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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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의 사회의학 클리닉 의료정책에서 숙의 민주주의로 2005년 개봉한 <스타워즈> 에피소드 3편에서 은하공화국 원로원 의원 파드메는 쌍둥이를 출산하다 목숨을 잃는다. 영화를 보면서, 초광속 우주여행을 하는 세계에서 아이를 낳다 죽는다는 스토리가 말이 되냐며 빈정댔던 기억이 난다. 한국 산부인과에 데려왔으면 살았을 텐데, 그러면 제국 저항군의 구심점도 달라졌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분만 예정일을 한참이나 남겨둔 쌍둥이 엄마 파드메가 밤늦게 한반도 외곽 우주공간에서 진통이 시작됐다면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분만 뺑뺑이’와 비극적 결말을 전하는 뉴스가 좀처럼 끊이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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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의 사회의학 클리닉 수입된 신념, 방치된 여성건강 2019년 4월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놓았다. 벌써 7년 전이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7년이 흘러갈 줄은 몰랐다. 이제 임신중지 자체는 딱히 불법이 아니지만, 합법적 서비스를 받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필수의료를 외치지만, 정작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임신중지 약물은 여전히 한국에서 구할 수 없고, 임신중지에 대한 진료표준이나 건강보험 수가도 마련돼 있지 않다. 절박한 여성들은 여전히 의학적,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음성적인 임신중지 서비스에 몸을 맡겨야 하는 것도, 시기를 놓쳐 태아 살해나 유기로 처벌을 받는 것도 여성들이다. 코모도왕도마뱀처럼 여성이 단성생식으로 임신에 이르렀다면 모를까,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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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의 사회의학 클리닉 공중보건에 가장 큰 위협, 전쟁 어렸을 때는 전쟁이 세상의 종말과 같은 뜻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된장찌개에 봄나물 무침을 먹으면서 다른 나라의 전쟁‘들’을 생중계로 ‘시청’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제프리 로즈는 1992년 출판한 역작 <예방의학의 전략>에서 전쟁을 “공중보건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단언했다. 현대의 전쟁은 어느 질병보다 많이 그리고 빨리 사람들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덧붙였다. 전쟁의 바로 뒤에는 “자원과 서비스의 파괴와 해체, 그리고 피란민과 집 잃은 이들의 문제에 의한 이차적 공중보건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전쟁 준비, 무기 생산과 거래에 들어가는 비용은 주요 예방의학 프로그램을 모두 실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훨씬 초과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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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의 사회의학 클리닉 도둑맞은 취약지 드디어!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고 구체적 실행 방안을 담은 시행령까지 입법예고됐다. 느낌표를 덧붙인 것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했기 때문이다. ‘전공의 처단’이 담긴 계엄포고령으로 시작된 불법 내란의 종식과 더불어 의·정 갈등은 일단락되었지만, 기-승-전 의사인력 문제로 귀결되는 지역의료 상황은 좀처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역의사제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여러 대안 중 하나일 뿐이며, 해결해야 할 다음 과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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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의 사회의학 클리닉 ‘병원 너머’를 상상하기 ‘의료대란’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지만 흉흉한 소식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른바 필수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상황이 악화일로에 있으며 의료체계가 붕괴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비관적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방향에서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기존 의료체계에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만큼은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대체로 당장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혹은 응급의료 문제, 그렇기에 병원, 그것도 고난도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종합병원, 의료인력도 고도의 스페셜리스트, 즉 특정 영역에 전문화된 분과 전문의들이 정책적 관심 대상이다. 하지만 크고 화려한 건물도 일단은 탄탄한 기초공사로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병원체계는 1차 의료의 뒷받침 없이 작동할 수 없다는 점이 자주 간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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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정파적 진실 시대의 사회적 신뢰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현수막을 걸기 좋은 ‘목 좋은’ 장소들이 두세 군데 있다. 지난 몇년간 그곳에는 백신 음모론에서부터 부정선거 음모론, 계엄과 내란 옹호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헛소리를 담은 현수막이 쉬지 않고 걸렸다. 말도 안 되는 주장에 처음에는 한심하다고 혀를 찼지만, 점차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을 믿는 사람들이 ‘실존’하고, 심지어 구체적 행동에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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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대리전을 그만두자 새벽배송 서비스 이용자 2000만명에 들지 못한 1인으로서, 이 논쟁이 이렇게 뜨거울 일인가 깜짝 놀랐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이 노동자 과로와 야간노동을 줄일 수 있도록 자정~새벽 5시 사이의 초심야 시간 배송을 제한하자고 제안하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사실 교대근무와 야간노동이 오랜 진화 역사에서 인간의 몸에 새겨진 일주기(circadian) 리듬을 파괴함으로써 여러 건강 문제를 초래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병원이나 소방서처럼 어쩔 수 없이 교대근무나 야간근무가 필요한 직종에서는 근무 시간 단축과 휴식 보장, 근무조 편성과 배치 조정, 수면 보조 기술 등 건강 피해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탐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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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21세기 탐관오리들 얼마 전, 자신의 SNS에 황당한 광고가 떴다며 친구가 휴대전화 화면 이미지를 보내주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 광고였다. 앗, 이럴 수가? 나도 보여줄 것이 있었다. 내 SNS에 뜬 것은 그라프 목걸이였단 말이다. 쇼핑몰 검색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성실하게 시사 뉴스를 보았을 뿐인데 이런 광고를 받아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재치 만점 알고리즘의 센스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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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인권을 가장한 특권 10여년 전, 구금시설 수용자의 건강권 실태 조사연구에 참여하면서 여러 구금시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접견실, 교정 공무원 사무공간, 의무실과 병사(病舍)는 물론 수용자들이 생활하는 거실과 작업장까지 두루 둘러보았고 수용자들을 직접 만나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죄를 지었으니까 사회로부터 벌을 받는 것이지만, 형벌은 어디까지나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어야지 인간 기본권 전체, 특히 건강권을 박탈해서는 안 된다. 이는 국제적 규범이자 약속이다. 그럼에도 구금시설은 바깥 사회의 ‘최저 빈곤선보다 생활 수준이 높으면 안 된다’는 암묵적 원칙 때문에 여전히 열악한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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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산재는 노동체계 불평등의 바로미터 지난 주말, 휴가에서 돌아온 대통령 지시에 따라 대통령실이 긴급 브리핑을 했다. 앞으로는 산재 사망 사고를 대통령에게 직보하라는 것, 고용노동부가 산재 사고 방지를 위한 조치 사항을 다음 국무회의에서 보고하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7월29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산재 대책을 두고 1시간 넘게 토론하는 모습이 생중계되기도 했다. 노동건강연대를 비롯한 노동·시민 단체들이 20년 넘게 줄곧 제기해왔던, 하지만 응답이 없었던 노동자 사망 문제가 이렇게 정부 최고기구에서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약간 감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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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공공병원은 팝업스토어가 아니다 지난 6월 말, 대한의사협회는 정례 브리핑을 통해 진보당 전종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재정법’과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비판 의견을 내놓았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지방의료원 신·증축 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지방의료원이 재난이나 감염병 대응 같은 공적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에 대해 국가가 보전해주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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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어허, 믿음이 부족하다 대선이 마무리됐다. 내란으로 촉발된 대혼란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겨우 한 단계가 끝났을 뿐이다. 멀쩡한 ‘민주주의’와 ‘공화국’으로 향하는 길에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고 높다. 종교 개혁도 그중 한 가지다. 헌법 제20조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고 천명하고 있다. 천지신명 하늘님을 믿든, 하나님과 예수님을 섬기든, 단군 조상을 모시든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지구가 6000년 전에 만들어졌다, XX 염색체를 지닌 인간 여성이 단성생식으로 XY 염색체의 인간 남성을 출산했다는 기적을 믿고 따르는 것도 각자의 자유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기괴한 믿음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심지어 국가 제도를 통해 이를 강제하려는 것은 헌법에서 정한 종교의 자유를 벗어나는 일이다. 헌법에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점이 분명히 기술돼 있다. 그런데 특정 종교, 구체적으로는 개신교가 이 선을 넘고 있다. 직접 정당을 결성해서 정치에 뛰어들고, 세속의 법과 제도에 일일이 간섭해 영향력을 행사하며, 교육과 복지 사업을 통해 국가의 공적 자원을 전유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