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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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복숭아 뜨거운 열기와 코로나19로 범벅이 된 지친 시간의 물결 속에서 나무의 초록빛은 더 짙어지고 과일은 제 몸속에 당분을 저장해가고 있다. 숲이 짙어진다는 것은 곧 가을이 오고 단풍이 든다는 신호이다. 왜 무더위 한가운데에 입추가 들어 있을까? 절정이었을 때 다음에 올 위기나 평화를 준비한다는 뜻일 것 같다. 더위와 코로나가 더 이상 상처를 주지 말고 잘 지나가길 바란다. -
따뜻한 그늘 데왁세기 눈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나 동백꽃은 애절함을 주지만 여름에 피어나는 꽃에서는 인내와 노고를 참는 무던함이 보인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맘껏 화사함을 드러내는 능소화나 한여름에 피어서 가을까지 들녘을 밝히는 배롱나무는 자칫 무기력해지기 쉬운 여름을 이기는 힘이 되어준다. 꽃인들 좋은 시절에 피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들이 있다. -
따뜻한 그늘 노들섬 사진은 재현에서 시작된다. 이 기능은 사진의 복잡한 이론을 낳게 한다. 이런 논쟁을 차치하고라도 사진이기에 가능한 초월적인 것이 있다. 사진은 먼 시간을 단숨에 끌어당기는 역사의 증언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사진 한 장이 문득 60여년 전 한강 노들섬의 모습을 아련히 다가서게 한다. 한강을 내려다보는 두 여인의 뒤태가 곱다. 멋이란 이런 것이다. 억지로 꾸미지 않는 것, 되바라지지 않는 것, 무상한 것. 초로의 두 여인은 곱게 단장을 하고 여름날 물 구경을 나온 것인가. 한 여인은 꽃무늬 치마에 꽃무늬 양산으로 깔맞춤을 하고 있다. 여인의 뒷모습에서 속옷이 비치는 시스루룩 저고리가 인상적이다. 다른 여인은 흰 치마저고리에 흰 양산을 들고 있다. 한국의 정서와 멋과 여유를 사진에 잘 담고 있다. -
따뜻한 그늘 안녕하신지요 지붕에 비가 새서 공사를 하고 있는데 모자와 마스크를 쓴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그쪽에서 유심히 쳐다보니 누군지는 모르지만 인사를 했다. 시골에서는 무조건 인사를 잘해야 무탈하게 산다. 가까이 다가오자 누군가 싶어 자세히 보니 전 마을이장이었다. 마음은 깊으나 좀 시크한 분이다. 처음에 외지인으로 마을에 들어와서 문화공간을 만든다고 할 때 협조적이었다. 그런데 말은 늘 무심했다. “정신 나갔으니까 이 짓 하지.” 고생한다는 의미로 듣고 있다. 누구에게나 반말 투다. 일전에 읍사무소에 전화를 하는데 그쪽에서 “왜 반말을 하십니까?”라며 언성을 높이자 전 이장은 “내가 언제 반말해”라고 응수했다. “지금도 반말이 아니고 뭡니까?” 전화기 밖으로도 들리게 다툼을 하고 있었다. 시골 어른들은 반말을 많이 한다. 서로 존댓말을 쓴다는 것을 이질적이고 소모적인 행동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
따뜻한 그늘 꽃무늬 양산 군산 소룡동 철거 지역에 끝까지 버티고 있던 빈집의 풍경이다. 텅 빈 공간에서 꽃무늬 양산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내 집이었어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주민 대부분은 황해도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땅인들 자기 소유가 가능했겠는가. 국유지에 판잣집을 짓고 살다가 나중에 시멘트 블록으로 교체한 것이 변화의 전부이다. 200여호가 벌집처럼 붙어 있었으며 주민들은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살았다. 그마저도 수해위험지구 철거라는 이유로 터전을 잃고 쫓겨나갔다. 땅의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손에 쥔 것이 거의 없지요”라고 주민이 말했다. 사진집을 만든 후에 찾아갔을 때는 대부분 철거된 상태였다. 그중 형편이 나은 몇 집이 남아 있었는데 ‘보금자리 아파트’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
따뜻한 그늘 동물의 왕국 한 마리의 동물 앞에 서 있다. 하이에나인지 늑대인지 여우인지 알 수 없는 동물이기에 더욱 흥미롭다. 김윤해는 길이 10㎝ 정도의 조악한 플라스틱 완구를 120㎝로 확장시켜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값싼 가격으로 쏟아지는 플라스틱 제품들, 그래서 정교하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자본주의의 가장 적나라한 폭력 앞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
따뜻한 그늘 북전주역 북전주역을 찾게 된 것은 참으로 우연이었다. 전주를 사진에 담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돌아보던 중에 팔복동 끝자락에 주차를 하고 보니 그 건물이 바로 북전주역이었다. 그동안 나는 북전주역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20여년 전 남광주역 사진을 찍기 위해서 매일 새벽에 광주까지 다니면서도 몇십년째 살고 있는 전주에서 북전주역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연히 그곳을 찾아가게 되다니! 특별한 인연 같았다. 더 놀라운 것은 건널목에 이르렀을 때 신호음과 함께 회색 화물열차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아직 살아 있는 역인가?’ 하고 사무실 쪽으로 가보니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
따뜻한 그늘 골든타임 며칠 몸살을 앓다가 모처럼 새벽 산책길에 나섰다. 세월이란 것이 참으로 빠르게 흐르고 있다. 아카시아꽃이 한창이던 것이 이제는 밤꽃이 하얀 무리를 이루고 피어 있다. 자갈길가에는 접시꽃도 피어 있다. 작은 밭을 일구는 이가 해마다 접시꽃씨를 뿌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는 밭 아래쪽에서 곱게 피어 있다. 어느새 자두도 빨갛게 익었다. 참새 두 마리가 참나무 가지에서 대나무 가지 위로 날아다니는 모습이 경쾌했다. 갑자기 참새는 몇 년을 살까 궁금했다. 길어야 5~6년이란다. 참새는 죽을 때 어쩌면 장렬하게 숲에 몸을 던질 것 같기도 한데 사고로 많이 죽는다고 했다. -
따뜻한 그늘 산의 기억 1950년대 울릉도 풍경으로 갓 이은 듯한 초가지붕 한 채가 웅혼한 산자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앞에는 미루나무 두어 그루가 석양 햇살을 받고 반짝인다. 뒤로는 네 개의 산자락이 지는 햇살을 받고 몸을 안으로 접는 경건함을 보인다. 나무와 계곡을 끌어안는 간결한 어둠. 어쩌면 산은 도(道)와 같은 것이다. 보이면서도 다 볼 수 없는 것. 그래서 그것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
따뜻한 그늘 장에 가자 정영신은 시골 장터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은 지가 30년이 넘는다. 아마추어 작가 시절 너도나도 시골 장터에 가서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을 찍는 일이 많았다. 왜 그것이 흥미의 주제가 되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장날은 촌놈 생일’이라고 할 만큼 보통날보다 뭔가 더 특별하고 생기가 돌아 공동체의 축제 같은 날이기 때문이었으리라. -
따뜻한 그늘 유월의 숲 봄이 오는가 싶더니 꽃들은 언제 져버리고 장마 때와 같이 하루걸러 비가 내린다. 산에는 여름이 빨리 오고 새 소리가 드높아졌다. 세상의 걱정을 뒤로하고 산길을 걷는 일은 마음을 쉬기에 제격이다. 그곳은 비교적 사람들의 발길이 한적한 곳이다. 편백나무가 빼곡하고 경사가 심하지는 않은 곳으로 사람이 겨우 혼자 다닐 수 있는 산책길이다. 그런데 길 아래 경사진 곳으로 자전거 한 대가 쓰러져 있다. 조금 있자니 초등학교 5~6학년쯤으로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달려오면서 “그러니까 내가 조심하랬지”하며 자전거를 일으켜 세운다. 그 뒤로 달려오는 같은 또래의 약간 덩치가 커 보이는 아이에게 하는 소리였다. 약간 덩치가 커 보이는 아이는 친구가 일으켜 세운 자전거에 오르면서 “내 등에 흙 좀 털어주라”고 하자 먼저 온 아이가 친구의 등에서 흙을 털어주었다. “엉덩이는 네가 털어. 제발 좀 넘어지지 마라.” 마치 엄마가 아들에게 하는 잔소리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바라보다가 “친구가 넘어진 거니?” 하고 물었다. “네” 하는 대답소리와 함께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사라졌다. -
따뜻한 그늘 나무 나무의 형태나 색깔이나 쓰임새나 향기를 생각하고 있노라면 참 두드러지게 멋진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나무는 나라의 역사만큼이나 긴 수명을 지켜온 것도 있는데 죽어서도 오랫동안 유용하게 쓰인다. 인간의 눈으로 쓰임새를 이야기하는 것은 속된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의 말인 것을. 나무는 모습에서도 각기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목련은 목련대로 서슴없으면서도 고아한 모습을 드러낸다. 과일나무도 그냥 두면 시든 떫든 본래의 맛을 지닌 채 열릴 텐데 가지치기를 하는 것은 사람들의 목적에 맞게 활용하기 위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