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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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불길한 공약 나는 이번 총선에 투표하지 못했다. 박사과정을 밟느라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데, 국외부재자 신고 기간을 깜빡 놓친 것이다. 나에게 투표할 기회가 있었다면, 아마도 ‘지민비조’(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를 선택했을 것 같다. 총선 결과는 내 기대치에 근접하게 나왔다. 하지만 이번 총선 기간에 나온 두 당의 공약들을 보고는 불길한 예감을 피할 길이 없다. 처음 나를 놀라게 한 공약은 3월24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씩 민생회복지원금을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이 정책의 명분은 양극화와 고물가로 인한 국민들의 어려움을 덜어준다는 것이리라. 아울러 감세를 통해 역대급 세수 펑크(2023년 59조원)를 자초한 윤석열 정부의 ‘자해적’ 경제정책을 역전시키고 경기회복의 마중물을 일으키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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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선진국과 비교해 본 한국의 갈라파고스 대입제도 선진국 대입제도의 핵심은 대입시험과 내신성적이다. 대입시험은 동일한 문항으로 평가하므로 학생들의 실력이 편차 없이 드러난다. 그래서 대입시험만 활용하고 내신성적은 활용하지 않는 나라들이 있다. 핀란드, 영국, 일본이 대표적이다. 한국에 널리 퍼져 있는 ‘내신을 반영해야 공교육이 살아난다’는 주장을 의심할 만한 대목이다. 프랑스도 오랫동안 대입시험(바칼로레아)만 활용했다. 그러다 2021년 내신성적을 10% 반영하도록 바꿨다. 과거에도 내신성적을 반영하려다가 학생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는데, 반대 이유는 ‘어떤 교사에게 배웠냐에 따라 대학 입학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크롱 정부가 학생들의 반대를 뚫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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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의대 정원, ‘좋빠가’에 맡길 것인가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릴 계획을 밝히자, 진보 성향 커뮤니티들의 반응은 ‘팝콘각’이라는 게 주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의대 정원을 늘리려다가 의사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어서 열받았었는데, 이제 윤석열 정부가 증원을 폭압적으로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되니 팝콘이나 먹으며 재미있게 싸움구경을 하자는 것이다. 나는 정책의 기본 방향에 대한 찬반과는 별개로, 정책의 추진 방식에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일단 증원의 규모가 예상보다 크고 급작스럽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증원하려던 정원은 400명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서 증원하려는 정원은 2000명이다. 무려 다섯 배다. 현재 의대 정원이 3058명인데 갑자기 5058명으로 65%를 늘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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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정시의 종말 수능에서 이과 수학이 사라진다. 지난해 12월 말 발표한 2028학년도 수능 확정안에서 심화수학을 빼버리고 문·이과 공통수학만 남겨둔 것이다. 수능에서 과학·사회 선택과목을 없애고 통합과학·통합사회(고1 과정)만 남기는 방안 또한 확정되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는 일이다. 세계적으로 대입시험은 주로 고교 후반에 배운 것을 중심으로 출제되고, 선택과목이 많다. 그런데 한국 수능의 경우 이과 수학은 없어지고, 과학·사회는 고1 과정만 남는다. 선택과목은 제2외국어만 남고 사라진다. 이제 수능은 불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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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친명과 친문에게 나는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기본적으로 불건전한 타협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 나서 평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1997년 대선 이래로 민주당은 대선을 치르고 나면 이기든 지든 공식적으로 평가 작업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백서 형태로 발표했다. 그런데 유독 지난 대선만은 예외였다. 민주당의 역사에서 오점이자 퇴행이 아닐 수 없다. 대선 평가를 하자는 주장이 당내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비주류가 아니라 주류 일각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개별 정치인의 주장과는 별개로, 집단적으로는 친명과 친문 모두 ‘가리고 싶은 것들’이 있었던 것 같다. ‘친문’은 문재인 정부의 실책을 드러내는 게 싫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부동산, 최저임금, 검찰개혁, 타다 금지법 등 말이다. ‘친명’도 대선에서 드러난 뜨거운 감자들을 재론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대남, 기본소득, 사법 리스크 등이 대표적이다. 이미 상당한 교집합을 갖고 있는 이 두 세력은 이것들을 ‘덮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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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대입 ‘3차 대전’을 예고하는 수능 개편안 지난 10월10일 발표된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에는 내가 ‘예상 가능했던 부분’과 ‘예상 불가능했던 부분’이 섞여 있었다. 일단 예상 가능했던 부분을 살펴보자. 일각에서는 수능에 논·서술형 문항이 도입될 것이라고 내다봤으나, 나의 예상대로 개편안에서 빠졌다. 논·서술형 도입의 걸림돌은 사교육이다. 한국 학생들에게 논·서술형은 객관식보다 어렵게 느껴지고, 더 많은 ‘개별 지도’를 요구한다. 따라서 논·서술형 시행은 사교육업계에 대형 호재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대입시험은 객관식 없는 논술형이다. 하지만 이를 한국에서 행할 때 벌어질 사교육 대란을 감당할 정치세력은 한국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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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진보는 왜 교권을 외면했나, 보편적 약자의 종말 ‘교권 침해’라는 개념은 오류다. 교권은 원래 없었기 때문이다. 교사에 대한 존중은 문화적 전통이었을 뿐, 교권을 보장하는 법령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10여년 전 교육청에 근무하다 법령상 교권이 없음을 절감한 적이 있다. 첫째로 교사가 자신이 담당할 학년과 과목을 개학하기 겨우 1~2주일 전에 통보받는다. 창의적인 기획, 충실한 준비를 하기에는 턱없이 촉박하다. 둘째로 교사가 학생을 방과후에 남겨서 개별적인 보충지도를 할 권리가 없다. 학부모가 아이를 보내달라고 하면 당장 귀가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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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이민이냐, 혁신이냐 2010년대에는 저출생을 걱정하면 “인구가 줄어들면 좋은 거 아냐?”라고 되묻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이를 반전시킨 사람을 꼽자면 유튜버 슈카일 것이다. 무려 275만명의 구독자를 가진 슈카가 “저출산 ‘원 툴’이라고 욕을 먹는다”고 자조할 만큼 이 주제를 여러번 다루면서, ‘인구 감소’ 자체가 아니라 ‘인구구조의 변화’가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인구구조를 예측해보니 청장년 대비 노년 비율이 전 세계 유례없는 수준으로 높아지고, 그로 인해 경제가 침체되고 세금이 치솟으며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도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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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대학 평준화, 어떻게 가능한가? 한국에서 대학 평준화가 본격 제기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공동입학·공동학위제를 포함하는 ‘국립대 통합’이 처음 나왔고, 여기에 ‘공영형 사립대’를 추가한 ‘대학 네트워크’가 파생되었다. ‘입시 철폐’ 또는 ‘수능 자격고사화’도 껴 있었다. 이러한 방안들을 통해 대학서열과 과열경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이것이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2017년 대선 시기, 나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던 ‘국민성장’의 교육팀 일원이었다. 대학 정책은 내 소관 밖이었는데, 어느날 대학 정책을 담당하는 간사급 인물이 나를 찾아와서 물었다. “공동입학제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국립대 통합과 공동입학·공동학위제를 검토하다가 벽에 부딪힌 것이다. 여기에 대한 나의 답은 간단했다. “그거 안 되는 거 이제야 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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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대학 평준화의 두 가지 의미 핀란드 교육이 한국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0년대 초부터였다. 세계적으로 가장 탁월한 교육시스템으로 손꼽히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TV 프로그램 및 언론 기사들을 통해 앞다퉈 소개되었다. 특히 진보교육감들의 등장과 맞물리면서 ‘경쟁 없는 교육’의 좋은 사례로 선전되었다. 그러나 핀란드 교육은 결코 ‘롤모델’이 되지 못했다. 그저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핀란드 교육은 한국 교육계의 통념과 상충하는 요소를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핀란드의 대입제도를 설명해주면 경악하는 사람들이 많다. 첫째, 핀란드는 대입에서 내신을 반영하지 않는다. ‘내신 성적을 반영해야 공교육이 정상화된다’는 주장의 반례다. 둘째, 핀란드 대학들은 대입시험을 통해 학과별 지원자를 한 줄로 세워 선발한다. ‘한 줄 세우기가 경쟁과 획일화를 유발한다’는 주장과 상충한다. 셋째, 핀란드는 성적순으로 합격자를 가려낸다. 성적순 선발의 비교육적 측면을 부각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강조하는 미국식 담론의 대척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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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유물론의 즐거움 마르크스주의는 혁명론이나 경제이론으로서는 힘을 잃었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기본적 시각으로서는 유용함을 잃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곱씹어볼만한 마르크스의 관점은 ‘인간의 본질은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인간의 본질이나 본성을 통해 사회현상을 설명하거나 판단하려는 시도를 해체하고 전복한다. 예를 들어 여성의 본성이 3K(아이, 부엌, 교회)에 적합하므로 기능을 이에 고정시켜야 한다고 규정한 나치라든가, 신이 부여한 불변의 본성(nature)을 전제하고 동성애가 이를 거스른다는 이유로 혐오하는 보수적 기독교에 대한 경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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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블라인드 채용의 한계 블라인드 채용은 능력주의에 충실한 선발 방식이다. 지원자가 어느 대학 출신인지를 가리고, 순수하게 개인의 능력을 기준으로 선발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마디로 ‘스펙’보다 ‘능력’을, ‘집단’보다 ‘개인’을 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위증이나 성적표는 물론이요, 자기소개서나 면접 등에서도 어느 대학 출신인지를 가려야 하며, 만일 이를 드러내면 탈락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하반기 공공기관에 도입되었고 2018년 가이드라인이 확립되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왜 스펙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흔히 정기채용 혹은 공채라고 불려온 채용방식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정기채용이란 1년에 한 번 또는 두 번 공개적·집단적으로 신입사원을 모집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제도다. 기업이 굳이 1년에 한두 번 신입사원을 몰아서 뽑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게다가 뽑을 당시에는 이 사람이 나중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른다. 몇 개월 교육을 거친 뒤 부서로 배치되는데, 본인의 전공이나 희망과는 전혀 다른 직무가 주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