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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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재난·산재도 선거공보물처럼 이태원 참사 직후, 한국의 재난을 취재하던 독일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기자에게 가장 이상한 것은 참사 유가족들이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성격이 급해서 그러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가족의 소식을 알기 위해 서울의 경찰서와 병원 응급실 여기저기를 헤매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세월호 참사는 진도 팽목항에 서서 우는 실종자 가족들로 기억되고, 대구지하철 참사는 화재가 난 중앙로역 앞에서 노숙을 하며 불에 타다 만 뼛조각이라도 발견되기를, 아니 발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달을 버틴 가족들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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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쿠팡 영업비밀 ‘블랙리스트’ 쿠팡이 지난 7년간 일용직, 계약직으로 일한 노동자들의 재취업 ‘걸러내기’용으로 작성한 이른바 ‘블랙리스트’ 문건이 공개됐다. 쿠팡은 무려 1만6450명의 명단을 만들어 관리해왔으며, 여기엔 취재 제한을 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70여명의 언론사 기자 명단도 포함돼 있다. 쿠팡은 정당한 인사평가 자료라고 주장하지만 퇴직자를 포함해 계약해지돼 더 이상 인사관리가 필요 없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인사평가는 들어본 적 없다. 특히 쿠팡은 비공개 자료인 경찰청 출입기자 등의 명단을 어떻게 입수해 블랙리스트에 올렸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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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애도폭력과 애도시위 어떤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행위가 폭력이 될 수 있을까? 애도행위가 아무리 부적절하고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폭력이라는 딱지를 붙여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최근 벌어진 일련의 소동을 나는 ‘애도폭력’이라 부르고 싶다. 지난 1월23일 충남 서천시장 화재를 배경으로 이뤄진 윤석열·한동훈 회동이 비판받는 이유는 단지 ‘정치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치쇼가 재난 현장을 주목하게 하는 대신 재난을 지워버렸다. 서천시장 292개 점포 중 227개가 불에 타, 80%가량의 생존터가 사라진 대규모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을 앞두고 터진 정치적 갈등, 그러니까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연기만 수십대 카메라 앞에서 선보이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지금까지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찾은 재난 현장 중 이렇게까지 재난이 삭제된 경우가 또 있을까. 차라리 그 둘이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시커먼 잿더미 위에서 눈물짓는 늙은 상인의 얼굴이라도 언론에 보도됐을 것이고, 지방정부의 대책에 대해 한 줄이라도 더 자세히 언급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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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누가 중대재해법 무력화하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있으나 마나 한 종이호랑이법이 될 처지에 놓였다. 중대재해법은 문재인 정부 때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3년 유예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한 채 가까스로 통과되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당선 초기부터 경제계의 입장을 대변하듯 중대재해법을 과잉입법으로 몰아세웠다. 1월27일이면 3년간 유예된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적용시기를 2년 더 늦추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경총 등 경제 6단체도 이달 27일로 예정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을 2년 추가 유예해달라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유예를 요청하는 주요 논리는 “중소영세 사업장의 취약성, 준비부족에 따른 경제활동 위축”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중대재해법의 범위를 축소하고 유예했던 논리이기도 하다. 이는 과거 최저임금제를 둘러싼 논란과 닮아 있다. 지금까지 경총 등 경제단체들이 스스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나 불합리한 원·하청 구조에 대해서 중소영세 기업들의 고충이나 이해를 대변하고 제도를 개선하려고 노력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노동자들의 권익과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나 제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내미는 카드가 중소기업의 취약성과 경제활동 위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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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열사의 산업재해 택시운전사 방영환에게 견딜 수 없었던 것은 택시업계의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보다 사장의 모욕과 무시였다. 21개의 택시회사를 소유한 사업주가 제공한 불결하고 열악한 작업환경은 무시의 물질적 표현이었다. 방영환은 2019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원 2명으로 시작해 7명이 되자 사측의 무시는 괴롭힘으로 변했다. 승객이 구토한 차량을 세차도 하지 않은 채 배차했고, 한여름에 에어컨이 고장난 차량을 내주기도 했다. 사측은 방영환을 괴롭히고 탄압하다 해고했다. 방영환은 홀로 싸웠다.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1·2심을 거쳐 대법원 해고무효 선고까지 3년의 질긴 싸움 끝에 결국 복직이 되었다. 2022년 당시 방영환의 싸움이 짤막하게 기사화되었다. “나는 이기고 돌아온 택시운전사” 기사 제목이 이제야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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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김용균 이후, 법의 현실 다가오는 12월11일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의 5주기다. 새삼스레 그의 죽음을 꺼내는 것은 지난 5년간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둘러싼 변화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28년간 제자리에 머물렀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논의가 김용균 사망 일주일 만에 수면 위로 올랐고, 해를 넘기기 전에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안전법 전부 개정이 이뤄졌다. 그러나 개정된 법은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위험의 외주화’를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문턱을 넘을 것이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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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신종재난’의 오래된 반복 10월29일이면 이태원 참사 1주기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말로 지난 1년 정부의 무책임을 비판했다. 정부는 ‘신종재난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었다’는 말로 재난 대응의 총괄책임을 지는 행정안전부와 이상민 장관을 포함한 정부의 책임을 지웠다. 이태원 참사 이후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14명이 사망하자, 정부의 대응은 더 나빠졌다.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재난 첫 보고를 받은 뒤 3시간30분이 지나서야 사고 현장에 도착하고도 ‘거기에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는 발언을 했다. 오송 참사와 관련해 감찰조사 결과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이 징계와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직후였다. 이상민 장관의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소방을 미리 배치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식의 발언이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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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열차가 지연되는 이유 철도노조가 민영화 반대 파업을 예고하며 8월24일부터 준법투쟁에 돌입했다. 준법투쟁은 작업규정과 휴식시간을 지키고, 초과근무를 거부하는 방식이다. 즉 ‘법대로 매뉴얼대로’ 안전운행을 하겠다는 것인데도 벌써 열차 지연이 발생한다. 역사 안에는 “철도노조의 태업으로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방송이 반복된다. 철도공사는 이를 ‘태업’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정해진 규칙대로 일하는 것만으로 ‘정시운행’의 철칙은 작동되지 않는다. 만성적 인력부족으로 초과노동을 밥먹듯이 하고, 아파도 연차 사용이나 병가를 사용하지 못하고, 안전매뉴얼을 위반하며 작업속도를 올리는 것이 현장의 ‘노하우’가 되는 철도현장에서 ‘정시운행’이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더 많이 내어주어야만 가능한 편법의 결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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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과잉처벌과 부수적 처벌 최근 합법 집회가 불법화되고 공권력의 과감한 물리력 행사가 강화되고 있다. 지난 5월23일 “그 어떤 불법 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이후 경찰의 집회 대응이 위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경찰은 5월25일 대법원 앞 인도에서 진행된 비정규직 노동자 문화제를 원천 봉쇄했고, 이를 막으려던 참가자들을 체포했다. ‘폭력성이 없는 집회를 강제 해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을 무시하면서 집행한 경찰의 논리는 ‘불법 행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였다. 참가자들은 ‘대법원’으로 삼행시 경연을 펼치며, 불법파견 문제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법원을 비판한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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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밥값 카스트 폭염이나 폭우와 같은 극한 기후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얼마 전 코스트코 하남점에서 33도가 넘는 폭염 중 하루 4만보가 넘도록 카트 정리업무를 하던 노동자가 사망했다. 지난 15일에는 충북 오송 지하차도가 침수되어 16일 오후 10시 현재 9명이 사망했다. 밤새 실종자 가족이 사고 현장을 지키며 애를 태우고 있지만 구조는 더디다. 중대재해 노동자 사망사고도 뉴스의 디폴트값인 양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밥값 차별을 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와 원청 정규직 간의 밥값 차별이 처음 알려진 것은 2018년이었다. 당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보다 더 많은 구내식당 점심값을 지불하는 현실에 분개하면서도 “일상 속 사소한 차별은 말하기도 민망하다”고 했다. 콜센터 여성노동자들이 일상의 부당한 대우와 차별에 대해 말할 때도 그랬다. “산재로 죽는 노동자도 있는데… 화장실을 자주 못 가게 하는 건 말하기도 민망하다”며 겸연쩍어했던 그녀들이 털어놓는 차별은 공기처럼 퍼져 있어 어디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차별은 차별받는 사람, 차별을 말하는 입을 민망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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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재난 트라우마 정부 겨우내 붉은 목도리를 두르고 거리에 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여름이 되자 연보라색 반팔티로 갈아입었다. 지난 8일부터 국회 앞 농성을 시작한 유가족은 시청 앞 분향소에서 국회까지 매일 행진한다.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과 이태원 참사의 독립적 조사기구 설립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다. 17일 오전, 유가족들이 헌재에 제출할 의견서를 마련하기 위해 모인 자리를 참관했다. 고통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말하기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토론이 시작되고 얼마 안 돼서 그 자리에 법률가와 함께 인권활동가가 참여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법에 고통의 색을 입히는 작업은 유가족들이 생생하게 경험한 인권침해와 부정의를 법과 대질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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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5·18과 건폭 올해 5·18 광주에서는 대통령이 오른손 주먹을 쥐고 흔들면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보수 정권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부른 셈이다. 5월19일에는 G7 회의 참석차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가 원폭 한인 피해생존자들을 만났다. 78년 만에 이루어진 자리에서 대통령은 ‘너무 늦었다, 죄송하다’는 위로의 말을 전했다. 대통령이 과거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사회적 치유와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 중요한 제스처이지만 동시에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통치의 해독제로 ‘포용’의 이미지가 동원되는 손쉬운 수단이 되기도 한다. 법치를 내세우며 강력한 부권적 권력 이면에 치유와 돌봄의 모성적 권력도 존재한다는 것을 언뜻 내비치는 것만으로도 정권의 도덕적 정당성은 보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