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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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조선 왕조에 저항·과거 응시 거부?…고려 수도의 ‘만들어진 이미지’ 절개 지키려 은거 ‘두문동 72현’성균관 학생들 ‘과거 보이콧’설지역에 애착심…개성 상인 전통일제강점기에도 뭉쳐 빛 발해 당시 유생들, 고려 왕조도 비판조선도 초기엔 유화적 태도응시 금지는 역사적 사실 아냐 인구 급감에 개성인들 위기의식한양 선비들은 고려 유적에 흥미중앙·지역 교차 ‘로컬리티’ 구축 지금은 북한에 속하는 고려 수도 개성에 대해서는 오래된 이미지가 있다. 조선의 건국에 저항한 개성인들이 조선시대 내내 과거 응시에서 불이익을 받으며 차별대우를 받자 상업에 몰두했고, 그 결과 매우 훌륭하고도 강력한 상업적 전통을 지니게 됐다는 것이다.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공정을 위해 도입한 과거제도의 역설…끊임없이 의심받은 공정 고려 말, 대대로 고위 관직을 지닌 뼈대 있는 가문에서 나고 자란 민적(1270~1336)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에는 대개 절에 들어가 승려에게 글을 배웠기에 민적 역시 열 살 무렵에 절에 들어갔는데, 학업을 시작하자마자 타고난 총명함으로 주변의 기대를 한껏 모았다. 그러나 총명함보다 더 주변의 이목을 끈 것은 그의 범상치 않은 미모였다. 날 때부터 외조부를 감탄시킨 민적의 외모는 ‘눈썹이 그린 듯하고’, ‘풍채가 사람을 감동시킬’ 정도여서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신인(神人)과도 같았다’.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유수’ 같은 인간, ‘표식’이 된 나무…오래가는 것에 대한 경외 나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닌옛사람들이 공간에 부여한 의미딜쿠샤 저택 앞 은행나무 고목길흉사를 예고했다는 믿음도 대를 거듭하는 영원한 계승이란상징성을 가진 아름드리나무엔인간 공동체의 염원이 담겨있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개천이 있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 같은 멋진 정경이면 좋았겠지만, 1980년대 서울 변두리에서 그런 경치는 기대할 수 없었다.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선조의 임진왜란 트라우마에 풍수가 결합…동묘의 탄생은 ‘힙’하지 않다 조선 태조가 한양도성 쌓을 때‘허약한 동쪽’ 큰 문제 안됐지만임진왜란 직후 수면 위로 거론 참전 명장수들 관우 사당 추진에전란 책임 의식한 선조, 풍수 활용“지세 보완하려면 동쪽에 지어야” 조선 왕들 왕릉 갈 때 으레 방문명나라에 대한 의리 되새긴 공간 이중환(1690~1756)은 <택리지>에서 한양도성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조정에서 한양에다) 외성을 쌓으려고 했는데, 둘레의 범위를 미처 결정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큰 눈이 내렸다. 그런데 바깥쪽에만 (눈이) 쌓이고 안쪽에는 녹아버렸다. 태조가 이상하게 여겨 눈을 따라 성터를 정하라고 명하였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성 모습이다. 비록 산세를 따라 성을 쌓기는 하였지만, 정동쪽과 서남쪽이 낮고 허하다. 게다가 성 위에 작은 담을 쌓지 않았고 해자도 파지 않았다. 그래서 임진년과 병자년 두 난리 때에 모두 지킬 수가 없었다.”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고려인 시각서 ‘한양 풍수’ 비판…첫 조선인들 ‘남산 뷰’로 맞섰다 세종 때 최양선 “경복궁의 백악은 주산 아니다”…창덕궁 서편을 궁궐 옮길 ‘혈 자리’로 짚어태조·태종 대 관원들은 “앞뒤로 석산이 험하고 물길 말랐다” 한양에 대해 부정적 평가 일색개경 기준으로 보는 고려인 관점…조선서 성장한 이들은 남산에 올라 ‘새 프레임’으로 접근 남산에 있는 서울타워에 올라서 도심 방향을 내려다본다. 빽빽한 고층 빌딩 숲 사이로 멀리 북한산에서부터 뻗어 내리는 푸르른 산세가 창덕궁·창경궁, 종묘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 보인다. 우뚝 솟은 백악과 그 아래 푸른 지붕의 청와대와 경복궁 역시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종묘까지 이어지는 그 수풀의 풍성한 양감에는 미치지 못한다. 1433년(세종 15), 바로 그 관점에서 한양의 주산에 대해 딴지를 건 이가 있었다. 최양선, 풍수를 공부해 관련 관청에서 일한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난세, 죽음과 죽임의 벌판에서…왕건은 이 살생의 정당성을 고민했다 후백제 건국 전 이미 시작된 혼란왕건의 마지막 전투까지 50년 세월재해와 기근 반복에 도적 떼 창궐 삼한 통일을 목표로 한 전쟁 속에수많은 생명의 희생 번뇌한 왕건“살생 원하지 않지만 자비는 재앙” 승려 이엄의 답변은 ‘제왕의 길’다만 백성을 불쌍히 여기라 당부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 용맹한 함성이 나니와 연안을 가로지른다. 싸우자. 싸우자. 그것이야말로 구원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함성이 사람들을 고무한다. 전국시대를 연 오닌의 대란으로부터 어느덧 백 년, 전국 방방곡곡 전쟁이 없는 땅은 없어 수많은 집들이 생겨나고 또한 사라져갔다. 기아와 질병, 전쟁은 … 현세를 고통으로 채웠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힘차게 전진하라, 싸우다 죽으면 극락왕생이 보장된다.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이다! 함성은 끝도 없이 되풀이되었다.”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왕의 정통성 저격…개국공신의 후예는 벼슬을 가질 수 없었다 조선 정치의 DNA 1485년(성종 16) 가을, 서른을 갓 넘긴 남효온(1454~1492)은 개성 시내의 한 집터 앞에 멈춰 섰다.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남재의 저택. 이제 농부가 경작하는 밭으로 변해 있었으나, 그가 말을 오르내릴 때 딛던 바위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곳에서 남효온은 쓸쓸하게 다음과 같은 시를 읊조렸다. “오백 년이 끝나고 성군을 만나니/ 구정공(남재)은 그날 풍운의 만남처럼 성군과 만났구나/ 처량한 옛집이 송악산 아래에 있어/ 오세 손이 베옷 입고 찾아왔다오”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박완서가 경고한 ‘소설과 역사의 혼동’…이야기 너머 ‘맥락’을 질문해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속 박완서소설 ‘단종애사’ 사실로 받아들여‘역사를 잘 안다’ 착각했다고 회고 대중의 역사 인식, 소설·영화 기반장면 재현보다 경계해야 하는 건영웅 서사 등 역사 단순화한 구도 철든 후부터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소설을 깔봐서가 아니라, 한번 붙잡으면 정신을 못 차리고, 읽고 나면 한동안 그 세계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서 그랬다. 한번은 자습 시간에 선생님이 반 친구 한 명을 호되게 꾸짖으신 적이 있었다. 교실이 시끌시끌했다는데, 나는 그런 소동이 일어난 줄 까맣게 모를 정도로 소설에 푹 빠진 일도 있었다.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모두 불러들여 보호한다…도성이 지켜야 할 것은 ‘백성의 마음’이었다 조선 개국 후 무신 출신인 태조는 현장 직접 지휘하고 크기도 결정성곽 둘레 길면 방비 어렵고 보수도 힘들어 ‘개경 나성’보다 짧게일부 문신들, 방어보다 민심 이반 걱정…국가의 존재 이유 되짚어 18.627㎞. 한양도성의 전체 둘레 길이다. 수치만으로는 그 크기를 체감하기 어렵기에, 답사 때면 개경의 나성(외성) 크기와 비교해서 어떨 것 같냐고 물어보곤 한다. 개경의 나성은 11세기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대비하여 건설했다. 그로부터 400년 후 건설된 한양도성은 개경 나성보다 클까, 아니면 작을까. 대답은 늘 팽팽하게 갈린다. 이 질문을 던진 최근 어느 모임에서는 한양도성이 작다는 쪽이 약간 우세하기는 했지만, 실상은 대다수가 선뜻 손을 들지 못할 만큼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정답을 말하자면, 한양도성이 개경의 나성보다 작다. 개성 나성의 둘레는 23㎞, 한양도성은 그것의 78% 수준에 불과하다. 조선을 건국한 이들은 왜 한양도성을 개경의 나성보다 작게 건설했을까?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경부고속도로·황리단길·보문단지…천년고도를 쌓아올린 삶들 얼마 전 경주를 다녀왔다. 요새 인기 많다는 ‘황리단길’ 구경도 할 겸, 104년 만에 6점의 신라 금관이 한자리에 모인다고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전시도 구경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경주를 찾았다. 신라 금관은 이전에도 띄엄띄엄하게나마 다 본 적이 있고 내 전공 분야도 아니라서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104년’ 만이라니, 이것은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서울이 곧 생존' 강박적 일극 체제, 600년이 지나도 우리 삶을 지배하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건국된 지 10년, 두 차례 왕자의 난을 겪고 새 임금이 즉위한 지 2년이 되던 1402년(태종 2), 의정부에서는 한 폭의 세계지도를 완성했다. 우리가 지금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라고 부르는 바로 그 지도이다. 서쪽으로 아프리카부터, 동쪽으로 일본까지. 유라시아 대륙 거의 전부를 담고 있는 이 지도에 대해 권근은 이렇게 설명했다.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천년 신라를 닮고 싶었던 고려, 이야기를 켜켜이 쌓았다 “언니가 꿈을 꾸었다. 뒷산에 올라 오줌을 누자 온 고을이 오줌에 잠기는 꿈이었다. 다음날 아침, 재밌는 꿈을 꾸었다며 얘기를 들려주는 언니에게 내가 그 꿈을 사겠다고 했다. 언니가 뭘 줄 거냐고 묻길래 아끼던 비단 치마를 주겠다고 했다. 흔쾌히 꿈을 팔고 신이 난 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보통 꿈이 아니거늘 아무것도 모르는 언니 같으니라고.’ 얼마 후 귀인이 집을 찾았는데 하필 옷자락이 찢어져 버렸다. 아버지가 언니에게 귀인의 옷을 꿰매라 했으나, 결국 언니 대신 내가 하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귀인과 정을 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