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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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참으로 길고 긴 밤이었다. 한밤중에 국회를 지켜야 한다며 집을 나선 시민들부터 자녀를 군대에 보낸 부모들, 그리고 뉴스와 영상을 통해 상황을 지켜보던 국민들까지 누구 하나 편안히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는 순간, 말 그대로 충격과 분노, 그리고 안도감이 파도처럼 번갈아 밀려왔다. 만약 조금이라도 의결이 늦었다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이 무렵 국회 안팎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야밤에 국회로 달려나온 시민들이 계엄군을 막아서고 둘러싼 것이다. 시민들은 위법한 비상계엄을 거부하며 계엄군들의 총부리 앞에서, 장갑차 앞에서 비폭력으로 저항했다. 어떻게 시민들은 그 짧은 시간에 국회로 모일 수 있었을까. 그들은 무슨 용기로 무장한 계엄군들과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설 수 있었을까. 그리고 세대를 불문하고 엄동설한에 밤마다 거리로 나와 응원봉을 흔들며 탄핵소추를 외치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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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폭력의 시대와 동안거 전쟁은 생명은 물론 삶의 터전까지 잿더미로 만들어버린다. 증오와 원한의 통곡 소리가 하늘을 뒤덮고 보복이 보복을 낳는 끔찍한 살육이 반복된다. 나름의 명분으로 전쟁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면서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모는 가운데, 그들은 결국 폭력을 강요당하거나 폭력의 희생자가 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폭력의 광기는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으며, 동시에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폭력의 공포에 떨며 고통받고 있다. 물론 모든 전쟁은 언젠가 끝이 올 것이다. 하지만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붕괴한 인간성과 상처받은 영혼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에서 우리는 희망을 찾을 것이며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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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팔만대장경과 노벨 문학상 오랜만에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대한민국의 작가 한강이 선정됐다는 보도에 온 국민이 놀라고 기뻐하면서 축하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곧이어 러시아의 톨스토이 문학상 해외문학상도 한국계 미국인 작가 김주혜가 받게 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발표 후 며칠이 지나도록 흥분과 여운이 쉬이 가시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마다 수상자인 한강과 김주혜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의 저력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가을날 저녁 전해진 희소식에 사람들은 가뭄에 단비를 맞이한 듯 자기 일처럼 흥분하며 설레는 마음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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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AI 디톡스’ 챗GPT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된 인공지능(AI)의 상용화는 누구나 AI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로 탈바꿈시켰다. 그 변화 양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변화의 가속도는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이다. 자고 일어나면 AI 뉴스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연이어 등장하는 새로운 AI 기술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버거울 정도이다. AI는 연예, 스포츠, 쇼핑, 금융, 여행 등 일상생활 영역에서부터 심지어 전쟁뿐만 아니라 범죄 수단으로까지 광범위하게 스며들고 있다. 손쉽게 이용하는 배달 앱이나 쇼핑 앱 이면에 작동하는 거대 AI에서부터 스마트폰의 음성 비서, 업무 자동화 시스템, 개인화된 추천 알고리즘에 이르기까지, AI는 이미 우리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AI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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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만행을 떠나며 여름 한 철 안거가 끝났다. 길고 긴 장마에 유난히 덥고 힘들었던 하안거였다. 결제(結制)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항상 그렇듯 시간은 속절없이 잘도 흘러갔다. 안거를 마무리하는 해제일(解制日) 무렵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분주해진다. 스님들은 저마다 다음 철 수행처를 알아본다든지, 은사 스님이 계시거나 인연 있는 절로 돌아가기 위해 분주해진다. 어른 스님들은 결제와 해제가 다르지 않음을 매번 강조하지만 그럼에도 다들 매번 안거가 끝나면 수행의 진전과는 상관없이 나름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문을 나서게 된다. 해제 날 산문을 나서는 순간, 마치 자신이 구름이 된 듯 강물이 된 듯한 자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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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산사의 소방 훈련 “불이야, 불이야!” 스님들의 고함이 연이어 울려 퍼진다. 산사의 적막과 고요가 일순간에 깨진다. 각 처소에서 수행하던 스님들이 방에서 부리나케 나와 불이 난 곳으로 뛰어간다. 참선하는 선원, 경전을 공부하는 강원, 계율을 공부하는 율원 대중 할 것 없이 전 대중이 모두 나온다. 10대의 어린 스님부터 주지 스님을 비롯한 어른 스님들까지 예외는 없다. 멀리 수미정상탑 근처에서 불이 났음을 알리는 연막이 하얗게 피어오른다. 스님들의 손에는 곳곳에 비치되었던 소화기가 들려 있고 능숙한 동작으로 언제든지 분사할 준비를 마친다. 연막이 피어오르는 수미정상탑은 다름 아닌 팔만대장경이 봉안된 장경판전 뒤! 장경판전과 수미정상탑까지 가는 길이 가파르지만, 이 순간만큼은 스님들이 괴력을 발휘하면서 한달음에 내달린다. 이내 각 법당에서 화재 발생을 알리며 난타당했던 소종 소리가 멈추고, 종각에서 대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해인사 경내뿐만 아니라 가야산 전체에 흩어져 있는 암자에도 화재 발생을 전파하기 위함이다. 예불 시간을 제외하고는 큰스님 열반했을 때나 타종하는 대종 소리가 비상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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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백중, 죽음이 삶에게 건네는 위로 매년 이맘때쯤 절집에서는 백중 기도를 시작한다. 이날부터 매주 한 번씩 총 일곱 번의 법회를 열어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불자들은 여름 안거 마지막 날, 그러니까 음력 7월15일에 맞추어 일곱 번째 법회를 열고 여름 안거 수행을 마친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기도 하고 동시에 방생(放生)으로 포획된 동물을 살리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법회를 통해 그 공덕을 다시 세상으로 돌려준다. 백중이라는 애도 기간은 유족들이 비로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망자를 떠나보내는 진짜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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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노스님과 가야산 누구에게나 스승은 있다. 그 스승은 학교 선생님이나 직장 상사 혹은 가족 구성원일 수도 있다. 혹자는, 요즘은 스승이 사라진 시대라고 한다. 필요한 지식이야 유튜브나 인공지능을 통해 언제든지 얻을 수 있고, 지혜를 지닌 본받을 만한 대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멘토’니 ‘구루’니 하는 생경한 단어를 끌어다 자신이 닮고자 하는 모습을 비춰보기도 한다. 하긴 자신의 삶에 영감과 통찰을 줄 수 있다면 이름이 무엇이든 대상이 누구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스승을 만나기 어려운 시대에 어쩌면 스승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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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킬러로봇’ 개발과 ‘오펜하이머 순간’ “10년 이내에 자율적으로 인간을 죽이는 로봇 병기가 등장할 것으로 본다.” 인공지능(AI) 딥러닝 기술의 대부 제프리 힌턴은 최근 한 언론사 인터뷰(니혼게이자이신문, 3·10)에서 경고했다. 힌턴은 이미 작년 4월 AI 기술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구글에서 사직했다. 누구보다 앞서 AI 기술을 개척하면서 이해도가 높은 장본인이 AI 기술의 악용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세계 각국이 AI 기술에 대한 윤리적 규제와 감시를 소홀히 하는 사이에, 이른바 ‘자율 무기체계(Autonomous Weapon System·AWS)’라는 이름으로 AI 기술을 탑재한 살상 무기 즉 ‘킬러로봇(Killer Robot)’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하고 있다. 그 형태도 공중드론과 해상드론에서부터 시작해 휴머노이드까지 다양하다. ‘킬러로봇’이란 인간 개입이 없는 상태에서 자율성을 갖고 목표물을 탐지, 추적, 공격할 수 있는 AI 기반의 군사로봇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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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내 마음속 깊은 ‘보배’ 찾기 최근 흥미로운 뉴스를 전해 들었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들’ 목록에 국내 모 기업 창업주의 재산을 상속한 자매가 이름을 올렸다는 보도였다. 전 세계에서 33세 미만으로 순자산 10억달러 이상을 가진 사람이 25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며 나의 도반은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농담했다. 그러면서도 “조 단위가 넘는 재산을 물려받는 느낌은 어떨까”라고 아쉬운 듯 덧붙인다. 우리에게는 허황한 생각이지만 덕분에 잠시나마 재미있는 상상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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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동일본 대지진과 죽음에 대한 단상 2011년 3월11일 나는 학업을 위해 도쿄에 있었다. 수업이 한창일 때(오후 2시46분) 갑자기 15층 건물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살면 으레 경험하는 일상적 미진이 아니라, 굉음이 들릴 정도로 건물 바닥과 외벽이 요동치고 있었다. 일본인 동료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니, 그들도 당황한 건 매한가지였다. 이내 사이렌 소리가 이어지고 건물 밖으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가방을 챙길 새도 없이 서둘러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지진 경보가 울리면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어 계단을 통해 대피해야 했다. 강의실은 11층이었고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에 건물이 몇번이나 크게 흔들렸다. 그때마다 학생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거나 아예 난간을 붙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다 좀 잠잠해지면 중심을 겨우 잡고 서로를 붙들고 의지하며 내려가다 큰 진동이 다시 오면 멈춰 서길 반복했다. 이러다 오늘 정말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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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깨달음도 다운로드할 수 있을까 나의 기억이나 생각을 인터넷에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을까? 최근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지난달 29일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설립한 뇌신경과학 스타트업인 뉴럴링크에서 “사지마비 환자의 뇌에 인공 칩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고, 환자는 현재 무사히 회복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 인공 칩은 이른바 ‘텔레파시’란 이름의 컴퓨터 칩 제품이다. 이에 앞서 뉴럴링크는 지난해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시험 실시를 허가받았다. 인간의 생각만으로 컴퓨터 키보드나 스마트폰 같은 외부 디지털 기기를 작동시킨다는 구상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상상 속 이야기였다. 이제 일론 머스크는 기어이 이 기술을 인간에게 적용할 심산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