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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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사회 전환의 실패, 2025년 연금개혁 우리 사회는 전환을 도모하지 않고도 이대로 괜찮을까? 지금의 경로에 갇혀 그대로 간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국민연금 개혁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는 노후불안과 빈곤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전환을 도모하는 데 실패한 개혁이다. 1988년에 국민연금이 만들어졌지만, 수십년 동안 우리 사회는 노후불안의 경로를 벗어나질 못했다. 국민연금은 낮은 수준의 보장으로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제공하지 못했고, 어떤 생애과정을 거치든 대다수에게 노후불안은 필연이 됐다. 노후의 경제적 불안정이 만연한 곳에서는 노후뿐 아니라 전 생애가 문제가 된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각자도생으로 내몰리고, 약간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몰두하게 된다.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혁신도, 모험도 심지어는 사랑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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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국회 연금개혁 분수령 된 ‘자동조정장치’ 연금개혁은 사회의 자원 배분에 관한 큰 틀의 의사결정인 만큼 기술적 조합보다는 가치와 정치의 문제이다. 지금 국회 연금개혁 논의는 이런 관점에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국회에서 다루던 연금개혁 의제는 보험료율과 연금급여 수준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연금개혁 논의에 국민연금 자동삭감장치라는 이슈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공식 용어는 자동삭감장치가 아니라 자동조정장치이지만, 결국 인구 고령화에 맞춰 모든 국민연금을 자동으로 깎는 것이므로 자동삭감장치로 불러도 맞을 것 같다. 시작은 지난해 가을 윤석열 정부가 뒤늦게 연금개혁안을 내놓으며 자동삭감장치를 집어넣은 것이었다. 이전 정부위원회나 국회 연금개혁특위, 무엇보다 시민 공론화에서도 연금 자동삭감장치는 의제가 되지 못했다.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인 40%에 달하는 데에다 국민연금이 평균 약 65만원에 불과한 한국에서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자동삭감장치를 제안한 것은 놀랍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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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연금개혁과 의료개혁, 그리고 두 번째 기회 나는 유독 ‘설’이라는 명절을 마음으로 아끼고 기대한다. 이유는 미련과 희망이다. 사실 한 해를 마음으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인데, 보통 1월1일 새해를 TV 화면으로 종치는 것을 보며 시시하게 시작해버리고는 또 그냥저냥 한 달쯤 보내고 나면 이게 아니다 싶어진다. 그때쯤이면 마음과 집 안의 묵은때와 오래된 것들을 내버리고 다시 상큼하게 시작을 하고픈 마음이 든다. 내게는 두 번째 새해가 진짜 출발인 것이다. 대통령이 동원한 군인들이 국회 유리창을 깨고 난입하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채 지워지지 않았는데,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는 난동까지 보고 난 후 설이란 두 번째 새해를 준비하게 되었다. 연속되는 경악스러운 사태를 지켜보는 것이 고역이지만 결국 한국의 정치는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 애써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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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그들은 이제 복지국가를 말할 자격이 없다 국가란 무엇일까? 매년 복지국가론이란 강의를 하는데, 첫 수업에서 학생들이 다루는 토론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국가는 군대와 경찰 등 폭력을 독점한 기구로 ‘지배’라는 속성을 버릴 수 없는 늑대인가, 아니면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증진시키는 도구로 잘 길들여져 그 본질까지 달라질 수 있을까? 이 토론 주제가 이토록 생생한 것이 되는 상황이 펼쳐질 줄 몰랐다. 12월3일 밤, 국회의사당 복도를 뛰어가는 계엄군의 모습을 실시간 지켜본 것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에게 1980년 광주는 사진이었고, 1987~1989년 민주항쟁은 바깥의 거대한 일렁임이었으나, 2024년 내란 시도는 시시각각 라이브로 전송되는 국가 폭력의 위협이었다. 의회민주주의와 동시에 공동체가 통째로 위협당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게 되다니…. 2024년 12월은 사진도 일렁이는 풍경도 아닌, 모두의 삶이 휩쓸려갈 수 있는 토네이도가 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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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민주주의와 불평등 “불평등은 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세계불평등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우리는 불평등과 빈곤에 관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고 있을까? 손상된 민주주의는 이러한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은 소득불평등과 빈곤문제 해결이 요원한 나라다.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이 문제에서만큼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거리고 있다. 소득불평등도와 전체인구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상위권이며 특히 노인빈곤율은 최고 수준이다. 노인빈곤율은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에 따르면 38.1%에 달하는데 2021년보다 오히려 더 높아진 수치다. 그저 기다리면 좋아질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더욱이 고령화는 소득불평등과 빈곤을 심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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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청년세대와 연금개혁 ‘청년을 위한 연금개혁’이란 플래카드를 보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세대 간 연대’가 아닌 ‘세대 간 공평성’을 연금개혁 원칙으로 제시했고, 여당도 ‘청년을 위한’ 구조개혁을 하겠다고 한다. 청년을 위한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만은 찜찜함을 지울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청년세대에게 현재 큰 고통을 야기하고 있는 일자리 불안정성과 취약한 노동권 문제를 그대로 시장에 맡겨놓은 채, 유독 미래 공적연금을 축소해 청년을 위하겠다는 게 위험해 보여서다. 20대 노동자 중 40% 이상이 비정규직이라 한다. 우리 사회는 청년에게 제대로 된 직업세계 정착의 기회와 꿈을 펼칠 기반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청년세대의 연금보험료 부담을 논하기 전에 이를 낼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말하는 게 먼저다. 괜찮은 일자리 확대 등 노동권 강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보험료 부담과 공적연금 보장도 같이 줄이는 건 결국 미래의 노동도, 삶도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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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안을 넘어 진짜 미래로 얼마 전 정부가 연금개혁안을 내놓았지만 이것이 연금개혁을 진전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할지는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정부안은 지난 국회에서 진행한 시민공론화 및 여야 간 연금개혁 협상 범위를 벗어나 있을뿐더러, 자동조정장치와 세대 간 차등보험료율 인상과 같은 방안들은 다소 의아한 내용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안인 보험료율 13% 및 소득대체율 42%와 자동조정장치의 조합은 시민 공론화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은 보험료 13% 및 소득대체율 50% 인상안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나아가 국민연금을 사실상 삭감하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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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윤 정부 연금개혁안 대 시민 공론화 연금개혁안 곧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안이 공식 발표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 4월에 시민대표단이 참여한 연금개혁 공론화에서는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이 선택된 바 있다. 국회는 이 결과에 기초하여 연금개혁 협상을 어렵게 진행하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여야 간 협상을 직접 중단시켰다. 그 이후 몇 개월 만에 내놓는 정부 개혁안이니만큼, 발표 내용에 대한 궁금증은 크다. 얼마나 멋진 대안을 내놓으려고 시민공론화 결과까지 무시했을까? 연금개혁안을 통해 윤석열 정부는 국민들의 노후소득보장 현실에 대한 인식과 국정철학을 드러낼 것인 만큼, 그 구체적 내용과 표방하는 가치에 주목하게 된다. 더욱이 시민 공론화 연금개혁안과의 비교는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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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폭염과 가난 더위가 추위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매일 깨닫게 된다. 기후위기 시대, 폭염 속에서 많은 이들이 가족과 지인의 안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뜨겁고 습한 날씨에 지쳐 있다가, 문득 이 정도의 폭염이라면 ‘아는 사람’의 경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해는 물론 더위, 추위에 대처할 수 없는 사람들, 돈이 없어 극단적인 더위나 추위가 닥칠 때에도 냉난방 시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에너지 빈곤층이다. 시기와 기준에 따라 수치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100만가구 이상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쪽방, 고시원, 옥탑방 등 극단적 날씨에 대처하기 더욱 어려운 곳에서 살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15만가구 이상이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가난 때문에 냉난방을 하지 못하는 가구 중 절대 다수는 노인가구, 특히 나이가 더 많은 고령노인가구이다. OECD 1위인 높은 노인빈곤율로 볼 때, 또 75세 이상 고령노인에게는 국민연금도, 일자리도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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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상처받은 사람과 사회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 21세기가 도래하여 사회의 생산 시스템이 첨단기술을 맘껏 활용하게 된다면 이런 일은 없을 줄 알았다. 1990년대 원진레이온 공장 마당에서 그곳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고통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지켜본 적이 있다. 그래도 미래의 노동은 달라지리라 기대했다. 당시 사건은 한국 초기 자본주의의 야만성이 뒤늦게 터져나온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일하다가 여럿이 죽는 것은 산업이 고도화되는 가운데 점점 사라질 것이라 낙관했다. 날로 세련되어지는 건물과 사람들을 보며 나는 생산현장도, 노동도 달라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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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되다 만 민주주의, 되다 만 연금개혁 우리 사회에서 연금개혁은 이미 여러 번 있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조정까지 포함하면 1998년, 2007년, 2014년 개혁 등 수차례이다. 이에 더해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진 올해 연금개혁 시도가 있었다. 지난 연금개혁들과 비교할 때 2024년 개혁 시도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시민 참여’를 통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즉 공론화 과정이다. 과거 연금개혁은 관료와 소수의 전문가들이 주도했다. 특히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줄이고 기초연금을 새로 도입한 2007년의 경우 모두의 노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개혁이었음에도, 정작 시민들은 그 내용은 물론 그런 연금개혁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의 형식은 획득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빈약했다고 할 만하다. 정책엘리트는 시민에게 참여할 정책공간을 내어주지 않았고, 연금이란 사회보장제도의 의사결정에서 시민은 오랫동안 바깥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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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연금개혁, 시민대표단 선택을 누가 실현할 것인가 2024년 연금개혁 논의의 특별한 점은 연금개혁 방향을 시민이 직접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시민대표단 다수는 국민연금 보장수준과 보험료율을 함께 올리는 소득보장 강화론을 선택했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높이는 안이다. 또한 다수는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을 당분간 넓게 유지하는 것을 지지했다. 500명 시민대표단의 선택은 단순한 참고용이 아니다. 국회는 애초에 연금개혁안 결정을 목적으로 복잡한 공론화 절차를 실시했고 이를 존중할 의무가 있다. 또한 시민대표단의 선택은 단순한 설문조사처럼 해석되어선 안 된다. 시민대표단은 연금개혁에 관해 장시간 공부하고 숙고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했다. 이는 일하고 공부하고 돌보는 바쁜 일상을 사는 보통 시민이 우리 공동체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위임받았다는 사명감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시민대표단의 선택을 단순히 각자의 선호나 이익에 따른 것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인은 시민대표단의 의사결정이 갖는 그 무거운 의미를 외면한 채, 핵심도 잘 모르고 최저보장에 대한 기준도 없이 스웨덴식 연금제도를 도입하자는 등 엉뚱한 이야기를 해서 논의를 흐트러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