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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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불쌍한 놈, 위험한 놈 불쌍한 놈이 위험한 놈 되는 순간자선통치자가 공안통치자 돌변 ‘이건 뭐지’ 하고 벙찌는 일이지만두 얼굴의 통치자는 늘 이럴 위험지금 이 땅에도 징후가 농후하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00일.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바닥이다. 실망한 사람, 분노한 사람이 70%에 육박한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느낀 감정은 실망이나 분노가 아니었다. 내 감정은 당황과 황당 사이를 자주 오갔다. 얼빠진 사람처럼 “이건 뭐지?” 하고 ‘벙찌는’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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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가난한 자에 대한 섬김 내 대학 시절 해방신학은 낡아도가난한 자들에 대한 섬김은 유지 이젠 사회도 대학도 오래전 개종학생이 가난한 자를 고발하는 등대학도 세상이 섬기는 신을 섬겨 그 시절 대학은 많은 게 뒤집힌 곳이었다. 신입생으로 두 달을 보낸 5월 어느 날 갑자기 기온이 쑥 올라갔다. 체감으로는 한여름 같았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들었는데도 나는 긴 옷을 입었다. 서울살이를 시작할 때 고향집에서 여름옷까지 챙겨오지 않아 입을 옷이 없었다. 그러나 믿는 구석이 있었다. 학생회관 근처에는 언제나 이런저런 기금 마련을 위해 티셔츠를 판매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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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상생하라 길은 함께 누릴 수 있을 뿐누구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혼자서는 아무리 거대해져도함께라는 공동성이 될 수 없다이젠 사유화와 공동성 중 택해야 을지OB베어. 서울 을지로3가에 있는 42년 역사의 생맥줏집. 내가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곳이고, 건물주가 가게를 내쫓아 이제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을지OB베어의 강제 철거 소식을 접하고는 설명하기 힘든 상실감이 들었다. 이상한 말이지만 손님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이 단골가게를 잃은 느낌이랄까. 심지어는 내 것이 아닌 내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강탈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도대체 이 느낌의 정체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알고 싶어 무작정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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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단식과 깡통 46일. 인권활동가 미류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보낸 단식의 시간이다. 내일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는 그의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이 허기진 시간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내 눈에는 비쩍 말라가는 그가 지시등처럼 보였다. 위태로운 단식을 이어가던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위태롭게 질식의 시간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비하하는 사회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사람들. 미류의 단식은 이들의 시간을 그냥 흘러가게 둘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는 한 생명이 위험에 처함으로써 다른 생명들이 위험에 처했음을 알리는 비극적 현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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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한 시설의 위대한 몰락 시설 정상화 아닌 몰락을 요구했다그들은 집으로, 사람으로 가는 길시민으로 가는 길을 소리쳤다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첫 장은이들의 투쟁에 의해 열렸다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집에 있으면 짐밖에 안 되는 걸 내가 뻔히 아는데.” 지금 예순을 넘긴 규선씨는 스물일곱 살 때의 일을 선명히 기억한다. 뇌성마비장애인인 그는 어려서부터 방에서만 지냈다. 그러다가 방에서도 지낼 수 없는 때가 왔다. 어느 날 어머니가 시설 이야기를 꺼냈고 그는 받아들였다. 더 이상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1988년 석암 베데스다요양원(현 향유의집)에 입소했다. 슬프지만 평온한 이별, 그러나 극단적인 뒷이야기가 있다. 담담하게 그때를 회고하던 그는 눈물을 흘렸다. “이런 얘기는 한 번도 안 했는데… 그때 어머니하고 동반자살을 시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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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이런 비문명인들 같으니! 고맙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공이 크다. 스피커 큰 사람이 욕해대니 욕먹는 사람도 주목을 받는다. 그가 아니었다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가 이처럼 조명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일반단체라고 해도 지하철을 막는 방법으로 투쟁하면 실정법 위반”인데 이런 상황을 “몇 개월이나” 정치인들이 “장애인단체 시위라는 이유로 방치”해왔다고 분개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들의 시위를 “비문명적 관점”의 불법 시위라고 부르기도 했다. ‘비문명적’이라고 에둘러서 말했지만 실상은 문명사회에 안 맞는 ‘야만적’ 시위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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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죄 없는 시민은 죄가 없는가 ‘21년 50일’의 이동권 투쟁서장애인이 시민들 발목 잡았을까 제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남의 인권 함부로 침해한 존재는장애인 아닌 어리석은 시민이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50일 넘게 장애인들의 출근길 시위가 있었다. 휠체어 장애인들 여럿이 승강장 한 곳에서 줄지어 타기를 반복했다. 이로 인해 지하철의 운행이 역마다 몇 분씩, 전체로는 몇십 분씩 늦어졌다.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도 언급되었지만 SNS상에서는 시위 시작 때부터 난리가 났고 장애인 단체에는 항의와 협박 전화가 빗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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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화성의 관타나모 문제적 ‘폭력의 성채’ 관타나모한국의 외국인보호소가 그렇다 외국인 무한정 구금 없애려면출입국관리법 바꾸는 게 우선‘어필’에 우리 의지 보여주시라 영화 <모리타니안>의 마지막 장면. “오, 나의 변호사님들!” 모하메두는 낸시와 테리를 크게 껴안는다. 그는 2001년 ‘9·11 테러’ 용의자로 체포되어 이듬해 관타나모에 수감된 이후 줄곧 거기 있었다. 한 차례의 재판도 없었다. 수년 동안의 고문만이 있었을 뿐이다.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그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마침내 2010년 석방 판결을 받았다. 모하메두가 얼마나 기뻤을지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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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우리는 미쳤다” 우리를 부르는 호칭은 많다정신병자, 사이코, 미친XX… 하지만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우리는 당신께 양해 구하지 않고함부로 오해받을 사람도 아니다 미친 사람. 돌이켜 보면 나는 그를 자주 만났다. 가까운 친척도 있었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도 있었고, 우러러보던 선배도 있었고, 내 수업을 듣던 학생도 있었다. 그는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믿을 사람이 당신밖에 없다며 제발 도와달라고 했다. 의사와 가족들이 서로 짜고 자신을 병원에 집어넣으려 한다고. 또 다른 그는 길거리에 서서 국가기관이 자신을 감시한다며 모순과 비약으로 점철된 이야기를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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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죽은 사람의 죽지 않은 말 최옥란·김순석·최정환·이덕인…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장애열사 때로 찌들고 피로 물든 유언들이한국 장애사의 바탕 무늬가 돼장애 조직들을 이만큼 키워냈다 말한 사람이 떠난 세상에 남아 이 사람 저 사람을 붙드는 저 말의 정체는 무엇인가. 새로 나온 책들을 일별하다가 어느 책의 표지에 박힌 말을 보고는 아는 사람을 확인하듯 눈이 커졌다. “나의 주위에 계신은 동료 여러분에게 부탁이 있읍니다. 네 이루어지지 안는 것들을 꼭 이어주십시요. 나의 시신은 화장해서 두망강에 뿌려주세요. 준호야 사랑한다. 꼭 너하고 사려고 해는데, 준호야 준호야 네가 보고 싶군나.” 익숙한 글씨, 맞춤법을 어긴 채 포복하듯 비뚤배뚤 나아가는 글자들. 어떻게 당신을 몰라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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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고문의 이면 고문과 고문시설의 이면에는혐오와 그를 옹호한 언론 있음을한 방송의 이면 추적을 보고 알아 보호외국인의 고문 실상을 덮어실상은 스스로 발가벗었다 지난 9월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끔찍한 고문이 자행되었다는 폭로가 있었다. 그로부터 40여일이 지난 오늘까지 고문피해자는 고문장소에 갇혀 있다. 얼마 전 법무부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화성외국인보호소 보호외국인 가혹행위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 “인권침해행위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새우꺾기’라고 하는 보호방식도, 박스테이프나 케이블타이 등의 보호장비 사용도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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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고문의 추억 함께 살 수 없다는 처분 내렸기에그들의 보호시설 구금을 용인하고우리는 그곳의 폭력에 눈감는다그곳이 아우슈비츠 닮아갈수록우리도 나치를 닮아가고 있다 그의 몸은 뒤로 꺾여 있었다. 수갑을 채운 손목을 등으로 돌려 발목과 함께 묶었기 때문이다. 머리에는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기이한 장구가 뒤집어씌워져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몸을 꼼지락거리거나 흔들의자처럼 몇 차례 흔들어보는 것뿐이었다. 어떤 날은 20분이었지만 어떤 날은 세 시간이었고 어떤 날은 네 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시설물이라고는 변기 하나가 고작인 독방에서 한 인간이 그렇게 고문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