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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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대한민국 미래 100년을 꿈꾸며 어느 나라든 모더니티 역사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친 역사적 전환점이 있기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1776년 ‘건국’이 그러하다면, 프랑스의 경우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그런 위상을 가진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이런 역사적 전환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갖는 사건은 1919년 3·1운동일 것이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서 물론 한 사건이 모든 것을 좌우하진 않는다. 3·1운동 이전에 동학농민혁명, 만민공동회, 광무개혁, 의병투쟁 등 역사적 분수령들이 존재했다. 이런 대내적 사건들이 누적되어 변화된 국제 환경 아래서 분출한 것이 바로 3·1운동이었다. 우리 모더니티 역사에서 3·1운동이 특별히 주목받는 것은, 3·1운동과 그 결과로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우리나라가 제국(帝國)에서 민국(民國)으로,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통에서 현대로의 일대 전환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감회가 남다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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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21세기를 생각한다 누구나 타인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좋아하는 지식인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이른바 최애(最愛)하는 지식인은 역사학자 토니 주트(Tony Judt)다. 영국에서 태어난 유대인 주트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공부했고 미국 뉴욕대학에서 가르쳤다. 그는 전후 유럽에 대한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되는 <포스트 워: 1945~2005> 등의 저작들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주트는 학문적 탐구는 물론 대중적 계몽을 중시했다. 시대의 불의에 맞서 공론장에서 사회 정의를 위한 발언들을 서슴지 않았다. ‘공적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지성사적 위상은 독특하다. 그는 반신자유주의자이자 반공산주의자였다. 지난 20세기 후반 서구 신자유주의가 낳은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격렬히 비판했던 동시에, 동구 공산주의가 가져온 인간적 자유와 민주적 공론장의 훼손 역시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평등과 자유의 가치를 조건 없이 사랑했던 ‘완고한 사회민주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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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민주공화국 100년을 생각한다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 100주년이 되는 해다. 3·1운동과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시대정신은 뭘까. 역사학자 강만길은 3·1운동이 참가 인원과 전국적 규모를 생각할 때 그야말로 우리 역사에서 ‘거족적인 운동’이었다고 말한다. 조선 민족이 식민 통치를 달게 받는다고 주장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선전이 허구임을 지구상에 널리 알리고, 민족 자결과 국가 주권을 당당히 요구했던 ‘근대적·국민적 민족해방운동’이 바로 3·1운동이었다. 이러한 3·1운동의 열망을 담아 1919년 4월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했다. 3·1운동의 정신은 이날 선포된, 10개 조항으로 이뤄진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반영됐다.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고,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함’이다. 그리고 제4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신교(信敎),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신서(信書), 주소 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유함’이다.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공화국이 바로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시대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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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지그문트 바우만을 다시 한번 추모한다 2018년이 지나가고 있다. 공부가 직업인 사람으로서 한 해를 기억하는 방식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은 1년 동안 읽은 책을 돌아보는 것일 게다. 타인의 생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반추할 때 인간의 사유는 진화하는 법이다. 독서가 사유를 압도해선 안된다. 그러나 독서를 통해 검증받지 않은 사유 또한 현실의 대지에 뿌리 내리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돈다고 나는 믿는다. 올해 가장 인상적인 책을 한 권만 꼽으라면 10월에 우리말로 옮겨진 지그문트 바우만의 <레트로토피아(Retrotopia)>를 들고 싶다. 지난해 1월 바우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경향신문의 요청으로 그를 추억하는 추도문을 쓴 바 있다. <레트로토피아>는 지난해 3월에 출간되었기에 당시 나는 이 책을 보지 못한 채 그와 그의 학문을 추모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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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보헤미안 랩소디’를 추억하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가 작지 않은 화제다. 팝송을 즐겨 듣던 한 사람으로 영국 밴드 ‘퀸(Queen)’과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 현대사에서 팝송의 전성시대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였다. 내가 팝송을 듣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였다. 중학생이 돼서 매일 심야 라디오방송을 듣고, 잡지 ‘월간팝송’을 읽고, 빌보드 차트를 눈여겨보곤 했다. 여기서 팝송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예술과 사회의 관계 때문이다. 예술사가 아르놀트 하우저에 따르면, 예술과 사회는 분리되지 않는다. 하우저는 내재적 방법과 예술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기성 이론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예술 역시 지식의 한 형태라면, 어떤 지식도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는 이론틀을 제시하고, 사회 속의 예술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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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최인훈과 김윤식을 기리며 지식인의 사회학은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분야다. 아직 두 달 정도 남아 있지만 2018년은 내게 지식인 최인훈과 김윤식이 세상을 떠난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만큼 두 사람의 사상이 나의 사회학적 연구에 미친 영향이 컸다. 단언컨대, 최인훈과 김윤식은 광복 이후 한국 모더니티를 탐구해온 가장 뛰어난 작가이자 가장 탁월한 국문학자였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도 두 사람의 지적 모험을 통해 한국 모더니티의 과거와 현재를 반추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모더니티란 16~17세기 서유럽에서 시작해 지구적으로 확산된 사회제도와 의식을 말한다. 제도로서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의식으로서의 개인주의와 민족주의는 이 모더니티의 중핵을 구성한다. 돌아보면, 우리 역사에서 19세기 후반부터 부여된 시대사적 과제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민족주의가 바탕을 이룬 ‘근대적 국가와 사회 만들기’였다. 우리는 어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어떤 개인주의와 민족주의를 일궈온 걸까. 소설이든 평론이든 문학의 힘이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을 구하는 데 있다면, 최인훈과 김윤식은 바로 이 문제를 평생 천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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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다시 민주주의를 묻는다 강의 시간에 인류가 발명한 가장 놀라운 세 가지 제도는 가족·시장·민주주의라고 말하곤 한다. 인간은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고, 먹고살아야 하며, 공동의 의사 결정을 이끌어내야 하는 존재다. 이러한 요구들에 부응해 등장한 사회 제도가 가족·시장·민주주의라는 의미다. 이 세 제도는 사회학·경제학·정치학의 핵심 탐구 대상이기도 하다. 주목할 것은 이 세 제도에서 고정적 모델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가족·시장·민주주의는 끝없이 변화돼 왔고, 여전히 변화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예컨대, 1인 가구의 증가와 금융시장의 지구화는 전후 시대에 가족과 시장 영역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다. 이러한 변동이 암시하는 것은, 가족과 시장에 대한 표준화된 모델이 없고,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지속적으로 일궈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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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포용국가의 정치적 조건 문재인 정부가 ‘포용국가’를 내걸었다. 포용국가는 사회정책의 국가비전이다. ‘모두를 위한 나라, 다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가 이 비전의 이름이다. 포용국가의 목표는 세 가지다.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을 추구하고, 배제와 독식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을 도모하며, 미래를 향해 혁신하는 사회를 일구겠다는 것이다. 포용국가는 3대 비전으로 이뤄져 있다. ‘사회통합 강화’ ‘사회적 지속가능성 확보’ ‘사회혁신 능력 배양’이 그것이다. 이 비전들은 다시 각 3개씩의 세부 정책 목표를 갖고 있다. 이른바 ‘9대 전략’이다. 정부는 포용국가의 실현을 위해 ‘국민 전 생애 기본생활보장 3개년 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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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젠트리피케이션을 생각한다 1990년대 중반 ‘홍대’에 살았다. ‘홍대’란 홍익대학교 일대의 서교동을 지칭하는 말이다. 1990년대 후반 ‘홍대’를 떠났다가 지난해 봄 20여 년 만에 다시 이사 왔다. 그동안 ‘홍대’는 크게 확장됐다. 이제 ‘홍대’는 서교동을 넘어 상수동, 합정동, 연남동, 망원동까지를 포괄하는 지명으로 쓰이고 있다. ‘홍대’의 도시 경관과 문화 양식 또한 적잖이 바뀌어져 있었다. ‘홍대’의 변화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도시사회학 개념이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널리 알려졌듯, 이 용어를 주조한 이는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다. 글래스는 1960년대 초반 런던 노동계급 거주지역에 새로운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중간계급이 들어오고 정작 노동계급은 쫓겨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불렀다. 신사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가 새로운 주민이 된다는 의미가 젠트리피케이션 개념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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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소확행의 문화사회학 ‘소확행’ ‘워라밸’ ‘케렌시아’, 지난 몇 달 내 사회학적 그물망에 걸린 말들이다. 소확행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말한다면, 워라밸은 일과 생활이 조화로운 균형을 갖는 것을 뜻한다. 케렌시아는 나만의 휴식 공간을 지칭한다. 세 말들은 각각 의미의 초점이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도 존재한다. 개인과 여가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크게 보아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개념들인 셈이다. 이 가운데 현대사회론을 공부하는 내 시선을 특별히 끄는 말은 소확행(小確幸)이다. 이 개념의 기원은 1986년에 발표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다. 갓 구워낸 빵을 손으로 찢어서 먹는 것,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등이 바로 행복이라는 메시지다. 하루키다운 감성이다. 우리 사회에선 지난해 김난도 교수 등이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소개하여 널리 알려졌다. 대만에서는 지난해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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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4월혁명과 민주공화국 지난 일요일 서울 강북구에 있는 한신대학교에서 치러진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심사를 하러 갔다. 강북구청이 마련한 ‘4·19혁명 국민문화제’ 행사의 하나였다. 4월혁명의 역사적 의미와 그 현재적 과제를 놓고 청년세대들이 활기차게 벌인 토론은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한번 돌아볼 기회를 안겨줬다. 내일은 4월혁명이 58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4월혁명을 생각하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청록파 시인 박두진이 4월 혁명을 기린 시 ‘우리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다. “아름다운 강산에 아름다운 나라를,/ 아름다운 나라에 아름다운 겨레를,/ 아름다운 겨레에 아름다운 삶을/ 위해,/ 우리들이 이루려는 민주공화국./(…)/ 우리는 아직/(…)/ 우리들의 전진을 멈출 수가 없다./ 혁명이여!”라는 시인의 독백은 4월혁명이 추구한 정신이 민주공화국의 구현에 있었음을 생생히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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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사회적 가치의 재발견 지난 몇 년간 가장 좋아하고 존경해온 사회이론가는 유태인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이다. 바우만은 국내에 널리 알려진 반면, 세넷은 큰 관심을 끌진 못했다. 내가 세넷을 주목하게 된 것은 그의 문제작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이 책의 원제목은 ‘인간성의 부식(The Corrosion of Character)’이다. 세넷이 분석한 것은 신자유주의 아래에서의 직업과 인간성의 변화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유연성은 개인 직업 선택의 유연성을 강제하고, 이 유연성의 증대가 인간성의 침식을 가져왔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인간성이란 스스로를, 동시에 타자를 존중하는 태도와 가치를 뜻한다. 이를 위해선 자아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에 대한 연대가 요구된다. 문제는 1980년대 이후 지구적 영향력을 강화해온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개인의 삶을 표류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공동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전쟁터로 전환시켜 버렸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