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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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7조 인터넷에서 ‘서울 사람이 생각하는 시골’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지도가 있다. 한반도는 절반 남짓 그렸는데, 서울은 빨간색으로 크게 그렸다. 휴전선 이북 조금은 북한이고, 남쪽에서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저 시골이라고 퉁쳐버리며 모두 파랗게 색칠을 했다. 그래도 제주도는 귤이요,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표시했는데, 이 엉성한 와중에도 독도 옆에는 울릉도도 표현되어 있는, 제 딴에는 섬세한(?) 지도다. 보통 지도의 생명이라고 생각하는 정확성 따위는 무시한 이런 지도도 분석의 가치가 있다. 이런 것을 심상지도(Mental map)라고 하는데, 그린 이의 심상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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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왕건의 유언과 ‘공심’ 태조 왕건은 고려의 다른 국왕과는 위상이 완전히 다르다. 시조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고려 400여년 동안 반신반인 정도로 숭배를 받던 존재라 그렇다. 예를 들어 고려의 양대 축제라는 연등회와 팔관회는 태조 왕건에게 고하는 것으로 의례를 시작한다. 수도인 개경만이 아니라 지방 곳곳에 그 초상을 모신 진전이 있었고, 전쟁이나 지방의 반란 진압 같은 큰일이 있을 때면 이러한 진전에서 일이 잘되기를 기원하곤 했다. 왕건으로 이어지는 왕실 조상의 혈통도 신비화되었다. 건국 설화에는 당대 유행한 온갖 요소를 다 집어넣었다. 그래서 태조의 조상 중에는 산신도 있고, 명궁수도 있으며, 오줌 꿈을 꾼 할머니, 심지어 당나라 황제와 용왕의 딸도 있다. 또 도선만이 아니라 팔원이라는 풍수사까지 그 집과 그 고을의 풍수를 봐주며 왕업의 개창을 예언했다. 궁예처럼 미륵이라고 하지만 않았을 뿐 나머지 유행하던 요소는 다 넣었고, 고려 왕실은 용손을 자처했다. 왕권이 위태로울 때면 이런 혈통적 신비함에 기대는 이들이 더욱 극성했다. ‘태조가 시작했다’든가 ‘태조가 예언했다’는 등의 딱지가 붙은 일들이 늘어나고, 목전의 일들은 회피한 채 신비한 효과를 노리는 일들만 벌이는 경우가 많았다. 땅의 덕을 보완한다는 궁궐이 늘어나고, 새롭게 연 절, 거창한 행사가 많아졌다. 권력의 꼭대기에서 그런 사업을 좋아하니, 그런 종류를 찾아내서 건의하며 출세하는 사람들도 무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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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6조 대학원 시절에 금석문 강독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고대사 전공은 아니지만 대학원에서는 학부 때와는 달리 무엇을 새로 배우게 될지 궁금했다. 과연 학부 때와는 수준이 달랐다. 판독문을 준비해서 강독하는 것까지는 그렇게 다르진 않았지만, 교수님이 소장하고 계신 탁본을 직접 보면서 재판독을 해보거나 새로운 추정을 해보는 점이 색달랐다. 논란 많던 광개토왕릉비 역시 여러 탁본을 비교하고, 한 소장 기관에 가서 그 거대한 탁본을 펼쳐놓고 문제 구절을 판독해보기도 했다. 탁본 같은 예스러운 자료를 직접 만지고 보면서 공부를 하면, 잊어버린 감각이 자극을 받는다. 역사를 전공하면서는 도리어 무뎌진 소싯적의 호고적 취향과 덕후적 기질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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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매화 피는 철이면 생각나는 글이 있다. 소싯적 아르바이트로 읽은 이빈국(1586~1653)이라는 사람이 쓴 ‘매화설’이라는 글이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병자호란을 전부 겪고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는 격변기를 살아간, 좀 불우한 시대의 사람이다. 개인적 삶으로 봐도 그렇게 잘 풀린 인물은 아니었다. 음서로 능참봉(종9품의 미관말직)을 제수받아 관직 생활을 시작하긴 했으나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과거 급제를 못했기 때문인데, 초반 시험까지는 그럭저럭 붙었으나 꼭 막판 한고비를 넘지 못했다. 음서로 얻은 이러저러한 말직을 전전하던 차, 환갑에 접어드는 인생 말년에 드디어 이천현감이라는 그럴싸한 자리를 얻게 됐다. 지방 수령직 중에서도 현감은 종6품으로 가장 낮은 관직이긴 하지만 그래도 임금을 대신하여 한 고을을 다스리는 일이다. 천하의 근심을 함께하는 사대부에겐 자신의 경륜과 능력을 펴볼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시험장 정도는 되는 자리였다. 책에서 읽은 대로 좋은 정치를 펼치겠다며 벅찬 가슴을 안고 현감직에 나섰으나 현실은 각박했다. 뭔가를 미처 해보기도 전에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파직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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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5조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문해력을 ‘역사 리터러시’라고 지칭하고 틈나는 대로 그 규칙을 다듬어보는 중이다. 오늘은 그 규칙 제5조, 어쩌면 가장 중요할지 모르는 규칙 하나를 제시해보려고 한다. 바로 “역사에서 변화하지 않는 원칙은 딱 한 가지, 역사는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 명당 한양에 대해 짚어보겠다. 지금 서울의 사대문 안에 해당하는 한양은 명당일까? 고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곳이 개경을 보완해줄 명당이라며 남쪽의 서울이라는 뜻으로 남경으로 개창했다. 고려 말 사람들은 남경에 국왕이 머물러서 개경의 지덕(地德)을 왕성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우왕대·공양왕대에는 실행에 옮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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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김장과 낙천성 김치를 좋아한다. 김치찌개에 김치볶음밥을 놓고서도 깍두기를 곁들여 먹는 사람이다. 김장을 할 때면 6가지 이상을 담그고, 밥상에는 늘 3종 이상의 김치가 올라오던 집 출신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형제들은 나 정도는 아닌 걸 보면 그냥 타고나길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애정의 정도에 비해 담그는 데는 재주가 없다. 할 줄 모르니 친정에서 김장을 할 때도 채칼로 무채 썰기라든가 대야 옮기기, 양념 붓기 같은 단순 작업밖에 못했다. 그러나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딱 한 가지 재주를 갖고 있으니, 바로 간을 기가 막히게 본다는 것이다. 익었을 때 맛있을 정도를 가늠할 줄 아는 미각 말이다. 맛을 보고 싱겁다 짜다 운운하며 이러저러 지휘를 하면, 어른들이 투덜대곤 하셨다. 제 손으로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입만 살았다고. 그러나 어찌하리. 어른들 입맛은 둔해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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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영웅은 없다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가끔 유튜브 문화유산채널의 K-ASMR 국가무형문화재 시리즈를 찾아서 본다. 그렇게 찾은 동영상 중 하나가 명주짜기였다. 베틀에서 달가닥달가닥 명주 짜는 소리를 기대하며 튼 동영상은 바로 내 예상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베틀에 앉아 천을 짜는 첫 화면은 맛보기였을 뿐이고, 본격적인 내용은 누에를 기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자연 다큐멘터리처럼 뽕잎을 먹으며 누에가 성장해 고치를 짓는 장면부터 시작하더니, 인간의 온갖 작업이 이어졌다. 여럿이 모여 고치를 다듬고는 삶아서 실을 뽑아 물레에 걸어 실뭉치를 만든다. 그 후엔 서로 붙은 실을 분리하는 실째기 작업이 이어진다. 째기를 마친 실은 걸어서 말리고 가닥별로 실뭉치를 만든다. 아직도 끝이 아니다! 한 필의 길이로 실의 길이를 맞추는 베날기 작업, 그다음엔 그 실을 펼쳐 풀을 먹이고 말리는 베메기 작업이 이어진다. 베메기 작업을 하려면 한 필 길이의 실을 늘어놓을 넓은 공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여럿이 달라붙어 일일이 솔로 풀을 먹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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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분서갱유의 카르텔 2000년대 초반 일이다. 개성공단으로 남북 협력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모 방송국에서 개성을 직접 방문해 그 역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했다. 마침 내가 속한 연구 모임이 고려 개경을 연구하고 있었기에, 방송국에 여러 자문과 함께 북한 측 연구자 ㅈ씨를 만나서 연구 이야기를 들으라고 조언했다. ㅈ씨는 해방 후 개경 성곽 전체를 직접 조사하여 논문을 발표한 유일한 분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온 방송국팀이 전한 북한의 환경은 열악했다. 수시로 정전이 되는 바람에 촬영이 자주 중단됐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추천한 ㅈ씨는 자신의 박사논문 원고를 보자기에 싸 갖고 올 정도로 촬영을 적극 도왔다고 했다. 그 얘기에 모두 귀가 번쩍 뜨였으나, 그 논문을 구해볼 순 없었다. 보자기 원고가 유일본이었기 때문이다. “복사라도 해서 갖고 오시죠?” 한마디 했다가 나는 바로 깨달았다. 카메라 전기도 끊기는 마당에 어디서 복사를 해오나. 인문학 분야도 21세기의 연구는 종이, 펜만이 아니라, 전기나 복사기 같은 현대 문명이 있어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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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4조 얼마 전 우연히 육군사관학교 앞을 지나다 놀라운 조형물 하나를 보았다. 거대한 황금색의 신라 화랑 동상이었다. 신라 화랑을 계승한다는 걸 내세우기에 육사가 있는 곳을 화랑대라고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문 앞에 이렇게 거대한 동상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알고 보니 육사는 정문 이름도 화랑문이요, 연병장도 화랑연병장이며, 기숙사는 화랑관, 복지시설도 화랑회관이었다. 동상만 해도 정문 앞만이 아니라, 도서관 앞에도, 연병장 앞에도 있다. 심지어 1년에 한 번 여는 문예전의 이름도 화랑문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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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이럴 줄 몰랐다 바야흐로 1990년대. 베를린 장벽 붕괴를 시작으로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하나둘 무너졌다. 빨갱이 국가 중공과 수교도 했고 그 무렵 해외여행도 완전 자유화됐다. 대학가에는 ‘해외 배낭여행’이란 이름의 여행상품 광고가 곳곳에 붙었고, ‘어학연수’란 것도 유행했다. 아직도 촌스러운 구석이 없진 않았지만 세계화의 흐름을 빠르게 좇아가고 있다는 느낌의 시대였다. 그런 어느 날, 지도교수님을 찾아뵀다. 학부 때인지 석사과정 때인지도 까물까물한 꼬마 시절, 무슨 심부름 때문이었다. 그때 누군가 교수님 방문을 노크하며 들어왔다. 일본 T대의 한국사 교수님이, 사전 약속은 없었으나 한국 방문 김에 인사드리겠다고 온 것이었다. T대 교수님이라니, 당연히 자리를 비켜드려야겠다고 생각하던 터, 예상치 않게 지도교수님께서 “지금 학생이랑 상담 중이니 다음에 들러달라”며 문전 박대를 하시는 게 아닌가! 나 같은 학생이 뭐라고 T대 교수님을 박대하시나 싶은 데다, 그 교수님이 가신 후 내게 하신 말씀이 더 이상했다. 지도교수님은 어깨를 으쓱하시며 “요샌 T대 사람들도 한국사를 공부하려면 우리 과 학술지부터 챙겨 봐요”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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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3조 코로나19 전, 꽤 오랜 기간 구에서 운영하는 체육시설에서 매트 필라테스를 했다. 집에서 가깝지, 가격도 싸지, 시설과 프로그램도 얼마나 다양한지! 동네 사람들 모두 애용하던 곳이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곳에 오래 머무셨다. 셔틀버스를 타고 와서는 운동 조금 하고 목욕 길게 하고 여기저기 의자에 앉아 오래 담소를 나누시곤 했다. 특히 요즘 같은 무더위에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로비를 좀처럼 안 떠나셨다. 내가 다닌 매트 필라테스는 할머니들이 많았다. 거울과 가까운 맨 앞 가운데는 선생님 자리이고, 그 앞으로 비껴가며 네 줄 정도 회원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수업 시간 전 선생님 자리에 공용 매트 하나를 누군가 깔고, 각자 공용 매트 혹은 개인 매트를 갖고 와 자리를 잡는 방식이었다. 각 줄과 위치는 나름의 메시지가 있다. 맨 앞줄과 둘째 줄은 운동에 자신이 있거나 오래 했거나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이른바 ‘고인물’이라고 하는 터줏대감들이 차지하는 줄인데, 내가 다닌 곳에서는 이분들이 선생님을 향해 W자 대형으로 첫 줄과 둘째 줄에 자리했다. 셋째 줄이 무색무취한 편이라면, 선생님과 거리가 멀고 뒤에 아무도 없는 넷째 줄은 ‘나는 초보 혹은 절대 그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다’는 기운을 뿜는 사람들이 주로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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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와칸다 포에버? <블랙 팬서>를 봤을 때 일이다. 마블 영화는 챙겨보던 시절이기도 하고, 첫 아프리카계 영웅도 등장하지, 부산도 나온다지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 많았다. 더구나 고양잇과 계열의 영웅이 아닌가! 고양잇과로 변신하는 영웅은 무조건 옳다.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는 당황스러웠다. 물론 영화는 재밌게 보았다. 액션도, 무기도 멋있었고, 여장군과 전사들도 다 매력적이었다. 그렇지만 일단 ‘와칸다 왕국’은 도대체 뭔가 하는 의문이 들어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첨단 과학기술을 갖춘 부유한 국가라는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부족 연맹체 같다. 블랙 팬서가 되는 계승자는 바로 국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왕위 계승 때 주변 부족들이 모여 벌이는 싸움 의례를 통과해야 한다. 부계 혈통으로 바로 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싸워서 이기기까지 해야 하고. 저 동네의 왕위 계승 원리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우리나라의 건국 설화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저 동네는 아직 사로6촌인가? 아니지, 여기는 다섯 부족이니까 고구려나 부여 같은 5부로 구성된 건가? 국왕이 나왔으면 끝인데, 왜 매번 왕위 계승 때마다 싸움 의례를 펼치는 거지? 혁거세를 맞이하긴 했는데 아직 박·석·김, 세 성씨 사이에서 왕위가 돌아가던 것 같은 상태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