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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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글로벌 문화산업의 명암 7년 전 동남아 여행 중에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유적을 찾기 위해 씨엠립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색안경을 낀 어떤 청년이 음악에 맞추어 처음 보는 이상한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 ‘강남 스타일’이라는 자막도 떴는데 말로만 듣던 ‘말춤’이 어떤 것인지를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캄보디아에 이어 미얀마를 찾았다. 수도였던 양곤에서 만난 한 젊은 여성이 우리말을 제법 잘 구사해서 어떻게 배웠는지를 물었다. 주로 한국 TV 연속극을 통해서 배웠다고 그녀는 대답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생소한 한국 드라마의 제목을 줄줄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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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한인 디아스포라의 미래 얼마전 독일에서 오랫동안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길을 함께 걸었던 한 선배의 영결식이 있었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 20대에 유학길을 떠났던 한 청년이 말년에 잔인한 병마와 싸우다가 이국땅에서 80세에 숨을 거두었다. 한 줌의 재로 변한 그와 영원히 작별하면서 외국땅에서 살면서도 두고 온 산하의 운명을 참으로 많이 걱정하고 번영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길을 찾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많은 얼굴들을 떠올렸다. 유럽의 윤이상과 이응노, 일본의 배동호, 김재화, 곽동의 그리고 미주의 임창영, 김성낙, 최홍희 등 국내에서도 비교적 잘 알려진 인사들도 있지만 얼마나 많은 이름 없는 애국지사들이 그동안 이국땅에서 눈을 감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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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기억문화와 예술 내가 지금 사는 거리는 좀 유별난 역사를 담고 있다. 탐스러운 수국(水菊)꽃의 이름을 딴 거리지만 독일 현대사의 암울했던 기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히틀러를 제거하고 새로운 독일을 건설하려고 비밀리에 움직였던 ‘크라이스아우(Kreisau)’ 서클의 주요 인물들이 이 거리를 중심으로 해서 근처에 살았다. 이 비밀조직에 가입했던 프러시아 귀족의 후손이나 시민계급 출신의 다양한 인물들은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이 1944년 7월20일 시도한 히틀러 암살이 실패로 끝나자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톰 크루즈가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의 역을 맡았던 영화 <발키리>가 있었지만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같은 시기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페터 요크 폰 바르텐부르크 백작이 살았던 집의 벽에는 지금 그를 기리는 동판이 붙어 있다. 역시 이 거리에 살았던 개신교 목사 오이겐 게르스텐마이어는 나치수용소에서 살아남아 후에 서독의 하원의장을 지냈다. 그의 이름을 딴 조그만 광장도 이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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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부동산 소고 동베를린의 중심을 길게 지르는 카를 마르크스 거리가 있다. 전쟁으로 페허가 된 시가지가 복구되면서 시원스럽게 트인 거리의 양쪽에는 스탈린시대의 사회주의적 고전주의 건축양식을 따른 주상복합형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나도 이 거리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노동자의 궁전’이라고 불렸던, 중후한 감을 주는 이 아파트들은 동독 사회주의의 대표적인 건축물의 하나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바로 이 건물에 사는 주민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뛰는 월세에 항의해 창밖으로 ‘우리와 함께 항의하자! 투기에 반대하는 세입자행동’이라고 쓰여 있는 큰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이를 계기로 베를린은 물론 전국적으로 ‘지불할 수 있는 주거’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3000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소유한 대형 부동산업체의 아파트를 베를린시가 공용수용(公用收用)해 집세 상승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요구조건을 내건 국민청원운동이 시작되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54.8%의 베를린 시민이 이에 찬성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요구조건을 일각에서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하지만 “재산권은 의무를 수반한다. 그의 행사는 동시에 공공복리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독일의 ‘기본법’ 14조 2항을 들어 찬성하는 쪽에서는 위헌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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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역사에 대한 불감증과 과민증 3·1절 100주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기념사를 둘러싸고 말이 많다. 그래서 나도 전문을 읽어 보았다. 전체로 보아 흠 잡을 곳이 별로 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어떤 내용이 문제가 되었던가. 해방 후 ‘반민특위’를 통해 우리 안의 일제잔재를 청산하려는 노력이 ‘빨갱이’의 분열책동으로 부당하게 몰려 탄압받았다는 사실을 두고 시비는 시작되었다. 반민특위가 오히려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논리는 현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정치공세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역사인식마저 팽개쳤기 때문에 ‘토착왜구’라는 거친 비난의 소리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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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나눔과 비움 얼마 전 뮌헨에서 독일 여성 두 명이 한 대형매점이 유통기한이 지나 쓰레기통에 버린 식품을 수거하다 고발당해 약식재판을 받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려 했으나 절도죄에 걸려 330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유통기한은 지났지만 먹어도 건강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식품이었다. 독일에서 이렇게 버려지는 식품이 한 해 동안 무려 1100만t에 달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법개정을 서둘러 그러한 식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도 분분해졌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3년 전부터 대형매점이 멀쩡한 식품을 폐기처분하다 적발되면 건당 3750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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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반북 강박장애 모두가 궁금하게 여겼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내용을 확인하려고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먼저 눈에 들어온 독일 매체들의 기사 제목은 하나같이 북한이 다시 미국을 협박한다는 자극적인 내용이었다. 그래서 곧 미국에서 나온 기사와 논평을 찾아보니 이와는 조금 달랐고, 일부 언론은 신년사에 나온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반도와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같은 사실의 보도 내용도 이같이 서로 다르다. 이런저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외국 언론매체는 역시 신년사에서 단 한 번 언급된 ‘새로운 길’의 내용에 주목하고 이를 해석하는 데 매달렸다. 새로운 길이 북·미 협상을 재촉하는 북한의 협박인지, 아니면 오히려 절박감의 호소인지를 둘러싸고 엇갈린 해석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새로운 길을 현재 진행 중인 북·미 협상을 파기하고 비핵화를 포기하겠다는 내용으로 확대 해석하며, 북한이 미국을 다시 위협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30년 전에 발표한 나의 논문 ‘북한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다시 떠올렸다. 냉전시기에 북한을 보던 시각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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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만델라를 기억하며 예수의 탄생과 재림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되면 첫 번째 촛불이 밝혀진다. 이때가 되면 내가 사는 조용한 거리에도 형형색색의 전구들이 발하는 화려한 불빛이 흐른다. 기독교도는 아니지만 나도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는 자신을 불현듯 발견하고,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새해를 맞을 마음의 준비도 한다. 우리는 보통 시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향해서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시간 속에 숨어 있는 많은 비밀을 괴테와 더불어 ‘질풍과 노도’의 시대를 이끌었던 프리드리히 실러는 정곡을 찔러 간결하게 묘사했다. 제법 긴 그의 시 ‘공자의 격언’의 첫 구절은 “시간의 걸음은 삼중(三重)이다: 미래는 어물거리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쏜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조용하게 서 있다”로 시작한다. 물론 시간에 대한 이런 문학적인 해석은 물리학이나 철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시간의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여러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시간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드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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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갑질에 대하여 한국 사회가 꾸준히 생산하는 신조어의 정확한 뜻과 이의 배경을 간혹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대한항공의 조모 전 부사장이 일으킨 이른바 ‘땅콩회항사건’에 이어 최근에는 인터넷 관련 사업으로 성공한 양모 회장의 엽기적인 행동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두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에는 모두 ‘갑질’이라는 신조어가 붙었다. 갑을관계는 내가 서울의 출판사와 계약할 때 출판사와 저자를 각각 갑과 을로 약칭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갑질이라는 단어가 십간(十干)의 첫 자 ‘갑’에 도적질처럼 어떤 행동이 지속될 때 부정적이거나 저속한 뜻을 담은 접미어 ‘질’을 합성한 단어라는 것을 얼마전에 알았다. 그래서 이 단어를 가령 영어나 독일어로 옮기면 가장 가까운 단어가 무엇인지도 한번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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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사회모델 이야기 “너는 장래에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냐”는 질문을 초등학생 시절 친구 사이에서 종종 주고받았다. 휴전 직후라서 어쩌다 얻어걸린 미군의 ‘레이션 박스’에 들어 있던 껌과 초콜릿의 맛과 향기는 지금도 기억난다. 그때 우리 사이에서는 미국이 장래에 살고 싶은 나라 중 단연 첫째로 꼽혔다. 세계지리에 대한 상식이 좀 늘면서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스위스에 대한 동경심도 생겨났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 1980년대 중반, 나는 가족과 함께 휴가차 스위스를 찾았다. 마침 제자였던 독일인 여학생이 스위스인 남성과 결혼해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외국인에 대해서 아주 배타적인 분위기 때문에 먼저 사투리인 ‘스위스식’ 독일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고충에 대해서도 들었다. 스위스의 금융시장은 옛날부터 순전히 장물취득장이며 러시아 마피아의 돈과 제3세계의 피 묻은 돈이 들어 있다는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자기 나라 스위스를 향한 신랄한 비판의 소리를 들으면서 어린 시절 동경했던 그 스위스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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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9월 평양선언’에 부쳐 내 책장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부석(浮石)이 놓여있다. 부석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뿜어낸 용암이 식어 돌처럼 굳어졌지만 물 위에서도 뜰 정도로 가볍다. 흰 부석은 백두산 정상에서 1980년대 말에 내가 직접 주워 온 것이다. 한라산의 검은 부석은 2004년 여름 서울구치소에서 나와서 40여년 만에 찾은 고향 제주도에서 한 친지로부터 기념품으로 받은 것이다. 백두산의 천지를 찾은 남북 정상이 맞잡은 손을 높이 든 사진을 보면서 두 화산석이 담고 있는 내 삶의 흔적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조종(祖宗)의 산인 백두산에서 시작된 땅에서 대대로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을 태평양의 거센 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한라산, 이 두 성산(聖山)의 이름만 들어도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뿌리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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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인문정신의 위기 언제부터인지 한국사회에서도 ‘인문’과 관련된 여러 가지 소식이 넘쳐난다. 인문학의 위기에 관한 내용도 있지만 인문학 강좌, 인문기행, 인문콘서트, 인문 콘텐츠 등 인문이란 단어와 연관된 행사에 관한 소식이 제법 많다. 대학에서는 기존 인문학과가 아예 퇴출되거나 통폐합되는데, 대학 밖에서는 오히려 인문학과 관련된 크고 작은 행사들이 줄지어 열리고 있다. 내용도 동서고금의 고전강독에서부터 미술관, 박물관, 사적지 탐방, 나아가 디지털 시대의 여러 문화장르 간의 새로운 접목 시도까지 상당히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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