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
탈시설장애인당 공동대변인·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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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약자에서 탈락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전장연을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장연을 강자로 승격시킨 게 아니라 약자에서 탈락시킨 것이다. 오 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을 시정 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다. 쓰고 다니는 마스크에도 새겨놓았다. 그런 사람이 누군가에게 ‘넌 약자가 아니야’라고 말했다면 그건 ‘넌 동행 자격이 없어’라는 뜻이다. 놀랍게도 오 시장은 지하철을 타게 해달라고 수십 년을 외쳐온 장애인들을 탈락시키는 대신 이번 시위로 지하철 이용에 불편을 겪은 ‘시민들’을 약자로 규정했다. 그러다보니 ‘약자와의 동행’이 그다지 약해 보이지 않는 자들과의 동행, 사실상 ‘시민과의 동행’이 되고 말았다. 그와 더불어 ‘넌 약자가 아니야’도 ‘넌 시민이 아니야’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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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너희가 사람이냐” 1월2일 아침의 서울 삼각지역.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박경석 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출근길 선전전을 재개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장애인도 시민이지만 장애인에게는 기본적인 시민권, 즉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에서 살아가는 권리조차 보장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회예산 상황을 지켜보자며 휴전을 제안해서 출근길 탑승 시위를 중단했으나 결국 전장연의 예산 요구는 완전히 무시되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난달 법원이 내놓은 강제조정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사실상 열차 연착 시위를 불허한 조정안이지만 이를 받아들여 앞으로는 연착을 유발하지 않는 시위 방식을 택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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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141일의 삭발식 장애인들의 출근길 지하철 투쟁이 1년이 되었다. 장애인에게도 교육받고, 노동하고,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당연한 말을 당연한 말로 만드는 것이 참 힘들었다. 20년 전부터 선로에 뛰어들고 도로를 기어가는 일을 숱하게 반복하고 나서야 이동편의증진법, 특수교육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발달장애인권리보장법 등이 제정되었다. 그런데도 장애인들의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미흡한 법률도 문제였지만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이 컸다. 정부는 매년 예산이 아니라 말을 책정해왔다. ‘노력하겠다’, 이것은 말이지 돈이 아니다. 그리고 말로써는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담은 투쟁이 이토록 계속된 것은 정부가 자꾸 돈 대신 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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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주택의 아래와 위에서 살다 이태원 참사로부터 10여일이 지났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참사의 존재를 부인하려는 심리적 기제가 내 안에 있나 싶을 정도다. 처음 이삼일은 기사를 열심히 검색하면서도 제목만 보았을 뿐 본문까지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유족이나 생존자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 열흘간 제정신이었던 것은 정부관료들과 보수언론뿐이었던 것 같다. 법적 책임을 모면하고 정치적 위기를 차단하는 데 그야말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작가인 스탕달은 훌륭한 철학자가 되려면 돈 많은 은행가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사태를 냉정하게 보는 것이다. 어디 철학자만 그럴까. 세상을 살 만하게 바꾸고자 한다면, 아니 세상이 더 나빠지지 않게 만들고 싶다면, 돈을 세는 자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냉정함을 가져야 한다. 희망에서 생겼든 절망에서 생겼든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된다. 상대가 돈을 세면서 입발림을 한다면 우리가 할 일은 그가 센 돈을 다시 세어보는 것이다. 입발림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더욱이 상대가 과거에도 말로 ‘퉁치고’ 어벌쩡 넘어간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일수공책을 내미는 자세로 다가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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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포획의 계절 또 계절이 온 모양이다. 지난 5일 법무부는 두 달 동안 불법체류자 집중단속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법무부, 경찰청,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해양경찰청 등이 모두 나서 범정부 차원에서 합동단속을 벌인다고 한다. 몇 줄 안 되는 보도자료라서 그런지 더욱 결기가 느껴진다. 흡사 범죄와의 전쟁 선언 같다. 하지만 단속 대상은 흉악범들이 아니라 비자기간을 넘긴 외국인들이다. 불법이라고는 했지만 사법적 처벌이 아니라 행정조치의 대상들이다. 불법을 단속하겠다는데 무슨 시빗거리가 되나 싶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법무부는 이번 조치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 유연한 외국인 정책의 전제는 ‘엄정한 체류질서의 확립’ ”이라는 장관의 말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했다. 집중 단속 분야도 따로 밝혀두었다. “택배·배달 등 일자리 잠식 업종”과 “유흥업소·마약범죄 등 사회적 폐해가 큰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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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공부하는 심정 당신 공부의 동력은 무엇인가. 오래전 어느 선생이 내게 물었다. 그때 호기심이라고 답했다. 처음에는 연구 대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하지만, 내가 어디까지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지켜보고 싶다고. 이런 호기심이 내 공부를 이끄는 것 같다고. 거짓은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낯 뜨거운 답변이었다. 너무 겉멋을 부렸다. 다른 새의 깃털을 제 몸에 꼽았던 이솝우화의 까마귀처럼, 남의 문구를 빌려서 내 공부의 동기를 장식했다. 사실 그것은 미셸 푸코의 말이었다. <성의 역사> 제2권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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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불쌍한 놈, 위험한 놈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00일.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바닥이다. 실망한 사람, 분노한 사람이 70%에 육박한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느낀 감정은 실망이나 분노가 아니었다. 내 감정은 당황과 황당 사이를 자주 오갔다. 얼빠진 사람처럼 “이건 뭐지?” 하고 ‘벙찌는’ 일이 많았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에서 그랬다. 어느 월요일 아침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짧은 문답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발걸음을 로비 쪽으로 돌린다. 그러고는 기자들이 보는 가운데 거기 걸린 그림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작품명과 작가명도 빠짐 없이 확인한다. 모두가 발달장애인 작가들의 작품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장애인 예술가들이 소외되지 않고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대통령의 철학이 반영된” 전시라고 한다. 이들의 소외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매일 여론의 관심을 받는 이곳을 일부러 전시 장소로 삼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장애인 작가들에게 전시는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을 알리는 기회”이고, 이는 “행복추구권에서 출발하는 권리”로 “우리가 이 권리를 잘 지켜드려야 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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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가난한 자에 대한 섬김 그 시절 대학은 많은 게 뒤집힌 곳이었다. 신입생으로 두 달을 보낸 5월 어느 날 갑자기 기온이 쑥 올라갔다. 체감으로는 한여름 같았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들었는데도 나는 긴 옷을 입었다. 서울살이를 시작할 때 고향집에서 여름옷까지 챙겨오지 않아 입을 옷이 없었다. 그러나 믿는 구석이 있었다. 학생회관 근처에는 언제나 이런저런 기금 마련을 위해 티셔츠를 판매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학생회실이나 동아리방에 하나쯤 굴러다니던 반팔셔츠도 그날은 눈에 띄지 않았다. 별수 없이 학교 기념품 매장으로 가서 저렴한 걸로 하나 골랐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셔츠 앞면에 학교 로고가 너무 크게 박혀 있었다. 부끄러웠다. 입학 전에는 그 로고가 찍힌 볼펜이나 노트를 자랑하듯 선물했는데, 불과 두 달 만에 그걸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결국 화장실에 들어가 셔츠를 뒤집어 입었다. 그날 이후 바깥에서 그 옷을 입는 일은 없었다. 집에서 허드렛일할 때나 몇 번 걸쳐 입었을 뿐이다. 요즘은 ‘꽈잠’이라고 해서 학교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자랑삼아 입는다는데 그때는 그것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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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상생하라 을지OB베어. 서울 을지로3가에 있는 42년 역사의 생맥줏집. 내가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곳이고, 건물주가 가게를 내쫓아 이제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을지OB베어의 강제 철거 소식을 접하고는 설명하기 힘든 상실감이 들었다. 이상한 말이지만 손님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이 단골가게를 잃은 느낌이랄까. 심지어는 내 것이 아닌 내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강탈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도대체 이 느낌의 정체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알고 싶어 무작정 걸었다. 을지로3가 뒷골목의 저녁 풍경은 스산했다. 건축자재와 공구를 파는 가게들은 몇 달 혹은 몇 해 전부터 셔터를 내렸고, 낡은 기둥에 묶인 전등들만이 사람 없는 골목을 힘겹게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한 블록을 더 들어가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마치 축제가 열린 듯 사람들이 왁자지껄했다. 오징어잡이 배처럼 가게들에는 빛이 쏟아지는 전등들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골목길에는 맥주잔이 놓인 테이블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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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단식과 깡통 46일. 인권활동가 미류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보낸 단식의 시간이다. 내일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는 그의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이 허기진 시간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내 눈에는 비쩍 말라가는 그가 지시등처럼 보였다. 위태로운 단식을 이어가던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위태롭게 질식의 시간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비하하는 사회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사람들. 미류의 단식은 이들의 시간을 그냥 흘러가게 둘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는 한 생명이 위험에 처함으로써 다른 생명들이 위험에 처했음을 알리는 비극적 현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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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한 시설의 위대한 몰락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집에 있으면 짐밖에 안 되는 걸 내가 뻔히 아는데.” 지금 예순을 넘긴 규선씨는 스물일곱 살 때의 일을 선명히 기억한다. 뇌성마비장애인인 그는 어려서부터 방에서만 지냈다. 그러다가 방에서도 지낼 수 없는 때가 왔다. 어느 날 어머니가 시설 이야기를 꺼냈고 그는 받아들였다. 더 이상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1988년 석암 베데스다요양원(현 향유의집)에 입소했다. 슬프지만 평온한 이별, 그러나 극단적인 뒷이야기가 있다. 담담하게 그때를 회고하던 그는 눈물을 흘렸다. “이런 얘기는 한 번도 안 했는데… 그때 어머니하고 동반자살을 시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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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이런 비문명인들 같으니! 고맙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공이 크다. 스피커 큰 사람이 욕해대니 욕먹는 사람도 주목을 받는다. 그가 아니었다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가 이처럼 조명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일반단체라고 해도 지하철을 막는 방법으로 투쟁하면 실정법 위반”인데 이런 상황을 “몇 개월이나” 정치인들이 “장애인단체 시위라는 이유로 방치”해왔다고 분개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들의 시위를 “비문명적 관점”의 불법 시위라고 부르기도 했다. ‘비문명적’이라고 에둘러서 말했지만 실상은 문명사회에 안 맞는 ‘야만적’ 시위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