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이범의 불편한 진실] 정시의 종말

2028학년도 수능 개편안은 2018년의 되치기다. 수능을 불구화하고 정시를 수시화하려 한다
대중의 학종 혐오와 수능 선호는 그들이 가장 염원하는 ‘경쟁의 완화’를 일으키지 못한 무능한 엘리트에 대한 반감의 표출
이를 ‘비교육적 반동’이나 ‘고소득층의 이해관계’로 간주하는 것은 안이하고 게으른 해석이다

수능에서 이과 수학이 사라진다. 지난해 12월 말 발표한 2028학년도 수능 확정안에서 심화수학을 빼버리고 문·이과 공통수학만 남겨둔 것이다. 수능에서 과학·사회 선택과목을 없애고 통합과학·통합사회(고1 과정)만 남기는 방안 또한 확정되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는 일이다. 세계적으로 대입시험은 주로 고교 후반에 배운 것을 중심으로 출제되고, 선택과목이 많다. 그런데 한국 수능의 경우 이과 수학은 없어지고, 과학·사회는 고1 과정만 남는다. 선택과목은 제2외국어만 남고 사라진다. 이제 수능은 불구가 되었다.

수능 개편안에 대한 교육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선택과목에 따라 생기는 유불리와 불공정을 없애기 위해, 선택과목을 아예 없앤다니? 그렇다면 대입시험에서 선택과목을 많이 마련해놓은 다른 나라들은 뭐란 말인가? 교육부는 20년 전에도 중요한 원죄를 저지른 적이 있다. 당시 수능에 선택과목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원점수를 없애고 상대평가 지표(표준점수와 석차등급)만 매기기 시작한 것이다. 3년 전 수능부터는 이 원죄를 시정하지 않고 더 꼬아놓아서 이른바 ‘문과 침공’을 부추겼다. 수학에서 이과생(미적분 선택자)과 문과생(확률과통계 선택자)의 최고점수가 차이나도록 한 것이다.

한국 교육당국의 특징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학생들이 부조리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20년간 상대평가 지표를 유지한 결과 지난해 11월에 치른 수능의 경우 경제 선택자는 응시자의 1%, 물리학2 선택자는 응시자의 0.9%에 불과했다. 가장 중요한 과목들이 가장 많이 외면받는 것이다. 수학에서는 확률과통계 선택자의 최고점수가 미적분 선택자의 최고점수보다 11점이나 낮았다. 입시 전문가들은 ‘그냥 미적분을 선택하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입시 컨설팅이라면 그걸로 족하다. 하지만 제도에 대한 비평이라면 제도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를 적시해야 한다. 과목별 유불리와 불공정의 원인은 석차등급과 표준점수이지, 결코 선택과목제 자체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대입시험을 전수조사해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표준점수나 석차등급은 한국에서만 쓴다. 다른 나라들은 원점수를 쓰거나, 보정점수(scaled score)를 쓰거나, 등급(절대평가)을 쓴다. 예외가 없다. 이들 세 가지 모두 소수 과목 기피현상을 방지하고 학생들의 소신에 따른 선택을 지지한다. 즉 물리나 경제를 기피한다든가 아랍어로 쏠린다든가 하는 황당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리고 과목에 따라 최고점이 달라지는 표준점수와 달리, 어느 과목을 선택하든 동일한 최고점을 받을 수 있다. 세 가지 가운데 두 가지는 변별력도 높다(원점수와 보정점수). 한국도 이런 방향으로 고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교육부의 결정은 수능에서 선택과목도, 이과 수학도 없애버리고, 이 같은 변화를 ‘공정’이니 ‘융합’이니 하는 단어로 포장하는 것이었다.

수능 불구화, 세계서 보기 힘든 유례

‘수능의 불구화’는 세계 입시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그런데 교육계 안팎에서 이에 대한 비판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유인즉 이렇다. 이과 수학은 수능에서는 빠졌지만 고교에서는 배울 수 있으니 상관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공계 전공으로 진학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고교학점제하에서 선택과목으로 이과 수학(미적분Ⅱ 및 기하)을 배울 수 있고, 대학에서는 이를 학생 선발에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능과 내신을 합산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사고가 대한민국 교육계의 주류다.

그러니 이제 정시는 끝났다. 수시전형보다 뒤에 치른다는 의미의 정시전형은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수능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의미의 정시전형은 종말을 고한 것이다. 2028학년도 정시전형에서는 수능과 내신을 합산하는 것이 확정적이다. 수학뿐만 아니라 과학과 사회도 같은 사정 아닌가? 내신 성적만 합산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학생부 전체를 반영하려 할 수도 있다. 이제 정시의 수시화, 어쩌면 정시의 학종화가 진행될 것이다.

수능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한국 교육계의 오랜 목표였다. 김영삼 정부 시절 수시전형을 처음 도입할 때부터 그랬다. 노무현 정부가 시도했던 내신 중심 대입제도와 수능 등급제, 이명박 정부의 교육수장이던 이주호씨가 드라이브를 건 입학사정관제는 모두 수능의 비중을 낮추고 이를 다른 수단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였다. 이주호씨가 수능 폐지론자라는 사실은 이후 스스로의 인터뷰 발언 등을 통해 명백해졌다. 입학사정관제는 박근혜 정부 들어 학종(학생부종합전형)으로 개편되었고, 이후 진보 교육계가 학종의 물결에 올라탔다. 수능 비중을 약화시키고 학종 비중을 키움으로써 혁신교육을 대입과 연계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2018년에 벌어진 대입 공론화 논쟁의 구도가 ‘진보 대 보수’가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진다. 교육계 주류는 진보든 보수든 수능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길 원했다. ‘진보는 학종, 보수는 수능’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류다. 2019년 여론조사업체인 리얼미터에서 정치성향별 대입 전형 지지율을 조사했는데, 정시(수능 전형)에 대한 지지율은 진보층이 63%, 보수층이 59%로 오히려 진보층이 근소하게 더 높았다.

2028 수능 개편안은 반민주적 행태

2018년의 논쟁은 ‘진보 대 보수’가 아니라 ‘엘리트 대 대중’의 논쟁이었다. 엘리트는 ‘교육적 가치’를 앞세워 학종을 내세웠고, 대중은 불공정과 부담을 호소하며 이에 맞선 것이다. 정치학에서 말하는 포퓰리즘의 전제, 즉 ‘엘리트’와 ‘대중’ 사이의 대립 구도가 한국 역사상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진보 엘리트인 김상곤씨와 보수 엘리트인 이주호씨가 손을 맞잡고 한편에 서고(보수 교육감도 예외없이 학종을 지지했다), 학종에 염증을 느낀 대중이 이에 맞서고 있는 형국이었다.

2028학년도 수능 개편안은 2018년의 되치기다. 수능을 불구화시키고, 이를 통해 정시전형을 수능만으로 치르기 어렵게 만들고, 자연스레 수능 성적에 내신 성적을 합산시키고, 심지어 수능 성적에 학생부를 더하여 정시를 수시화 혹은 학종화하려 할 것이다. ‘교육적 가치’와 ‘대학 자율’을 앞세우며 광범위한 교육계가 이를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반(反)민주적 행태다. 2018년 대입 공론화를 통해 성립된 사회적 합의를, 최소한의 사회적 토론도 없이 무효화하는 것 아닌가?

나는 2018년 대입 논쟁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진행자를 그만두고 나서 2019년 11월 ‘대중의 대입 정시 확대론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칼럼을 내고 유튜브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출연했다가 진보 교육진영에서 큰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비방과 달리 나는 수능이나 사교육에 전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학원강사를 그만둔 지는 20년이 넘었고, 창업 멤버로서 가지고 있던 메가스터디의 주식은 진즉 전량 매각했다. 2010년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이 되면서 사교육업체의 주식을 갖고 있기가 께름칙했기 때문이다.

나도 수능을 싫어한다. 객관식 시험은 다양한 역량과 창의성을 키우는 데 심각한 한계를 보인다. 나는 15년 전부터 유럽 주요 국가들처럼 대입시험을 논술형·서술형 문항으로 전면 교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해왔다. 다만 한국처럼 경쟁이 심한 환경에서는 사교육 대란이 벌어질 우려 때문에 이런 변화를 시도하기 어렵다고 본다(2021년 9월30일자 칼럼 ‘수능에는 죄가 없다’ 참조).

내가 굳이 비난을 자초하는 입장을 취한 것은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에서 비롯된 교훈 때문이다. 정치학자 샹탈 무페가 책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에서 역설한 것처럼, 우리는 포퓰리즘(대중의 이익에 호소한다는 의미에서)이 불가피한 시대를 살고 있다. 대중의 감성과 정의 감각의 변화에 무지하다가 영국 보수당 주류가 브렉시트를 당했고, 미국 민주당 주류가 트럼프를 당선시키지 않았는가?

한국 대중의 학종 혐오, 수능 선호는 20년간 쉴 새 없이 대입제도를 바꿔왔으면서도 정작 대중이 가장 염원하는 변화인 ‘경쟁의 완화’를 일으키지 못한 무능한 엘리트에 대한 반감의 표출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비교육적 반동’이나 ‘고소득층의 이해관계’로 간주하는 것은 안이하고 게으른 해석이다.

■이범

[이범의 불편한 진실] 정시의 종말

서울대 학부에서 생물학, 대학원에서 과학사·과학철학을 전공했다. 박사과정 수료 후 수능 과학탐구 강사가 돼 ‘메가스터디’ 창업에 참여했다. 2003년 ‘일타강사’ 시절에 은퇴한 드문 기록을 갖고 있다. 이후 교육평론가, 정책전문가로 변신했다.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 민주연구원 부원장, 한겨레신문·시사인·허핑턴포스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 40년간의 한국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주제로 연구를 시작했다. 저서로 <문재인 이후의 교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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