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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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말자 이 지면에 칼럼을 게재한 지 꼭 4년이 되었다. 2017년 1월, 대통령 탄핵으로 주말마다 수백만의 인파가 광화문에 집결하던 때였다. 다른 때였으면 원고 청탁을 거절했을 것이다. 때에 맞게, 좋은 글을, 규칙적으로 쓴다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날 청탁을 수락했던 것은 목소리를 보태기 위해서였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던 함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함성 때문에 더욱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있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 그리고 장애인수용시설의 폐지를 요구하며 5년째 광화문 지하를 지키던 사람들.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서 결심했다. 이 지하 농성장의 볼륨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싸구려 앰프라도 되어야겠다고. 그해 가을, 농성은 마무리되었다. 정부가 이들의 요구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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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사람 살려! 2008년 처음으로 교도소에 들어가 보았다. 교도관 뒤를 졸졸 따라가는데, 얼마나 긴장했던지, 예닐곱 개의 철문을 지나치는데 가슴이 예닐곱 번 철렁댔다. 볕이 드는 1층 복도를 따라 걷는데도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수인이 아니라 강사였는데도 그랬다. 나는 인권연대가 주관한 재소자 인문학 프로그램(평화인문학)의 강사였다. 이 프로그램을 따라 안양, 수원, 여주, 영등포, 남부 등 여러 구치소와 교도소를 다녔다. 강의를 거듭할수록 처음의 긴장과 두려움은 사라졌다. 하지만 철문들이 닫히는 소리에는 어떻게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전자장비가 부착되어 예전보다 조용하고 부드럽게 닫히는데도 그랬다. 그것은 사람을 가두는 문들이 닫히는 소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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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이 겨울의 방어태세 이 겨울에 들어서면서 우리가 이렇게 말이 없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라가 조용하다는 건 아니다. 사실은 아주 소란스럽다. 상대 정파의 지지율을 1%라도 낮추기 위해 혹은 자기 콘텐츠의 구독자 수를 한 명이라도 늘리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글을 써대고 영상을 제작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두가 ‘좋아요’와 ‘싫어요’를 원하는 한가한 말들뿐이다. 내가 행방을 찾고 있는 것은 생존 위기에 처한 ‘우리들’의 말이다. 도대체 이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지. 아니, 그 전에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 한탄이라도 함께 했으면 좋겠는데 말을 나눌 사람도, 기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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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상원의원과 전역하사 2012년 미국 아메리칸 대학의 한 학생이 학생회장 임기를 마치며 신문에 ‘진짜 나(The Real Me)’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비밀을 고백했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자기 안의 여성을 억누른 채 남성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사소한 일이든 짜릿한 일이든 나는 내가 해낸 일을 여성인 내가 행하는 모습으로 다시 상상함으로써만 즐길 수 있었습니다. 내 삶은 그런 식으로 내 곁을 지나쳐 갔고,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로서 삶을 허비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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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두 번째 사람 홍은전 세상에는 두 번째 사람이 있다. 심보선 시인은 바로 시인이 그렇다고 했다. 시란 “두 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 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면서 쓰는” 거라고. 첫 번째 자리는 슬픔의 자리이지 글의 자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슬픔에 관한 첫 번째 글은 두 번째 자리에서 나온다. 그런데 어찌 시인만이겠는가. 세상에는 시인 말고도 두 번째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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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변호사에게 먼저 건 전화 지난주 인천 을왕리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가해자들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음주운전도 문제였지만 사고 직후 보인 태도가 더 큰 분노를 자아냈다. 영상을 보면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내버려둔 채 차량 안에 머물렀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나서야 바깥에 나왔는데 이때 변호사와 통화하고 있었다고 한다. 구급차를 부른 것은 이들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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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약자의 눈’ 그가 시설에 남은 건어쩌면 시설 밖 세상을 알고,장애인 인권을 알고 난 뒤에더 강해졌기 때문이다부디 그의 ‘눈’으로 정치하길 지난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했다.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확대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는데 주관 단체 이름이 눈에 띄었다. ‘약자의 눈’. 의원들이 만든 연구단체인데 지난달 20일 출범했다고 하니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소개 리플릿에는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행복권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당찬 포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겉면에는 큰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정치는 ‘약자의 눈’을 통해 ‘미래의 눈’이 되는 것입니다.” 단체 소개 문장을 내가 이렇게 뚫어져라 본 적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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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말과 폭탄 사이에서 말을 믿을 수 없을 때, 말은 말일 뿐이라고 느껴질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상엔 말뿐인 사람들만 넘쳐나고, 아무리 소리쳐도 말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김미례 감독의 다큐멘터리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8월 개봉 예정)을 보고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1974~1975년 기업들에 폭탄테러를 가한 일본의 무장 운동 단체다. 첫 번째 공격 대상이었던 미쓰비시중공업에서만 8명이 죽고 300명이 다쳤다. 언론은 이들을 ‘국민의 적’으로 몰아세웠다. ‘생각 없는 폭탄 마니아’라고도 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이후 일본 사회에서 누구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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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정말로 ‘노동의 권리’가 이런 거라면 헌법은 사회가 지향하는 기본 이념을 가장 포괄적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전혀 공감이 안 되는 조항들이 있다. 헌법 32조의 1항과 2항. 이 조항들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며 또한 근로의 의무를 지고 있다. 과연 먹고살기 위해 일해야만 하는 상황을 권리라고 불러야 하는가, 그리고 이것을 모든 국민이 의무로 져야 하는가. 나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많은 사람들의 유일한 생존책이고, 이 조항들 없이는 국가를 향해 고용과 임금에 관한 대책을 요구할 근거가 없어 현실로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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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동물 앞에서 발가벗은 인간 발가벗은 내 모습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빤히 바라보던 고양이. 자크 데리다는 <그러므로 나인 동물(L’Animal que donc je suis)>에서 벗은 몸을 집요하게 응시하던 고양이와 그 앞에서 부끄러워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보통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받을 때, 즉 그 시선의 주체가 동물이 아니라 인간일 때 이런 감정을 느낀다. 타인은 그 출현만으로도 내 세계를 흔든다. 새나 고양이가 나타난 것과는 다르다. 내가 어떤 못난 행동, 이를테면 열쇠구멍으로 누군가의 방을 훔쳐보고 있을 때, 누군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 더욱 그렇다. 그때 나는 메두사의 눈이라도 본 것처럼 돌덩어리가 될 것이다. 남의 방이나 엿보는 놈으로 비친 것에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를 것이다. 사실은 작은 소리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깜짝 놀라 문에서 눈을 떼고는 그런 내 모습에 부끄러워할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가 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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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삶이 가장 축소된 순간, 혼자여선 안돼 며칠 전 미국의 한 연구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코로나 시대 시민들의 상호부조와 연대에 대한 책을 함께 쓰고 싶다고 했다. 이 끔찍한 상황에서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돕고 있는지,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에도 불구하고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를 모두에게 알리자는 것이다.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생명을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발코니에 나와 노래하고 연주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는 가능한 한 빨리, 가능한 한 많은 이야기를,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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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다시 최옥란을 기억하며 봄마다 장애인들은 ‘420공동투쟁단’이라는 걸 꾸린다. ‘장애인의날’인 4월20일에 맞춰 장애인 차별의 현실을 고발하고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에 나서는 것이다. 투쟁단은 매년 3월26일 출범해서 4월20일까지 활동한다. 올해도 3월26일, 지난주 목요일에 출범식을 가졌다. 코로나19 때문에 간격을 유지한 채 간소하게 진행되었지만 날짜가 바뀌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