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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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폭염은 누구에게 더 잔인한가 흔히 ‘살인적’ 더위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 말이 그저 비유가 아니라 진짜 사실이라면, 더위로 인해 사람들이 숨지는 일이 빈발한다면, 쉽게 입에 담을 수 없게 된다. 폭염 속에서도 건물은 올라가고, 물건은 운송되며, 마트 영업과 배달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는 것은 곳곳에서 사람이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다들 집에서 밥을 먹고 물을 마실 수 있고 쇼핑도, 금융도, 정치도, 이른바 사회적 합의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공사장에서, 마트에서, 밭에서, 도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폭염으로 쓰러졌다. 맨홀 아래에서 측량 작업을 하다가, 공공근로로 쓰레기를 줍다가, 마트에서 카트를 정리하다가, 공사장에서 아파트를 짓다가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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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쉬운 길의 함정 문제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것은 해결의 시작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징후로만 얘기되던 우리 사회의 균열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더 잘 드러난 것 같다. 이제 젠더와 세대에 따라 주요한 사회 문제에 관한 생각과 해결 방향에 대한 선호가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 여기에는 생각의 차이로만 해석할 수 없는 오해와 불신도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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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싸구려 자본주의와 이별해야 할 순간 21세기 들어선 후 사반세기가 지나가는 지금, 우리는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 이번 조기 대선은 우리 사회의 미래 경로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더워지는 날씨보다 더 뜨겁게, 여러 정치세력이 제각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복지·교육·노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온 제안들은 이 들끓는 용광로에 어떻게 녹아들어 어떤 결과물을 내놓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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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지금 절실한 건, 불평등과 제대로 싸우는 법 포르투갈의 총리 살라자르는 1932년부터 1968년 쓰러지기 전까지 무려 36년간 독재를 했다. 1930년대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에 성공적으로 대응해 인기를 얻은 후, 폐쇄적인 권위주의에 기반해 입맛에 맞게 대통령을 갈아치우고 의회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 폄하하며 독재자의 길을 걸었다. 대통령 직선제는 간선제로 바꿨다. 그는 수많은 이들을 잡아 가두고 추방하고 비밀경찰을 동원해 감시하며 민주주의를 말살했다. 독재자는 우민화 정책과 함께 고집스럽게 잘못된 방향의 사회경제 정책을 고수했고, 나중에는 기술관료와 소수 엘리트가 그를 둘러싸고 인의 장막을 친 채 포르투갈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갔다. 그 결과 포르투갈은 식민지에 집착하고 산업 발전에는 한참 뒤처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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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사회 전환의 실패, 2025년 연금개혁 우리 사회는 전환을 도모하지 않고도 이대로 괜찮을까? 지금의 경로에 갇혀 그대로 간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국민연금 개혁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는 노후불안과 빈곤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전환을 도모하는 데 실패한 개혁이다. 1988년에 국민연금이 만들어졌지만, 수십년 동안 우리 사회는 노후불안의 경로를 벗어나질 못했다. 국민연금은 낮은 수준의 보장으로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제공하지 못했고, 어떤 생애과정을 거치든 대다수에게 노후불안은 필연이 됐다. 노후의 경제적 불안정이 만연한 곳에서는 노후뿐 아니라 전 생애가 문제가 된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각자도생으로 내몰리고, 약간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몰두하게 된다.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혁신도, 모험도 심지어는 사랑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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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국회 연금개혁 분수령 된 ‘자동조정장치’ 연금개혁은 사회의 자원 배분에 관한 큰 틀의 의사결정인 만큼 기술적 조합보다는 가치와 정치의 문제이다. 지금 국회 연금개혁 논의는 이런 관점에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국회에서 다루던 연금개혁 의제는 보험료율과 연금급여 수준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연금개혁 논의에 국민연금 자동삭감장치라는 이슈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공식 용어는 자동삭감장치가 아니라 자동조정장치이지만, 결국 인구 고령화에 맞춰 모든 국민연금을 자동으로 깎는 것이므로 자동삭감장치로 불러도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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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연금개혁과 의료개혁, 그리고 두 번째 기회 나는 유독 ‘설’이라는 명절을 마음으로 아끼고 기대한다. 이유는 미련과 희망이다. 사실 한 해를 마음으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인데, 보통 1월1일 새해를 TV 화면으로 종치는 것을 보며 시시하게 시작해버리고는 또 그냥저냥 한 달쯤 보내고 나면 이게 아니다 싶어진다. 그때쯤이면 마음과 집 안의 묵은때와 오래된 것들을 내버리고 다시 상큼하게 시작을 하고픈 마음이 든다. 내게는 두 번째 새해가 진짜 출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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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그들은 이제 복지국가를 말할 자격이 없다 국가란 무엇일까? 매년 복지국가론이란 강의를 하는데, 첫 수업에서 학생들이 다루는 토론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국가는 군대와 경찰 등 폭력을 독점한 기구로 ‘지배’라는 속성을 버릴 수 없는 늑대인가, 아니면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증진시키는 도구로 잘 길들여져 그 본질까지 달라질 수 있을까? 이 토론 주제가 이토록 생생한 것이 되는 상황이 펼쳐질 줄 몰랐다. 12월3일 밤, 국회의사당 복도를 뛰어가는 계엄군의 모습을 실시간 지켜본 것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에게 1980년 광주는 사진이었고, 1987~1989년 민주항쟁은 바깥의 거대한 일렁임이었으나, 2024년 내란 시도는 시시각각 라이브로 전송되는 국가 폭력의 위협이었다. 의회민주주의와 동시에 공동체가 통째로 위협당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게 되다니…. 2024년 12월은 사진도 일렁이는 풍경도 아닌, 모두의 삶이 휩쓸려갈 수 있는 토네이도가 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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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민주주의와 불평등 “불평등은 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세계불평등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우리는 불평등과 빈곤에 관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고 있을까? 손상된 민주주의는 이러한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은 소득불평등과 빈곤문제 해결이 요원한 나라다.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이 문제에서만큼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거리고 있다. 소득불평등도와 전체인구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상위권이며 특히 노인빈곤율은 최고 수준이다. 노인빈곤율은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에 따르면 38.1%에 달하는데 2021년보다 오히려 더 높아진 수치다. 그저 기다리면 좋아질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더욱이 고령화는 소득불평등과 빈곤을 심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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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청년세대와 연금개혁 ‘청년을 위한 연금개혁’이란 플래카드를 보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세대 간 연대’가 아닌 ‘세대 간 공평성’을 연금개혁 원칙으로 제시했고, 여당도 ‘청년을 위한’ 구조개혁을 하겠다고 한다. 청년을 위한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만은 찜찜함을 지울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청년세대에게 현재 큰 고통을 야기하고 있는 일자리 불안정성과 취약한 노동권 문제를 그대로 시장에 맡겨놓은 채, 유독 미래 공적연금을 축소해 청년을 위하겠다는 게 위험해 보여서다. 20대 노동자 중 40% 이상이 비정규직이라 한다. 우리 사회는 청년에게 제대로 된 직업세계 정착의 기회와 꿈을 펼칠 기반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청년세대의 연금보험료 부담을 논하기 전에 이를 낼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말하는 게 먼저다. 괜찮은 일자리 확대 등 노동권 강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보험료 부담과 공적연금 보장도 같이 줄이는 건 결국 미래의 노동도, 삶도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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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안을 넘어 진짜 미래로 얼마 전 정부가 연금개혁안을 내놓았지만 이것이 연금개혁을 진전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할지는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정부안은 지난 국회에서 진행한 시민공론화 및 여야 간 연금개혁 협상 범위를 벗어나 있을뿐더러, 자동조정장치와 세대 간 차등보험료율 인상과 같은 방안들은 다소 의아한 내용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안인 보험료율 13% 및 소득대체율 42%와 자동조정장치의 조합은 시민 공론화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은 보험료 13% 및 소득대체율 50% 인상안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나아가 국민연금을 사실상 삭감하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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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윤 정부 연금개혁안 대 시민 공론화 연금개혁안 곧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안이 공식 발표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 4월에 시민대표단이 참여한 연금개혁 공론화에서는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이 선택된 바 있다. 국회는 이 결과에 기초하여 연금개혁 협상을 어렵게 진행하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여야 간 협상을 직접 중단시켰다. 그 이후 몇 개월 만에 내놓는 정부 개혁안이니만큼, 발표 내용에 대한 궁금증은 크다. 얼마나 멋진 대안을 내놓으려고 시민공론화 결과까지 무시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