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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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모두 불러들여 보호한다…도성이 지켜야 할 것은 ‘백성의 마음’이었다 조선 개국 후 무신 출신인 태조는 현장 직접 지휘하고 크기도 결정성곽 둘레 길면 방비 어렵고 보수도 힘들어 ‘개경 나성’보다 짧게일부 문신들, 방어보다 민심 이반 걱정…국가의 존재 이유 되짚어 18.627㎞. 한양도성의 전체 둘레 길이다. 수치만으로는 그 크기를 체감하기 어렵기에, 답사 때면 개경의 나성(외성) 크기와 비교해서 어떨 것 같냐고 물어보곤 한다. 개경의 나성은 11세기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대비하여 건설했다. 그로부터 400년 후 건설된 한양도성은 개경 나성보다 클까, 아니면 작을까. 대답은 늘 팽팽하게 갈린다. 이 질문을 던진 최근 어느 모임에서는 한양도성이 작다는 쪽이 약간 우세하기는 했지만, 실상은 대다수가 선뜻 손을 들지 못할 만큼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정답을 말하자면, 한양도성이 개경의 나성보다 작다. 개성 나성의 둘레는 23㎞, 한양도성은 그것의 78% 수준에 불과하다. 조선을 건국한 이들은 왜 한양도성을 개경의 나성보다 작게 건설했을까?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경부고속도로·황리단길·보문단지…천년고도를 쌓아올린 삶들 얼마 전 경주를 다녀왔다. 요새 인기 많다는 ‘황리단길’ 구경도 할 겸, 104년 만에 6점의 신라 금관이 한자리에 모인다고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전시도 구경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경주를 찾았다. 신라 금관은 이전에도 띄엄띄엄하게나마 다 본 적이 있고 내 전공 분야도 아니라서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104년’ 만이라니, 이것은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서울이 곧 생존' 강박적 일극 체제, 600년이 지나도 우리 삶을 지배하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건국된 지 10년, 두 차례 왕자의 난을 겪고 새 임금이 즉위한 지 2년이 되던 1402년(태종 2), 의정부에서는 한 폭의 세계지도를 완성했다. 우리가 지금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라고 부르는 바로 그 지도이다. 서쪽으로 아프리카부터, 동쪽으로 일본까지. 유라시아 대륙 거의 전부를 담고 있는 이 지도에 대해 권근은 이렇게 설명했다.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천년 신라를 닮고 싶었던 고려, 이야기를 켜켜이 쌓았다 “언니가 꿈을 꾸었다. 뒷산에 올라 오줌을 누자 온 고을이 오줌에 잠기는 꿈이었다. 다음날 아침, 재밌는 꿈을 꾸었다며 얘기를 들려주는 언니에게 내가 그 꿈을 사겠다고 했다. 언니가 뭘 줄 거냐고 묻길래 아끼던 비단 치마를 주겠다고 했다. 흔쾌히 꿈을 팔고 신이 난 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보통 꿈이 아니거늘 아무것도 모르는 언니 같으니라고.’ 얼마 후 귀인이 집을 찾았는데 하필 옷자락이 찢어져 버렸다. 아버지가 언니에게 귀인의 옷을 꿰매라 했으나, 결국 언니 대신 내가 하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귀인과 정을 통하게 되었다.”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풍수 천 년의 도읍’ 한양도 600여년 전엔 못 미더운 ‘새 수도’였다 2026년 새로운 시간의 문턱에서, 새로운 지면을 펼쳐나갈 생각을 하니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앞으로 이곳에서는 한국의 역사 공간과 문화유산을 글감으로 삼아 지금의 우리를 낯설게 비춰볼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역사학은 단순히 박제된 기억의 나열이 아니다. 익숙한 현재를 낯설게 함으로써 오늘을 다르게 상상하게 하는 ‘역사 상상력’의 힘이야말로 우리가 지녀야 할 도구다. 그 첫 질문으로,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이 과연 처음부터 당연했는지 묻고 싶다. -
역사와 현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12조 상백 이상백(1904~1966)은 농구 체계를 갖추고 올림픽 위원으로 활동한 체육계 명사로 익숙하다. 그러나 그는 학자로서도 명망이 높은 인물로, 특히 조선사와 관련된 많은 역사학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중에서도 이상백의 정도전 연구는 연구사적으로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 오늘날 우리가 으레 사용하는 ‘왕자의 난’이란 명칭이 그의 연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내내 이 사건은 ‘무인란’(무인년에 일어난 반란)으로 불리며 정도전이 주도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상백은 1935년 ‘진단학보’에 발표한 <삼봉인물고>를 통해, 이 사건의 실체가 정도전의 역모가 아니라 정안군(훗날의 태종)이 일으킨 쿠데타였음을 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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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과거를 지우니 미래가 사라졌다 한밤중, 발굴보고서 하나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탄식했다. ‘아, 이거 보존해야 했는데!’ 10여년 전 읽었을 때에는 미처 몰랐던 중요한 지점들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그 보고서는 1990년대 후반, 아파트 건설을 앞두고 구제 발굴을 한 모 지방 사직단에 대한 기록이었다. 지방의 사직단은 원형이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단은 거의 다 사라졌고, 위치도 잊힌 곳이 많다. 그나마 ‘사직구장’과 같이 지명으로라도 남았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그 의미도, 장소도 잊혔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분명한 문헌 기록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사직단은 단의 크기와 높이가 굉장히 중요해서, <국조오례의>와 같은 예서에 변경해서는 안 되는 원칙으로 그 제도가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지방마다 설치한 사직단의 크기는 <국조오례의>에 실려 있지 않다. 위치와 구성에 대한 소략한 내용만 있을 뿐, 단의 크기와 높이를 어떻게 한다는 내용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조선에서 지방의 사직단들을 통일 규격으로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차라리 그 규정을 넣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 때문에 지방의 사직단들은 크기도, 높이도 제각각일 뿐만 아니라, 누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크기의 사직단을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는 게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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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문제는 짝다리가 아니다 얼마 전 모 방송사 TV 뉴스에 짧은 인터뷰를 했다. 평소 개방되지 않는 종묘 영녕전의 신실에 김건희씨가 함부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곳이 어떤 곳인지, 왜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지를 설명해달라고 요청받은 것이었다. 나름 길게 설명했으나 뉴스에는 10초 정도만 반영됐다. “조선시대 때에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던 장소였을 뿐 아니라 굉장히 신성하게 관리가 되던 곳입니다. 이런 곳을 공식적인 절차도 없이 사적으로 마구 이용을 했다는 건 상당한 문제가 (있습니다).” 큰 틀에서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정밀하지는 않다는 생각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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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기술과 돌봄, 정조의 능행 “농장다리 아래 그늘이 진 데가 있었어. 한여름이면 노인네들이 거기 모여서 시조창을 하면서 노닥노닥했지. 거기에 제방이 있는데, 내가 그걸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걸 참 좋아했다.” 아버지가 문득 풀어놓은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다. “하루는 내가 거길 기어 올라가다 떨어진 거야. 그랬더니 한 노인네가 허리춤에서 주섬주섬 환약 같은 걸 꺼내서 먹여줬다. 아마도 청심환 아니었나 싶어.” 아버지의 이야기 마무리는 약간 씁쓸했다. “요즘 같으면 어디 그렇게 돌봐줬겠냐? 그 시절엔 그래도 그런 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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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외환위기와 한국학의 전산화 1997년 말 대한민국을 강타한 외환위기를 기억할 것이다. 이 위기의 시대, 정부가 주도한 정보통신 분야 지원은 2000년대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었다. 특히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균질하고 빠른 인터넷망은 현재 한국의 인상을 만드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느린 인터넷이나 와이파이망에 분노하는 밈, 외국인이 한국의 빠르고 편리한 정보통신망에 감탄하는 장면 같은 것은 이제 진부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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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강무장과 생태계 강원도 철원은 조선 초에 강무장으로 쓰인 적이 있다. ‘강무(講武)’란 ‘무예를 강습한다’는 뜻으로 군사훈련 전반을 의미한다. 조선에서는 사냥 의례를 강무, 진법훈련 의례는 대열(大閱)이라고 했다. 사냥 문화는 몽골의 영향으로 고려 후기에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조선 건국 후에도 이어져 태조나 태종도 꽤 사냥을 즐겼다. 그러나 국왕의 유희나 측근 정치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태종은 이를 반박하고 ‘강무’라는 정규 군사 의례로 정비했다. 짐승을 잡아 종묘에 천신해 보본(報本·근본에 보답한다)을 실천하고, 백성들의 농사를 망치는 해로운 짐승을 제거한다는 공익을 명분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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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11조 2009년부터 4년 동안 방영된 <화이트 채플>이라는 영국 드라마가 있다. 런던의 동네 지명인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드라마의 첫 시즌은 ‘잭 더 리퍼’ 사건의 모방범 이야기로 시작한다. 담당 경찰서의 수사반장 조셉 챈들러와 그의 조언자 에드가 중심인물이다. 에드는 경찰이 아니라 재야의 잭 더 리퍼 사건 마니아로서, 그가 평생 축적한 잭 더 리퍼 사건 관련 세부 지식은 조셉이 범인을 좁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잭 더 리퍼 사건 외에도 다양한 과거 범죄에 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어서, 두 번째 시즌의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준다. 이런 유용함을 고려한 조셉은, 세 번째 시즌에서 에드를 정식으로 경찰서의 기록관리원으로 채용하며, 과거의 범죄 기록을 정리하고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마침 이 시즌에서 과거와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 애매한 연쇄 살인 사건이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