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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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그래, 세상 속으로 들어가자 나는 이 지면을 통하여 스포츠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사회 속으로 들어가서 변화하는 사회적 상식과 욕망에 기반하여 스포츠가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것이 스포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며 바로 그렇게 사회적 열망과 부응할 때 스포츠 산업이 확장되고 청년 스포츠인들의 일자리가 확충되고 그들의 활력과 신념에 의하여 사회 전체가 새로 연결되어 신체적 안전망과 심리적 관계망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나의 이러한 주장은 독자적이고 독창적인(설마 그럴 리가) 주관이 아니고 이미 ‘스포츠 선진국’에서 한 세대 이전부터 구현된 것이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도 수년 동안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각국의 스포츠 기구와 그 책임자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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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즐기는 스포츠’의 희열과 공허함 사이 장안의 화제인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를 빼놓지 않고 다 봤다. 강렬한 캐릭터와 높은 수준을 탑재한 댄서들의 에너지가 화면 밖으로 터져 나왔다. 분야와 장르를 불문하고,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토록 모두가 ‘즐기는’ 모습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스우파>의 즐거움은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블루’의 처방전과도 같은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모두의 관심과 성원을 받으면서 자신의 기량을 1000% 펼치고 나서 경쟁했던 상대방과 뜨거운 포옹을 하는 장면이란, 우리의 생애에서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강렬한 감정이다. 그것도 거의 모든 육친적 관계가 끊어진 코로나 상태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그래서 우선 그들이 즐거웠고 보는 사람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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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다시 부르는 ‘그라운드 떼창’ 왜 아이들은 부모님의 침대에서 뛰는가? 부모님이 외출하면서 침대에서 뛰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금지의 공간이다. 그리고 곧 부모님이 귀가하기 때문이다. 금지의 시간이다. 이 시공간의 금지 때문에 부모님의 침대는 더없이 짜릿한 위반과 유희의 공간이 된다. 마당에서도 거실에서도 자기 방에서도 뛰놀 수 있지만 그곳에서는 일시적 위반의 모험이나 순간적인 유희의 짜릿함이 덜하다. 금지된 것을 금지하는 것, 그것이 유희와 해방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가 1967년의 연속 강연에서 한 말이다. 나중에 <헤테로토피아>라는 책으로 출간되었고 국내에서도 발간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967년이라는 ‘사건의 시간’이다. 전후세대의 사상적·문화적 저항이 서구 곳곳에서 전개된 이른바 ‘68혁명’의 과정에서 푸코는 규율과 억압의 현대사회를 분석하면서, 물리적으로 발달하고 구조적으로 통제된 도시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 ‘헤테로토피아’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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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체육교과서’에 이의 있습니다 중·고교 ‘체육’ 교과서들을 살펴볼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교과서를 ‘숙독’하면서, 그 옛날에 그랬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하는 소회마저 없지 않았는데, 우선 일감으로 떠오른 것은, 그 만듦새가 가히 상전벽해라는 점이다. 교과서가 재미있기는 어렵지만 세련된 편집, 친절한 문장, 다양한 사례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과 교사의 ‘교학상장’이 가능한 섬세한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이 2021년 현재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총괄적으로 마무리되고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지난 4월, 교육부는 ‘미래사회의 기본 역량과 급변하는 사회적 변화를 담아내야 한다’는 기조 아래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가까운 시일에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고교학점제가 실행되는 등 상당한 변화가 예고되는 이 시점에 ‘교과목 구조 개편’ 및 그에 따른 기존 교과서의 검토는 꼭 필요하다. 예컨대 교육부가 발표한 ‘안전한 삶과 생활’ ‘생태전환교육’ ‘민주시민교육’ 등의 개정 방향은 ‘체육’ 교과목과 직접 연관되는 중요한 항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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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심석희와 고 최숙현, 그리고 기억 누구나 기나긴 삶의 행로에서 불가피한 찰과상을 입게 되고 쉽게 아물지 않을 그 상흔에 의하여 가급적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 생기곤 한다. 슬픈 장례식은 물론이요, 경사스러운 잔칫날에서조차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누군가의 이름은 괄호 안에 갇히곤 한다. 감히 불러보건대 심석희 선수와 고 최숙현 선수. 나는 지금 두 선수의 이름을 아주 조심스럽게 부르는 중이다. 서푼어치 주장의 근거로 삼기 위해 극심한 고통을 겪은 이름을 함부로 ‘남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통증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감히 두 선수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은, 그들의 고통이 지속되었던 시기와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대다수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나 훈련 기간과 겹치고, 그렇다면 ‘MZ세대의 활기찬 열정’으로 기록될 이번 올림픽의 환호성 사이로 혹시나 두 선수의 이름이 망각되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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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도쿄 올림픽과 일본의 모순 물론 우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리고 나면 경기에 몰입할 것이다. 스포츠는 여러 역사적 경로와 사회적 원인에 의하여 그 자체로 완전히 ‘순수한 세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경기가 열리는 순간만큼의 긴장과 밀도는 잠시나마 경기 외적인 요소를 잊게 한다. 그것이 스포츠의 모순되지 않는 양 측면이다. 온갖 이해와 욕망이 결합된 것이 올림픽이지만 개별 경기 하나에 충만되어 있는 공기 속으로는 외적 욕망이 쉽게 들어서지 못한다. <대부>나 <신세계> 같은 조폭 영화를 흥미롭게 관람하지만 현실의 조폭을 선망하지 않듯이, 최고 수준의 경기를 관람하는 것과 올림픽의 정치공학을 비판하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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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스포츠영화제’라는 즐거운 상상 영화제 하면 흔히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최고 수준의 그야말로 ‘국제적인’ 영화제를 떠올리기 쉬운데, 작으면서도 알차고 소중한 영화제들이 쉼 없이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의 집계로 한 해 200개 가까이 열렸다. 올해로 23회째를 맞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작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영작을 중심으로 한 담화와 토의, 정념이 뜨겁다. 지역의 문화적 자산과 해당 분야의 독창성을 결합한 경우로는 2005년 시작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꼽을 수 있다. 청풍명월의 8월 밤하늘은 영화음악으로 인하여 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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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모두를 위한 스포츠클럽법이 되려면 지난 21일 ‘스포츠클럽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갈등관계가 첨예한 사안을 각을 세워 보도하는 스포츠 저널리즘의 속성상 이 법의 의미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한국 스포츠의 재건과 활기차고 건강한 사회문화 형성에 이 법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문체부 발표에 의하면 ‘누구나 일상에서 편리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클럽을 육성’하는 것이 이 법의 핵심이고 이렇게 되면 국민의 체육활동 참여 기회가 늘어나고 전문선수 육성의 저변도 확대되며 체육인의 일자리도 창출된다. 스포츠폭력·인권침해의 이유로 지목되는 ‘성적 지상주의’가 완화될 수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이 법의 제정 취지는 충분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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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이 남긴 교훈 무려 다섯 개의 전철 노선이 감싸안으며 가로지른다. 상인 포함 약 15만명이 상주하고 하루 유동 인구가 100만명을 넘는 곳, 2호선에서 내리면 10m 거리, 조금 멀다 싶어도 6호선 신당역에서 5분이다. 수십대의 노선버스가 교차하고 택시들이 24시간 왕래하는 곳, 바로 여기에 운동장이 있었더라면, 그래서 프로야구가 열리고 K리그가 열려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포츠의 작렬 순간을 만끽한 후, 동대문 일대에 실핏줄처럼 연결된 수많은 문화공간으로 흩어지는 풍경, 이런 상상을 그곳에 갈 때마다 한다. 동대문운동장 이야기다. 어느덧 15년 가까이 흘렀다. 2007년 12월13일 새벽,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 철거 공사에 돌입했다. 당시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서울’ 정책에 따라 1925년 개장 이래 경성운동장, 서울운동장, 동대문운동장 등으로 개칭되면서 한반도의 근현대사 주인공이었고 목격자였고 증언자였던 운동장은 사라졌다. 물리적 공간이 사라지면 문화적 장소가 사라지고, 장소와 흔적이 사라지면 기억마저 흐려진다. 다만 몇 개의 유류품과 기록만 쓸쓸히 남을 뿐인데, 실제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가보면 한쪽에 약간의 기록물과 조명탑만이 한때 이곳이 100년 가까이 한반도 스포츠문화의 산실이었고 수많은 정치사회적 사건의 현장이었음을 외롭게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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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스포츠 폭력의 씨앗 “모든 스케줄은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수시로 감독했고, 우리들은 딴짓을 할 수 없었다. 선수들이 일탈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통제를 받았다.” 기성용 선수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합숙소 생활을 했던 관계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의 일부다. 기성용 선수에게 유리한 내용이 담긴 이 증언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위와 같은 통제된 생활이다. 일단 기성용 선수와 관련된 직접적인 사안은 좀 더 추이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렇다고 사건의 심각한 정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앞 문방구에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통제’된 채 생활했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21세기의 벽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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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체육인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 제41대 대한체육회장으로 이기흥 후보가 재당선됐다. 낙승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어디 쉬운 선거가 있겠는가. 그간의 노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선 이후 보름 정도가 지난 이 시점에서는, 그저 그런 치하보다는 날카로운 격려가 더 필요하다. 무엇보다 명실이 상부해야 한다. 이전 4년 동안의 재임 기간이나 또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누구보다 이 회장 스스로 ‘스포츠선진국’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스포츠인권 향상을 통한 선진화’에 대해서도 적극 호응하였다. 명실이 상부한다는 것은, 내세운 가치와 그것의 구체적인 사업이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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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체육의 목표는 ‘확장성’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이 지면을 ‘모두까기’로 채울 수도 있다.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얘기다. 4년 동안 체육회를 이끌어 온 이기흥 후보와 이에 맞서는 3인의 후보가 경합을 벌이고 있는데, 세간의 풍문을 들어봐도 그렇고 언론 보도를 봐도 그렇고, 4인 후보의 철학과 공약을 살펴보는 경우는 드물고, 온갖 험한 말들이 넘쳐나는 형국이다. 이에 편승하여, 그동안 뭐 하다가 선거에 뛰어들었느냐고 힐난할 수도 있고 지난 4년 동안 뭘 했느냐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어쩌랴. 어쨌든 현재 입후보한 4인 중 한 사람이 선택받을 것이고, 그에 의하여 앞으로 21세기의 한국 스포츠가 전개될 터이니 우선 4인의 공약을 검토하는 것이 그래도 선거의 순기능에 부합하는 일이다. 어느 역사가의 말처럼, 냉소가 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