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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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대한체육회장 선거 ‘말’을 막지 말자 당사자들에게 결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혹시 독자들께서 새만금개발공사나 한국예탁결제원의 대표자 이름을 곧장 답할 수 있을지, 조심스레 여쭤본다. 단, 인터넷 검색을 하지 않고 말이다. 글쎄,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국제식물검역인증원이나 전략물자관리원의 대표자도 금세 떠올리기 어렵다. 이 모두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설립되고 활동하고 있는 국가의 중요한 공공기관, 정확히는 ‘기타공공기관’이다. 여기 또 하나의 ‘기타공공기관’이 있다. 그런데 그 대표자 이름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다름 아닌 대한체육회장 말이다. 국제기구도 마찬가지다. 유엔 사무총장이나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이름은 아리송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이끌고 있는 토마스 바흐 위원장 이름은 그런 대로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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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선수들의 입을 막는 ‘꼰대 문화’ ‘꼰대 아재’들은 쉽게들 말한다. “옛날보다 나아졌다”고. “옛날에는 더 심했다”고, 그런 ‘꼰대 아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저녁 점호하고 청소 검사를 받을 때 몸을 살짝 밀면서 지적을 해요. 군기를 잡으려는 것 같아요. 인원 보고는 하루 네 번 하는데, 모두 층장, 총층장, 사감 등에게 보고해야 해요. 일반 학교 기숙사 친구들이 ‘너희는 군대나 교도소에서 사는 것 같아’라고 해요.” 체육고등학교 육상부 2학년생의 말이다. 다름 아닌 2019년의 증언!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지난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7개 학교, 비수도권 9개 학교, 학교급별로는 중학교 3곳, 고등학교 13곳 등 총 16개 학교를 방문 조사하는 과정에서 채록한 것이다. 지금의 중·고교 학생들이면 21세기에 태어났고 큰 탈 없으면 22세기도 볼 수 있는데, 그들에게 요구되는 훈육과 질서는 반세기도 전인 20세기 중엽의 것이고 그들이 암기해야 할 체육의 가치는 무려 1세기도 전인 19세기의 국가주의다. 같은 학교 3학년생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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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스포츠인의 자결과 자율 축구는 영원하고 감독은 경질된다. 유럽 축구장의 오랜 경구다. 누군가 경질되어야 한다면 감독 말고는 없다. 선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일희일비의 나날들은 ‘바로 그 선수’와 함께해야 한다. 구단주는 권력자다. 프로스포츠가 독보적이고 독자적인 대체불가의 문화콘텐츠 산업으로 나날이 발전하는 세계적 추세에서 구단주의 위상은 점점 더 높아진다. 아무리 팀 성적이 중위권을 맴돌아도 누가 첼시의 구단주인 ‘조만장자’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경질하겠는가. 국내의 경우, 대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가 구단주이고 자치단체장이 또한 그 자리에 있으니 누가 그들을 경질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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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평균대 위에 놓인 한국 스포츠 스포츠는 아름답다. 지네딘 지단은 말했다. “언제까지나 지금 이 상태로 플레이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공과 일체가 되어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는 최고의 상태 말이다.” 이럴 때 스포츠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월드클래스 못지않게 전 세계 경기장에 자기 영역을 표시했던 이영표 선수도 비슷한 말을 한 적 있다. 작년 여름 내가 물었다. “어떤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그렇게 물어보면서 나는 2002 한·일 월드컵 때의 강렬했던 순간들, 예컨대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터진 안정환의 골든골 1초 전의 극적인 어시스트라든가, 유럽에서 치른 산전수전의 결정적 장면을 얘기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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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스포츠윤리센터’ 출범에 부쳐 ‘스포츠윤리센터’가 출범했다.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애초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이 기구를 정부에 권고할 때는 ‘스포츠인권센터’였기 때문이다. 윤리와 인권, 둘 다 우리 현실에 중요한 기준이 되는 단어다. 그런데 ‘윤리’는 철학의 영역에서 깊이 탐구되는 바와 달리, 스포츠 현실에서는 ‘잘잘못’을 가리는 도구적 개념으로 한정되어 왔다. 이 때문에 새로 출범한 ‘윤리센터’가 기존보다 역할이 조금 확대된 ‘상벌기구’로 활동폭이 제한될 수 있다. 반면 ‘인권’이라고 할 경우, 스포츠의 긴급한 문제나 복잡한 상황을 보편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게 한다. ‘윤리’가 폭력과 성폭력, 공정, 부정부패 등을 다룬다면 ‘인권’은 그것을 포함하되, 한국의 스포츠 현장에서 벌어지는 제반의 상황들, 예컨대 그 정책의 수립과 적용, 실제 스포츠 현장의 관습과 문화,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연습, 생활, 대회 등을 총괄하는 헌법적 차원의 활동까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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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문체부 제2차관에게 던지는 질문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대한민국의 체육정책을 총괄하여 공적 책무와 공적 헌신을 해야 하는 엄중한 자리다. 현재 최윤희 차관이 맡고 있다. 작년 12월19일 임명되었으니 정확히 7개월이 흘렀다. 한두 달이면 모르되 반 년 이상 흘렀으니 무거운 질문을 던져도 될 듯싶다. 그사이, 국가의 체육정책은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고 그 문화는 활기차게 증진되었는가. 요컨대 최윤희 차관은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 책무에 헌신하였는가. 글쎄, 확연히 그러하다며 격려하기 어렵다. 물론 획기적인 정책이 제안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설득하여 현실화하는 데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므로 섣불리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7개월이라면 충분히 그 가능성을 타진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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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서울시립스포츠박물관을 상상하며 2023년이면 서울시에 9개의 박물관이 새로 들어선다. 이미 서울생활사박물관, 서울우리소리박물관 등 5개가 개관했고 여기에 사진, 한식, 도성, 로봇 등 9개가 추가되어 총 14개가 된다. 서울시의 ‘박물관·미술관 도시-서울 프로젝트’ 일환이다. 많아도 적은 것이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역사와 기억과 사료와 교육이 총괄되는 공간이다. ‘국산사자음미실’에 걸쳐 모든 분야의 박물관이 있어야 한다. 이른바 ‘수도 서울’의 경우 이 정도의 역사와 문화와 인구 규모를 지닌 외국의 도시들과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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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프로스포츠 문화의 ‘성인지 감수성’ 아마 잘해보려다가 그리되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무관중 상황에서 FC서울 구단은 경기 분위기도 살리고 마침 K리그가 세계 곳곳으로 중계도 되니 홍보 기회로 삼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 성인용품 ‘리얼돌’이 관중석에 등장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사특한 마음으로 개인적 이득을 취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잘해보려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꼭 바람직한 결과를 얻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코로나로 인하여 모든 것이 처음 겪는 일이고 따라서 언제든지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 있는 비상한 상황에서는, 단지 잘해보려는 마음만으로는 절대 안 된다. 그러니 ‘열심히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격려할 게 아니라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구조적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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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스포츠를 경기장 밖으로 꺼내자 충격적인 스토리 전개로 소문난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보다가 진짜로 충격에 빠졌다. 욕망과 치정의 남자 주인공. 그를 협박하러 누군가 찾아온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추궁한다. 누구냐고, 왜 집에까지 찾아왔냐고. 남자가 군색한 변명을 한다. 신문 보라고 찾아왔다고,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요즘 세상에 누가 신문을 본다고…”. 하아, 그렇구나. 요즘 세상에, 누가, 신문을 본다고? 방금 물음표를 달았지만 느낌표를 달아도 무방하다. 오래전부터 느껴오던 일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신문 읽으라고, 사설도 읽고 칼럼도 읽고, 그래야 세상 보는 눈이 운운하면서 신문 읽기를 권면하였으나, 그 또래 아이들처럼 좀처럼 읽지 않았는데, 아뿔싸, 그런대로 별 탈 없이 성장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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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총선에서 홀대받는 ‘스포츠의 사회적 가치’ 프랑스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는 <아메리카>에서, 강인한 신체에 몰두하는 미국 사회의 욕망을 읽었다. 이유 없이 뛰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프랑스의 사상가가 보기에 ‘뉴욕 마라톤은 물신주의적이며 공허한 승리의 망상’이었다. 레이건의 애국주의가 지배하던 때였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나는 해냈다’고 외치는 1만여명의 마라토너에게서 강력한 물신주의를, 그리고 피트니스센터에서 뛰는 사람들에게서 ‘창백한 고독’을 읽었다. 글쎄, 우연히도 나는 1995년 11월, 센트럴파크에 있었다. 뉴욕 마라톤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대회가 시작된 지 예닐곱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내가 본 주자들은 매우 느린 편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노인도 있었고 휠체어 장애인도 있었고 엄마 손을 잡고 걸어오는 아이도 있었다. 그들의 환한 표정에서 ‘물신주의’나 ‘고독’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센트럴파크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우린 할 수 있다’는 캠페인도 한편 압도적인 미국의 상징일 수도 있지만 시민들의 소박한 성취에 보내는 따스한 찬사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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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코로나가 물러간 이후의 스포츠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코로나19’로 인하여 다시금 주목을 받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이렇게 갑자기 반전한다. 오랑시에 갑자기 들이닥친 페스트. 초기에는 다소 주춤하여 도시는 “저녁마다 변함없이 인파로 가득 찼고 극장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지만, 갑자기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도시를 폐쇄하라는 공문이 도착한 것이다. 그런 정도의 위기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 사회도 전대미문의 사태를 겪고 있다. 시즌 막바지의 혈전이 벌어져야 할 경기장도 텅 비었다. 아니, 물론 그곳이 직장이요 삶의 터전인 선수들은 여느 때처럼 그들의 요람이자 무덤을 지키고는 있다. 겨울 시즌 경기들이 무관중으로 치러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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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스포츠계 혁신, 이제 공은 문체부로 ‘혁신위의 시간’이 끝났다. 지난해 초, 우리 사회를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은 스포츠계 성폭력 사건 이후 이를 구조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발족된 스포츠혁신위원회 활동이 7차례의 권고와 각 권고의 제도적 이행을 확실히 점검하고 마무리되었다. 스포츠윤리센터 설립, 스포츠기본법 추진, ‘학생 선수’를 포함한 엘리트체육 문화 혁신, 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한 다양한 제도 권고 등은 향후 한국 스포츠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부터는 ‘문체부의 시간’이다. 장기적으로는 스포츠계 전체가 실질적인 주체이지만, 현재로서는 혁신위의 권고에 따른 법적이고 제도적인 정비 및 인력, 재정, 문화 등에 대한 시스템의 변화를 도모할 단계이고, 이는 당연히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적 의무에 해당한다. 그래서, 어떤 권한의 측면이 아니라 의무의 차원에서 ‘문체부의 시간’이라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