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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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이천원의 예술 예술은 왠지 도시적이어야 하고, 지적이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이 든다. 예술은 깊이 파고들거나 눈이 번쩍이게 창조적이어야 할 것 같아 가까이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비 오는 산책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그날도 발걸음이 할아버지의 길목 좌판으로 향하고 있었다. 비도 오고 이 철에 나오는 채소도 마땅히 없을 것 같아 스쳐가려 하는데 좌판 위에 부추 한 움큼이 빨간 소반에 담겨 있다. 테두리에 흑백 패턴무늬가 있는 검정 우산이 부추가 비에 젖지 않도록 소중히 감싸고 있었다. -
따뜻한 그늘 봄날은 간다 십여년 전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에 한 중년 남자가 찾아왔다. 지역 사진들을 모아서 테마별로 기획전을 이어가던 때였다. 사진 전시를 하는 것 같은데 영정을 찍어보면 어떠하겠냐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부모님 사진은 사진관에 가서 찍어드리면 될 것을 왜 나를 찾아왔을까 의아했다. 그이는 부모님께 선뜻 ‘사진 찍으러 가시자’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
따뜻한 그늘 빨리 낫는 약 보건진료소장 박도순 선생은 전북 무주에 살고 있다. 그곳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정감 어린 글을 덧붙여 여러 권의 책을 냈다. 타지에 살고 있는 자식들도 미처 알 수 없는 것들,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모르는 이야기들이다. 팔순이 넘은 김씨 할머니가 밭일을 하다가 손을 다쳐서 보건진료소에 찾아왔다. 피가 난 상처에 두루마리 휴지를 감고 오신 것이다. 어르신들은 그 많은 세월을 기다림 속에 살았지만 일을 두고는 못 참는다. 봄바람 속에 상추가 잎을 터트리고 나오자마자 빨리 자라라고 비료를 준 것이 사달이 났다. -
따뜻한 그늘 담배 건조장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산간 내륙 지방에는 마을마다 담배 건조장이 있었다. 사진에서 병풍처럼 뒤로 펼쳐진 채 눈발이 희끗거리는 산은 속리산이고 그 허허벌판에 관광호텔 같은 것이 멀리 보인다. 허물어져가는 토담은 담배 건조장으로서 임무를 일찍이 마친 것 같다. 이젠 담배가 극도로 혐오 대상이 되었지만 예전엔 국가가 국민들에게 담배를 팔아서 큰 수익을 내는 장사를 했다. 동네의 자그마한 구멍가게에서도 담배 판매 허가증만 가지면 밥은 먹고 살았다. 지금보다 배에 기름기가 훨씬 덜하고 식구들 목에 풀칠하기가 어려웠어도 남녀노소가 담배를 사서 피웠다. 사무실에는 재떨이를 갖추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시절에는 아무도 나서서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다. 단순히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서였을까? -
따뜻한 그늘 싸락눈 같은 밀가루 어느 나라나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 있고 그에 따른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처럼 쌀이 주식인 나라에서도 국수나 수제비, 칼국수는 쌀로 지은 밥 다음으로 사랑받고 있다. 중국처럼 땅 덩어리가 큰 나라는 지방마다 특색을 갖춘 별의별 면이 있기도 하고, 우동 면발 하나에 각별한 풍미를 겨루는 나라도 있다. 모든 방송들은 때를 맞춰 음식 프로그램으로 채워지고 그 많은 메뉴들은 우리들의 친숙한 밥상으로 착각이 들기도 한다. -
따뜻한 그늘 남광주역 남광주역은 1930년대에 세워진 역이었다. 그곳은 전라남도의 화순, 보성, 순천을 지나 경상도 진주, 마산, 삼랑진을 잇는 경전선으로 비둘기호, 통일호 등 주로 완행열차가 다녔다. 기차는 남평, 화순, 나주역 등 수많은 간이역에서 정차를 하였기에 농어촌 사람들에게 손발이 되어주었다. 그러다보니 남광주역 광장에는 새벽 도깨비시장이 생기게 되었다.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채소나 생선 등을 보따리에 이고 남광주역으로 모여들었다. 큰 장꾼도 있었지만 대개는 열무 댓 다발, 가지와 애호박 몇 개, 찐 옥수수 한 소쿠리, 메밀묵이나 김부각, 붕어, 홍어, 갈치 등 반찬거리로 새벽 공기를 깨웠다. 새벽시장에 나온 손님들은 근처 식당 주인이거나 싱싱하고 싼 물건을 사러 온 주민들이었다. 8시 반쯤 되면 물건은 거의 팔리고 역 관리인이 호각을 불며 대 빗자루를 들고 광장을 쓸기 시작했다. 9시가 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싶게 남광주역은 시치미를 떼고 저 홀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따뜻한 그늘 연둣빛 버들잎 운무 속에서 비단결같이 가는 비가 내린다. 춘분을 맞아 여기저기 새순이 돋는데, 연못가 버들잎이 비에 젖어 연초록 비단처럼 나부낀다. 하루가 다르게 나뭇잎은 빛을 더한다. 버드나무는 제 색을 갖기 전인 이 시기가 제일 예쁘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풀숲 저편에 대여섯 그루 버드나무가 손짓을 했다. 곁에 가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아직 뱀은 안 나오겠지 하며 발길을 조심스럽게 더듬거리며 가고 있는데 갑자기 왜가리 한 마리가 버드나무 사이에서 푸드덕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아, 아깝다. 저것을 찍었어야 하는데!’ 연두색 버드나무 위로 나는 새를 상상했다. 버드나무 쪽으로 다가가는데 왜가리는 멀리 날아가지 않고 가까운 저수지 위를 선회하면서 아-악 소리를 질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왜가리가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다니. 나는 비로소 새를 주시했다. 왜가리도 나를 바라보는 것이 분명했다. 다시 한번 아-악-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나를 향해 돌진할 기세다. 맹수가 따로 없었다. 왈칵 무서움이 들어 비옷 후드를 머리에 쓰고 서둘러서 빠져나왔다. 아마도 버드나무 군락지에서 새끼를 기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토록 사나워질 수가 있겠는가. -
따뜻한 그늘 서른이 된 아들 사진 한 장이 때로는 긴 호소문보다 더 설득력을 갖기도 한다. 특히 가족이나 사랑처럼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에서는 더욱 그렇다. 엄상빈 작가는 자신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해서 첫 목욕, 주민등록증 발급, 첫 면도, 군 입대와 제대 모습 등의 성장 과정을 담은 사진집을 발표했다. 가족의 일상을 따뜻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작업은 사진가 엄상빈의 성격과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
따뜻한 그늘 아리랑 예술단 ‘아리랑 예술단’은 탈북민들로 구성된 공연단체다. 이동근의 사진을 설명 없이 보면 북한 공연으로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이들은 북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통일관련 행사나 지방축제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탈북민에게는 하나같이 슬프고 기막힌 사연이 있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다 죽은 사람, 중국 공안에 붙잡혀 다시 북한으로 송환되는 사람, 중국으로 넘어와서 인신 매매단의 마수에 걸려드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목숨을 걸고 찾아와서 남한의 ‘자유’와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체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가운데 남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생활전선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나서다 보니 다시 북한말과 노래와 춤을 가지고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
따뜻한 그늘 청색 의자 땅이 돈으로만 보이는 세상이기도 하지만 시골 어른들은 자투리땅만 보여도 호미를 들고 씨앗을 심는다. 이것도 돈이 되기 때문이기는 하나 자연과 함께 숨 쉬면서 먹고살아가는 일에 몸이 먼저 나선다. 동네 언덕배기 과수원 옆 자락에 마늘 몇 줄을 심어 놓은 것이 보였다. 동네 사람들이 산책할 때 밟고 다녀서 먼지가 풀풀 나는 메마른 땅이었다. 과수원 어르신 내외는 몇 년 전부터 이곳에 마늘이나 들깨를 심었다. 거름이 별로 없는 땅의 수확은 별거 없어 보였다. 어제도 산책길에 지나가던 사람이 비실비실 커가는 마늘을 보고 “이거 곤자리(벌레) 먹었구먼” 하고 간다. 사람들은 남의 농사일까지 참견하기를 좋아한다. -
따뜻한 그늘 아버지와 함박꽃 남도사람들은 유난히 함박꽃을 좋아한다. 옛날 시골 화단이랄 것도 없는 곳에 아무렇게나 심어두면 함박웃음처럼 환하고 소담한 크기로 어우러져 피는 꽃, 집 안 사람들이 특별히 눈길 주지 않아도 저 혼자 꽃이 되어 밝게 웃음 짓는다. 김유리는 아흔 살의 홀로 되신 아버지, 혼자서는 씻는 일도 못하니 대소변도 불편할 수밖에 없고, 생각의 질서도 잃어버린 아버지를 사진에 담았다. 꾸밈없고 담백한 사진이 우리들의 늙은 부모님을 생각하게 해서 애잔함과 그리움으로 살아난다. -
따뜻한 그늘 서울 옛길2 이한구의 서울 옛길 작업에서는 서울의 역사와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오래 함께 있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서울 역시 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감각해질 수도 있겠지만, 오랜만에 찾는 사람들에겐 더 특별한 감정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울에 한 번 다녀오면 그 번잡함에 기가 빠져서 ‘숨이 막히는 곳’이라고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다. 나도 한때 서울에 살 때는 ‘탈서울’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한강 다리를 건너는 동안 이렇게 푸르고 도도한 강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더구나 도심 한가운데 우뚝 솟은 북악산·인왕산의 자태는 고도 600년의 자부심까지 느끼게 한다. 세계 어느 나라 수도가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단아하고 간결한 자태를 지닌 산을 배경으로 할 수 있겠는가. 강남의 높은 빌딩이나 번화가를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은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할 때 서울 도심의 단아한 자존심까지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