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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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김상곤 쇼크’를 되돌아보며 난데없이 조만간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선거 직전이 되면 민감한 얘기를 칼럼에 쓰기 어려워진다. 억측과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기 전에 나의 과거 대선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진보 교육진영의 정책이 더불어민주당에 수용되지 않는 이유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혹자는 ‘민주당이 보수적이어서’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교육 문제에 있어 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할 일이다. 혹자는 ‘민주당에 사교육업계의 영향력이 작용해서’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민주당 내에서 시급히 ‘적폐’를 축출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 같은 두 가지 의견은 모두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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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차별금지법 괴담, 팩트 체크해보니 지난 국회에서 발의되었던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에 대한 공격은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개신교 단체들이 동성결혼 및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큰 혼란이 발생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배경에 젠더 이론이나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한 반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들이 우려하는 일들은 실제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남성이 갑자기 여성으로 성별을 바꾸고서 여성용 화장실·탈의실·사우나를 이용한다든가, 남성적인 근육과 신체능력을 상당 부분 유지한 채로 여성 운동경기에 출전하는 사례들이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용 사우나에 전형적인 남성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 들어온다면 큰 당혹감과 위협감을 느낄 것이다. 여자부 경기에서 상대팀의 트랜스여성이 맹활약하여 우리 팀이 진다면 억울한 느낌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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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멸망을 향해 가는 한국 교육 최근 한국 교육의 미래를 놓고 오가는 소식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대입제도를 또 한번 한바탕 휘저어놓을 태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난데없이 지역 비례 선발제를 들고나왔다. 진보교육계는 대학서열 해소를 외치지만 ‘해소’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그 상태에 이를 수 있는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추진하는 정부와 이를 반대하는 세력 사이에 정면충돌이 예고되고 있다. 이창용 총재가 제시한 지역 비례 선발제란 다음과 같다. 전국 고교생 가운데 경북지역 학생수 비율은 약 5%이다. 그러면 예를 들어 서울대 경영학과 입학정원 160명 가운데 5%에 해당하는 8명은 경북지역 지원자 중에 선발하는 것이다. 현존하는 지역균형선발처럼 수시의 일부 전형에 국한해 이렇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SKY’로 대표되는 주요 명문대에서 수시든 정시든 할 것 없이 입학정원의 대부분을 지역별 학생수에 비례해 선발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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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서울시민 위한 정책이다 나는 한국에서 교육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진보적이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교육문제는 과열경쟁인데, 보수는 경쟁을 자연스럽거나 불가피한 것, 심지어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저명한 사회생물학자에게 한국의 교육경쟁에 대해 질문하면 ‘인간의 본성상 어쩔 수 없다’는 요지의 대답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교육경쟁에 대한 보수의 입장이기도 하다. 진보는 교육경쟁이 어떤 나라에서는 심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약하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즉 사회적 환경과 조건에 따라 교육경쟁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한국의 교육경쟁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나는 한국에서 과열된 교육경쟁으로 인한 사회적 고통과 비용이 워낙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진보적 입장에 서는 것이 논리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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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아무도 장기를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학교’를 개혁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기 쉽다. 특히 공립학교는 고도로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전보 주기가 5년이다. 즉 학교의 교사진은 매년 평균 20%씩 교체된다. 교장 임기는 4년이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평균 33개월이 되면 떠난다. 교사와 교장이 비상한 노력을 통해 의미 있는 교육적 전통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해도, 3년만 지나면 첫해 구성원의 절반도 남지 않으며 교장도 바뀐다. 5년이 지나면 아무도 안 남는다. 연간 퇴사율이 20%나 되는 회사가 장기적으로 역량을 축적하고 발전시키기란 매우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 이러한 근본적인 불안정성을 외면한 채 학교개혁을 성공시키려는 모든 담론들에 대해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혁신학교든 IB학교든 마찬가지다. 그들은 교사를 언제 갈아끼워도 동일하게 작동 가능한 기계부품처럼 여기는 패러다임을 부지불식간에 공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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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펨코와 일베 사이 지난 총선의 지지율을 살펴보면 유난히 ‘튀는’ 집단이 보인다. 50대 이하 연령층에서 여당이 완패했는데, 단 하나의 예외가 존재한다. 20대 이하 남성, 이른바 ‘이대남’이다. 이대남의 지역구 지지율을 보면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앞섰다(47.9% 대 46.4%). 개혁신당, 녹색정의당, 새로운미래를 합산해 보수 대 진보를 비교해봐도 보수가 우세했다(49.4% 대 47.7%). 양대 정당의 위성정당 및 조국혁신당을 포함한 비례대표 지지율 역시 보수가 우세했다(48.2% 대 47.7%). 이 데이터의 출처는 지상파3사 공동 출구조사인데, 이번 출구조사에서 보수정당 지지가 과소 집계되었음을 감안하면 보수정당의 실제 득표율은 이보다 좀 더 높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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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국민연금 개혁, 진보의 ‘평등’ 개념을 혁신해야 흔히들 보수 혹은 우파가 ‘자유’를 좀 더 중시한다면, 진보 또는 좌파는 ‘평등’을 좀 더 중시한다고 한다. 그런데 국민연금을 두고 일어나는 지금의 논의를 보고 있자면 한국의 진보 또는 좌파의 평등 개념에 중대한 결함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계층 간 평등’에 치중하고 ‘세대 간 평등’을 경시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진보적 세대 담론은 2007년 나온 <88만원 세대>에서 시작하여 2022년 나온 <그런 세대는 없다>로 한 주기를 마쳤다. <88만원 세대>에서 촉발된 세대론은 뜻밖에 보수 언론에 적극 전용되었다. ‘86’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가 고도 경제성장기에 꿀을 빨아놓고는 계층이동 사다리를 걷어차고 청년을 착취한다는 담론으로 비화된 것이다. <그런 세대는 없다>의 저자 신진욱 교수는 한 세대가 다른 세대를 착취한다는 식의 ‘그런’ 세대론이 유효하지 않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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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불길한 공약 나는 이번 총선에 투표하지 못했다. 박사과정을 밟느라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데, 국외부재자 신고 기간을 깜빡 놓친 것이다. 나에게 투표할 기회가 있었다면, 아마도 ‘지민비조’(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를 선택했을 것 같다. 총선 결과는 내 기대치에 근접하게 나왔다. 하지만 이번 총선 기간에 나온 두 당의 공약들을 보고는 불길한 예감을 피할 길이 없다. 처음 나를 놀라게 한 공약은 3월24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씩 민생회복지원금을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이 정책의 명분은 양극화와 고물가로 인한 국민들의 어려움을 덜어준다는 것이리라. 아울러 감세를 통해 역대급 세수 펑크(2023년 59조원)를 자초한 윤석열 정부의 ‘자해적’ 경제정책을 역전시키고 경기회복의 마중물을 일으키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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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선진국과 비교해 본 한국의 갈라파고스 대입제도 선진국 대입제도의 핵심은 대입시험과 내신성적이다. 대입시험은 동일한 문항으로 평가하므로 학생들의 실력이 편차 없이 드러난다. 그래서 대입시험만 활용하고 내신성적은 활용하지 않는 나라들이 있다. 핀란드, 영국, 일본이 대표적이다. 한국에 널리 퍼져 있는 ‘내신을 반영해야 공교육이 살아난다’는 주장을 의심할 만한 대목이다. 프랑스도 오랫동안 대입시험(바칼로레아)만 활용했다. 그러다 2021년 내신성적을 10% 반영하도록 바꿨다. 과거에도 내신성적을 반영하려다가 학생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는데, 반대 이유는 ‘어떤 교사에게 배웠냐에 따라 대학 입학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크롱 정부가 학생들의 반대를 뚫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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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의대 정원, ‘좋빠가’에 맡길 것인가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릴 계획을 밝히자, 진보 성향 커뮤니티들의 반응은 ‘팝콘각’이라는 게 주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의대 정원을 늘리려다가 의사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어서 열받았었는데, 이제 윤석열 정부가 증원을 폭압적으로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되니 팝콘이나 먹으며 재미있게 싸움구경을 하자는 것이다. 나는 정책의 기본 방향에 대한 찬반과는 별개로, 정책의 추진 방식에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일단 증원의 규모가 예상보다 크고 급작스럽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증원하려던 정원은 400명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서 증원하려는 정원은 2000명이다. 무려 다섯 배다. 현재 의대 정원이 3058명인데 갑자기 5058명으로 65%를 늘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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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정시의 종말 수능에서 이과 수학이 사라진다. 지난해 12월 말 발표한 2028학년도 수능 확정안에서 심화수학을 빼버리고 문·이과 공통수학만 남겨둔 것이다. 수능에서 과학·사회 선택과목을 없애고 통합과학·통합사회(고1 과정)만 남기는 방안 또한 확정되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는 일이다. 세계적으로 대입시험은 주로 고교 후반에 배운 것을 중심으로 출제되고, 선택과목이 많다. 그런데 한국 수능의 경우 이과 수학은 없어지고, 과학·사회는 고1 과정만 남는다. 선택과목은 제2외국어만 남고 사라진다. 이제 수능은 불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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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친명과 친문에게 나는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기본적으로 불건전한 타협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 나서 평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1997년 대선 이래로 민주당은 대선을 치르고 나면 이기든 지든 공식적으로 평가 작업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백서 형태로 발표했다. 그런데 유독 지난 대선만은 예외였다. 민주당의 역사에서 오점이자 퇴행이 아닐 수 없다. 대선 평가를 하자는 주장이 당내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비주류가 아니라 주류 일각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개별 정치인의 주장과는 별개로, 집단적으로는 친명과 친문 모두 ‘가리고 싶은 것들’이 있었던 것 같다. ‘친문’은 문재인 정부의 실책을 드러내는 게 싫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부동산, 최저임금, 검찰개혁, 타다 금지법 등 말이다. ‘친명’도 대선에서 드러난 뜨거운 감자들을 재론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대남, 기본소득, 사법 리스크 등이 대표적이다. 이미 상당한 교집합을 갖고 있는 이 두 세력은 이것들을 ‘덮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