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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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한겨울 ‘폭염백서’를 기다리며 어제 회를 먹었다. 광어, 우럭 그리고 또 매번 듣지만 기억나지 않는 물고기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더 시원한 맥주에 차가운 회 한 점, 시원했다. 아침에 일어나 행정안전부 홈페이지 ‘안전관리일일상황’을 들여다본다. 올여름 폭염이 시작되고 생긴 습관이다. 다행히 어제는 폭염으로 누군가 사망하지 않았구나. 그러나 조피볼락 1만7871마리, 쥐치 2883마리, 도다리 4352마리가 죽었다. 어제 먹은 싱싱하다 못해 쫄깃함이 터지는 물고기는 폭염을 견뎌낸 것들이구나. 양식장 위로 둥둥 뜬 물고기들은 어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뜰채로 걷어냈을까. 같은 날 돼지와 닭, 오리도 1057마리가 죽었다. 맥없이 축 늘어진 동물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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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재난의 치안화’ 시행령 정치 윤석열 정부가 재난을 대하는 태도는 증상적이다. 이태원 참사 때 유례없는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는가 하면, 모든 애도행위에 대해 참사를 정치화한다며 비난했다. 재난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강조하던 윤 대통령은 당시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독대에서 이태원 참사의 ‘조작 가능성’을 언급했다. 표면적으로는 갈지자 행보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난에 대한 보수세력들의 거부감과 피해의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더 정확히는 재난으로 촉발된 대중적 불신과 불만을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데서 나온 방어적이고 무능력한 반응이다. 이명박 정부의 소고기 광우병 사태,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참사는 그들의 정치적 DNA에 깊이 박혀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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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우리와 당신의 ‘주말이 있는 삶’ “개처럼 뛰고 있어요.” 지난 5월28일 쿠팡의 배송전문 자회사 쿠팡CLS에서 배송기사로 일하던 정슬기씨(41)가 사망하기 전 남긴 쿠팡 측과의 문자메시지다. 전국택배노조는 심근경색의증이라는 사인을 근거로 과로사를 주장하고 있다. 정씨는 사망 전 하루 10시간이 넘는 야간 고정노동을 수행했다. 그는 1t 트럭을 보유한 특수고용직 배송기사로, 건당 수수료를 받고 배송하는 쿠팡의 간접고용 노동자다. 대부분의 배송기사들은 특수고용직으로 ‘위장된 자영업자’의 삶을 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자영업자는 남들 쉴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도 일하는 남다른 ‘결심’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고, 그래야 ‘월급쟁이’만큼 벌 수 있다. 특수고용직, 간접고용과 같이 뜻을 알기 어려운 단어들은 모두 노동자가 자영업자의 신분을 뒤집어쓰고 일하는 불안정한 노동에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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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조선소 ‘위험의 이주화’ 멈춰야 2023년 BTS의 팬덤 ‘아미’는 10주년 페스타를 즐기기 위해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했다. 40만명의 글로벌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각 부처에 안전관리를 긴급 지시했다. 많은 인파로 인한 안전사고와 더운 날의 온열질환 대비, 그리고 각국의 언어로 된 안전방송과 표지판 등을 주문했다. 다행히 축제는 즐거웠고 안전했다. 같은 시기 한국의 조선소는 오랜 불황이 끝나고 호황이 시작됐다. 그러나 불황 시기 강제로 ‘정리’되거나 저임금 하청구조와 위험한 현장을 못 견디고 ‘떠난’ 하청노동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호황 국면에도 저임금과 하청구조, 위험한 작업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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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한주소금의 잃어버린 10일 지난 4월15일 울산의 소금 생산공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는 법대로 사고가 발생한 작업을 중지시키고 조사와 대책 마련을 진행했다. 여기까지는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이 소금이 정제염이라는 데 있다. 정제염은 바닷물을 직접 끌어와 불순물을 걸러내고 끓여 만든 소금인데, 정제염을 생산하는 업체가 한국에 단 한 곳이다. 1979년 정제소금을 생산했을 때만 해도 공기업이었지만 1987년 민영화되었다. 이후에도 한주소금은 정제염을 생산하는 유일기업으로 독점권을 누렸다. 사고는 1년에 한번 시행하는 대규모 계획예방정비(오버홀) 중 발생했다. 바닷물을 끌어올리는 해수 취수시설을 정비하던 잠수사가 잠수작업 중 에어호스가 스크루에 감겨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내가 알 수 있는 정보의 전부다. 아무리 기사를 뒤져봐도 사고 원인을 알 수 있을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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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재난·산재도 선거공보물처럼 이태원 참사 직후, 한국의 재난을 취재하던 독일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기자에게 가장 이상한 것은 참사 유가족들이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성격이 급해서 그러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가족의 소식을 알기 위해 서울의 경찰서와 병원 응급실 여기저기를 헤매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세월호 참사는 진도 팽목항에 서서 우는 실종자 가족들로 기억되고, 대구지하철 참사는 화재가 난 중앙로역 앞에서 노숙을 하며 불에 타다 만 뼛조각이라도 발견되기를, 아니 발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달을 버틴 가족들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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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쿠팡 영업비밀 ‘블랙리스트’ 쿠팡이 지난 7년간 일용직, 계약직으로 일한 노동자들의 재취업 ‘걸러내기’용으로 작성한 이른바 ‘블랙리스트’ 문건이 공개됐다. 쿠팡은 무려 1만6450명의 명단을 만들어 관리해왔으며, 여기엔 취재 제한을 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70여명의 언론사 기자 명단도 포함돼 있다. 쿠팡은 정당한 인사평가 자료라고 주장하지만 퇴직자를 포함해 계약해지돼 더 이상 인사관리가 필요 없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인사평가는 들어본 적 없다. 특히 쿠팡은 비공개 자료인 경찰청 출입기자 등의 명단을 어떻게 입수해 블랙리스트에 올렸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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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애도폭력과 애도시위 어떤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행위가 폭력이 될 수 있을까? 애도행위가 아무리 부적절하고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폭력이라는 딱지를 붙여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최근 벌어진 일련의 소동을 나는 ‘애도폭력’이라 부르고 싶다. 지난 1월23일 충남 서천시장 화재를 배경으로 이뤄진 윤석열·한동훈 회동이 비판받는 이유는 단지 ‘정치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치쇼가 재난 현장을 주목하게 하는 대신 재난을 지워버렸다. 서천시장 292개 점포 중 227개가 불에 타, 80%가량의 생존터가 사라진 대규모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을 앞두고 터진 정치적 갈등, 그러니까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연기만 수십대 카메라 앞에서 선보이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지금까지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찾은 재난 현장 중 이렇게까지 재난이 삭제된 경우가 또 있을까. 차라리 그 둘이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시커먼 잿더미 위에서 눈물짓는 늙은 상인의 얼굴이라도 언론에 보도됐을 것이고, 지방정부의 대책에 대해 한 줄이라도 더 자세히 언급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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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누가 중대재해법 무력화하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있으나 마나 한 종이호랑이법이 될 처지에 놓였다. 중대재해법은 문재인 정부 때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3년 유예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한 채 가까스로 통과되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당선 초기부터 경제계의 입장을 대변하듯 중대재해법을 과잉입법으로 몰아세웠다. 1월27일이면 3년간 유예된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적용시기를 2년 더 늦추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경총 등 경제 6단체도 이달 27일로 예정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을 2년 추가 유예해달라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유예를 요청하는 주요 논리는 “중소영세 사업장의 취약성, 준비부족에 따른 경제활동 위축”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중대재해법의 범위를 축소하고 유예했던 논리이기도 하다. 이는 과거 최저임금제를 둘러싼 논란과 닮아 있다. 지금까지 경총 등 경제단체들이 스스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나 불합리한 원·하청 구조에 대해서 중소영세 기업들의 고충이나 이해를 대변하고 제도를 개선하려고 노력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노동자들의 권익과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나 제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내미는 카드가 중소기업의 취약성과 경제활동 위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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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열사의 산업재해 택시운전사 방영환에게 견딜 수 없었던 것은 택시업계의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보다 사장의 모욕과 무시였다. 21개의 택시회사를 소유한 사업주가 제공한 불결하고 열악한 작업환경은 무시의 물질적 표현이었다. 방영환은 2019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원 2명으로 시작해 7명이 되자 사측의 무시는 괴롭힘으로 변했다. 승객이 구토한 차량을 세차도 하지 않은 채 배차했고, 한여름에 에어컨이 고장난 차량을 내주기도 했다. 사측은 방영환을 괴롭히고 탄압하다 해고했다. 방영환은 홀로 싸웠다.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1·2심을 거쳐 대법원 해고무효 선고까지 3년의 질긴 싸움 끝에 결국 복직이 되었다. 2022년 당시 방영환의 싸움이 짤막하게 기사화되었다. “나는 이기고 돌아온 택시운전사” 기사 제목이 이제야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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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김용균 이후, 법의 현실 다가오는 12월11일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의 5주기다. 새삼스레 그의 죽음을 꺼내는 것은 지난 5년간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둘러싼 변화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28년간 제자리에 머물렀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논의가 김용균 사망 일주일 만에 수면 위로 올랐고, 해를 넘기기 전에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안전법 전부 개정이 이뤄졌다. 그러나 개정된 법은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위험의 외주화’를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문턱을 넘을 것이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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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신종재난’의 오래된 반복 10월29일이면 이태원 참사 1주기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말로 지난 1년 정부의 무책임을 비판했다. 정부는 ‘신종재난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었다’는 말로 재난 대응의 총괄책임을 지는 행정안전부와 이상민 장관을 포함한 정부의 책임을 지웠다. 이태원 참사 이후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14명이 사망하자, 정부의 대응은 더 나빠졌다.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재난 첫 보고를 받은 뒤 3시간30분이 지나서야 사고 현장에 도착하고도 ‘거기에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는 발언을 했다. 오송 참사와 관련해 감찰조사 결과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이 징계와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직후였다. 이상민 장관의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소방을 미리 배치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식의 발언이 반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