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슬 문화와 증오 정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칼럼] 캔슬 문화와 증오 정치

미국이 시발점이었던 인종, 언어, 종교와 성차별과 같은 편견과 갈등을 둘러싼 1970년대의 ‘정체성 정치’와 1990년대의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논쟁에 이어서 ‘캔슬 문화’에 대한 논쟁이 최근 유럽에도 상륙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로, 중국에서는 ‘취소 문화’로 번역 소개되는 것 같다.

예매한 비행기 표나 연주회 표를 취소할 때 쓰는 ‘캔슬’이라는 단어가 생활태도나 정치문화로 점차 자리 잡은 상황은 급속히 성장한 사회적 관계망에 기초한 정보사회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캔슬 문화의 출생지가 바로 인터넷이라는 주장처럼,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아무런 설명 없이 ‘너는 퇴출이야(you are cancelled)’라는 간단한 메시지 하나로 오랫동안의 인간관계를 쉽게 정리한다. 요즘 한국에서 자주 사용되는 ‘손절’이 비교적 이에 상응한다는 생각도 든다. 손절이 주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은 생소한 캔슬이나 캔슬 문화 이해에 어느 정도 도움은 줄 수 있다.

그러나 캔슬 문화에 대한 논쟁은 그저 개인의 주장이나 입장을 정당화하고 이와 다른 것을 배제하는 수많은 경우를 열거하는 것으로 끝날 수 없다.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 주로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퇴출과 혐오 행위 정도로 이해되는 캔슬 문화를 그래서 한국의 정치적 맥락 속에서는 달리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그룹과 다른 의견을 표명하는 것을 비난하거나 금지하고, 이들을 대화의 상대로 아예 인정하지 않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매장하거나 물리적으로 그의 존재를 말살하려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캔슬 문화의 모습은 사실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캔슬 문화를 이렇게 해석한다면 이는 어느 시대나 공간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인간 사회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폴리테이아>에서 플라톤은 특히 비극의 작가가 우주의 원초적 질서보다 이의 그림자인 현상의 묘사에만 집착, 폴리스의 조화로운 삶을 해친다는 이유로 이들을 아테네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까닭에 과학철학자 카를 포퍼(1902~1994)는 플라톤을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첫자리에 놓았다. 그래서 플라톤은 서양 캔슬 문화의 시조라고까지 이야기된다. 비슷한 논리로 연극이 타락한 삶을 미화한다는 이유로 영국의 청교도 혁명 세력도 17세기 중엽에 런던의 셰익스피어 극장을 폐쇄했다.

유럽서도 ‘검열의 시간’ 경보음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유럽에서 약 300만명에 달하는 여성이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되었고 이 가운데 약 50만명을 화형에 처한 사실은 캔슬 문화의 흑역사에 특별히 기록되고 있다.

바로 이 시기에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태양계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라고 주장했다가 교황청과의 갈등으로 종교재판에 넘겨졌고 결국 가택 연금이 되었다.

이미 이성과 계몽의 가치가 확립되었다고 믿었던 18세기에 들어선 유럽에서조차 여전히 가톨릭의 ‘금서 목록’은 살아 있었고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의 종교>(1793)도 그 속에 들어 있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나치의 집권 직후인 1933년 5월10일 밤, 베를린의 오페라 광장에서 이른바 ‘비독일적인 정신’을 전파했다고 비난받은 서적들을 모아서 불사른 일이다. 카를 마르크스, 카를 카우츠키, 지그문트 프로이트, 작가 하인리히 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에리히 케스트너, 베르톨트 브레히트, 언론인 쿠르트 투홀스키, 카를 폰 오시에츠키 등의 저서를 포함해 약 2만권의 책이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이로부터 약 한 달 후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이었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화염은 우리에게 알리고, 우리를 비치고, 우리에게 더는 돌아가지 않는 길을 보여준다. 화염을 댕겨라. 심장이 타오른다’며 이 야만적인 정치적 테러행위를 지지했다. 이 사실은 빛이 그림자와 함께 있듯이 계몽의 시대에도 항시 반계몽과 반이성의 그림자는 계몽과 자리를 함께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나치의 패망 이후 사회주의자였던 아우구스트 베벨의 이름으로 개명된 이곳 광장에는 빈 책장만이 덩그러니 지하에 설치된, 이스라엘 출신의 조각가 미샤 울만이 1995년 완성한 조형물이 들어섰다. 이와 함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비극 <알만술>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이는 단지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 책을 불사르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도 불태운다’)가 새겨진 동판이 보도블록에 박혀 있다.

‘반대한다! 계급투쟁과 유물론, 찬성한다! 민족공동체와 이상주의적 삶’이나 ‘반대한다! 유대주의로 인각된 민족 반역적 언론, 찬성한다! 민족재건에 책임 있는 참여’라는 구호를 누군가 선창하면서 책을 불 속으로 던지면 모여 있던 나치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 같은 극단적인 캔슬 문화와 비견할 수 있는 사례를 우리는 고대 중국에서도 볼 수 있는데, 바로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였다. 후에 명나라 정치가 장거정(張居正·1525~1582)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남긴 <제감도설(帝鑑圖說)>도 농서(農書)와 같은 생활에 유용한 책(竹簡)을 제외한, 사상 관련 유교 경전을 불사르고 많은 유생을 생매장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중국과 세계를 흔들었던 ‘문화대혁명’ 시기에 이 사건을 둘러싼 평가는 마오쩌둥이 1973년 8월에 진시황을 비판하는 내용 등을 담은, 당대 중국 최고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였던 궈모뤄(郭沫若·1892~1978)의 <십비판서(十批判書)>(1945)를 읽고 그에게 보낸 칠언율시(七言律詩)에 잘 드러난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진시황을 조금만 욕하시오. 분서갱유는 따져봐야 합니다. 시황은 죽었지만, 진은 그대로 있으며, 공자의 학문은 이름은 높아도 알고 보면 껍데기일 뿐, 대대로 진의 정법을 행해왔으니 <십비판서>는 훌륭한 글이 아닙니다.’

소통 정치, 주연은 깨어있는 시민

최근 들어 이런 문화대혁명의 분위기에 빗대 유럽에서도 자유로운 의사표명이 점차 어려워지는, 밀고자와 검열의 시간이 오고 있다는 경고가 자주 들린다. 2022년 초, 프란치스코 교황도 ‘의사표현의 자유에 조그만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 이념 식민화의 한 형식’으로서 캔슬 문화의 위험을 경고했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라 캔슬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사건이 국내에서도 최근 자주 발생한다. 미국 순방 중의 비속어 보도로 해당 언론사가 대통령의 외국 순방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되기도 했고,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에 대해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 행사도 캔슬 문화의 한국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언론 통제와 탄압이 일상화되었던 유신독재와 전두환 집권 시절에 정권과 시민 간의 소통은 단절되었고 정권의 일방적인 선전만이 시끄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집권 이후 겨우 한 번 있었던 신년 기자회견이나 사전에 조율된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특정 신문사나 방송사와만 나누는 대담을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자신의 의견과 행위를 뒤돌아보고 교정할 수 있는 여유와 공간을 만드는 대화와 소통 행위를 흡사 정치적 패배자의 행위라고 여기는 듯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것의 본질이 동지와 적을 갈라 보는 데 있다는 나치의 최고 공법학자 카를 슈미트(1888~1985)의 주장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사실 뿌리 깊은 지연과 학연에 성별과 나이별 갈라치기까지 중첩된 한국 사회에서 편가르기에 익숙한 문화를 확대 재생산해온 것이 바로 정치였고, 이전투구식으로 치러진 선거는 늘 증오의 정치를 재생산해왔다.

그러나 모든 정치적 판단이나 결정은 궁중 비화처럼 전개되어서는 안 된다. 공적인 비판에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투명하지 못한 과정을 통해 결정된 정책을 검증할 수 있는 공적인 이성의 행사야말로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이런 당위성에 기댄 기대와 희망과는 반대로 이번 4월 총선도 과거처럼 증오와 혐오의 정치를 더 심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상호 인정하는 담론과 숙의(熟議)의 정치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국민은 항상 옳다’라는 말이 그저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주인공은 결국 깨어 있고 행동하는 시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Today`s HOT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해리슨 튤립 축제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불타는 해리포터 성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