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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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내 마음속 깊은 ‘보배’ 찾기 최근 흥미로운 뉴스를 전해 들었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들’ 목록에 국내 모 기업 창업주의 재산을 상속한 자매가 이름을 올렸다는 보도였다. 전 세계에서 33세 미만으로 순자산 10억달러 이상을 가진 사람이 25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며 나의 도반은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농담했다. 그러면서도 “조 단위가 넘는 재산을 물려받는 느낌은 어떨까”라고 아쉬운 듯 덧붙인다. 우리에게는 허황한 생각이지만 덕분에 잠시나마 재미있는 상상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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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동일본 대지진과 죽음에 대한 단상 2011년 3월11일 나는 학업을 위해 도쿄에 있었다. 수업이 한창일 때(오후 2시46분) 갑자기 15층 건물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살면 으레 경험하는 일상적 미진이 아니라, 굉음이 들릴 정도로 건물 바닥과 외벽이 요동치고 있었다. 일본인 동료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니, 그들도 당황한 건 매한가지였다. 이내 사이렌 소리가 이어지고 건물 밖으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가방을 챙길 새도 없이 서둘러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지진 경보가 울리면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어 계단을 통해 대피해야 했다. 강의실은 11층이었고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에 건물이 몇번이나 크게 흔들렸다. 그때마다 학생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거나 아예 난간을 붙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다 좀 잠잠해지면 중심을 겨우 잡고 서로를 붙들고 의지하며 내려가다 큰 진동이 다시 오면 멈춰 서길 반복했다. 이러다 오늘 정말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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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깨달음도 다운로드할 수 있을까 나의 기억이나 생각을 인터넷에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을까? 최근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지난달 29일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설립한 뇌신경과학 스타트업인 뉴럴링크에서 “사지마비 환자의 뇌에 인공 칩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고, 환자는 현재 무사히 회복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 인공 칩은 이른바 ‘텔레파시’란 이름의 컴퓨터 칩 제품이다. 이에 앞서 뉴럴링크는 지난해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시험 실시를 허가받았다. 인간의 생각만으로 컴퓨터 키보드나 스마트폰 같은 외부 디지털 기기를 작동시킨다는 구상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상상 속 이야기였다. 이제 일론 머스크는 기어이 이 기술을 인간에게 적용할 심산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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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새해, 평화를 기원하며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건강과 소원 성취를 기원한다. 하지만 최근 북쪽으로부터 전해진 메시지에는 증오와 분노가 서려 있었다. 연초부터 북한은 악담과 포격 도발로 덕담과 새해 인사를 대신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면서, “조선반도에서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남반부 전 영토를 평정하려는 우리 군대의 강력한 군사행동에 보조를 맞춰나갈 준비”를 강조했다. 물론 북한의 도발이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 발언이 사실이든 위협에 불과하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한반도 정세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국내외의 향후 한반도 정세 예측과 전망도 불안을 가중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적대적 기운이 비단 한반도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한반도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세상은 지금 분노와 증오의 불길 한가운데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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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미래로 가는 문턱에서 “우리는 뒷걸음질로 미래에 들어선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다가오는 시간에 당당히 마주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우리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래는 희망과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안과 두려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나름 발버둥을 치지만 다가오는 시간을 따라잡기는 여간해선 쉽지 않다. 이에 더해 우리 눈앞에 펼쳐진 현재의 풍경들은 어딘가 모순적이고 난해하다. 이맘때쯤이면 으레 각계각층에서 한 해를 대표할 만한 사건 혹은 의미를 근사한 핵심어로 제시하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한 해를 상징하는 단어로 ‘인공지능’과 ‘전쟁’이 떠오른다. 언뜻 생각해보면 인간 지성의 첨단을 상징하는 인공지능과 인간 야만성의 극한인 전쟁이라는 두 단어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요즘에는 인공지능이 개발되자마자 제일 먼저 군사적으로 이용할 궁리부터 하니, 따지고 보면 두 단어 사이의 온도차가 그리 크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두 가지 이질적인 개념에 내재된 상반된 감정의 뒤엉킴은 낯설고 당혹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렇듯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이 혼재하는 시공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미래를 어떤 태도로 살아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또 하나의 무거운 화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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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변해야 하는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 사이에서 세상은 인연 따라 변한다. 그 변화 과정에서 조건을 따라가려는 원심력과 본질을 지켜내려는 구심력이 팽팽히 맞선다. 정치, 경제, 종교, 예술, 문화 할 것 없이 두 힘이 부딪치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 때로는 발전하거나 때로는 퇴보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수와 진보로 분류하기도 한다. 시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끊임없는 혁신을 표방하는 비즈니스 업계와는 달리, 전통을 숭상하거나 수호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종교단체의 경우는 매 순간 이런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전통을 보존 혹은 보전한다는 것이 단순히 새로움을 거부하고 과거의 유산을 답습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전통과 혁신 사이의 긴장관계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구체적인 삶 속에서는 두 가지 힘이 매 순간 충돌하게 되며, 새로운 의문과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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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인간을 인간이 아닌 그 무언가로 부르기 시작할 때 분노와 증오의 불길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태워버릴 만큼 강력하다. 그 불길은 증오의 상대가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으로써 원료를 삼는다. 서로 죽이고 원한을 쌓아가던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무력 충돌은 이제 국지적 충돌을 넘어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전 세계인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은, 하마스의 대규모 기습 공격은 끔찍한 민간인 학살과 무차별적 인질 납치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스라엘은 피의 보복을 선언했고, 탱크가 가자지구 경계선을 뚫고 진격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대규모 지상전이 임박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엔 다른 듯하다. 희생자 수뿐만이 아니라 아랍 국가들의 격앙된 반응과 복잡한 중동의 역학관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촉즉발 그 자체다. 이 사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랍 국가들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시위를 벌이고 서로를 비난하며 진영 갈등을 벌이고 있다. 외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들 간에도 무차별적 혐오범죄가 만연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양측 갈등을 역사적인 배경에 바탕을 둔 종교 분쟁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영토분쟁의 관점에서 파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분석으로도 그들의 증오와 분노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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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기후위기와 유마거사 “인류가 지옥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지난 20일 제78차 유엔총회 고위급 주간 ‘기후목표 정상회의’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현재의 기후위기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거듭된 경고에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발언 강도가 점점 격화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관련한 암울한 뉴스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4일 세계기상기구(WMO)가 발표한 ‘2023 기후과학 합동 보고서(United In Science)’에 따르면,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했었는데 그 이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더욱 난감한 것은 구테흐스 사무총장 말대로 이런 모든 변화가 앞으로 다가올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징후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덧붙여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구온난화 시대’가 가고 ‘지구열대화 시대’로 진입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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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MZ세대의 용맹정진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어서고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주변의 모든 것이 정지 화면처럼 느껴진다. 스님들이 선원 대방에 모여 앉아 참선하고 있다. 관례대로 구참 수좌 스님들은 벽을 따라 나란히 앉아 있고, 신참인 사미 스님들은 방 중간에 앉아 정진한다. 어린 10대의 사미승들이 노스님들 바로 앞에 좌복을 깔고 앉아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도 진풍경이다. 스님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같은 공간에서 화두를 들고 저마다의 치열한 정진을 이어간다. 때때로 들리는 죽비소리만이 그 적막을 깨뜨린다. 자기도 모르게 살짝이라도 졸았다가는 어느새 어깨 위에 죽비가 서늘한 느낌을 담아 올려진다. “타다다 탁” 리드미컬한 움직임 속에서 힘껏 죽비가 내려쳐진다. 사실 죽비는 스님들의 정진을 경책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소리만 요란할 뿐 아픈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정진하는 대중들 모두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정도로 효과가 크다. 그렇게 스님들이 졸음과 더위 속에서 화두를 들고 분투하는 가운데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이레째를 맞이하면서 용맹정진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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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AI 프로필 속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 무엇과도 대체되지 않는 나만의 고유함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저마다의 얼굴, 이름, 생년월일, 직위, 재산, 출생지, 가족관계 등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동일성을 찾아간다. 그러나 최근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의 상용화는 이러한 기존 관념을 흔들어 놓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용자의 프로필 사진을 생성해 주는 AI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AI 프로필 서비스는 이용자가 자신의 셀카를 몇 장만 데이터로 입력하면 마치 스튜디오에서 전문 사진사가 촬영한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이미지를 생성해 준다. 이미지가 정교하고 그럴듯해 주민등록증이나 여권 등의 공적 증명 자료로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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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을 추모하며 “해인사와 그 인근 공비 소굴을 소사 폭격하여 지상군을 밀접 지원하라.”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18일 오전 6시30분, 대한민국 공군 제1전투비행단 소속 4기 편대에 내려진 명령이었다. 인민군 패잔병들은 퇴로가 막히자 낙오되어 가야산에 숨어들었고, 해인사를 은거지 삼아 활동하고 있었다. 가야산에 낙오된 공비의 수는 900여명이나 되었다. 이로 인해 민간인 피해 또한 극심했다. 임무를 하달받은 편대는 중무장한 채로 가야산 상공으로 이동하였다. 1번 전투기에는 네이팜탄이 장착되어 있었다. 공격 표적은 대적광전 앞마당이었고, 네이팜탄 한 발만으로도 사찰 전체는 물론 팔만대장경판은 잿더미가 될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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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산사에서 맞는 엔데믹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대로변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외국인들까지 한데 어우러져 연등 행렬에 동참한다. 거리에 활기가 넘쳐나고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인사를 나누면서 걸어간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미소 짓는 모습이 새롭게만 느껴진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다. 지난 4년간 중단되었던 연등 행렬을 다시 보니 새롭고도 반갑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세상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다고 한다. ‘무상하다’는 것은 항상하지 않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무상은 허무하다거나 덧없다는 의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