봤을까. 22층인 동생네 집에서 바깥을 보면 어릴 때부터 익숙한 들판인데 지금은 도로와 온갖 비닐하우스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그런지 노모를 모시고 사는 동생네 집에 가면 이상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들판이 거의 대부분 논이었을 때의 이런저런 기억 때문에 들판을 배반하고 사는 삶은 도대체 무엇인 걸까,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들판에 아파트를 짓고 공장을 짓고 사는 게 정말 잘 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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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님’의 회복을 위하여 연말이 다가오자 조금은 생뚱맞게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가 생각난다. 물론 마음만 가지고 있다가 실행을 하지 못한 어떤 계획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기다리고 기다리다 끝내 무너지고 만 김소월의 ‘님’이라든가, 보내지는 않았지만 떠나버린 한용운의 ‘님’이 우리 근대시(영혼)의 원형 같은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 철학은, 범박하게 말하는 게 용서된다면,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 예술을 자기의 ‘님’으로 삼았기에 그렇게 깊고 방대해졌는지 모른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서 자신의 역량만큼 물을 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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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대통령의 실용주의와 우리의 미래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노선으로 실용주의를 내세웠을 때, 이념적 도그마에서 자유로운 실사구시의 길을 가길 바랐다. 보수든 진보든 혹은 좌든 우든 근대적 세계관에 갇혀 있다고 평소에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용주의라는 다소 위험한 언어가 이왕이면 자유롭고 활달한 실사구시적인 맥락을 갖길 바랐던 것이다. 유시민 같은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사고가 연역적이 아니라 경험에 근거한 귀납적이라고 말했지만 그런 논리학적 구분법도 사실 어떤 도그마에 의거한 말이다. 경험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개인의 꿈과 상상력, 역사와 공동체에 대한 비전이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만일 실용주의에 그러한 것이 없다면 그 실용주의는 가벼운 성과주의에 머물고 말며 대통령의 경우는 국가 공동체에 깊은 내상 혹은 질환을 심어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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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아름다운 나라’란 무엇인가! 백범 김구는 1947년에 ‘나의 소원’을 쓰면서, 이것은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을 위함이라고 말했는데, 백범이 꿈꾼 진정한 독립은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하는 일이었다. ‘나의 소원’에는 요즘 너도나도 입에 올리는 “아름다운 나라”와 “높은 문화의 힘”이 언급된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장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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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학살 시대의 복판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서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의 바탕에는 ‘근대적 합리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나치 시절 근대적 합리성의 비근한 예로 관료제를 들었는데 사실 관료제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이미 시작됐었다. 미국의 역사학자 제임스 R 베니거는 19세기의 관료제는 정보의 프로세싱을 ‘줄이면서(preprocessing)’ 통치의 합리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근대적 합리화는 구체적으로 살아 있는 것들을 통치의 효율을 위해 줄이고 덜어내는 것이라 해석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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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이라는 퇴행 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삼례 그림책미술관에 강의를 다니던 작년이었다. 농촌의 읍 단위에서는 드물게 시를 읽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신선한’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드나들게 된 것이다. 처음에 통합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도대체 이 식상하고 진부한 상상력은 언제쯤 사라지나 답답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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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기후재난이 ‘뉴노멀’이라고? 이번 여름도 상당히 길 것이라 예상을 했다. 무슨 정보와 자료 때문이 아니라 기후의 변화 폭이 매년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고, 봄 더위·가뭄과 이어 벌어진 무자비한 산불을 보면서 여름에는 해수면 온도가 올라 폭염과 폭우가 반복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했다. 예측하기 힘든 기후가 됐다고는 하지만 다르게 보면 예측이 더 쉬워진 측면도 있다. 아마 예측하기 힘든 것은 재난의 장소와 현상이다. 폭우가 어디에 얼마만큼 내릴지 기상청이나 기상 전문가들이 예측하지 못하게 된 상황은 그만큼 대비를 힘들게 한다. 그렇다고 일상의 생활을 재난 대비에 다 쏟아붓는 것도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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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이준석 제명이 의미하는 것들 이준석의 의원직 제명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지난 27일 현재 59만명에 달한 것으로 보도됐다. 22대 비례대표 의원직을 승계한 진보당 손솔 의원은 “국회가 국민의 요청에 답해야 한다”며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하루빨리 구성돼 징계안이 논의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이준석이 지난 대선 때 보여준 충격적인 발언은 물리적 상해나 경제적 피해를 끼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욱 심각한 정신적, 정서적 학대에 가깝다. 따라서 이준석 ‘의원’을 일벌백계로 징계해야 온라인상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언어의 타락에 경종을 울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준석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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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이익균점권을 생각하다 지난달 27일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이준석 후보에 의해 저질러진 압도적으로 해로운 성폭력 발언으로 나라가 들썩거렸는데, 이날 소중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권영국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게 이익균점권에 관해 묻자 이재명 후보가 그 필요성만은 인정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이것이 어떻게, 그리고 과연 현실화할 수 있는지는 좀 다른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다. 이준석 후보의 해로운 발언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속에서도 몇몇 언론은 이익균점권을 언급했는데 우리는 한국전쟁과 더불어 잊혔다가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 정권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익균점권을 ‘지금’ 다시 호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