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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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20년 드라마의 비극적 대단원 20년 전 바로 오늘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날이다. 소박한 교외 식당에 친구들과 모여 앉아 숨죽이며 TV 화면을 지켜봤다.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민주노동당 9~12석’이라는 뉴스가 화면에 등장했다. 다 함께 환호했다. 내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것을 알고 있는 지인들의 축하 문자, 전화가 이어졌다. 내가 당선된 것도 아닌데! 민주노동당 당원이든 아니든, 한국 정치사의 기념비적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반공이데올로기가 진보정당의 출현을 가로막았다. 어려운 시작 이후에도 민정당과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거대 양당의 치열한 접전 속에서, 진보정당은 매번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정책 공약도 ‘사표(死票)’ 우려 앞에서 번번이 힘을 잃었다. 그런데 17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1인 2표제가 도입되었다. 최소한 비례명부에서는 정치공학적인 고려 없이, 사표 걱정 없이 지지 정당에 투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비례명부에서 무려 270만표, 13%가 넘는 표를 얻었다. ‘노동자 도시’ 울산, 창원에서 당선된 지역구 의원 2명과 비례의원 8명, 처음으로 원내정당이자 제3당이 되었다. 가장 극적인 사건은 개표 막판에 일어났다. 10선 경력의 정치인 김종필이 비례대표 1번으로 나선 자유민주연합이 정당 득표율 3%를 채우지 못하면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했고, 그 자리를 민주노동당 비례 8번이었던 고 노회찬 후보가 차지한 것이다. 역사의 한 장이 바뀌었다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순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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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최선이자 유일한 대안, 공공이 미래다 얼마 전 일본의 ‘의료취약지 공공병원’ 견학을 다녀왔다. 인구가 채 3만명이 안 되고 노인 인구 비율이 40%에 달하는 농촌지역 시립병원들이었다. 이들 역시 의료인력, 특히 의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황은 훨씬 나았다. 우선 병상 150개, 그중에서도 급성기 병상은 50개에 불과한 아키타현 오모리 시립병원은 내과, 외과, 정형외과 전문의 13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외래는 이들 3개 과 외에도 신경과, 신장내과, 호흡기내과, 소아과, 비뇨기과, 안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재활의학과 등을 열고 있었다. 비결은 ‘파견’이었다. 아키타 의대에서 전문의들을 정기적으로 파견하여 주민들에게 필요한 외래 서비스를 제공했다. 병원 규모가 이렇게 작아도 위암과 대장암 수술을 직접 시행할 만큼 진료 역량도 탄탄한데, 이때 필요한 마취과 의사 또한 아키타 의대에서 파견해주었다. 영상 검사 역시 아키타 의대와 원격 진단 체계를 갖추고 판독 지원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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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든 자리는 알아도 난 자리는 모른다 연말에 독일 여행을 다녀왔다. 버스, 트램(전차), 지하철, 지역 일반열차, 광역 고속열차, 비행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낯설었던 것은 어디에나 유아차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대중교통, 특히 버스에서 유아차를 만나는 건 진짜 드문 일이다. 한국의 대단한 저출생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이건 이상한 일이다. 1990년대 말 처음 방문한 유럽 미술관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너무 많아 놀랐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는데, 현실은 그와 반대였다. 버스, 지하철, 기차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안 보이고, 유아차를 탄 아기들이 안 보여도 이들의 부재(不在)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이들이 눈앞에 나타나고 나서야 비로소 예전의 부재를 깨닫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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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 작년 말,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 사회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기본소득당 노동안전특별위원회와 직장갑질119에서 활동하는 노무사들이 2022년에 산재 청구된 자살사례들에 대한 업무상 질병판정서를 분석한 결과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나는 일본의 <과로 자살>을 국내에 번역 소개한 인연으로 초대받았다. 이 책이 일본에서 처음 출판된 1998년은 일본에서 자살자 수가 사상 처음 3만명을 돌파한 해였다. 한국도 외환위기를 겪으며 자살률이 치솟았던 해였다. 과로 자살은 업무 중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자살에 이르는 것을 뜻하며, 과로사의 일종이다. 2019년에 번역서를 내면서 국내 과로 자살 현황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었는데, 이번 토론회는 빠진 퍼즐 조각을 찾아 넣는 소중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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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필수의료 떠받치는 일차의료 심장판막증 수술과 심부전, 대장암. 아버지는 오랫동안 대학병원 단골손님이었다. 외래진료 날이면 아침 일찍 들러 검사를 하고, 오전 오후 여러 진료과를 순례했다. 그나마 같은 날짜로 맞출 수 있다는 것이 다행. 자식들은 출근을 해야 하니 아버지와 어머니, 두 노인이 서로를 의지하며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병원을 왕래했다. 하지만 보조기 없이 걷기 힘들어지면서, 어머니 혼자 외래를 방문하여 대신 상담과 처방약을 받아오게 되었다. 그럴 바에야 진료기록을 옮겨와서 가까운 동네의원에 다니시라고 몇번이나 이야기했지만,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중병이고 약이 많아 복잡하기 때문에 동네의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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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그저 숏컷일 뿐인데 황송한 ‘페미’ 대접 어릴 적에 엄마는 항상 양 갈래로 머리를 땋아주셨다. 변화는 초등학교 입학 후에 일어났다. 자기 이야기가 지면에 실린 것을 알면 펄쩍 뛰겠지만, 두 살 터울인 오빠는 어릴 적 심한 밥투정꾼이었다. 엄마가 옆에서 일일이 “숟가락 들어, 입에 넣어, 씹어, 삼켜” 잔소리를 해야 겨우 밥을 먹었다. 결국 엄마가 먹여주다시피 해서 학교에 보내고는 했는데, 이제 아이 둘을 한꺼번에 등교시키려니 양 갈래 머리를 땋는 것은 엄마에게 너무나 큰 도전이 되었다. 그리하여 첫 방학과 함께 나의 ‘숏컷’ 인생이 시작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초등학교 1학년 페미’의 탄생 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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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시기상조’ 뒤에 사람 있어요 빠른 시일 내에 법률이 제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으로 논문을 끝맺었다. 2003년 ‘노동자의 죽음은 기업의 살인이다’라는 구호와 함께 시작된 ‘기업살인법 운동’의 진화를 분석한 논문이었다.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거치면서 기업에 책임을 묻는 사회적 요구가 거셌지만, 이러한 목소리를 ‘제도’로 만들어낼 수 있는 진보적 정당 정치가 허약하다는 것이 당시 우리 연구팀의 진단이었다. 영국과 캐나다에서 노동 친화적 정당이 희생자 단체, 노동조합과 함께 입법에 나섰던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려워보였다. 2017년, 고 노회찬 의원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지만, 논의도 못해보고 폐기된 것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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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생로병사 해탈한 존재, 그의 이름은 올해 합계출산율이 0.7명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항상 핵심을 벗어나는 정책만 내놓던 정부가 이번에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자녀 돌봄의 부담을 낮춰서 출산을 유도하려 해도 가사도우미를 구하기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드니, 이주노동자를 데려와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하고 월 급여를 100만원 이내로 한다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법안은 철회되었지만 사업 자체는 시행된다. 지난 1일 국무조정실은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추진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송출 국가와의 협의를 거쳐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100명 규모로 시작할 예정이다. 사업체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여 서비스 신청 가구로 파견하는 방식이라 안타깝게도(!) 최저임금제도나 근로기준법을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원래의 목표, 즉 ‘저렴한 비용’이 빛을 잃을까 우려한 정부는 시간당 1만5000원 내외인 현재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성별이나 국적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했음에도 정부가 앞장서 꼼수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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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유급 병가,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 3년 반 전. 지금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코로나19 유행 초기로 시계를 되돌려보자. 회사나 학교, 심지어 방문했던 식당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무조건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에 머물렀다. 회사에서도 눈치는 줄지언정 출근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확진이 되면 입원·격리 기간 동안 정부가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직원에게 유급휴가를 제공한 사업주에게도 일부 비용을 지원했다. 이내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는 정부의 5대 생활 방역수칙 중 하나가 되었다. 의심 증상이 있지만 노동자들이 쉽사리 일을 중단할 수 없거나 작업장 내 방역 조치가 미흡했던 콜센터, 물류센터 등에서 유행이 시작되어 지역사회로 급속히 확산되자, 병가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누려보지 못한 ‘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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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환상 속의 그대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서태지와 아이들 ‘환상 속의 그대’) 발표된 지 30년이 지난 노래인데도 적재적소의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된다. 정신적으로 강인할 뿐 아니라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신체적 역량을 갖춘 한국의 청년 여성들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가 그런 순간이다. 이를테면, 파충류와 조류에서는 종종 관찰된다지만 인간 여성이 단성생식으로 출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 한국 여성들은 이미 이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영아 유기, 영아 살해 같은 끔찍한 사건 보도에 어떻게 줄곧 ‘친모’만 등장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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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밀실 거래가 아닌 사회적 논의로 어린이 환자, 중증 응급환자들이 진료받을 곳을 찾지 못해 거리를 떠돌다 사망하는 사례들이 속속 알려지면서 대책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도 커졌다. 특히 서울에서마저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서 정부의 위기의식도 더 커진 듯하다. 진단과 처방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결국 문제는 한 가지 이슈로 수렴 중이다. 바로 의사 인력이다. 어떻게 하면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에서, 지방 병원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들 것인지가 고민이다. 그동안 채택해왔던 주된 방법은 ‘보상’이었다. 이를테면 필수의료 분야의 건강보험수가를 인상하거나, 지방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급여를 높게 책정하는 조치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연봉 4억원에도 의사를 구할 수 없다는 뉴스가 화제에 오른 것이 몇년 전이었는데, 그 숫자는 5억, 6억원으로 가파르게 올라 최근에는 연봉 10억원의 채용공고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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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코로나19, 이제 성찰의 시간으로 유행이 시작되고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기 어려웠다. 관을 차곡차곡 쌓아두거나 구덩이를 크게 파서 시신을 한꺼번에 매장하는 모습이 신문 1면을 장식했다. 병상이 모자라고 의료인이 부족했다. 특히 간호사 부족이 심각해서, 퇴직한 이들에게까지 동원령이 떨어졌다. 치료법이 확실하지 않았다. 의사들은 절박한 심정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퀴닌이나 과산화수소 같은 의약품을 시도해보기도 했고, 저명한 의학잡지들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논문들을 쏟아냈다. 젊은 환자들이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급작스레 상태가 악화되기도 했고, 어떤 환자들은 냄새를 못 맡는 증상이 몇 주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손을 씻어야 한다, 좁은 공간에 밀집하지 말아야 한다고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권고했다. 당연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위험이 과장되었다며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하고, 유행의 파도마다 ‘이제 피크는 지나갔다’며 근거 없는 안심을 만들어내는 정치인도 있었다. ‘독일인이 바이러스를 몰고 왔다’는 거짓 선동을 확산시키는 신문도 빠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