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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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21세기 복지자본주의, 금융과 복지의 결합 주식, 코인과 같은 투자에 온통 사람들의 마음이 쏠려 있다. 국정과제는 물론이고 간간이 나오는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 정부 정책에서도 금융시장과 투자가 갖는 위상이 다른 어느 것보다 높다. 많은 사람들이 금융시장에 미래가 있다고 여기고 ‘다 이루어질지니’ 하는 기대로 들떠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끊임없이 팽창해야 굴러갈 수 있는 자본주의 속성상, 의도적으로 거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새로운 위기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나아가 금융 부문의 주도권이 뚜렷해질수록 자산 소유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져, 새로운 차원의 불평등 세상이 펼쳐질 것이란 우려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노동소득을 아끼거나 빚을 내 투자하는 개미들을 자산 소유자라 말하기는 어렵다. 무산자에 가까운 이들은 그 격차를 예감하고 자산 소유자에 편입되기 위해 부지런히 애쓰는 것일 터이다. 세대를 불문한 투자 열풍에 한국 사회에서는 10~20대부터 노동자가 되기 이전에 이미 투자자가 되어버리는 조기 대중투자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잘 들여다보면 이런 금융의 팽창은 복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복지는 자본의 이윤 확보를 위한 특별한 재료이다. 국가가 재정을 대는 복지시장은 계속 커지는, 퇴출될 가능성이 별로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연금, 보건의료, 노인돌봄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금융자본은 노인요양시설 비즈니스에 진출했을 뿐 아니라 요양시설에서 보험상품을 팔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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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특고노동자 국민연금 보험료는 누가 내야 할까 대부분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잇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권은 일 자체뿐만 아니라 건강, 휴식, 돌봄, 일하지 못하는 시기의 소득보장 등 여러 가지 사회권과 깊숙이 연관돼 있다. 그런데 노동자와 노동권에 대해 말하면서도 멈칫하는 순간이 있다. 사실상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흔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가전제품 수리기사, 택배노동자, 헤어디자이너,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텔레마케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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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 미래를 안다는 것은 인간에게 무슨 의미일까? 이는 삶에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고, 분명 더 많은 행복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미래를 알기를 소원하며 미래를 전망하곤 한다. 그래서 점집은 성업 중이며, 알고 보니 권력자도 주술에 기대고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약한 존재이다. 사회적 차원의 전망은 조금 다르다. 특히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빠른 만큼 인구, 고용, 성장, 기술 변화, 노인빈곤율 전망을 중요하게 다룬다. 지난주에도 기획재정부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같은 사회보장 재정 전망을 포함하는 국가재정 장기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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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연금개혁, 세대갈등의 환상과 거짓말 몇달 전 국민연금 개혁은 여야 주요 정당 합의로 이뤄졌지만 이후 연금을 둘러싼 사회갈등은 줄어들지 않았다. 특히 언론은 국민연금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안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세대 간 불공평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길 계속 권하고 있다. “‘세대갈등’ 번진 연금문제…폭탄 떠넘기기 멈출 구조개혁 시급”이란 며칠 전 뉴스 보도가 대표적이다. 언론은 시민들이 세대별로 내는 돈이 같아야 공평하고, 앞세대 부양 책임은 폭탄이며, 연기금이 없으면 연금제도가 존립할 수 없는 것처럼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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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폭염은 누구에게 더 잔인한가 흔히 ‘살인적’ 더위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 말이 그저 비유가 아니라 진짜 사실이라면, 더위로 인해 사람들이 숨지는 일이 빈발한다면, 쉽게 입에 담을 수 없게 된다. 폭염 속에서도 건물은 올라가고, 물건은 운송되며, 마트 영업과 배달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는 것은 곳곳에서 사람이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다들 집에서 밥을 먹고 물을 마실 수 있고 쇼핑도, 금융도, 정치도, 이른바 사회적 합의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공사장에서, 마트에서, 밭에서, 도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폭염으로 쓰러졌다. 맨홀 아래에서 측량 작업을 하다가, 공공근로로 쓰레기를 줍다가, 마트에서 카트를 정리하다가, 공사장에서 아파트를 짓다가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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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쉬운 길의 함정 문제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것은 해결의 시작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징후로만 얘기되던 우리 사회의 균열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더 잘 드러난 것 같다. 이제 젠더와 세대에 따라 주요한 사회 문제에 관한 생각과 해결 방향에 대한 선호가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 여기에는 생각의 차이로만 해석할 수 없는 오해와 불신도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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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싸구려 자본주의와 이별해야 할 순간 21세기 들어선 후 사반세기가 지나가는 지금, 우리는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 이번 조기 대선은 우리 사회의 미래 경로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더워지는 날씨보다 더 뜨겁게, 여러 정치세력이 제각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복지·교육·노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온 제안들은 이 들끓는 용광로에 어떻게 녹아들어 어떤 결과물을 내놓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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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지금 절실한 건, 불평등과 제대로 싸우는 법 포르투갈의 총리 살라자르는 1932년부터 1968년 쓰러지기 전까지 무려 36년간 독재를 했다. 1930년대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에 성공적으로 대응해 인기를 얻은 후, 폐쇄적인 권위주의에 기반해 입맛에 맞게 대통령을 갈아치우고 의회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 폄하하며 독재자의 길을 걸었다. 대통령 직선제는 간선제로 바꿨다. 그는 수많은 이들을 잡아 가두고 추방하고 비밀경찰을 동원해 감시하며 민주주의를 말살했다. 독재자는 우민화 정책과 함께 고집스럽게 잘못된 방향의 사회경제 정책을 고수했고, 나중에는 기술관료와 소수 엘리트가 그를 둘러싸고 인의 장막을 친 채 포르투갈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갔다. 그 결과 포르투갈은 식민지에 집착하고 산업 발전에는 한참 뒤처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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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사회 전환의 실패, 2025년 연금개혁 우리 사회는 전환을 도모하지 않고도 이대로 괜찮을까? 지금의 경로에 갇혀 그대로 간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국민연금 개혁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는 노후불안과 빈곤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전환을 도모하는 데 실패한 개혁이다. 1988년에 국민연금이 만들어졌지만, 수십년 동안 우리 사회는 노후불안의 경로를 벗어나질 못했다. 국민연금은 낮은 수준의 보장으로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제공하지 못했고, 어떤 생애과정을 거치든 대다수에게 노후불안은 필연이 됐다. 노후의 경제적 불안정이 만연한 곳에서는 노후뿐 아니라 전 생애가 문제가 된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각자도생으로 내몰리고, 약간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몰두하게 된다.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혁신도, 모험도 심지어는 사랑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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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국회 연금개혁 분수령 된 ‘자동조정장치’ 연금개혁은 사회의 자원 배분에 관한 큰 틀의 의사결정인 만큼 기술적 조합보다는 가치와 정치의 문제이다. 지금 국회 연금개혁 논의는 이런 관점에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국회에서 다루던 연금개혁 의제는 보험료율과 연금급여 수준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연금개혁 논의에 국민연금 자동삭감장치라는 이슈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공식 용어는 자동삭감장치가 아니라 자동조정장치이지만, 결국 인구 고령화에 맞춰 모든 국민연금을 자동으로 깎는 것이므로 자동삭감장치로 불러도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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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연금개혁과 의료개혁, 그리고 두 번째 기회 나는 유독 ‘설’이라는 명절을 마음으로 아끼고 기대한다. 이유는 미련과 희망이다. 사실 한 해를 마음으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인데, 보통 1월1일 새해를 TV 화면으로 종치는 것을 보며 시시하게 시작해버리고는 또 그냥저냥 한 달쯤 보내고 나면 이게 아니다 싶어진다. 그때쯤이면 마음과 집 안의 묵은때와 오래된 것들을 내버리고 다시 상큼하게 시작을 하고픈 마음이 든다. 내게는 두 번째 새해가 진짜 출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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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그들은 이제 복지국가를 말할 자격이 없다 국가란 무엇일까? 매년 복지국가론이란 강의를 하는데, 첫 수업에서 학생들이 다루는 토론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국가는 군대와 경찰 등 폭력을 독점한 기구로 ‘지배’라는 속성을 버릴 수 없는 늑대인가, 아니면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증진시키는 도구로 잘 길들여져 그 본질까지 달라질 수 있을까? 이 토론 주제가 이토록 생생한 것이 되는 상황이 펼쳐질 줄 몰랐다. 12월3일 밤, 국회의사당 복도를 뛰어가는 계엄군의 모습을 실시간 지켜본 것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에게 1980년 광주는 사진이었고, 1987~1989년 민주항쟁은 바깥의 거대한 일렁임이었으나, 2024년 내란 시도는 시시각각 라이브로 전송되는 국가 폭력의 위협이었다. 의회민주주의와 동시에 공동체가 통째로 위협당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게 되다니…. 2024년 12월은 사진도 일렁이는 풍경도 아닌, 모두의 삶이 휩쓸려갈 수 있는 토네이도가 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