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홍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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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윤석열·한동훈의 기싸움을 왜 봐야 하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폭탄주’와 ‘콜라’만큼 기질이나 스타일이 한참 다르다. 그래도 두 사람은 2003년 SK 분식회계 사건에서 만나 형님, 동생 하며 20년을 지냈다. 고락을 함께한 둘의 브로맨스가 얼마나 깊었던지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한 대표를 “수사를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법무장관으로 정권 2인자, 소통령으로 불렸다. 지금 보면 두 사람은 서로가 존경·존중하는 마음으로 끈끈한 관계를 이어온 게 아니라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틀에서 이해가 맞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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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김정은의 ‘통일 지우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타고 육로 방북했다. 이 고속도로의 기점은 평양 남단에 위치한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으로, 김정일 때인 2001년 8월 세워졌다. 3대 헌장은 남북이 합의한 ‘조국통일 3대 원칙’과 북한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이다. 기념탑 인근에는 “조국을 통일하려면, 각계각층 모든 동포들이 민족 대단결의 원칙에서 하나로 굳게 뭉쳐야 합니다”라는 김일성의 생전 발언이 새겨진 조국통일명제비가 있었다. 김일성·김정일 유훈이 담긴 이 기념탑과 명제비는 지금 북한에 가면 볼 수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 기념탑을 “꼴불견”이라며 철거하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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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정의구현사제단 50주년 ‘민주화운동의 산증인’ 김정남이 두 권으로 정리한 <이 사람을 보라>는 한국 민주화운동사를 기록한 인물 열전이다. 김수환 추기경을 시작으로 49명이 소개되고, 단체는 유일하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등장한다. 정의구현사제단은 1974년 당시 천주교 원주교구장인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후 결성됐다. 그해 9월26일 명동성당에서 “우리는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과 소명을 믿는다”로 시작하는 ‘제1시국선언’을 발표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이 되려고 나선 사제단의 발걸음은 권위주의 시대 고비마다 ‘암흑 속의 횃불’이었다. 폭동이라고 거짓 선전되던 5·18민주화운동 실상을 앞장서 알렸다. 1987년 5월17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상이 조작됐다’는 폭로는 6월항쟁의 도화선이었다. 사제단은 2007년 10월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기 위해 찾아온 김용철 변호사를 맞이했다. 이 일은 경제민주화 문제를 환기시켰다. 사제단은 생명의 가치와 존엄이 짓밟히는 곳으로도 향했다. 2003년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65일간 삼보일배를 했고, 용산 참사·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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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대통령의 자격, ‘미미미미’ 대 ‘유유유유’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 민주당과 공화당은 대규모 전당대회를 열어 자당 대선 후보를 공식 지명한다. 전당대회는 대체로 나흘간 진행된다. 찬조 연설자들이 분위기를 달구고, 사흘째 부통령 후보 연설에 이어, 마지막날 대통령 후보가 수락연설로 대미를 장식한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는 지난 19~22일(현지시간) 시카고에서 열렸는데, 셋째날 무대에 오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연설에 눈이 갔다. 클린턴은 “다음에 도널드 트럼프가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면 거짓말이 아니라 나(I)를 몇번 말하는지 세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무대에 오르기 전 ‘미(me·나), 미, 미, 미’라고 노래 부르며 시작하는 테너 가수 같다”고 했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해선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면 매일 ‘유(you·당신), 유, 유, 유’로 시작할 것”이라고 대비시켰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트럼프와 “모든 미국인이 꿈을 추구할 수 있게 해줄” 해리스 중 누가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지는 자명하다는 얘기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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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축하 난’ 정쟁 때에 따라 어울리는 꽃이 있다. 어버이날에는 부모님 옷깃에 달아드리는 카네이션이 있고, 성년의날을 맞은 이들에겐 열정과 사랑을 담은 장미를 선사한다. 사회생활에서 승진, 영전, 취임, 개업 등을 축하할 땐 난(蘭)이 보편적이다. 동양란은 지조·절개, 서양란은 아름다움·행운 같은 꽃말을 갖는다. 주는 이들이 이런 뜻까지 헤아려 고르진 않았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난 선물은 관행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정치권에서도 축하용으로 난이 애용된다. 대통령이나 정당 대표들은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누군가를 직접 보내 난을 전달한다. 그런 점에서 난의 ‘정치 꽃말’은 소통일 수 있다. 1997년 5월 김영삼 대통령은 정무수석을 보내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대선 후보 선출을 축하하는 난을 전달했다. 1987년 후보단일화 실패, 1992년 대선 맞대결 등으로 불편했던 두 사람 사이에 난이 화해의 메신저가 됐다는 말도 나왔다. 2016년 2월 김종인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비서실장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64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난을 보내려 했지만 정무수석이 세 차례 거절했다 뒤늦게 받은 것은 당시 정국의 ‘불통’ 기류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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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실미도 ‘대독 사과’ 국가는 국민의 생명·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지만, 때론 국민을 배신해 폭력을 자행했다. 해방 후 제주 4·3, 한국전쟁 기간 중 거창·산청 양민 학살,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학살 등 한국 현대사는 국가폭력 사례로 얼룩졌다. 국가는 다수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며 폭력을 정당화했다. 피해자들이 국가의 범죄를 입증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국가폭력의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2005년 출범했다. 진실화해위는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인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국가의 공식 사과를 권고했다. 두 달 뒤인 2008년 1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2020년 출범한 2기 진실화해위는 10건 이상의 국가폭력에 대해 정부의 사과를 권고했지만, 정부는 사과에 인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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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한동훈의 돌이킬 수 없는 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당권→대선 후보→대권’이란 3단계 대선 프로젝트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 ‘한딸’로 불리는 팬덤도 생겼다. 특히 용산과 친윤의 배신자 프레임 공격을 뚫고 득표율 63%란 압도적 승리를 거둔 의미는 크다. 당원과 보수 지지층에서도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는 분리됐다. 하지만 대권가도가 장밋빛 전망은 아니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를 상대하러 가기 전에, 그의 앞에 서 있는 윤 대통령을 넘어야 한다. 한 대표의 전당대회 메시지를 압축하면 ‘국민 눈높이’다. “배신하지 않을 대상은 대한민국과 국민”이라는 말도 강렬했다. 윤 대통령으로 향하는 채 상병 특검법 찬성, 수평적 당정관계는 이를 상징하는 약속이었다. 아직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돌지 않았는데도 정권 말기적 현상을 보이는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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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국회 개원식 학교에서 신학기가 되면 개학식을 하듯, 4년마다 새 국회가 구성되면 개원식을 연다. 국회의원 전원이 본회의장에서 기립해 오른손을 들고 왼손에 든 선서문을 보면서 국회의장 선창에 따라 선서문을 낭독한다. 선서문은 국회법 24조에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어 국회의장 개원사, 대통령 연설이 진행된다.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은 5월30일 임기가 시작되고, 이날부터 세비도 받는다. 하지만 국회의 공식 출범을 알리는 개원식은 그보다 늦다. 국회의장단 선출, 상임위원장 배분, 상임위 배치까지 여야 원구성이 끝난 뒤 개원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대 국회가 개원식을 거른 적은 없었지만 날짜는 제각각이었다. 1987년 개헌 이후 13·14·16·17·20대 국회는 6월에 개원식이 열렸다. 21대 국회는 의원 임기 시작 48일 만인 2020년 7월16일에서야 가장 늦게 개원식을 가졌다. 가까스로 제헌절을 넘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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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김용원·이충상은 어떻게 인권위원이 됐나 국가인권위원회에 두 명의 별종이 있다.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이다. 이들의 언행은 기이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할 지경이다. 두 사람 때문에 인권위에선 연일 난장이 벌어지고 있다. 김 위원은 군인권보호관을 겸직한다. 군인권보호관은 상습적 가혹 행위로 사망한 윤승주 일병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윤 일병 유족들이 재조사해달라고 낸 진정을 각하하고, 항의하는 유족들을 고소했다. 지난해 8월에는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을 조사한 박정훈 전 수사단장이 국방부의 압력에 긴급구제 요청을 했지만, 일방적으로 기각했다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됐다. 김 위원이 기각 결정 보름 전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사실도 밝혀졌다. 김 위원은 인권위 회의 석상에서 송두환 인권위원장에 “버릇없다”고 하고, 인권단체를 “인권 장사치”라 폄훼했다. 고위 공직자의 품위, 인권위원의 품격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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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머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시복식과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차 닷새간 한국을 찾았다. 방한 이틀째 서울에서 헬기를 타고 대전으로 이동해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상 악화로 KTX를 이용하게 됐다. 교황은 대전역에서 영접 나온 코레일 사장에게 “헬기가 못 뜨게 어젯밤에 구름을 불러온 사장이군요”라고 농담을 건넸다. 이튿날에는 앞선 일정이 지연돼 한국 수도자들과의 만남이 늦게 시작되자 저녁 기도와 찬미 순서가 생략되고 곧장 교황이 연설하게 됐다. 교황은 준비된 원고를 읽어내려가다 “오늘 저녁 기도는, 개인적으로 하길 바랍니다”라고 고쳐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그로부터 7개월 뒤인 2015년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에서 한국 천주교 주교단과 만났을 때도 “한국을 다녀온 지 꽤 돼서 한국어를 잊어버렸다. 통역이 필요하다”는 농담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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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거리의 변호사’ 권영국 22대 총선을 닷새 앞둔 지난달 5일, 장하나 전 의원이 20년 몸담았던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단 한 사람을 위해,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였다.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권영국을 선택해주십시오.” 두 사람은 밥 한 끼 같이 먹어본 적 없는 사이다. 장 전 의원에게 권영국 변호사는 “불의가 있는 곳에, 핍박받는 노동자가 있는 현장에 있는” 사람이었다. 19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었던 장 전 의원은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22대 국회) 환노위에 권 변호사가 계신다면,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난다”고 했다. 하지만 녹색정의당은 정당 득표율 2.14%로 한 석도 얻지 못했다. ‘비례대표 후보 4번’ 권 변호사도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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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윤 대통령의 잘못된 선택 이후 4·10 총선 참패 후 윤석열 대통령 앞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 2년간 왔던 길과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많은 이들이 전자로 가면 망할 거라고 했고, 후자로 가면 살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그 갈림길에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이 놓여 있었다. 윤 대통령은 특검법을 거부했다. 선택은 전자였다. 국민 열에 일곱은 특검을 받으라고 했지만, 가차 없이 배반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어쩌면 예견됐던 일이다. 대선 슬로건 ‘공정과 상식’을 버리고 불통·독선·무도함으로 일관한 ‘윤석열스러운’ 결정이었다. 대통령실은 특검법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법리’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역대 특검 사례에 견줘도 그 말에 설득력이 없다는 건 차치하고도, 국민들은 헌법 정신을 따지자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헌법 11조)를 떠올린다. ‘특검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는 단순한 비유에 더 공감한다. 생때같은 젊은 장병의 순직 사건을 대하는 일은 이미 ‘법치’가 아닌 ‘정치’의 영역이었다. 거부권 행사는,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던 윤 대통령의 잘못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