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홍욱
논설위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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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희한한 선거는 그만 꼼수, 반칙, 편법, 후안무치, 요지경, 도박판, 개싸움…. 21대 총선 공천 과정을 특징짓는 단어들은 험악하다. 물론 ‘진박 감별사’가 설치던 4년 전 총선 공천도 난장판이란 소리를 들었고, 그 앞선 총선도 시끄럽지 않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희한한 선거가 있었을까 싶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현역 의원의 불출마, 중진 의원의 용퇴 선언이 혁신으로 얘기되기도 했지만 스쳐지나가는 일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다. 그 중심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있다. 여야가 공직선거법을 주무르는 과정에서 누더기가 됐다.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 장벽을 낮춰 국회의 다양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만큼은 분명했다. 그러나 거대 정당들은 허점을 공략했다. 비례대표 전담 위성정당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선거법 개정에 반대한 미래통합당이 비례정당 창당을 선언했을 때는 설마 했지만 눈앞의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거대 정당은 기득권의 일부라도 소수정당에 떼어주기는커녕, 한 석이라도 더 긁어모으기 위해 혈안이다. 기득권 챙기기에 관해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능력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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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중국이 아니라 우리 문제다 “야야, 여기는 엉망이다.” 엊그제 경상북도에 있는 고향집 인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또 발생했다길래 통화한 어머니의 첫마디다. 주변 식당들이 문을 닫았고, 웬만해선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동네 분위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머니는 통화를 끝낼 즈음 “마스크는 꼭 쓰고 다녀라”라고 신신당부했다. 출퇴근길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열에 아홉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 회의 때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얼굴을 반쯤 가리고 얘기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 확진자와 2m 내에서 접촉한 사람을 ‘접촉자’로 분류한다. 마스크는 그 거리를 좁히는 방법이다. 불편하지만 자신을 보호하고, 주변 사람을 배려하기 위한 기본적 예방수칙임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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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빚어낼 색깔 영국이 31일 오후 11시(현지시간) ‘드디어’ 유럽연합(EU)을 탈퇴한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에서 EU 탈퇴를 결정한 지 3년7개월 만이다. 2015년 5월 총선에서 과반을 얻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보수층 일각의 EU 탈퇴 주장을 정리하겠다며 공약한 국민투표의 결과가 EU 탈퇴로 나타나면서 혼란은 시작됐다. 보수당과 정치권은 ‘이러려고 국민투표한 것이 아닌데’라고 당혹해했지만 화살은 이미 떠났다. 민심을 읽지 못한 오만과 오판이었고, ‘무모한 도박’이었다. 영국 내부도, EU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극심한 혼돈에 빠졌지만 더 헤맨 것은 의회였다. 현대 의회민주주의의 효시라던 영국 정치는 보수당과 노동당이 극한으로 대립했지만 무기력의 끝을 보여줬다. 총리가 두 번 바뀌고, 조기총선을 두 번 치르고서야 EU 탈퇴의 문을 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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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북·미의 체면 살리기 북·미는 서로 원하는 바를 알 것이다. 지난 10월 스웨덴 만남 이후 북한은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내놓으라고 하고, ‘일단 만나자’는 미국의 요청에 묵묵부답이다. 북한은 새해에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단계를 밟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연말 시한을 거론하고 ‘새로운 길’을 공론화했다. 최고지도자의 체면이 있으니 뭐라도 할 것이다. 두 차례 ‘중대한 시험’ 실시,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 표현 등으로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모종의 조치를 연상하도록 했다. 김정은은 이달 초 백두산에 다녀온 뒤 말을 아끼며 신년사 내용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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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살얼음판을 걷게 될 한·미 두 개의 한·미 현안,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굴러가고 있다. 극적 반전이 없을 경우 오늘 자정 종료되는 GSOMIA에는 미국의 동북아 안보 구상이 결부돼 있다. 방위비 분담금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익 우선’ 동맹관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 두 사안이 고약하게 얽히고 있다. 우선 이번 한·미 당국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 상황은 유례가 없다. 미국이 1년 만에 5배인 50억달러(약 5조8000억원)를 늘려달라는데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40~50%를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0억달러는 주한미군이 다 쓰지도 못할 비용이다. 미국의 태도는 맡겨놓은 돈 찾아가겠다는 듯 고압적이고 무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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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통령의 공감 능력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물러나면서 두 달 넘게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정국은 일단 끝이 났다. 문재인 대통령, 정치권, 법무부·검찰이 보여주는 ‘포스트 조국’ 행보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키워드는 검찰개혁이다. 장관 대행인 법무차관을 청와대로 부른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직접 챙길 뜻을 분명히 했다. 언론에 사전에 일정을 알린, 사실상 대국민 메시지다. 검찰개혁을 법적·제도적으로 완성하는 역할을 할 정치권은 그 방안을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법무부는 법무부대로, 검찰은 검찰대로 검찰개혁안 마련과 실행에 들어갔다. 다들 검찰개혁의 ‘속도전’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법무부에 ‘이달 중’ 방안을 마련하라고 시한을 박았고,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29일부터 검찰개혁안의 본회의 안건 상정이 가능하다며 야당을 재촉한다. 시대적 과제가 된 검찰개혁을 한시라도 빨리 마무리짓고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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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먼저 보자는 말 못하는 북·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30 판문점 회동에서 ‘2~3주 후 실무협상’을 갖자고 약속했을 때, 그렇게 될 것 같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하고 김 위원장이 수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핵화 협상의 고비마다 돌파구가 됐던 톱다운 방식의 재연이었다. 하지만 2주가 한 달이, 다시 두 달이 돼도 만난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비핵화 담판이 시작되는 건데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니겠냐’는 우려와 ‘8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끝나면 만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교차했다. 최근 양측에선 협상 재개의 신호는커녕 외교수장들끼리 “독초” “망발”(리용호 외무상) “불량정권” “가장 강력한 제재”(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와 같은 험한 말만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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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국 외교의 힘이 필요하다 한·일관계가 빙하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소재를 1차 타깃으로 삼았고, 한 달 뒤에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한국을 예고대로 뺐다. 한국은 맞대응을 선언했다. 양측의 충돌, 피해는 점점 가시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갈등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앞으로 어디까지 치달을지 알 수가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런 상황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올 초부터 ‘한국을 아프게 할’ 구체적 실행 계획을 짰고, 그 시나리오대로 일본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의 선도자처럼 굴더니 통상을 보복수단으로 삼는 것은 언행불일치 아니냐는 비판, 가뜩이나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에 괜한 소란을 일으키냐는 국제사회의 우려에는 귀를 닫았다. 일본의 조치는 한국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 절대 아니고, 문제가 있는 한국의 수출관리제도 때문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때그때 바뀌는 말은 장기간 준비치고는 논리 구조가 어설프다는 것을 드러낸다. 누가 뭐라건 한국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겠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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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끝나지 않을 라미레스 가족의 여정 중남미 온두라스 소년 엔리케는 다섯 살 때인 11년 전 미국으로 돈을 벌려고 간 엄마를 찾으러 길을 나섰다. 과테말라를 지나 멕시코에서 화물열차에 매달려 북쪽으로 향했다. 화차는 위험천만하다. 덜컹거리는 기차의 지붕 위는 당국의 단속, 갱단의 약탈에 노출돼 있다. 이를 피하려다 열차 아래로 떨어지거나 일부러 뛰어내리는 일이 다반사다. 굶주림, 더위, 갈증, 경찰, 강도, 갱…. 엔리케는 지나는 길 내내 위험에 맞닥뜨렸다. 엔리케는 멕시코 북동부 접경지역인 누에보라레도에서 밀수업자에게 1200달러를 주기로 하고 국경을 넘었다. 겉으론 얌전해 보이지만 소용돌이치는 리오그란데강을 건넜다. 미국 텍사스주에 들어온 엔리케는 밤에 사막을 걸었다. 국경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다. 사막의 낮기온은 50도에 육박하지만 밤은 추위와의 싸움이다. 그는 결국 122일 만인 2000년 9월 미국 남동부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엄마를 만났다. 엔리케와 두 살 위 딸 벨키를 온두라스에 두고 온 엄마 라우데스는 보모와 냉동생선공장 직원으로 일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들이 온두라스에서 잘 먹고, 잘 입고, 공부도 해서 잘 지내기를 기대했겠지만, 아들은 엄마를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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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시진핑이 선택한 길 2년 전만 해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거칠 게 없었다. 2017년 10월 공산당대회에서 연임해 집권 2기를 열었고, 다섯 달 뒤 두 번, 10년만 할 수 있는 주석 임기제를 폐지했다. 주석은 임기가 있고, 황제는 임기가 없다. ‘시 황제’의 등장이었다. 헌법에는 ‘시진핑 사상’을 집어넣었다. 잠재적 경쟁자들은 집권 1기 때 사정의 칼날로 정리해둔 상태다. 권력의 정점에 시진핑이 있고, 지배사상에도 시진핑이 있다. 2010년 일본을 제친 세계경제 2위, 2030년 미국을 추월한 경제최강국, 2050년 군사력이 뒷받침된 세계 최강국. 20년 주기로 도약해 ‘중국몽(중화민족의 부흥)’을 그의 손으로 만들고 싶어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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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브렉시트와 리더십 2차 세계대전과 전후 혼란기에 9년간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은 ‘위대한 영국인’이다. 2002년 BBC의 100만명 대상 ‘100명의 가장 위대한 영국인’ 조사에서 찰스 다윈, 윌리엄 셰익스피어, 아이작 뉴턴 등을 제치고 처칠이 1위를 했다. 그는 유럽통합주의자일까, 유럽회의주의자일까. 처칠은 1930년부터 ‘하나의 유럽’을 고민하고, ‘유럽합중국’을 구상했다. 1차 세계대전을 성찰하면서 유럽 내 이동과 상호 서비스를 활성화하고 각국이 자국의 보호적 조치를 보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럽평의회 건설에도 기여했다. 유럽연합(EU)은 홈페이지에서 이런 처칠을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 초대 총리, 로베르 쉬망 전 프랑스 외무장관 등과 함께 ‘유럽통합의 아버지’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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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트럼프와 김정은, 아직도 사랑한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트남 하노이 만남 이전에 친서 외교가 있었다. 트럼프에겐 너무도 사랑스러웠던 편지. 어느새 ‘꼬마 로켓맨’은 ‘위대한 지도자’로 바뀌었다. 트럼프의 하노이로 가는 길, 미국 내 다수가 김정은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덜컥 그의 손을 잡지 않을까 걱정했다. 트럼프는 ‘여태껏 실패만 한 것들이 뭘 알아. 협상은 나한테 맡겨’라는 태도였다. 김정은의 66시간 기차 여행은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을 것이다. 하노이에선 가망 없는 제안들이 오갔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봤다. 트럼프는 영변을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WMD)와 생산시설을 완전히 폐기해야 유엔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김정은을 설득했다. 김정은은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을 어렵게 하는 제재 몇 개만 풀어주면 ‘북한 핵개발의 상징’인 영변을 폐기하겠다고 했다.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영변 이외 시설은 대상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점심도 먹지 않고 호텔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