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홍욱
논설위원
최신기사
-
여적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동서 냉전 시절 양측 간에 돌던 싸늘한 기운은 동·서독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서독은 냉전이 시작된 지 근 30년이 다 된 1972년 12월에야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1년6개월 후 상대방 수도인 본과 동베를린에 상주대표부를 설치했다. 상주대표부나 연락사무소는 미수교국 간 대화·교류의 창구로, 임시 외교공관 역할을 한다. 여기에는 서로를 대화 상대로 인정했다는 정치적 의미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인적 교류에 물꼬를 튼 효과가 컸다. 사람들이 국경을 오간 것이 1990년 베를린 장벽을 허무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
여적 무효표와 ‘수박’ 색출 6·25 전쟁 후인 1954년 11월,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정권은 개헌에 나선다.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 조항을 없애기 위해서였는데, 초대·2대 대통령인 이승만으로서는 종신 집권 시도였다. 문제는 의석수, 자유당이 원내 다수(114석)였지만 개헌 정족수(136석)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승만은 무소속 의원들을 협박·회유한 끝에 137표를 확보했다고 자신했다. 막상 표결을 해보니 찬성은 135표밖에 되지 않았다. 정족수 미달로 개헌안은 당연히 부결이었지만 이승만은 희한한 논리를 들이댔다. 재적의원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3…이라는 것이었다. 서울대 수학과 교수까지 동원해 개헌 정족수가 135표라고 주장하며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소위 ‘사사오입(四捨五入, 0~4는 버리고 5~9는 올림) 개헌’이다. 당시 기권·무효가 8표였는데 한 표만 더 찬성에서 이탈해 무효표만 됐어도 우리 헌정사의 오점인 이 개헌은 성립할 수 없었다.
-
여적 ‘다음 소희’ 방지법 직업계 고등학교 3학년 홍수연양은 LG유플러스 하청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다. 전공인 애완동물학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회사였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계약을 해지하려는 고객을 응대하는 ‘해지방어 부서’에 배정됐다. 종일 ‘욕받이’를 해야 하는 극심한 감정노동에 허덕여도 채우기 힘든 실적, 계약보다 낮았던 월급….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 야근은 밥 먹듯이 했다. 그렇게 5개월이 흘렀다. “나 진짜 죽고 싶어. 더는 못 견디겠어”라고 친구에게 토로한 홍양은 2017년 1월 차갑고 어두운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18세였다.
-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중대선거구제로 4인 이상 뽑아야, 소수당 진입 가능성 확 높아진다” 현행 국회의원 선출 방식은 한 지역구에서 한 표라도 더 얻은 한 명을 당선자로 하는 소선거구제가 골격이다. 이는 1987년 민주화 대투쟁 이후 개헌에 따른 결과다. 그런데 소선거구제는 승자독식을 허용함으로써 사표를 양산해 소수 의견을 배제하는 폐해를 낳는다. 특히 이것이 한국 정치에서는 지역 독점, 국민 분열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이런 문제를 해소한다며 여러 차례 선거제 개혁을 시도했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 결과 거대 양당의 지배구조는 강화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멀어졌다. 21대 국회가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여적 ‘천아용인’ 정당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결사체이지만 항상 일사불란하지는 않다. 쇄신을 명분으로 당의 주류 질서에 맞서는 내부 움직임은 이어져왔다. 현대정치사에서 당 개혁 논쟁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로는 16대 국회가 꼽힌다. ‘DJ(김대중) 키드’로 영입된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은 김대중 정부 시절 ‘동교동 가신’이 좌지우지하는 새천년민주당 운영에 반기를 들었고, 노무현 집권 이후엔 당 개혁을 주창하는 아이콘으로 불렸다. 한나라당에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 있었다. 이들은 국회 입성 후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를 만들어 당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40대·초선이 주축인 천신정과 남원정은 한동안 개혁파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20대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에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가 있었다. 당시 민주당 당권파는 친문재인계였는데 이들 초선 4인방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조국 사태 대응 등을 두고 당 주류의 입장과 다른 쓴소리를 했다.
-
여적 힘내라 튀르키예 지진이나 건물 붕괴 등으로 매몰된 상황에서 인명 구조의 골든타임은 72시간이다. 물과 음식이 공급되지 않는 극한 상황에서 사흘 내 구조되지 않으면 생존 확률은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골든타임을 넘어 살아남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무너진 집에 갇혔던 할머니(80)와 손자(16)는 사고 발생 후 10일 뒤 구조됐고, 2010년 20만명이 사망한 아이티 대지진 당시 17세 소녀는 학교 건물 잔해 속에서 15일 만에 살아나왔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최명석·유지환·박승현씨는 각각 11일·13일·17일 만에 구조됐다. 그야말로 ‘기적의 생환자들’이다.
-
여적 대통령의 당비 2020년 9월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 발탁된 박성민 내정자가 이낙연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생이 매달 150만원을 어떻게 낼 수 있겠습니까.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역대 최연소(24세) 최고위원이 됐지만 대학생 신분인 그로선 지명직 최고위원 직책당비 월 150만원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당무위원회 결정으로 박 최고위원의 부담은 10만원으로 감면됐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당비 관련 납부기준을 당헌·당규에서 정해놓고 있다. 당원들이 내는 일반당비, 당직자와 당 소속 공직자가 내는 직책당비, 당내 행사·선거 등에 내는 특별당비로 구분된다. 국민의힘 직책당비는 대통령 및 대통령 후보(각 300만원), 당 대표(250만원), 국회 부의장·원내대표(각 100만원) 순으로 많다.
-
여적 정찰 풍선 지구 대기권과 성층권 사이에 형성되는 제트 기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속도는 시속 300㎞에 이르고 겨울철에 더 빨라진다. 제트 기류는 1926년 일본의 기상학자 오이시 와사부로가 후지산 근처 높은 하늘에서 처음 발견했는데, 일본은 이를 군사용으로 활용했다. 2차 세계대전 중 1944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풍선 폭탄 9300여개를 미국으로 날려보냈다. 자체 기압계와 고도계를 달고 폭탄을 실은 수소 풍선을 고도 9100m 이상 띄우면 제트 기류를 타고 8000㎞ 떨어진 미국 본토에 사나흘이면 도달한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본토에 도달한 풍선은 전체의 3%인 300개 정도였다. 오리건주 산에 추락한 풍선 폭탄을 민간인 6명이 건드렸다가 숨진 것을 제외하면 별반 파괴 효과도 없었다.
-
여적 교장 훈화 중장년들의 중·고교 시절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이는 정례 전체조회가 열렸다. 마무리는 교장의 몫이다. “마지막으로”라며 끝내는 듯하다가 장광설을 이어가기 일쑤였다. 훈화는 학생들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교훈이 담긴 말인데, 좋은 이야기도 길어지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땡볕에 서서 부동자세로 교장의 가르침을 듣는 것은 대체로 고역으로 기억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1일 기획재정부를 시작으로 지난 30일까지 21개 부처와 유관 및 소속 17개 기관의 업무보고를 받았다. 올해 업무보고는 민간 전문가들도 참여하는 대국민 보고·토론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하이라이트는 윤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이었다. 11차례 업무보고에서 평균 18분가량 마무리 발언을 했다. 최단 10분(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최장 34분(통일부·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 걸렸다. 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을 원고 없이 진행했다. 부처의 현안을 거론하다보니 ‘깨알 지시’도 있었고, 만기친람으로 비치기도 했다.
-
여적 핑크폰 두 전화기 사이의 거리는 40m가 채 되지 않는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판문점 남측지역 내 유엔군사령부 일직장교(JDO) 사무실과 북측 판문각에 놓인 전화기다. 양측은 오전 9시30분 업무 개시를 위해, 오후 3시30분 업무 마감을 위해 하루 두 번 통화한다. JDO 사무실은 유엔사와 북한 간 공식 사항을 주고받기 위해 24시간 상시 근무 체제로 운영된다. 정전협정 체결 2년 전인 1951년 설치됐다. JDO 사무실에 놓인 직통전화의 별칭은 ‘핑크폰’이다. 요즘 집이나 사무실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구식 전화기인데 밝은 분홍색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02년 설치됐으니 20년이 넘었다. 하루 두 차례 정례 통화는 기기의 정상 작동 여부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어서 통화 시간은 길지 않다. 그래도 자주 목소리를 확인하다 보니 간간이 사적인 얘기도 섞이는 모양이다. 유엔사의 한 장교는 2019년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북한군 파트너와 메이저리그 야구팀, 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소개했다. 북측 파트너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 말해줬다고 한다.
-
편집국에서 절실한 세 사람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는 언제나 선(善)이다. 북한 비핵화에 회의적인 이들도 ‘그래서 해법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화와 협상 말고 내놓을 방도가 있는가. 북한 체제가 무너져야 핵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면 ‘희망고문’을 하는 격이다. ‘네오콘’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8년 동안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는 회고록에서 ‘북한 문제를 논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제약’이라며 ‘북한 체제 붕괴’와 ‘대북 군사 옵션’을 제시했다. 2005년 북핵 9·19 공동성명을 도출했던 부시 행정부는 막판에 ‘악의적 무시’로 북한을 냉대했지만 이 두 가지는 아예 목록에서 지웠다.
-
편집국에서 낀 나라의 힘겨운 균형외교 북반구 한국에서 남반구 호주까지는 비행기로 10시간 걸린다. 지리적으로 먼 나라다. 국토 면적 등은 차이가 크지만 경제규모는 비슷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7일 발표한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한국은 10위(1조6421억달러), 호주는 11위(1조4210억달러)였다. 국제정세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닮았다. 최근 필사적으로 맞붙고 있는 미·중 갈등을 지켜보는 속내가 복잡할 것이다. 호주는 미국과 전통적 동맹관계이다. 미국·영국·캐나다·뉴질랜드 등 영어권 5개국의 기밀정보 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의 일원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구상에 일본·인도 등과 함께 참여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호주의 최대 교역국이다. 수출의 30%에 이를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매여 있다 보니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보호주의 강화, 중국의 역내 영향력 확대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