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홍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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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머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시복식과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차 닷새간 한국을 찾았다. 방한 이틀째 서울에서 헬기를 타고 대전으로 이동해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상 악화로 KTX를 이용하게 됐다. 교황은 대전역에서 영접 나온 코레일 사장에게 “헬기가 못 뜨게 어젯밤에 구름을 불러온 사장이군요”라고 농담을 건넸다. 이튿날에는 앞선 일정이 지연돼 한국 수도자들과의 만남이 늦게 시작되자 저녁 기도와 찬미 순서가 생략되고 곧장 교황이 연설하게 됐다. 교황은 준비된 원고를 읽어내려가다 “오늘 저녁 기도는, 개인적으로 하길 바랍니다”라고 고쳐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그로부터 7개월 뒤인 2015년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에서 한국 천주교 주교단과 만났을 때도 “한국을 다녀온 지 꽤 돼서 한국어를 잊어버렸다. 통역이 필요하다”는 농담을 던졌다. -
여적 ‘거리의 변호사’ 권영국 22대 총선을 닷새 앞둔 지난달 5일, 장하나 전 의원이 20년 몸담았던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단 한 사람을 위해,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였다.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권영국을 선택해주십시오.” 두 사람은 밥 한 끼 같이 먹어본 적 없는 사이다. 장 전 의원에게 권영국 변호사는 “불의가 있는 곳에, 핍박받는 노동자가 있는 현장에 있는” 사람이었다. 19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었던 장 전 의원은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22대 국회) 환노위에 권 변호사가 계신다면,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난다”고 했다. 하지만 녹색정의당은 정당 득표율 2.14%로 한 석도 얻지 못했다. ‘비례대표 후보 4번’ 권 변호사도 낙선했다. -
경향의 눈 윤 대통령의 잘못된 선택 이후 4·10 총선 참패 후 윤석열 대통령 앞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 2년간 왔던 길과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많은 이들이 전자로 가면 망할 거라고 했고, 후자로 가면 살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그 갈림길에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이 놓여 있었다. 윤 대통령은 특검법을 거부했다. 선택은 전자였다. 국민 열에 일곱은 특검을 받으라고 했지만, 가차 없이 배반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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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정치하는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4·10 총선 참패 후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말만 놓고 보면 생뚱맞기 그지없다. 대통령은 정치가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통령은 정치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치 지도자이다. 그런데 취임 2년이 지나서야 정치를 하겠다니 만감이 교차한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말한다면, 그동안 뭘 했길래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
경향의 눈 윤석열은 갑자기 별나라에서 왔나 4시간 뒤 나온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이 없었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4·10 총선 결과를 모르고 있나라는 의구심이 들 뻔했다. 총선 엿새 뒤 발표된 윤 대통령의 12분짜리 공개 입장 표명은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상투적 표현을 빼면 이렇게 요약된다. ‘국정 방향은 옳았다. 최선도 다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변화를 느끼지 못한 건 내 책임이다.’ 여당이 총선에서 이겼더라면 겸손함을 보여줬을, 괜찮은 메시지일 수 있다. 하지만 여당은 처참하게 졌다. 역대 대통령처럼, 자포자기 심정으로 “역사는 나를 평가해줄 것”이라는 임기 말 ‘역사와의 대화’ 증상이 시작됐다고 보일 순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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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전직 대통령의 ‘선거 소환’ 대통령의 퇴임 후 정치적 행보는 한국과 미국이 사뭇 다르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은 선거전 한복판에 뛰어들어 자당 후보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당부한다. 바로 지미 카터·빌 클린턴·도널드 트럼프가 떠오른다. 의원내각제인 일본도 그러하다. 한국의 전직 대통령은 퇴임 후 현실 정치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특히 선거운동 기간에는 정치적 메시지를 자제하고 대중들의 시선도 멀리한다. -
경향의 눈 ‘바보’ 박용진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멤버다. 2011년 범야권 대통합 물결에 몸을 실었다. 혈혈단신으로 진보신당을 떠나 민주당원이 됐다. 민노당 후보로 두 번 총선에서 낙선한 박용진은 민주당 간판을 달고 20·21대 국회의원이 됐다. 20대 국회에서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4조원대 차명계좌 문제를 제기해 당국이 과세하도록 하는 등 재벌 저격수로 불렸다. 비리 유치원 명단을 공개했다. 국회를 통과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의 별칭은 ‘박용진 3법’이었다. 법안에 의원 이름 붙는 거, 흔치 않다. 21대 총선 서울 득표율 1위는 그냥 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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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선거 공천의 ‘NBA’ 총선에서 정당 공천제도가 도입된 건 70년 전이다. 1954년 3대 총선 당시 자유당은 대의원 투표, 시도당 평가, 중앙당 심사를 종합한 최고득점자를 공천하려고 했다. 뜻대로 되진 않았다. 당 총재인 이승만 대통령 재가 과정에서 공천자가 뒤바뀌었고, ‘원조 상향식’ 공천은 흐지부지됐다. 요즘 정당은 ‘시스템 공천’이라고 부른다. 이에 따르면, 먼저 부적격 기준을 내놓는다. 성범죄, 음주운전, 직장 갑질, 학교폭력 이력이 있으면 신청조차 말라는 것이다. 그 후 당이 추구하는 이념·가치에 부합하는지, 이를 구현할 능력이 있는지를 검토한다. 객관적 평가와 주관적 평가가 혼합된다. 정당마다 공정한 기준과 민주적 절차를 강조하지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공천은 특정 계파의 세력 확대 수단으로 활용되기 일쑤였고, 그래서 매번 ‘내전’을 겪었다. -
여적 푸틴 정적의 의문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권력자들이 정적을 그대로 두는 일은 드물었다. 권력을 위협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 싹을 잘라내려고 했다. ‘21세기 차르(황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배하는 러시아는 두드러진 예다. 1990년대 주지사와 부총리를 지내는 등 러시아 정계의 주류 인사였던 보리스 넴초프는 한때 지지했던 푸틴이 독재로 치닫자 반체제로 돌아섰다. “푸틴 없는 러시아를 외쳐야 한다”며 ‘반(反)푸틴’ 시위를 준비하던 넴초프는 2015년 2월 크렘린궁에서 불과 200m 떨어진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총 4발을 맞고 숨졌다. 전직 스파이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2006년 망명국 영국에서 방사성 물질 폴로늄이 들어간 차를 마시고 사망했다. 푸틴의 치부를 들춰낸 언론인과 기업인의 죽음도 이어졌다. 2000년 푸틴 집권 이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숨진 이들이 줄잡아 수십명이다. 그럴 때마다 KGB 출신인 푸틴이 비밀경찰 조직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한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그는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다. -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총선 과반 의석 정당 없을 것…격전지선 제3정당 변수 클 듯” 1999년 첫 직장인 한국리서치 입사 후 조사만 파고들었다. ‘숙의토의조사, 선거조사, 전화조사 방법론’이 전문 분야로 소개된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조사(2017년),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 공론화 조사(2023년) 등 시민참여형 공공여론조사를 주도했다. 지상파 방송3사의 선거 출구조사에 참여했고, 22대 총선 출구조사도 준비 중이다. 자동응답전화(ARS) 조사를 하지 않는 34개 업체로 구성된 한국조사협회 대변인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여론으로 보는 북한과 통일에 관해 쓴 <통일을 어떻게 생각하세요>(공저) 등이 있다. -
여적 한동훈이 고른 ‘목련꽃’ 5일 국민의힘 중앙당사 회의실 뒤편에 목련꽃 그림이 배경으로 걸렸다. 장애 예술인 최지현 작가의 작품이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이 작품을 직접 골랐다고 한다. 그림 옆에는 ‘봄이 오면 국민의 삶이 피어납니다’라고 적혔다. 이 글귀엔 한 위원장이 이틀 전 “목련이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것”이라고 했던 말이 겹쳐 보인다. -
여적 윤 대통령의 ‘화해법’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후보 때인 2021년 12월4일 이준석 대표를 만나기 위해 울산으로 내려갔다. 이 대표는 선대위 인선·구성 문제 등으로 윤 후보와 마찰을 빚어 나흘째 잠행 중이었다. 두 사람은 2시간 동안 저녁식사를 한 뒤 환한 얼굴로 어깨동무를 하고 껴안았다. 오래가지 못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역할·권한을 보장하는 합의가 이행되지 않자, 선대위를 뛰쳐나갔다. 격앙된 친윤 의원들은 이듬해 1월6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표 사퇴를 압박했다. 이 대표 발언 도중 갑자기 의총장으로 윤 후보가 들어왔다. 윤 후보는 “모든 게 다 제 탓”이라고 했고, 두 사람은 포옹했다. 윤 후보는 이 대표의 승용차를 함께 타고 경기 평택시 공사장 화재로 순직한 소방관들을 조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