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이범의 불편한 진실] 친명과 친문에게

대선평가 부재한 가운데
변명이 슬그머니 나타나
부동산 정책의 김수현과
정책실장이던 장하성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일방적인 변명만 해
민주당이 재집권해도
제2의 김수현·장하성이
나오지 말란 법 없다

지금 민주당 분란은
명분 없는 권력다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당개혁은 결국 주류가
정신 차리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들
총선에 눈이 멀어 있다

나는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기본적으로 불건전한 타협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 나서 평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1997년 대선 이래로 민주당은 대선을 치르고 나면 이기든 지든 공식적으로 평가 작업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백서 형태로 발표했다. 그런데 유독 지난 대선만은 예외였다. 민주당의 역사에서 오점이자 퇴행이 아닐 수 없다.

대선 평가를 하자는 주장이 당내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비주류가 아니라 주류 일각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개별 정치인의 주장과는 별개로, 집단적으로는 친명과 친문 모두 ‘가리고 싶은 것들’이 있었던 것 같다. ‘친문’은 문재인 정부의 실책을 드러내는 게 싫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부동산, 최저임금, 검찰개혁, 타다 금지법 등 말이다. ‘친명’도 대선에서 드러난 뜨거운 감자들을 재론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대남, 기본소득, 사법 리스크 등이 대표적이다. 이미 상당한 교집합을 갖고 있는 이 두 세력은 이것들을 ‘덮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나는 현실적인 여건상 공개리에 재론하기 어려운 부분도 분명 있다고 본다. 검찰 권력과 맞선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도록 만든 여러 주제들을, 이렇게 스리슬쩍 덮고 넘어가는 것이 합당한가? 그러면서 민주당을 다시 신뢰해달라고 외치는 것이 겸연쩍지도 않은가?

‘평가’가 부재한 가운데 ‘변명’이 슬그머니 나타난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사회수석을 지내며 부동산 정책을 이끌었던 김수현씨는 얼마 전 <부동산과 정치>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전 세계적 추세인 ‘주택의 금융화’ 그리고 저금리와 코로나19로 인한 과잉 유동성이 주택 가격을 폭등시킨 주범임을 강조한다. 즉 그의 결론은 ‘불가피했다’ 내지 ‘역부족이었다’로 요약된다.

그런데 그의 주장의 세부 항목들을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결정적인 질문에 답하지 않고 회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주택 시장은 절대로 ‘자유’ 시장이 아니다. 정부가 ‘수요’와 ‘공급’ 양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수요 감소’를 위해서 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다주택자의 보유세와 취득세를 높인다든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을 제한한다든가, 서울로 쏠린 인구와 산업의 분산을 꾀한다든가 (부울경 메가시티가 되었든, 개헌을 통한 수도 이전이 되었든) 등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공급 증가’를 위해서 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다주택자의 양도세를 낮춰 매물로 나오도록 유도한다든가, 신도시 개발이나 도심 고밀도 재개발에 나선다든가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를 김수현씨가 청와대에 있을 때 펼친 정책들과 견줘보면, 시장 원리와 거꾸로 간 것들이 단박에 드러난다. 3기 신도시는 두 차례에 걸친 서울·수도권 아파트값 폭등이 일어나고 나서 2018년 말에야 발표되었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도심 고밀도 개발안은 발표 예정일을 열흘 앞두고 그가 별세함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했다. 정권 초 보유세를 높이기 전에 양도세를 높여버리니 매물이 자취를 감췄고, 국제 협약을 근거로 추진하던 대출 제한(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도입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늦췄으며,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해 박근혜 정부에서 확대한 전세대출은 전혀 손대지 않았다. 김수현씨는 “나는 문재인 정부가 적기에 더 강한 대출규제와 가계부채 관리에 나서지 못했던 것을 가장 중요한 부동산 실패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면서도, 왜 자신이 그 같은 실패를 범했는지는 전혀 밝히지 않는다.

파장도 예측 못하면서 무슨 전문가

가장 황당한 것은 그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양도세를 감면해주는 정책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그는 2011년에 내놓은 전작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이미 임대주택 공급을 공공에만 맡겨놓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민간 임대사업자의 역할을 긍정해야 한다는 지론을 드러냈다. 다른 선진국들처럼 월세를 받는 임대사업자가 주류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의 임대사업에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 다른 선진국에는 전무한 ‘전세’가 존재하는 것이다. ‘월세수익형’ 임대사업자가 아니라 전세 제도를 통해 갭투기를 하고 시세차익을 노리는 ‘시세차익형’ 임대사업자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가 임대등록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분으로 임대사업자에게 양도세를 감면해주는 정책을 발표하자, 집권 첫해인 2017년 겨울 너나없이 갭투자에 뛰어들어 폭등이 초래되었다. 나는 전혀 부동산 투자와 관계없이 살았던 한 지인이 당시 “지금 투자 안 하면 바보”라고 말한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쯤 되면 김수현씨가 부동산 전문가가 맞는지 의아하다. 모름지기 전문가라면, 정책의 ‘파장’에 대해 예측할 줄 알아야 한다. 2차, 3차 파장까지 예측하라면 무리겠지만 적어도 1차 파장, 즉 해당 정책이 발표되면 주요 시장 참여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분석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비슷한 장면을 교육정책에서도 여러 번 경험했다. 예를 들어 내가 2008년경에 만나본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 브레인들은,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사교육도 잡고 과열경쟁도 막고 학교교육도 개혁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2차, 3차 파장은 물론이요 1차 파장도 예측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전문가가 아닌 것처럼, 김수현씨도 전문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중심으로 하는 ‘소득주도 성장’은 또 어떤가? 얼마 전 민주당 내 을지로위원회에서는 <민주당 재집권전략 보고서>라는 책을 냈다. 일부 언론에서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반성을 담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살펴보면 한마디로 함량 미달이다. 그들은 박근혜 정부 시절 이미 물가상승률의 두 배 이상으로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있었던 점을 왜 간과했는지, 자영업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5위로 25%에 달했다는 점을 왜 무시했는지 고백하지 않는다. 국제노동기구(ILO)를 중심으로 설파되던 ‘임금주도’ 성장이 어떻게 ‘소득주도’ 성장으로 둔갑했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비주류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씨가 2014년 내놓은 <한국 자본주의>와 2015년 내놓은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그 사정의 일단을 짐작해볼 수 있다. 장하성씨는 기업 전문가로서 기업들이 심하게 양극화되어 있음을 밝혔다. 그는 기업 양극화로 인해 노동(임금)이 양극화되어 있다고 설명한 뒤, 양극화에 대응하여 노동소득을 높이려면 최저임금을 높이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장하성씨는 이 과정에서 한국의 빈곤층은 주로 비노동자이거나 불완전고용 상태에 있는 사람들(특히 노인)이라는 점을 놓쳤다.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사람들이 정부 공식 통계에 무려 200만명이 넘는다는 점도 간과했다. 참고로 2018~2019년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 숫자는 300만명을 훌쩍 넘겼다. 최저임금 급등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잘 보여준다. 그가 소득 불평등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그르친 것은 첫째로 ‘소득’을 ‘임금’으로 환원시켰고 둘째로 저임금 노동시장의 사정에 어두웠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최병천씨가 <좋은 불평등>을 통해 통렬히 비판한 바 있다. 장하성씨는 기업 전문가일지는 몰라도 불평등 전문가는 아니었던 셈이다.

김수현씨와 을지로위원회는 자신의 변명을 일방적으로 발표했을 뿐이다. 여기에 대해 당 안팎에서 어떤 토론이 벌어졌다는 소식도 없다. 한마디로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민주당이 장차 재집권한다 할지라도 제2의 김수현, 제2의 장하성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말하자면, 나는 현재 당내에서 벌어지는 권력다툼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즉 비주류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다. 나는 2015년 민주연구원 부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별의별 당치 않은 명분으로 당시 문재인 당대표를 흔들던 사람들의 행태를 생생하게 목격했다. 지금 이뤄지는 분란도 그 같은 명분 없는 권력다툼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결국 정당 개혁은 ‘주류’가 정신 차리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들 총선에 눈이 멀어 있다. 그 뒤에 있을 대선을 내다보고 있는 사람은 이재명 대표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글의 제목은 ‘이재명 대표에게’가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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