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문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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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막장 대한민국 한때 막장 드라마가 유행이었습니다. 상상초월 반전과 극단적 관계 설정, 그리고 예상을 벗어난 결론에 이르는 드라마들이었습니다. 시청자들의 짜증 속에서도 꽤 괜찮은 시청률을 올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막장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간단하게 먹기 위해 허드레로 만든 된장이라는 말과 더 이상 나아갈 데가 없는 갱도의 마지막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막장 드라마의 ‘막장’은 후자를 지칭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막장 드라마가 당시에 제작되고 방영된 이유는 뭘까요. 종편의 가세로 방송드라마 시장이 전쟁터가 됐다지만 방송작가 역시 정신적 산물을 생산하는 문학인일진대 시청률 하나에 자신들의 가치를 그렇게 내팽개칠 수 있을까요. 문학은 그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또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예견과 변화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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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 곁의 좀비 영화 <부산행>이 11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순항 중이다. 매력적인 배우 공유와 마동석의 연기, 고속열차라는 생소한 배경 등 여러 요인들이 이뤄낸 성과다. 그러나 무엇보다 관객의 발길을 이끈 것은 한국 영화 최초의 좀비 실사영화라는 점일 것이다. 연상호 감독이 그려낸 좀비들은 외국산보다 훨씬 인간에 가깝다. 또 기괴한 형상 속에서도 시각과 청각만은 예민하게 살아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메시지는 단순하다.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재난 속 인간애를 그렸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추악한 본성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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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욕망의 덫 15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퇴근길 종로3가역에서 노신사가 출입문을 들어섰다. 한 손에 노란 봉투를 거머쥔 그는 노약자석에 자리를 잡았다. 무심히 노신사를 바라보던 필자는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에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분이 바로 현승종 전 국무총리임을 알게 됐다. 그 순간 어색함, 경이로움, 반가움 등 여러 감정이 동시에 올라왔다. 주변의 시민들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전철 안은 알 수 없는 흥분으로 술렁였다. 하지만 그분은 주위의 눈길에 아랑곳 않고 너무도 편안히 앉아 계셨다. 마치 당신이 매일 반복하는 삶의 일부, 일상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날 전철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필자의 발걸음은 참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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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70인 과의 동행 (11) 박태순 작가와 함께한 이황의 ‘예던길’ 지난 21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갑작스럽게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5월 중순, 아카시아꽃들이 지천으로 만개한 여름의 초입에 몰려온 30도를 넘나드는 폭염이었지만 ‘동행 70인’의 행로를 막아설 순 없었다. 이른 아침 3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학교수와 판화가, 중학생 아들의 손을 잡은 중년 부부, 그리고 이미 동행 마니아를 자처하는 ‘동행족’들까지 모두 설레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며 이날의 행로를 화제로 들떠 있었다. 이번 동행은 조선 성리학의 거두인 퇴계 이황 선생의 삶을 따라가는 여정. 조선 성리학의 산실이자 메카로 불리는 경북 안동과 영주를 아우르는 빡빡한 코스. 동행을 이끈 사람은 국토기행으로 유명한 박태순 작가(74). 서울을 7시경에 출발한 버스는 주말을 맞아 유원지로 향하는 차량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첫 기행지인 경북 안동의 퇴계 선생 태실에 도착했다. 들녘과 개천을 앞에 두고 우뚝한 뒷산의 소나무들은 푸르름을 더해 퇴계 선생의 기품을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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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뉴스 [오래전 ‘이날’]5월21일 “사라질 뻔한 투표용지를 찾고 있어요” [기타뉴스][오래전 ‘이날’]5월21일 “사라질 뻔한 투표용지를 찾고 있어요” [오래전‘이날’]은 1956년부터 2006년까지 매 십년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 합니다. ■1996년 5월21일 인위적 여대야소로 정국급랭 지난 4·13 총선에서 국민의 뜻은 분명했습니다. 새누리당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분명한 경고를 보냈습니다. 국민들의 경고는 여소야대로 나타났습니다. 더 민주당을 비롯한 야 3당 보다 의원수가 새누리당 보다 많아진 것이지요. 하지만 선거 후 새누리당은 탈당인사들을 재영입해 인위적인 여대야소를 시도하려 했으나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과 당내 반발로 아직은 여소야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1996년 당시 신한국당은 의원수가 과반수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무소속이었던 임진출의원을 영입해 150석을 만들어 과반을 넘어섰습니다. 야당은 보라매 공원에서 집회를 열기로 하는등 여야의 대치가 시작됐고 정국은 급랭됐습니다. 이때로 부터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대야소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한국민주주의 현주소가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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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이 찍은 오늘 5월19일 마지막 날까지···19대는 ‘실망국회’ 경향신문 사진기자들이 ‘오늘’ 한국의 사건사고·이슈 현장을 포착한 보도사진 [경향이 찍은 오늘] 5월19일입니다.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정의화 국회의장은 오늘 오후 본회의를 마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9대 국회에서는 상식과 합리를 바탕으로 충분히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법안들도 ‘이념의 덫’과 ‘불신의 벽’에 가로막힌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 당 지도부 주도로 전혀 연관이 없는 법안들을 주고받으며 거래하듯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의원 개개인과 상임위원회의 입법권은 무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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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처음 투표장에 들어설 아들에게 아들, 첫 투표라서 좀 떨리지?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막막할 거야. 아빠도 처음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투표를 했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적지 않게 후회와 실망을 하곤 했어. 하지만 선거를 거듭하면서 진짜와 가짜를 감별해내는 눈이 생겨났고 예전과 같은 그런 큰 실수를 되풀이하지는 않게 됐어. 그래서 처음 투표장에 들어설 네가 아빠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조언을 해줄까 해. 우선 투표하기 전에 기억을 잘 되살리는 일이 중요하단다. ‘지난여름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선거는 그동안 대통령과 정부가 어떤 정치를 했는지를 평가하는 절차야. 그들이 국가를 어떻게 이끌었는지 성적을 매기는 거지. 지난 3년 중 뭐가 기억나니. 2년 전 4월16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지? 300여명의 아이들과 국민들이 세월호 속에서 죽어갈 때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는 무엇을 했지? 이뿐 아니라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사건의 시작과 끝이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어. 또 메르스란 질병도 생각나는구나. 후진국에도 퍼지지 않는 질병에 안일하게 대처하다 수십명이 어처구니없게도 목숨을 잃었지.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에는 어떤 진전이 있었니. 북한의 핵개발에 과도하게 반응하면서 개성공단이라는 실낱같던 통일의 희망을 사라지게 했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 격이야. 어디 이런 사례뿐이겠니. 그러니 그들이 내세웠던 정책들이 제대로 이행됐는지, 정말 국민들의 삶에 도움이 됐는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향상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는지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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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응답하라 2016 물질은 부족해도 사람이 살아있던 시절이었다.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집들에서는 사람 냄새가 났다. 나와 남이라는 경계가 모호하던 그때, 좋은 옷과 맛난 음식이 아니어도 그렇게 부끄럽거나 자존심 상하지 않았다. 그 푸르른 날을 살았던 젊음들은 참 밝고 깨끗해 보였다. 최근 종영한 <응답하라 1988>이 그려낸 풍경화다. 많은 사람들처럼 필자 역시 “그래 그 시절은 참 괜찮았어”라며 그때를 곱씹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절 청춘들의 삶이 정말 드라마 속 풍경처럼 그렇게 정겹고 빛나기만 했을까. 우리는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곤 한다. 음식을 먹어도 옛날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맛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시골풍경만 나와도 옛집을 떠올리며 지그시 담배를 문다. 이처럼 과거를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로 추억하는 것은 정말 그때가 살 만했고 아름다워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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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민주정부를 다시 수립하자 3년 전 우리는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가 당선된 뒤에도 적지 않은 국민들은 내심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 워낙 전임 이명박의 5년 국정이라는 것이 깡패 수준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명박이 그리울 때가 있을 것”이라는 가당치도 않았던 예견을 곱씹고 있다. 이제 박 대통령은 거의 막가파 수준이 돼 버렸다. 누구도 통제할 수 없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자신이 ‘올바르다’고 여기는 그 무언가를 향해 단호하게 걸어간다. 그의 길을 가로막는 이는 혼이 나간 것이고 비정상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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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담장 위를 넘는 재벌들 여러분은 최근 보도된 사진 중에서 어떤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개인의 관심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최태원 SK회장의 사진을 꼽고 싶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그는 지난달 14일 광복 70주년을 하루 앞두고 대통령 특사로 남은 1년4개월을 스킵하고 사회로 방생됐습니다. 그런데 재벌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그리 특별하지도 않은 재벌의 출소장면이 왜 이렇게 기억에 남았을까요. 그것은 그가 출소할 때 왼손에 들고 있던 빨간색 표지의 성경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왜 유난스럽게 성경을 들고 감옥소를 나섰을까요. 2년7개월 동안 감방에서 죗값을 충실히 치렀고, 회개했으며, 그래서 새로운 사람으로 재탄생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에 대한 기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지난 6일 SBS가 방송한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 특집 ‘담장 위를 걷는 특권’편은 그를 비롯한 재벌들이 감옥소에서 어떻게 죗값을 치렀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최 회장은 변호사 접견만 무려 1778회, 장소변경 접견 191회, 아침에 독방을 나와 오후 5시에 들어왔다는 증언들…. 또 ‘땅콩 회항’으로 구치소에서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으며 깊은 반성의 눈물을 흘렸다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5개월 동안 변호사 접견실을 아예 전세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밝히지 않아도 알 만한 ‘7번방의 회장님’은 자택에 머무는 수준의 편안한 감옥소 생활을 했더랬습니다. 돈이 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는 법 앞에선 만인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룰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재벌들의 안하무인 격 횡포는 감옥 담장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대성그룹은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대성에너지 공채시험에서 대표이사인 김영훈 회장이 최종면접까지 보고도 면접자 전원을 탈락시켜 버렸습니다. 그러고도 “아쉽게도 선발되지 못했다” “적은 수의 인원을 뽑았다”는 등 거짓말까지 해댔습니다. 특히 창업주의 회고록을 읽고 감상문까지 쓰게 했다니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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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쿡방 시대 단상 “으~~음,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가 있죠?” 게스트는 입속의 혀를 굴리며 화면 속에서 눈을 감았다 살짝 뜬다. 그리고 아직 음식을 다 삼키지도 않은 채 찬사를 보낸다. 순간 잘생긴 셰프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미소가 번진다. 요즘 전 국민을 요리사랑에 푹 빠지게 한 ‘쿡방(요리방송)’의 한 장면이다. 대한민국이 쿡방에 점령당했다. 어디를 가든 쿡방 뒷얘기로 설왕설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실시간으로 소감과 비판이 이어지고 쿡방 레시피대로 요리를 한 사람들의 댓글이 줄을 잇는다. 음식은 인류의 영원한 주제이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먹거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전개돼 왔다. 인류 4대 문명 발상지가 먹거리가 풍부한 강가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먹거리 확보는 많은 전쟁을 낳았고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역사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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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5월의 역설 5월만큼 좋은 계절은 없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이 아니어도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비로소 제자리를 잡는 시기다. 백화만발의 시간도 잦아들고 바야흐로 푸른 녹음이 온 산하대지를 물들인다. 그래서일까. 5월에는 우리 인간의 삶도 한껏 힘을 받고 바빠진다. 농부들은 입하를 시작으로 소만-망종을 거치면서 씨를 뿌리고 모내기를 시작한다. 마음이 바빠지는 것은 농부들만이 아니다. 도시민들, 아니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5월에는 마음이 종종걸음을 친다. 좋은 계절만큼이나 새기고 기념해야 할 것도 많기 때문이다. 첫날 1일부터 마지막 31일까지 그야말로 기념일들로 빽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