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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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전설 발언권 모든 사람에게는 발언권이 있다. 즉 자기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이 사석에서 하는 말은 발언권이라고 하지 않고 대화라고 한다. 발언권은 적어도 어떤 단체나 사회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그 발언권을 얻기 위해 정치가가 되려고 한다. 한편으로 예술이 사회적인 이슈를 표방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발언권도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본다. 1919년 임시정부를 시작으로 해방 후 1948년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나는 공교롭게 1948년 태어났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때부터, 망상적인 판단으로 친위 내란을 일으킨 작금의 윤석열까지 겪은 파란만장한 세대다. 어릴 때 투표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고무신과 막걸리 사주고 매표하는 것도 보았다. 마침내 3·15 부정선거로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다. 그 과정에서 4·19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바로잡고자 총칼 앞에 분연히 일어선 젊은 청년들의 피 끓는 정신 승리와 상처를 기억한다. 그 세대들이 바로 지금 국민 꼰대로 여겨지는 70, 80대 어른들이다. 이들이 그 당시 기억을 소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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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흰제비꽃 흰제비꽃은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흰 젖처럼 우유색을 띠고 있다고 해서 흰젖제비꽃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따뜻한 그늘’에 사진과 글을 게재하기 시작한 것이 2020년 1월부터니 딱 2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시작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유입되었는데 이제는 바깥에서나마 마스크를 벗게 되었다. 지난 5월 어느 햇볕 좋은 날, 늘 다니던 산자락을 지나가다가 돌담 아래 하얗게 핀 제비꽃을 보게 되었다. 웬만해서는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작은 무리를 이루며 피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들여다보아야 바로 볼 수 있을 만큼 키가 작았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꽃잎이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 산들바람에도 너는 온몸으로 흔들리고 있구나.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몸짓이구나. 하얀색이어서인지 더욱 청초하고 곱다. 꽃말이 ‘겸양’이라고 했다. 더 이상 겸양할 것도 없어 보여서 왠지 바라보는 쪽이 무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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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수레국화 전주에서 진안 계남정미소로 가는 찻길이 예전에는 곰티재뿐이었는데 이제는 여러 길이 생겼다. 관촌 사선대를 거쳐 풍혈냉천 쪽으로 가는 길은 평지인데, 외궁리 쪽은 낮은 산길을 지나간다. 산길 못미처에 마을이 있고 오래된 폐교가 있다. 마을 앞길은 요즘 들어 40㎞로 속도를 제한하고 있다. 못 보던 다슬기탕 집이 생겼다. 길가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늘 예쁜 꽃이 피어 있다. 마침 꽃밭을 가꾸는 할머니가 보여서 차를 세웠다. 할머니는 알록달록한 꽃무늬 바지를 입고 진보라색 상의와 챙에 수건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도 보라색 함박꽃 같은 큰 꽃무늬가 있는 것이었다. 담 옆 꽃밭에는 엉겅퀴와 수레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지고 있었다. 인도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 찻길가에 붙어 있는 꽃밭 아래에서 할머니는 풀을 뽑고 있었다. 발아래에는 채송화 어린잎이 올라오고 있었다. 틈틈이 백일홍도 나 있었다. 모종을 좀 얻어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밴 곳에서 솎아가라고 했다. 그런데 싹이 너무 어려서 몇 포기를 뽑다가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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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어떤 지점 김전기 사진가는 2007년부터 7번 국도에 관심을 가졌다. 부산 남포역에서 고성 통일전망대 휴게소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 도로다. 해안선 곳곳에는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다. 이곳저곳에서 미사일을 쏘아대는 형국에 철조망이 어떤 큰 기능을 하리라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동해바다를 끼고 드라이브를 하며 산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이 지점에서도 여기저기 남아 있는 전쟁의 잔재들을 볼 수가 있다. 그것이 잔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전쟁의 의구심을 주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김전기의 사진은 이데올로기의 서늘한 흔적을 더듬는다. 무심한 풍경이 때로는 키치적인데도 아픔과 서글픔을 갖게 한다. 그의 사진은 언뜻 아름다운 풍광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하게 되는 시점을 노린 것이다. 이렇듯 그의 사진은 이념의 방으로 우리를 교묘히 끌어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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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안녕하세요, 광주극장 광주극장은 1933년에 설립해서 지금까지 운영하는 가장 오래된 단관 극장이다. 아직도 가끔씩 필름 영사기를 돌리며 영화 시작 전에 타종을 두 번 울려준다. 시작 5분 전과 영화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면 극장은 바깥세상과 분리된다. 나는 2014년부터 1년간 광주극장 사진을 찍기 위해서 드나들었지만 늘 무뚝뚝하고 무심한 극장의 내면은 간파하기가 어려웠다. 무거운 공기와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은 사진 몇 장으로 될 일이 아닐 성싶어서 어느 시점에서 접기로 했다. 8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사진들을 들춰 보니 광주극장은 나에게 나름 친절한 면을 보여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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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숨겨진 그리움 이 작은 봉오리에서 커다란 작약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믿기지 않아서 작은 꽃병에 꽂아 보았다. 무심히 사진을 찍고 보니 사진 안에 수많은 사연이 가득 담겨 있음을 깨닫고 놀랐다. 며칠 전 광주극장 김 전무는 작약 꽃봉오리 몇 개를 신문지에 말아서 들고 찾아왔다. 전시 관계로 상의할 일이 있어서 들른 것이다. 꽃을 들고 와서 다정스럽고 쑥스럽게 웃으며 조용히 내밀던 모습이 떠오른다. 오른쪽에 보이는 낱장으로 된 달력은 지난해까지 같이 일했던 정민이가 디자인해서 만든 것이다. 그 아래 받침으로 보이는 빨강 책은 주용성 사진가가 홍콩 사태 때 다녀와서 만든 사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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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찔레꽃 화사한 벚꽃이 지고 나면 복숭아꽃이나 자두꽃이 뒤를 따른다. 이어서 아카시아나 찔레꽃이 피기 시작한다. 신록이 짙어지면 산들거리는 바람을 따라 하얀 꽃들이 그 청아함을 드러내면서 향기가 사방으로 흩날린다. 나는 코로나 감염으로 앓고 나서는 아직도 후각이 돌아오지 않아 향기를 맡을 수가 없다. 오직 그 향기는 내가 품었던 감각의 기억일 뿐이다. 숲길에서는 유치원생들이 선생님을 따라와서 야외 학습을 하고 있다. 선생님은 찔레 순을 따서 껍질을 벗긴 뒤에 씹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이들은 너무나 신기해서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찔레꽃이야. 이렇게 먹을 수도 있어. 선생님이 찔레꽃 노래도 불러주었지?” 아이들은 그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네!” 하고 합창하듯 대답했다. 장사익의 찔레꽃은 생각이 나는데 또 다른 동요가 있었나? 아, 그렇지. ‘하얀 저고리 하얀 머리 할머니 찔레꽃 닮았어요. 가시덩굴 가지에서 피는 눈부신 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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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의뭉스러운 그녀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의원을 찾아갔다. 늘 한가한 편이어서 오래 기다림이 없어 부담 없이 들를 만한 곳이었다. 가끔 편두통이나 소화불량으로 찾아가지만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기도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일렬로 된 의자 서너 개가 놓여 있고, 오른쪽 벽에 붙은 카운터 안에 그녀가 앉아 있다. 그녀는 낮은 의자에 앉아서 들어오는 손님에게 엷은 미소를 던진다. 평범한 옷에 약간 볼륨이 있는 머리를 한 중년 여성이다. “어디가 아프신가?” 하고 물어보는 얼굴에 진지함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좀 가볍게 보면서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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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내 젊은 친구의 결혼식 친구 결혼식을 축하하러 서울에 간다니까 모두들 놀란다. 신부 부모님의 하객으로 가는지를 재차 묻는 것이다. 그게 아니고 친구 결혼식이라고 굳이 강조를 하니 모두 웃었다. 젊은 여성들과 친분이 생겨 결혼식에 참석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서울까지 가는 경우는 처음이다. 신부와는 꽤 오래전부터 알게 되어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덕분에 그녀의 절친들과도 같이 어울리고 있다.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청춘이니 이쪽에서야 반가운 일이지만 젊은이들이 한두 번도 아니고 자주 놀러 와 마음을 여는 일은 드물다. 그녀는 여리고 반짝이고 섬세하며 친절한 성격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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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쑥국 뒷산에 복숭아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벚꽃은 지고 있다. 꽃잎은 바람이 불 때마다 휘리릭 꽃비가 되어 흩날린다. 사람 그림자가 드문 낮은 골짜기 안에 서 있자니 황홀함인지 외로움인지 모를 감정이 지나간다. 이런 마음을 추스를 길이 없어 땅을 바라보다가 풀숲에 띄엄띄엄 돋아 오른 쑥을 보았다. 쑥을 뜯기 시작했다. 쑥을 뜯다보니 어린 시절의 일들이 떠올랐다. 봄이면 달래, 냉이, 쑥부쟁이, 쑥, 머위 등을 뜯으러 산자락이나 들판을 헤매고 다녔다. 그런 시기는 잠시였지만 윗세대의 모습들이 겹치면서 향수를 불러들이기도 했다. 겨울에도 비닐하우스 안에서 키운 냉이나 달래를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논밭 가에는 농약을 치는 경우가 많으니 함부로 채취하기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겨우 쑥 한 줌을 뜯어들고 봄기운을 안고 들어왔다. 마침 지인이 머위 첫 잎을 따와서 모처럼 봄나물 저녁상을 차릴 수 있었다. 봄나물은 면역력 증진, 항암효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효능을 지니고 있다. 겨울의 추위 속에서 응축된 에너지가 밖으로 솟아오르는 것이니 몸에 좋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춘곤증도 이겨내고 피로를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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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Fine Dust 1960년대는 고학력자들이 서독에 광부로, 간호사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고 있던 때였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그룹 미팅이라는 것을 처음 나갔는데 군대를 제대하고 복귀한 아저씨 같은 대학생이 섞여 있었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그는 어눌한 어조로 ‘환경 연구’를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가 결국 그가 딱하게 여겨졌다.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그런 일을 한다고 할까? 아무튼 그의 얼굴은 잊었지만 그때 들었던 그 생경한 단어 ‘환경’이라는 말이 이렇게 빨리 절망스러운 화두가 될 줄은 몰랐다. 당시에는 의식주만 해결되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겠다 싶은 시대였다. 이제 환경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위협적인 요소의 근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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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골목길 아파트가 선호의 대상이 되면서 골목길은 동네의 풍경 안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심지어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시작한 도시재생 사업이 빠른 시간에 성과를 이루려는 생각 때문에 옛 골목의 정서와 시간을 지워버리는 경우가 있다. 낡은 마을에 예술가들이 정착하게 되는 것은 좀 남루하더라도 옛 흔적이 남아 있는 것에서 의미를 찾으며 비교적 집값이 싸기 때문이다. 삶의 흔적을 하나둘 복원해 나가면서 주민들과 부딪치기도 하고 화합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다보면 어느새 소문이 나서 관광지로 변하고 집값은 오른다.