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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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지게 공동 구매를 제안하며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가 좌편향이라며 새로운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을 추진했다. 역사를 정권 입맛에 맞게 재구성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학계와 시민사회의 비판이 거셌다. 사안의 중대성과 별개로 당시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작은 뉴스가 하나 있었다. 은퇴한 노교수가 국정 역사교과서의 대표 필진으로 초빙된 사실이 알려지자, 제자들이 대거 몰려와 그를 만류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예정된 기자회견에 불참하기까지 했다. 그의 정치색이나 학문적 역량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었지만, 스승의 잘못된 결정을 말리기 위해 모여든 제자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고 흥미로웠다. 그동안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장면 아닌가. 결국 성추문 때문에 사퇴하는 어이없는 결말을 맞기는 했지만, 공적 활동을 하는 사람일수록 저런 종류의 ‘안전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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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전태일에게 진 빚 갚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이였고, 그동안 봐왔던 것은 앳된 청년 시절의 사진뿐이다. 그래서 그가 1948년생이고, 살아 있다면 이제 곧 팔순을 바라볼 나이라는 사실이 도통 믿기지 않는다. 1970년 11월13일의 세상과는 그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다. 1970년만 해도 일하는 사람 중에서 농림수산업 종사자 비율이 50%에 달했다. 지금은 그 비중이 5%가 채 안 된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산업사회로 바뀌었다. 노동자 규모가 크게 늘어났을 뿐 아니라 1970년대 통계분류에는 없었던, 예컨대 ‘정보통신업’ ‘과학기술전문,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 같은 산업군, 새로운 업무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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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차별적인 ‘합리성’ 지난 10월2일, 시민단체들이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의료급여 본인부담 체계 개편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그동안 의료급여 1종 수급자는 외래진료를 위해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마다 의원은 1000원, 병원과 종합병원 1500원, 상급종합병원 2000원, 약국 500원을 부담해왔다. 그런데 개편안에는 이러한 정액 부담금을 각급 의료기관별 진료비의 4%, 6%, 8%, 2%라는 정률제 방식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부 보도자료에 의하면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이러한 결정은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비용 의식이 점차 약화되어 과다 의료이용 경향”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첨부된 자료에 의하면 의료급여 수급자의 1인당 연간 진료비는 735만원으로 건강보험(건보) 가입자 219만원에 비해 3배 이상 많고, 외래진료 일수도 건보 가입자에 비해 1.8배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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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의료대란, 누가 막을 수 있나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영국의사협회지에 도발적인 논문 한 편이 실렸다. 민주주의가 건강에 이롭다는 내용이었다. 어쩐지 그럴 것 같기는 하지만, 그동안 이를 실증 자료로 보여준 연구는 거의 없었다. 논문은 170여개국 자료를 이용해 국민소득, 소득불평등 정도, 공공지출 규모 등을 보정한 상태에서도 민주주의 수준이 높을수록 평균수명이 길고 모성 사망률과 영아 사망률이 낮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때 민주주의 수준은 미국 프리덤하우스가 산출한 지표를 활용했다. 프리덤하우스는 1972년부터 설문조사를 통해 선거 절차와 다당제, 사회적 소수자 집단의 정부 참여, 집회·표현·결사·교육·종교의 자유, 법치, 자유로운 경제활동, 기회의 평등 같은 항목들에 대해 국가별로 점수를 매기고 그 결과에 따라 ‘자유’ ‘제한적 자유’ ‘부자유’ 세 그룹으로 국가들을 분류해왔다. 한국은 첫 조사인 1972년 ‘부자유’로 분류되었다가 이후 ‘제한적 자유’ 상태를 이어오다 1987년 이후 비로소 ‘자유’ 국가가 되었다. 사실 이 논문은 엉성한 방법론과 과도한 해석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건강결정요인으로서 정치의 역할, 건강과 정치를 잇는 기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보건학자들의 관심을 촉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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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정치를 정쟁으로 만들 때 잃는 것 처음에는 평범한(?) 입시 비리 사건인가 싶었다. 이것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귀결될 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나씩 실체가 알려지고, 서로 무관해 보였던 일들, 문화·체육, 경제, 외교·안보 정책, 공직자 인사, 세월호 참사 대응에 이르기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개별 사건들이 하나의 거대한 배후로 연결되었음이 드러났을 때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2016년 겨울,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게 만든 것은 특정한 정치 성향도, 고도의 정치적 계산도 아닌, 상식과 양심을 지키려는 소박한 열망이었다. 국민이 선출한 공직자가 그 어떤 책임과 권한도 없는 개인에게 휘둘려 국가정책을 결정하고, 그것이 일부 개인들의 사적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비판하는 데 무슨 거창한 이론이 필요하겠나. 대단히 한심하고 어처구니없는 뉴스의 연속이었지만, 그 때문에 좌절하지는 않았다. 이게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 이를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널리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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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상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빠르게 흐르는 강가에 서 있는데 물에 빠진 사람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요. 강물에 뛰어들어 그를 물가로 끌어올린 다음 인공호흡을 하죠. 그가 숨을 쉬기 시작하자마자 또다시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이 들려요. 또다시 강에 뛰어들어 구조하고 인공호흡을 하는데, 그가 숨을 쉬기 시작하자마자 또 다른 구조 요청이 들립니다. 그래서 다시 강으로 들어가 손을 뻗고, 잡아당기고, 인공호흡을 하고, 숨을 쉬게 하고, 또다시 구조 요청, 이게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어요. 저는 뛰어들어 사람들을 끌어내고 인공호흡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상류에서 누가 사람들을 밀어 넣고 있는지 알아볼 시간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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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전문직 윤리와 노동권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발표로부터 촉발된 ‘의·정 갈등’이 진정될 기미는커녕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진료 현장을 떠나 있던 전공의들에게 정부가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며 의대 교수들이 휴진을 결의했고 대한의사협회도 파업을 고려 중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은 ‘의·정’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시민들의 처지를 내다본 조상의 혜안이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 선서는 ‘의사와 사회’ 문제에 대한 지침이 되지는 못한다. 사실 히포크라테스 시절에는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던 문제였다. 오늘날 의사들은 그때와 달리 국가와 시장에 의해 구성된 사회적 조직 안에서 일한다. 공공이든 사립이든 병원에서 ‘피고용인’으로 일을 하고, 독립적인 개원 의사라 해도 건강보험, 의료법을 비롯한 각종 사회적 규제 안에서 진료를 한다. 뿐만 아니라 의사 양성 교육과 의료 서비스의 질적 표준에서 연구·개발에 이르기까지, 의료의 모든 영역은 ‘사회적으로’ 통제된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타 피고용인이나 자영업자들과 달리 의사들은 전문직으로서 사회 내에서 상당한 자율성과 특권을 갖는다. 여기에는 그러한 자율성과 특권을 타인의 복리, 즉 환자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계약’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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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지켜야 할 명예라면 4월28일은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날이다. 매년 세계 곳곳에서 추모 행사가 열리는데, 국내에서도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이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거행한다. 이는 불명예스러운 시상을 통해 기업의 책임과 경각심을 촉구하고,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행사로, 2006년부터 매년 시행해 왔다. 20년이 되어가는 유서 깊은 행사이지만, 이를 계속할 수 있을지 주최 측의 고민이 깊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만들어졌겠다, 이제 굳이 이런 행사를 할 필요가 없어져서 그런 것이라면야 좋겠지만, 그럴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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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20년 드라마의 비극적 대단원 20년 전 바로 오늘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날이다. 소박한 교외 식당에 친구들과 모여 앉아 숨죽이며 TV 화면을 지켜봤다.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민주노동당 9~12석’이라는 뉴스가 화면에 등장했다. 다 함께 환호했다. 내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것을 알고 있는 지인들의 축하 문자, 전화가 이어졌다. 내가 당선된 것도 아닌데! 민주노동당 당원이든 아니든, 한국 정치사의 기념비적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반공이데올로기가 진보정당의 출현을 가로막았다. 어려운 시작 이후에도 민정당과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거대 양당의 치열한 접전 속에서, 진보정당은 매번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정책 공약도 ‘사표(死票)’ 우려 앞에서 번번이 힘을 잃었다. 그런데 17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1인 2표제가 도입되었다. 최소한 비례명부에서는 정치공학적인 고려 없이, 사표 걱정 없이 지지 정당에 투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비례명부에서 무려 270만표, 13%가 넘는 표를 얻었다. ‘노동자 도시’ 울산, 창원에서 당선된 지역구 의원 2명과 비례의원 8명, 처음으로 원내정당이자 제3당이 되었다. 가장 극적인 사건은 개표 막판에 일어났다. 10선 경력의 정치인 김종필이 비례대표 1번으로 나선 자유민주연합이 정당 득표율 3%를 채우지 못하면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했고, 그 자리를 민주노동당 비례 8번이었던 고 노회찬 후보가 차지한 것이다. 역사의 한 장이 바뀌었다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순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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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최선이자 유일한 대안, 공공이 미래다 얼마 전 일본의 ‘의료취약지 공공병원’ 견학을 다녀왔다. 인구가 채 3만명이 안 되고 노인 인구 비율이 40%에 달하는 농촌지역 시립병원들이었다. 이들 역시 의료인력, 특히 의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황은 훨씬 나았다. 우선 병상 150개, 그중에서도 급성기 병상은 50개에 불과한 아키타현 오모리 시립병원은 내과, 외과, 정형외과 전문의 13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외래는 이들 3개 과 외에도 신경과, 신장내과, 호흡기내과, 소아과, 비뇨기과, 안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재활의학과 등을 열고 있었다. 비결은 ‘파견’이었다. 아키타 의대에서 전문의들을 정기적으로 파견하여 주민들에게 필요한 외래 서비스를 제공했다. 병원 규모가 이렇게 작아도 위암과 대장암 수술을 직접 시행할 만큼 진료 역량도 탄탄한데, 이때 필요한 마취과 의사 또한 아키타 의대에서 파견해주었다. 영상 검사 역시 아키타 의대와 원격 진단 체계를 갖추고 판독 지원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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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든 자리는 알아도 난 자리는 모른다 연말에 독일 여행을 다녀왔다. 버스, 트램(전차), 지하철, 지역 일반열차, 광역 고속열차, 비행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낯설었던 것은 어디에나 유아차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대중교통, 특히 버스에서 유아차를 만나는 건 진짜 드문 일이다. 한국의 대단한 저출생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이건 이상한 일이다. 1990년대 말 처음 방문한 유럽 미술관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너무 많아 놀랐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는데, 현실은 그와 반대였다. 버스, 지하철, 기차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안 보이고, 유아차를 탄 아기들이 안 보여도 이들의 부재(不在)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이들이 눈앞에 나타나고 나서야 비로소 예전의 부재를 깨닫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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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 작년 말,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 사회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기본소득당 노동안전특별위원회와 직장갑질119에서 활동하는 노무사들이 2022년에 산재 청구된 자살사례들에 대한 업무상 질병판정서를 분석한 결과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나는 일본의 <과로 자살>을 국내에 번역 소개한 인연으로 초대받았다. 이 책이 일본에서 처음 출판된 1998년은 일본에서 자살자 수가 사상 처음 3만명을 돌파한 해였다. 한국도 외환위기를 겪으며 자살률이 치솟았던 해였다. 과로 자살은 업무 중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자살에 이르는 것을 뜻하며, 과로사의 일종이다. 2019년에 번역서를 내면서 국내 과로 자살 현황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었는데, 이번 토론회는 빠진 퍼즐 조각을 찾아 넣는 소중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