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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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하청노동자를 정규직화한다고 안전해지나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해법으로 하청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수많은 전문가와 연구자, 기업과 공무원들이 되받는 질문이다. 2016년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를 계기로 사회적으로 확산된 ‘위험의 외주화’라는 문제는 비용 절감 등의 목적으로 위험한 업무가 외주화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정 화학물질, 특정 기계장치는 배치에 따라 관리 가능한 위험일 수도 있고, 관리 불가능한 위험이 되기도 한다. 원청에서 하청으로 노동 과정이 단절되고, 원청노동자와 하청노동자 사이에 위계와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은 특정 화학물질이나 기계장치를 둘러싼 배치의 변화를 불러온다. 그것은 그 자체로 관리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아웃소싱된 위험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위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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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생명·안전권을 법으로 재난에 앞서 존재해야 할 법이 재난이 발생한 후에야 발의되고 폐기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하나같이 있어야 할 법으로 꼽는 것이 ‘생명안전기본법’이다. 대형 재난·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이 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그때뿐이다. “이태원참사가 나고 유가족이 되니, 가장 뼈아픈 것이 생명안전기본법이 없다는 것이에요. 피해자 권리를 위한 기본적인 법이 없다 보니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일조차 유가족들이 싸워야만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겁니다.” 몇해 전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싸우는 와중, 불쑥 건넨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심 놀랍고 반가웠다. 생명안전기본법이 없으니 재난·참사 유가족들은 당장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먼저 요구하게 되고, 정치권은 당장의 사안만 해결하려고 하니 생명안전기본법은 자꾸만 뒤로 밀리게 되는 일이 반복됐다. 법안이 5년째 국회에서 표류하는 사이 2022년 이태원참사,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 2024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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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모두를 위한 새벽배송 지난 8월12일 쿠팡의 배송 자회사 쿠팡CLS의 택배기사가 업무 중 쓰러져 사망했다는 사실이 최근에야 보도됐다. 숨진 50대 택배기사는 종종 7일 연속 근무를 하거나 하루 12시간 넘는 노동을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류·택배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하는 사고가 늘고 있다. 사망한 10명 가운데 7명이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등으로 인한 과로사다. 2024년 택배업 사망현황에 따르면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는 코로나19 기간을 거쳐 4배 이상 증가했다. 이 시기에는 쿠팡이 주도하는 새벽배송과 빠른배송이 물류·유통 산업의 초고속 성장을 견인했다. 이후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e커머스 시장’의 성장은 한국 사회의 소비습관 자체를 바꾸어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마트에 가서 쇼핑하는 대신 가까운 편의점에 있는 물건조차 배달앱을 통해 주문하는 데 익숙하다. 쿠팡은 이제 물류산업의 절대강자가 되었다. 하나의 기업이 모든 사람의 ‘습관’을 바꾸었을 때, 사회는 그 기업을 ‘혁신의 아이콘’으로 추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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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잔혹한 언론과 현대제철 35도가 넘는 정오였다. 그늘 하나 없는 무자비한 8월27일 대검찰청 앞에서 현대제철 1892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인 현대제철을 상대로 ‘집단고소장’을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수 언론은 ‘노조법 2·3조’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한 고소·고발이 이어질 것이며, 기업이 ‘휘청’하고 국가 경제가 ‘흔들’ 할 거라는 식의 보도를 내보냈다. 노동조합은 이른바 ‘노란봉투법 공포 마케팅’에 자신들의 집단고소 건이 빌미가 될까봐 취재기자들에게 “노조법 2·3조가 통과되어서 집단고소를 진행한 것이 아니다. 오래전 우리의 투쟁이 먼저였다. 우리 투쟁의 효과로 법이 통과된 것일 뿐”이라는 해명 아닌 해명을 반복했다. 당사자도 아닌 내가 다 억울했다. 왜 이들이 언론에 해명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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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공기업의 불법파견 해법 8월28일 서울중앙지법 제41민사부(재판장 정회일 판사)에서 한전KPS 불법파견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고 김충현의 동료들로 더 많이 알려진 태안발전소 2차하청 노동자 24명이 전부 승소했다. 이들은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불법파견 소송을 준비했다. “하청구조에서 임금이 너무 많이 떼여서” “아무 때고, 밤이고 새벽이고 주말이고 원청에서 전화하면 군말 없이 나가야 하는 처지가 서글퍼서” “10년이 넘게 일해도 1년짜리 쪼개기 계약”. 이들이 소송을 건 이유는 차고 넘친다. “열심히 일해도 고용불안”인 상황을 벗어나 ‘제대로 살고 싶어서’ 소송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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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전기는 평등한가 “1984년부터 30여년간 서울의 짜장면은 14배가 올랐고, 버스요금도 10배가 올랐지만, 전기요금은 1.9배 오르는 데 그쳤다. 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저렴할 뿐만 아니라, 연간 호당 정전 시간도 9.08분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 품질을 유지한다.” 한국전력의 소식지(2019년 5월)에 실린 자부심 어린 소개글이다. 어릴 적 정전에 대비해 손전등이나 양초가 구비됐던 때를 생각하면 요즘의 전기는 참 고르다. 고르게 흐르는 전기를 저렴하게 보급한다는 한국전력의 자랑 이면에는 정규직의 반값도 안 되는 임금으로 하루 12시간씩 주간과 야간노동을 번갈아 하는 발전소 하청노동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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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트라우마, 2차 산업재해 중대재해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노동자들은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의 동료들도 그렇다. 고인이 사망한 ‘공작설비동’ 건물 2층에는 한전KPS 2차 하청업체의 사무실이 있다. 동료들은 일하러 나가는 길에,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기계에 끼여 죽음에 이른 동료의 시신을 그대로 목격했다. 관리자들은 ‘보지 말고 사무실로 들어가라’고 했지만 사고 현장에는 어떤 가림막도 설치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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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김충현의 이재명은 다른가 “김용균 특조위의 권고를 100% 수용하겠다.” 문재인 정부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낙연이 김용균 사망사고 특별조사위원을 위촉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당시 조사위원 모두 국무총리의 말을 듣고 놀랐다. 이 정부가 ‘김용균 사망사고를 제대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구나’ 했다. ‘김용균 특조위’는 이례적일 만큼 정부의 지지를 받으며 출발했다. 2019년 9월 특조위는 발전소 위험의 외주화를 폐지하고 평등한 안전을 강화할 22개 권고안을 제시하고 특조위가 참여하는 이행점검기구를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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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법 앞에서, 양회동 오월이다. 양회동을 이야기하지 않고 이 혼란한 오월을 보낼 수 있을까? 건설노동자 양회동은 2년 전, 노동절인 5월1일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2023년 서슬 퍼런 대통령 윤석열은 장관들 앞에서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를 다부지게 외쳤다. 건설노동조합을 ‘건폭’이라는 폭도로 명명한 순간, 그 말은 곧 힘이었고 법이었다. 경찰은 건설노조 조합원들 검거에 혈안이 됐다. 1계급 특진 50명이라는 이례적인 포상 때문이다. 건설노조 사무실에 22차례의 압수수색이 이뤄지는 동안 노동조합의 활동은 복구하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갔다. 2250여명의 건설노동자들이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소환됐다. 이 중 42명이 폭도들의 우두머리로 지목되며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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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별일 없는 한국타이어 광장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뜨거웠던 겨울에서 봄, 노동자들의 일터는 별일 없이 돌아갔다. 지난겨울 내내, 노동자들의 사망사고로 공장에 갈 때마다 낯선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광장의 아우성에 무관심한 기계의 규칙적인 굉음이 차갑고도 무자비한 기업의 질서를 일깨워주었다. ‘대한국민’의 운명을 좌우한 광장 민주주의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팻말이 걸린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것을 노동자도, 관리자도, 기업도 아는 듯했다. 노동자는 여전히 일하다 다치고 죽었다. 기업은 여전히 ‘중대재해처벌법’ 처벌을 피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였다. 고용노동부의 부실한 관리·감독은 어떠한 변화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몇해 전 건설노동자의 죽음에 “이건 비일비재한 추락사다”라고 유가족 앞에서 멀쩡하게 되뇌던 사법부는 헌법재판소의 ‘명문’ 이후에도 그저 그런 판결문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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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특별히, 연장근로에 반대한다 또다시 주 52시간 상한제를 무력화하는 큰 구멍이 뚫렸다. 반도체 연구·개발직 특별연장근로를 한 번에 최대 6개월까지 허용해주는 행정지침이 지난 14일부터 시행됐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입법의 경우 오래 걸리지만, 행정조치는 한 달도 안 걸릴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기자들에게 전한 것이 지난 11일이다. 바로 다음날 정부는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반도체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보완방안’을 마련했고, 이어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를 확정·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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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그래도 민주당은 다르다는 말 “이제부터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다 같다는 말 하지 마세요.” 12·3 계엄 이후 인문학 연구자들의 작은 공부모임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게. 그때는 윤석열이 계엄을 할 줄 몰랐지”라며 이어지던 말들 사이에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다수가 윤석열이 탄핵되면 민주당이 집권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한가. 2017년 박근혜 탄핵 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 광장은, 시민들은 무엇을 기대했었나. 5·18 유가족 앞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 ‘비정규직 제로시대’ ‘저녁이 있는 삶’을 호기롭게 외치던 것과 달리 어떤 정책이든 빠르게 포기하거나 절충했다. ‘공약대로’ 추진하되, 여러 우회로를 만들어 제도를 내부로부터 허물어버렸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겠다더니, 최저임금을 올리는 대신 산입범위를 확대해 ‘올랐지만 오르지 않은’ 월급봉투를 들고 어리둥절해했던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기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