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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갑자기 별나라에서 왔나

안홍욱 논설위원

4시간 뒤 나온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이 없었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4·10 총선 결과를 모르고 있나라는 의구심이 들 뻔했다. 총선 엿새 뒤 발표된 윤 대통령의 12분짜리 공개 입장 표명은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상투적 표현을 빼면 이렇게 요약된다. ‘국정 방향은 옳았다. 최선도 다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변화를 느끼지 못한 건 내 책임이다.’ 여당이 총선에서 이겼더라면 겸손함을 보여줬을, 괜찮은 메시지일 수 있다. 하지만 여당은 처참하게 졌다. 역대 대통령처럼, 자포자기 심정으로 “역사는 나를 평가해줄 것”이라는 임기 말 ‘역사와의 대화’ 증상이 시작됐다고 보일 순 있겠다.

윤 대통령은 야당에 과반 의석을 내준 첫 대통령으로 정치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이 오욕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 납작 엎드려 살려달라고 해도 시민들의 성난 마음이 풀릴까 말까 한데, 자기 마음을 몰라줘 억울하다는 투다. 국민의 염장을 지르는 그의 말에 절박함은 읽히지 않았다. 총선 이튿날 대통령비서실장이 대독한 56자 메시지를 3700여자로 늘려놓은 게 성의라면 성의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 2년간 여러 번 ‘국민 뜻을 받들겠다’고 했다. 대선 승리 후 첫 일성이 “오직 국민 뜻에 따르며 국민만 보고 가겠다”였다. 처음이자 (아직까진) 마지막인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선 “민심을 겸허히 받들겠다”고 했다. 지난해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다시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했다. 고집불통 국정으로 지지율이 뚝 떨어지고, 선거에서 지면 몸을 낮췄다가 상황이 나아진다 싶으면 고개를 들었다. 비극의 전조는 반복됐다.

대통령이건 누구건 실수를 한다. 한두 번은 달라지겠거니 생각하고 기회를 준다. 하지만 같은 잘못을 반복하면 무지·무능한 거다. 오만, 불통, 위선, 책임 회피는 더는 감춰지지 않는 ‘윤석열 정치’를 상징한다. 국민이 가라는 길로 갔다면 윤 대통령의 처지는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결과가 국정의 분수령이 될 것임을 알고, 이기려고 애를 썼다. ‘디올백’ 김건희 여사 얼굴을 숨기고,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로 빼돌리고, ‘관권선거 시비’ 민생토론회를 24번 열었다. 하지만 ‘대파’당할지 몰랐던 걸까. 부글부글 끓는 민심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참패 이후다. 정권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는데도 위기 대응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민심이 회초리를 들었으면 광장에 나와 매 맞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판에, 요리조리 피하는 데 급급하다. 정무 감각 좋고, 소통 능력 뛰어난 인물을 찾는 것, 중요하다. 하지만 국무총리·대통령실 인선 하마평에 들어 있는 이름들에선 위기의식도, 정치력·상상력도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백명 천명의 인재를 모셔온들 소용없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정치 데뷔 8개월 만에, 역대 최소 표차로 신승했다. 리더십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시민들도 많은 걸 기대하진 않았을 게다. 그저 대선 슬로건처럼 ‘공정과 상식’의 국정운영을 바랐지만, ‘불공정과 몰상식’으로 일관했다. 변하지 않는 대통령이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 곧이곧대로 믿고, 박수쳐줄 국민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이제는 야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 하나 제 뜻대로 할 수도, 벌여놓은 일을 마무리할 수도 없다. 고작 시행령 고치는 수준으로 뭘 얼마나 바꿀 수 있겠나. 그런데 윤 대통령은 ‘협치’란 말조차 하지 않는다. 제1 야당 대표와의 만남은 지금도 ‘검토 중’이다. 이런 식이면, 윤 대통령이 향후 3년도 이전과 달라질 게 없을 것이란 회의감이 짙어진다.

시민들은 윤 대통령에게 반성과 성찰을, 국정 기조의 전면적 전환을 요구한다. 집권여당이 선거에서 졌고, 가장 큰 책임이 윤 대통령에게 있어서만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아직도 임기가 3년 남은 국정 최고책임자이기 때문이다.

국정이 표류하면 민생 위기는 깊어지고, 내 삶은 더욱 나빠질 게 자명하다. 국민들은 간절한데 윤 대통령은 간절하지 않은가. 지키는 게 보수라지만 때로는 변해야만 지킬 수도 있다. 지금 윤 대통령에겐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꺾는 마음’이 필요하다. 국민의 바람을 이뤄주는 것이 최고의 정치라면, 국민과 싸우는 것은 최악의 정치다. 윤 대통령이 후자를 택한다면, ‘별나라에서 온 대통령’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시간만 때우다 직을 내려놓을 것이다.

안홍욱 논설위원

안홍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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