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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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100세 시대의 개막 일주일에 하루는 산행을 간다. 자주 가는 곳은 가평 53산이다.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화악산을 필두로 명지산, 연인산, 운악산, 유명산 등 가평에는 좋은 산들이 많다. 땀 흘리며 능선에 올라 정상을 향해 걸으면 몸과 마음이 상쾌해진다. 가평 53산을 찾아가면서 발견한 것은 산행 중 만나는 이들이 주로 어르신들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변화했음을 가평 53산 산행에서 실감하는 셈이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명은 빠르게 늘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 남자의 기대수명(출생아가 앞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연수)은 79.3세이고, 여자는 85.4세다. 기대여명(특정 연령자가 앞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연수)의 경우, 60세를 기준으로 볼 때 남자는 82.5세이며, 여자는 87.2세다. 환갑을 맞이한 이들이 평균 20년 이상은 더 살 수 있다는 통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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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대침체 이후의 포퓰리즘 젊은 시절 독일에서 공부한 탓인지 서유럽 정치에 관심이 적지 않다. 당장 3월4일 치러질 이탈리아 총선에서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五星)운동’이 집권에 성공할 것인지를 눈여겨보고 있다. 최근 오성운동은 30%에 육박하는, 단일 정당으론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오성운동이 다른 정당과의 연대를 거부하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선 우파 연립정부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주목할 것은 포퓰리즘이 2008년 금융위기라는 ‘대침체’ 이후 서구 정치변동을 이끌어온 핵심 동력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과 ‘샌더스 현상’,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전진하는 공화국’,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 영국의 ‘독립당’,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덴마크의 ‘국민당’, 노르웨이의 ‘진보당’, 그리스의 ‘시리자’, 그리고 스페인의 ‘포데모스’에 이르기까지 포퓰리즘이 서구 정치사회는 물론 시민사회를 뒤흔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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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청년세대의 내면세계 사회 분석에서 세대는 유용한 동시에 애매한 변수다. 유용성은 세대 변수의 설명력에서 주어진다. 세대 투표와 세대 갈등, 청년 문화와 실버 경제 등이 보여주듯 세대는 분명 사회변화를 이끄는 동인이다. 하지만 같은 세대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이념 또는 계층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 세대 변수의 애매성은 여기서 비롯된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내가 왜 세대 문제를 꺼냈는지 간파했을 듯하다. 새해 들어 단연 주목받는 이슈는 청년세대다. 가상통화, 평창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등 정부 정책에 대한 20대의 비판 여론이 높다. 가상통화 대책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동계올림픽에 대한 청년세대의 반응에 정부는 물론 기성세대는 상당히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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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적폐청산, 그 다의성과 필요성 지난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말의 하나는 적폐청산이다. 적폐청산은 대선 과정에서 뜨거운 쟁점을 이뤘다. 5월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이를 100대 국정과제의 첫 번째로 삼았다. 적폐청산에 담긴 사전적 의미는 누적된 폐단을 깨끗이 씻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적폐의 동의어는 앙시앵 레짐, 즉 낡은 체제다. 낡은 체제를 청산하라는 것은 박근혜 정부를 조기 퇴진시킨 촛불시민혁명의 가장 중요한 요구의 하나였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출범한 정부인 만큼 낡은 질서를 혁파하는 적폐청산은 새 정부의 당연한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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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보수주의 2.0 올해 한국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가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보수의 위기라는 게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시작된 보수의 위기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민주화 시대 30년을 돌아보면 보수가 늘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다. 자민련의 존재에서 볼 수 있듯 보수는 나뉘어 있기도 했고, 2004년 탄핵 사태처럼 정치적 위기를 겪은 적도 있었다. 문제는 현재 보수가 직면한 위기가 앞선 위기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자민련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이 보수 주류로서의 안정적 지지를 유지했고, 2004년 총선의 경우에도 진보에 맞설 교두보를 확보했다. 누구는 여소야대라는 정치 지형을 주목해 보수의 위기가 일시적 현상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현재 보수는 과거와는 다른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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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외환위기 이후의 ‘망탈리테’ “각각의 시대는 심성적으로 자신의 우주를 만든다.” 프랑스 역사학자 뤼시앵 페브르의 <16세기의 무신앙 문제> ‘머리말’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심성(心性)이 ‘망탈리테(mentalites)’다. 망탈리테란 특정한 시대에 개인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의식 및 무의식을 지칭한다. 지적인 것은 물론 정서적인 것을 망라한 태도와 정조가 망탈리테를 이룬다. 내가 망탈리테를 주목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망탈리테는 논리적 사유와 정서적 감정을 포괄한다. 망탈리테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개인의 삶을 강제하는 시대적 구속에 대한 심층적 독해를 가능하게 한다. 둘째, 바로 이 점에서 망탈리테는 ‘시대정신(Zeitgeist)’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시대정신이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가치의 집약을 말한다. 현재를 이루는 양축이 사회 제도와 집단 심성이라면, 이 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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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촛불혁명, 회고와 전망 촛불혁명이 일어난 지 1년이 됐다. 현재의 시점에서 이 혁명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를 시민사회와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사회학 연구자의 시각에서 살펴보고 싶다. 촛불혁명에 대한 가장 온당한 평가로 나는 독일 에베르트재단이 촛불혁명에 참여한 우리나라 국민을 올해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들고 싶다. 에베르트재단은 “민주적 참여권의 평화적 행사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는 생동하는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다. 대한민국 국민의 촛불집회가 이 중요한 사실을 전 세계 시민들에게 각인시켜 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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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전쟁은 안된다 21세기에 들어와 올해만큼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의 시간’과 ‘분단체제의 시간’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나날은 없는 듯하다. 민주화의 시간에서 보면 지난해 가을에 일어난 촛불시민혁명은 문재인 정부라는 세 번째 진보적 정권을 출범시켰다. 분단체제의 시간에서 보면 올해 들어 북·미 간 갈등의 고조는 한반도 평화는 물론 동북아 정세를 크게 요동치게 하고 있다. 두 시간이 이렇게 충돌하면서 남북관계가 다른 모든 이슈들을 압도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많은 국민의 의식에 저류(低流)하는 것은 무력감과 불안감이다. 외국 언론들은 태평한 우리 사회를 기이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이는 외부의 피상적 관찰이다. ‘분노와 화염’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 하나의 수단’ ‘국가 핵무력 건설의 역사적 대업’ 등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이 무시무시한 말폭탄들을 주고받고 있는데, 이 사실을 모르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우발적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지는데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무력과 불안과 짜증의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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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97년체제를 넘어서 올해는 1987년 6월항쟁 30년과 1997년 외환위기 20년이 된다. 여러 매체들에서 6월항쟁 30년을 기리는 기획이 제법 진행됐지만, 외환위기 20년을 돌아보는 기획은 드문 편이었다. 외환위기가 1997년 10월 이후에 본격화됐기 때문에 다음 달부터 외환위기 20년을 평가하는 기획들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외환위기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넓고 깊었다. 6월항쟁이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면, 외환위기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가져왔다. 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제·사회모델은 흔히 ‘97년체제’라 불린다. 체제(regime)란 경제와 사회가 조응된 관계를 말하며, 특히 물적 기반인 축적체제를 중시한다. 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 외환위기를 계기로 하여 우리 사회는 정부가 발전을 선도하는 ‘전통적 발전국가’의 61년체제에서 발전국가의 요소와 신자유주의의 요소가 혼합된 ‘신자유주의적 발전국가’인 97년체제로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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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노년을 기억하라 <무연사회(無緣社會)>란 2010년 일본 NHK가 방영한 특집 이름이다. 일본 열도에 큰 충격을 안긴 프로그램이다. 그 취재 내용은 <무연사회>라는 책으로 우리말로도 옮겨져 있다. 혼자 살아가다 혼자 사망하는 사회가 무연사회다. 무연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홀로 맞이하는 죽음인 ‘무연사(無緣死)’다. NHK 취재에 따르면, 일본에서 무연사는 연간 3만2000명에 이른다. 무연사의 일차적 원인은 개인주의의 발전에 따른 독신 세대의 증가에 있다. 평생미혼율(50세 시점에서 결혼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적지 않은 이들이 ‘나 홀로 가족’으로 살아가다 돌봐주는 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 무연사를 맞이하는 다수는 독신 고령세대다. 그 대책의 하나가 일정 기간 수도 사용량이 없으면 관계 기관에 자동 통보하는 시스템이다. 수도 계량기가 알려주는 이승과의 작별이라니, 참으로 쓸쓸한 죽음이다. 무연사는 일본 고령사회의 가장 짙은 그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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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인구절벽의 벼랑 끝에서 표어의 변천만큼 우리 사회변동을 잘 상징하는 것은 없다. 압축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선 국민 동원이 중요했고, 그 동원의 목표는 표어로 집약됐다. 표어의 변천에서 극적인 변화를 담고 있는 게 인구정책이다.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에서 볼 수 있듯 산업화 시대에는 강력한 산아제한정책이 추진됐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선 ‘자녀에게 가장 큰 선물은 동생입니다’라는 표어가 보여주듯 적극적인 출산장려정책이 펼쳐졌다. 표어의 변천을 낳은 것은 당연히 출산율의 변동이다. 합계출산율이 1960년에 6.0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17명을 기록했다. 세계에서 출산율 증감이 이렇게 극적인 나라는 없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2차 세계대전 직후 4.5명 전후였던 합계출산율이 지난해에 1.44명으로 감소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에 100만명에 달했던 신생아 수가 올해 36만명으로 줄어든다고 하니 가장 빨리 인구폭발에서 인구절벽으로 가는 국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