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깊은 ‘보배’ 찾기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최근 흥미로운 뉴스를 전해 들었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들’ 목록에 국내 모 기업 창업주의 재산을 상속한 자매가 이름을 올렸다는 보도였다. 전 세계에서 33세 미만으로 순자산 10억달러 이상을 가진 사람이 25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며 나의 도반은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농담했다. 그러면서도 “조 단위가 넘는 재산을 물려받는 느낌은 어떨까”라고 아쉬운 듯 덧붙인다. 우리에게는 허황한 생각이지만 덕분에 잠시나마 재미있는 상상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다. 누구는 돈이 너무 많아 문제이고, 또 누구는 돈이 너무 없어 걱정이니 말이다. 많은 돈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어 안타까운 상황에 내몰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 애쓰고, 때로는 집착한다.

엊그제는 노스님께서 병세가 악화돼 응급실에 모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원에 다녀왔다. 다행히 위험한 고비는 넘겨 잠시나마 안도하며 곁을 지키다가 돌아왔다. 차를 운전하며 오는 길에 갖가지 상념이 스쳤다. 노스님은 평소 입버릇처럼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며 스스로를 낮추고 평생을 가난한 암자를 지키며 살아오셨다. 그러던 스님께서 누워 계신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많은 가르침과 보살핌을 주신 분이었다. 가야산에 들어서니 어느새 도로변에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봄 햇살을 받아서 그런지 눈부실 정도로 환하고 아름다웠다. 일부러 차에서 내려 벚꽃이 흩날리는 소리길을 걸었다. 이내 봄기운이 전신으로 퍼졌다. 다행히 아직 건강한 다리로 이 길을 걸을 수 있고, 눈으로는 이 아름다운 봄날에 핀 꽃들을 볼 수 있고, 꽃향기를 맡을 수 있고, 홍류동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내내 어두웠던 마음이 환해지고 새삼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문이나 강의한답시고 이 절 저 절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바삐 움직이지만, 내 집 뜰 안에 이미 봄꽃이 피어 있는 줄 모르고 잘도 돌아다녔다.

중국 당나라 시대의 선승 대주혜해(大珠慧海)는 깨달음을 구하는 여정에서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를 친견한다. “무슨 일로 찾아왔냐?”는 마조 스님의 질문에 대주 스님은 “불법(佛法)을 구하러 왔다”고 답한다. 이 말은 들은 마조 스님은 일갈한다. “자기 집 보배는 돌아보지 아니하고, 집을 떠나 무엇을 찾고 있느냐. 여기엔 한 가지 물건도 없으니 무슨 불법을 구하겠느냐!” 대주 스님은 물러서지 않고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질문을 꺼낸다. “무엇이 이 대주의 보물입니까?” 마조 스님은 대답한다. “나에게 묻는 자가 바로 너의 보물이니라.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며 사용하는 데 자유자재하다. 그런데 왜 밖을 향해서 찾는가?”

우리는 그 대상이 깨달음이든, 성공이든, 재물이든, 명예이든 간에 내 마음 밖에서 그것을 추구한다. 이 선문답은 누구나 자기 마음속에 깊이 감춰둔 보물이라는 뜻인 ‘자가보장(自家寶藏)’을 드러내는 일화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보물을 발견하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여래장경(如來藏經)>에는 ‘빈가보장(貧家寶藏)’이라는 이야기로 그 어려움을 비유한다. 가난한 집안에 보배 창고라는 뜻이다. 끼니도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에 사는 여인이 자기 집 지하 굴속에 금은보화가 묻혀있는 것을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우연히 들른 나그네의 도움으로 그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이것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 부처와 같은 마음인 불성을 간직하고 있는데, 탐욕·성냄·어리석음이라는 번뇌에 덮여서 그 불성을 보지 못한다는 붓다의 비유다.

취업은 어렵고, 사업에 실패하고, 관계가 무너지고, 수많은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살아내야만 하는 나날들이다. 요동치는 마음을 거두고 수백조, 수천조가 부럽지 않은 내 마음속 깊이 감춰둔, 빛나는 보배를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흐드러진 벚꽃잎들, 반짝이는 계곡물, 새소리…. 봄날은 그렇게 왔다가 이렇게 가고 있다.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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