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연세대 정치학과 BK21교육연구단 박사후연구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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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가장 외로운 시대의 인공지능 벌써 몇년 된 일이다. 일본에서 고장난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를 위한 합동 장례식이 열렸다. 대화형 로봇 팔로(Palro)가 추도사를 하고, 스님이 경전을 암송했다. 고령화와 저출생, 관계의 단절로 인해, 일본 사람들이 점차 사회로부터 고립됐고, 아이보를 친구나 가족처럼 여기는 대안적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로봇 스님도 등장했다. 개발업체는 이 로봇이 유골함을 제단에 올리고 불경을 외는 등 기본적인 장례 진행이 가능하며, 무엇보다 인간 스님에 비해 저렴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혼자 살던 생활보호대상자 노인이 사망했을 경우에도 저렴한 로봇 스님이 그의 마지막을 배웅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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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후위기에 함께 적응하기 둘째가 밤새 기침하는 통에 잠을 설쳤다. 불안하게 첫째도 코를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픈런을 노리고 도착한 병원에는 마스크를 쓴 선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고생할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진료실 안에서는 아이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애들이 더 많거나 맞벌이라도 한다면 얼마나 더 힘들까. 한바탕 울고 나온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부모를 보면서 동료의식을 느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눈으로 인사했다. 환절기마다 벌어지는 풍경이다. 봄, 가을이 없어진 지도 오래다. 나이를 먹어서 더 민감하게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기후위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며칠 전만 해도 유난히 따뜻하더니 갑자기 추워졌다. 동파육 레시피도 아니고, 사람을 찌고 굽고 튀기고 삶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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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적대주의를 넘어 서로 함께 살아가기 우리 집에는 매일 전투가 벌어진다. 히어로와 악당, 로봇과 괴물, 해적과 해군이 온 집 안을 파괴한다. 아들만 둘인 집이라 어쩔 수 없다. 오늘도 편을 나눠 놀다가 한쪽이 울고, 둘 다 혼나는 엔딩이 반복되고 있다. 첫째가 특히 편 가르기를 잘한다. 민초파와 반민초파, 부먹파와 찍먹파뿐만 아니라, 아이폰과 갤럭시, 남자와 여자, 한국(인)과 외국(인)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에 편을 가른다. 물어보니 편 가르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짜뉴스나 헛소리다. 가급적 하나하나 바로잡아 보려 노력하지만, 귀찮을 땐 그냥 혼내고 넘어가기도 한다. 편 가르고 노는 건 좋지만, 상대방을 깎아내리기보다 우리 편을 칭찬하는 방식으로 하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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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지난 주말, 한국에서 공부하는 미국·일본·중국 대학원생들과 부산에 다녀왔다. 1박2일 동안 을숙도 생태공원, 북항, 영화의 전당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버스로 왕복 12시간이 걸렸지만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다른 학교, 학과에 소속돼 만날 일 없던 대학원생들은 금세 절친이 되어 일정 내내 붙어 다녔다. 3개국 대학원생이 참여한 이 프로그램의 공식 언어는 한국어였다. 방문지에 대한 설명이나 특강 역시 한국어가 기본이었다. 자국 출신이 아닌 사람과 대화할 때도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사용했다. 대학원생들은 공식적인 행사 일정이 끝난 뒤 늦은 시간까지 한국어를 중심으로 영어·일본어·중국어에 손짓발짓까지 섞어가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학문에 대한 열의, 낯선 타국에서 공부하는 어려움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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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그건 정치가 아니다 우리 애들은 간판과 현수막으로 한글을 깨쳤다. ‘탕후루’ 같은 단어는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면서도 귀신같이 찾아낸다. 당황스러운 순간도 종종 있다. 성인 PC방 간판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바둑이’가 뭐냐고 물었을 때는 아마 강아지는 아닐 거라 대답했다. 문장을 잘 읽게 되자 더 난감해졌다.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우리 어민 다 죽는다!’ ‘이게 나라냐!’ ‘청년 일자리 뺏는 부패노조 OUT!’ ‘Hi~ 윤틀러!’ ‘독도까지 바칠 텐가!’ ‘친일본색 매국정권’ ‘법치부정 범죄옹호’ 등 거리를 뒤덮은 정치 현수막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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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인공지능시대, 문과가 필요할까 초등학교 4학년 첫째의 꿈은 요리사다. 우주비행사, 조향사였다가 또 바뀌었다. 르 꼬르동 블루에 가겠다니 큰일이지만, 문과는 아니라 다행이다 싶었다. 1학년 둘째의 꿈은 백수다. 아빠가 인체를 개조해서 200년 동안 먹여 살리라는데, 잘 타일러서 100년 정도만 할 생각이다. 어차피 문과는 백수라고 하니, 그냥 처음부터 백수인 게 낫겠다 싶었다. 문과가 ‘문송’한 지 이미 오래다. 인문학은 ‘사회에 쓸모없는, 일종의 유희’로 여겨진다. 의대 못 가면 이과 가고, 이과 못 가면 문과 간단다. 문과 나와 취직하려면 코딩을 배워야 한단다. 문과대 앞에는 대학에서 급여 일부를 지원하는 정보기술(IT) 회사 인턴십 홍보물이 걸려 있다. ‘문과라서 죄송하지만 받아 주시면 안 될까요’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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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임금 노릇 하기도 어렵고 신하 노릇 하기도 쉽지 않다 잠자리에 누웠던 첫째가 대성통곡했다. 쪽지 시험을 쳤는데 아무래도 0점 같단다. 예전에 20점 받고 혼난 일도 끄집어냈다. 그 점수를 받고도 공부할 생각이 없어 보여서 한 소리였다. 선생님은 ‘킬러 문항’ 없이 초등학교 4학년에 맞는 문제를 냈을 터다. 좋은 경험했으니, 방학 동안 아빠랑 복습하자. 이렇게 한참을 달래 겨우 재웠다. 선생 노릇도 어렵고 학생 노릇도 쉽지 않다. 생각해보면, 사회적 역할 중에 쉬운 건 하나도 없다. 통치자는 그중 가장 심할 것이다. “사람들의 말에 ‘임금 노릇 하기도 어렵고 신하 노릇 하기도 쉽지 않다(爲君難爲臣不易)’고 합니다. 만일 임금 노릇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면, 이 한마디 말이 나라를 흥하게 하는 것을 기약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마디로 나라를 흥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있냐는 질문에 대한 공자의 대답이다(논어 자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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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우리 모습이 아니다 우리 집에는 많은 규칙이 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하나둘 늘어났다. 신생아 때는 밥 잘 먹고 잠 잘 자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후에는 혼자 숟가락질하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대견했다. 그런데 이제는 식사시간에 손 씻고 자리에 앉아야 하며, 밥과 반찬을 골고루 먹고 젓가락은 제자리에 놔야 하며, 그릇은 깨끗하게 비워야 하고, 다 먹은 그릇은 설거지통에 넣어야 한다. 이런 규칙에는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역경에 직면해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하려 노력하기를, 가족과 소속된 집단에서 사랑과 인정을 받기를,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관용하기를, 자신이 원하는 일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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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어버이날,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 아침부터 첫째 아이를 혼냈다. 어버이날 감사편지를 읽는 부모의 모습을 촬영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며, 잠옷도 갈아입지 못한 엄마를 들들 볶기에 그만 ‘버럭’ 해버렸다. 아이는 울먹이며 학교에 갔고 나는 화낼 일이 아니었다며 자책하고 있다. 양가 부모님께는 용돈을 보냈다. 감사편지는 카톡으로 대체됐지만, 어버이날은 내게도 숙제다. 어버이라는 말 자체가 낯선 요즘,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의 전통적 미덕을 기리는 날”(<한국민족문화대백과>)이란 설명은 시대에 뒤처진 느낌이다. 낳기만 해서는 부모가 아니고, 나의 불행은 부모가 잘못 키운 탓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기에 어버이는커녕 ‘맘충’이나 ‘한남’ 취급당하지 않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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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정치학이 쓸모가 있나요 “정치학 전공하면 나중에 정치할 건가?” 숱하게 받아온 질문이다. 중·고생들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반 농담으로 “정치외교학과 나오면 정치와 외교 빼고 뭐든 다 잘한다”고 답했다. 실제 선후배 중에 정치나 외교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가끔 정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먹고사는 문제와 무관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죽하면 <정치외교학과 진로개발>(이태동·백우열·최선 공저, 2019)의 부제가 “정치학 해서 뭐 해먹고 살래?”다. 정치학이 ‘먹고사니즘’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 지금도 이런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학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생활인으로서는 ‘정치학 해서 먹고살기’ 쉽지 않음을 절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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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대표란 무엇인가 대표가 위기다. 거대 양당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상대 당대표를 공격한다.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해 ‘대통령 자격 없다’고 적은 손팻말도 등장했다. 정부 입장을 옹호한 부산시장 역시 시장 자격이 없다고 한다. 우리 정치현실에서 소위 ‘국민을 대표한다’는 정치인 대다수가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실정이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예로부터 정치는 대표적 안줏거리였다. 기승전결도 뻔하다.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다가(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전운이 감돌고(승), 의견 차이로 술자리가 파투날까 싶다가도(전) “애초에 정치인들은 우리를 대표하지 않고, 그럴 생각도 없다”라는 회의론으로 갈등이 봉합되는 것이다(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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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세계시민주의는 실패한 걸까 베트남 냐짱에 왔다. 밤늦게 출발해 새벽에 도착하는 고된 비행 일정이었다. 고통 받는 아이들, 불안한 부모들, 그걸 지켜보는 나머지. 승객은 이렇게 세 종류로 나뉘었다. 초등학생 둘에 부모님까지 모신 우리 일행은 이 모두에 해당됐다. 다섯 시간 남짓 공중에서 펼쳐진 ‘혼돈의 카오스 대 환장 파티’가 끝나고 비로소 호텔 침대에 몸을 뉘었다. 피곤이 극에 달했지만, 낯선 온도와 냄새, 오토바이 엔진과 경적 소리에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모든 고통에 이유가 있듯, 온 가족이 사서 고생한 의미가 있길 바랐다.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경험시켜주고 싶다. 즐거운 경험을 다양하게 했으면 한다. 외국어 앞에 주눅들지 않고, 외국인 친구도 쉽게 사귀었으면 좋겠다. 낯선 음식도 가리지 않고, 다른 문화에도 쉽게 적응했으면 한다. 그렇게 자라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자유롭고 멋진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과 욕심이 뒤섞인 잠꼬대를 하며 겨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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