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과 예언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칼럼]예측과 예언

지금까지 총선 결과를 예측했던 많은 여론조사와 정치평론가의 논평과 해석의 시간은 끝났고 이의 결과가 드러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긴장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과연 어떤 예측이 적중을 했는지 또는 어떤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는지를 두고 또 한 차례 논평과 논쟁이 오갈 것이다.

2010년 독일에서 열렸던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예언 능력을 지녔다는 ‘파울’이라는 문어가 14번의 경기 가운데 12번의 승패를 맞혀 전문적인 축구 해설자들을 무색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정말 신통한 영물이라고 해서 당시 우승국인 스페인의 북서지방에 있는 소도시 오카르발리뇨는 파울에게 명예시민증까지 수여했다.

선거나 스포츠 경기와 증권 시세 등의 변동, 날씨, 지진, 건강상태 등의 변화에 관한 일반적 관심이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일어날 사건에 관해 그 내용과 결과를 미리 알고 싶어 하고 나름대로 예견하고 이에 대처하려고 한다.

이 가운데 자연 현상의 예측은 객관적인 자료 분석에 기초하기에 과학적이어서 믿을 수 있는 데 비해 사회 현상에 관한 예측은 어렵고 불확실하다는 느낌을 일반적으로 갖게 된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경우에도 그랬지만 지구온난화를 둘러싼 여러 가지 시나리오와 대응책에 대한 많은 논란은 자연 현상의 예측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 현상의 예측은 이 현상을 관찰하는 사람이 동시에 그 안에서 움직이는 행위 주체인 까닭에 어떤 사건에 대해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입장에 근거해 사회 현상을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총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적지 않은 여론조사 결과가 해당 언론의 이념적 지형에 따라 들쑥날쑥해 불신과 함께 여론조사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보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보인다는 말처럼 예측 혹은 기대가 실현되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서, 행동을 믿음에 따라 맞춰가는 현상을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1910~2003)은 ‘자기실현적인 예언’이라고 불렀다.

그리스 신화에 자신의 이상형인 여성을 조각하고 나서 이 조각상을 사랑한 피그말리온이 등장한다. 그는 이 조각상이 살아서 움직이기를 바랐다. 이 애절한 소원을 들은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조각상에 생명의 기를 불어넣었다고 해서 ‘피그말리온 효과’라고도 불린다.

예측은 ‘자기실현적인 예언’

예측과 기대가 이렇게 성취된다면 종교 생활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예언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이 당연히 뒤따른다. 예언은 먼저 우리가 헤아려볼 수 있는 경험세계의 지평을 한순간에 뛰어넘으려고 하는 데 반해 예측은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는 순간에 이미 세속적인 상황에 필연적으로 연결된 행위를 전제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 예측은 예측의 시점을 수시로 설정하고 또 이의 교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예언은 예언자가 서 있는 마지막 시간인 ‘말세’의 끝자락에 서 있기 때문에 만일 예언이 적중하지 못한다면 이것으로 모든 것은 끝난다.

틀린 예측은 후에 수정할 수 있지만 한번 빗나간 예언은 거짓 예언으로 끝난다. 따라서 예언의 특징은 일어날 사건의 구체적인 시간과 정황을 적시하는 것을 대부분 피하거나, 아니면 모호하게 언급하고 기술한다. 예언한 말세의 심판이 실제 오지 않는다면 믿음의 체계도 함께 소멸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꿰뚫어 보는 하느님의 뜻을 지상에 전하는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의 예언이 현실을 변혁시키려는 의지와 열정을 추동한다는 의미에서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기독교가 보여준 예시적이고 소명적인 예언에 대해 적극적인 평가를 했다.

그는 또 절대적인 이상세계에 대한 구세적인 열정을 담은 기독교와 달리 유교는 기본적으로 현세 중심적인 규범에 따른 윤리와 인문적인 도야 사상이고, 불교는 또 현실 도피적인 금욕과 명상 체계인 까닭에 예언이나 예언자 개념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양의 믿음 체계에도 자연과 인간세계의 변화를 해석한 <주역>과 같은 예언적인 성격을 강하게 드러낸 경전이 있고, 마이트레야(미륵)에 관한 신앙처럼 미래에 나타나는 부처도 강한 예언적 내용을 전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도 적지 않게 등장했던 예언은 주로 전통적인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에 뿌리를 두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기독교와 관련된 예언적인 서사와 신흥 종교도 적지 않게 있다. 이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20명이 넘는 한국산 하느님과 50명이 넘는 한국판 재림 예수와도 만날 수 있다. ‘하느님, 꼼짝 마’를 외치며 하느님도 겁박하는 개신교 목사도 만날 수 있다.

이런 신앙세계와 구별되는 신화세계에도 미래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비일상적인 인간에 대한 설화가 적지 않게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신들의 비밀을 누설한 죄로 눈이 멀게 된 테이레시아스가 등장한다. 그는 미래에 있을 사건을 미리 볼 수 있지만 이의 전개 과정에 대해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숙명에 처했다.

역사 큰 흐름은 결국 제 길 찾아가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로서 오늘까지도 잘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가 남긴 <예언집>은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등장이나 9·11 테러와 코소보 전쟁까지도 이미 예언했다는 주장이 있다. 반 고흐가 폴 고갱과 다투고 정신병에 입원해서 남겼던 그림 ‘정신병동의 정원’으로 유명한 프로방스의 생레미에 있는 그의 생가와 그가 20년 가까이 활동했던 소도시 살롱을 찾아 세계 각지에서 오는 신봉자들의 행렬은 여전하다.

그러나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추후에 예언서의 내용에 따라 맞출 수 있기에 노스트라다무스의 기적은 예언 내용이 아니라 오로지 이를 해석하는 사람의 해설 기술에 달려 있다는 비판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미래의 사건을 볼 수는 있지만 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테이레시아스의 숙명이나 이미 일어난 사건에 후에 해석을 덧붙이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는 따라서 예언이 갖는 한계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독일 김나지움의 종교 시간에 “오늘날의 예언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학생이 예언자는 단순히 미래에 대해 예언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더 잘 준비시키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 간디, 마틴 루서 킹, 넬슨 만델라, 젊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꼽았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오늘날 예언자는 앞서 설명한 종교적이거나 신화적인 의미보다 정치, 사회, 과학과 기술, 예술 등 영역에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영감을 주는 선각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렇게 이해되는 오늘날의 예언은 일상적인 생활 중에 행해지는 예측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생활세계가 날이 갈수록 분화하는 조건에서 항상 빠른 판단과 선택을 강요당하는 우리에게 전문적인 예측은 삶을 꾸려나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나 여러 생활 영역에 걸쳐 주로 전문가에 의해 수행된 예측도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므로 오류를 전제하지 않는 예측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갖는 이런 일반적인 제한성 때문에 불안과 공포는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미래는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나약한 자에게는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이를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미지의 것으로 남아 있지만, 용기 있는 자에게는 기회라고 <레 미제라블>에서 빅토르 위고는 강조했는지 모른다.

따라서 미래는 단지 예측이나 예언 속에서 자신의 자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가능케 만드는 행동하는 주체적 인간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서 총선의 결과를 멀리서나마 내 나름대로 예측해본다. 이 예측과 곧 발표될 결과 사이에 오차도 있겠지만, 역사의 큰 흐름은 결국 제 길을 찾아갈 것이라는 낙관을 또 한번 다져본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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